「양평시민의소리」에서 작가 김용만의 장편소설 『미친 사랑』을 4월 9일부터 인끼리에 연재하고 있습니다. 『미친 사랑』은 지난 1994년 『인간의 시간』이란 제목으로 출간했던 장편소설을 전면 개작한 작품으로 3인칭 소설이 1인칭 소설로 새롭게 태어났습니다. 

 

 

“어서 끌어안지 못해?”

미나가 버럭 소리친다. 나는 마지못해 그녀의 몸을 두 팔로 껴안는다. 두툼한 가슴이 한아름 안겨온다. 미나가 시키는 대로 몸을 움직여준다. 공식적인 수고다. 마치 창녀가 그러하듯 아무런 감흥 없이 기계적으로 허리를 움직인다.

“멋대가리 없긴.”

몸을 뒤틀던 미나가 한숨을 진다.

“다시 해봐. 자자 멋지게. 당신이 첫날밤 녹여줬듯이 해보란 말야.”

나는 다시 그녀의 몸 위로 기어오른다. 몹시 피곤하다.


오후부터는 교련과 교양강좌 시간이다. 교련 시간에는 제식훈련과 체포술을 주로 배운다. 나는 훈련복으로 갈아입고 학과준비에 들어간다. 훈련은 연병장에서 실시된다. 내무반을 나온 나는 연병장 쪽으로 걸어간다. 그때 직원으로부터 면회 왔다는 전갈을 받는다.

학과 시간에 누가 면회 왔을까? 면회 올 사람도 없는데?

미국에 있는 친구가 찾아올 리도 없고, 외아들이라 형제간도 없거니와 그리워해 줄 연인도 없다. 부모도 찾아올 리가 없다. 부모에게는 입교 사실을 당분간 숨길 수밖에 없다. 입교 사실이 퍼지면 미나의 귀에 들어가기 십상이다.

나는 연병장 쪽으로 향하던 발길을 헛걸음 셈치고 정문 쪽으로 꺾는다. 길가 언덕배기의 풀잎에는 이미 누런 잎노랑이가 배들어 있다. 푸른 계절의 흔적이듯, 그 메말라가는 잎무덤 속에는 여린 속잎새가 방긋 눈을 뜨고 있다.

면회 온 사람을 만나러 가며 한가하게 풀잎을 살펴보다니....

나는 고개를 들어 정문 쪽을 바라본다. 그런데 정문을 바라보는 내 시선이 점점 떨리기 시작한다. 위병소 앞에 서 있는 사람은 분명 여자다. 순간, 내 겉돌던 의식이 자지러진다. 위병소 앞에 꼿꼿이 서 있는 여자가 누군지 확인된 것이다.



이럴수가....

미나는 내 쪽을 꼬나본다. 얼굴에 품은 독기가 멀리서도 살기차다. 그 살기찬 독기에 가위눌려 나는 더듬더듬 다가간다. 그녀 곁에 이르자 내 몸은 마취제에 취한 듯 금세 흐물거린다. 갑자기 학교가 감옥처럼 여겨진다. 탈출하고 싶다. 버둥댄다. 하지만 땅에 붙은 발이 떨어지지 않는다. 이제 미나의 날카로운 이빨에 찢길 수밖에 없다는 생각, 그 잔인한 공포감에 질려 숨이 막힌다.

“몰래 도망쳐 나와 취직해?”

미나는 대뜸 내 멱살부터 잡는다. 날쌘 공격이다.

“죽을 것 살려놓으니까 이제 나와 상종 않겠다 이거지?”

미나는 계속 악다구니를 퍼댄다. 나는 방어자세를 취하지도 못한 채 멍청히 당하기만 한다. 대신 위병소에 앉아 있던 경찰관이 미나 곁으로 다가서며 타이른다.

“아주머니 고정하세요. 여긴 신성한 교육기관입니다.”

“여기가 뭐하는 곳이죠?”

“경찰관 교육기관이랬잖소.”

“누가 그걸 몰라 물었어요? 이런 사기꾼을 합격시켜도 되냐 그 말이에요.”

“참 싱거우시긴. 신원조회해서 뽑았는데 저 사람이 왜 사기꾼입니까?”

“경찰도 썩었구먼. 이런 형편없는 걸 뽑았으니 썩을 대로 썩었어.”

“뭐요? 말조심해요.”

“말조심 안하면 잡아넣을래요”

“무슨 내막인진 몰라도 하여튼 조용합시다.”

“눈이 뒤집히는데 날보고 체면차리라고?”

“미나의 눈꼬리가 치켜오른다. 나는 멱살을 잡힌 채 배실배실 웃기만 한다. 모든 걸 포기한 상태여서인지 숫제 마음이 홀가분하다. 내 웃음 속에는, 내 넝마 같은 신세를 샅샅이 관찰해주쇼, 하는 여유마저 깃들여 있다.

“아주머니, 아무리 화나는 일이 있어도 공과 사는 구별해야죠. 다시 말하지만 여기는 신성한 교육기관입니다.”

“신성한 교육기관인데 저 따위 사기꾼을 받아들여요? 저런 놈은 당장 쫓아내야죠.”

“이봐요, 근무장소에서 욕은 삼가세요.”

“저런 놈한테 욕 말고 무슨 말을 쓰라는 거죠?”

“보자보자하니 뭐 이런 여자가 다 있어.”

“뭐야? 이런 여자?”

“그럼, 당신 같은 사람한테 존댓말을 쓰라구?」

“당신 같은 사람? 요것 봐라. 그래, 네 계집은 부처님이냐? 네 계집도 나처럼 당해봐라, 용 안 쓰고 배기나!”

“이 여자가 어디 와서 행패부려?”

“행패? 좋다! 이재저래 나 환장한 년이다!”

“어쭈....”

“죄송합니다.”

나는 위병 경찰관에게 대신 사과하며 미나의 팔을 끌고 밖으로 나가려 한다. 하지만 미나는 여러 사람 앞에서 따지자며 계속 버틴다. 내가 억지로 끌어내려 하자 땅바닥에 털썩 주저앉으며 “시팔! 이럼 나 혀 깨물어 죽을 거야!” 라고 악을 쓴다. 위병이 합세하여 위병소 뒷마당으로 떼밀어낸다.











/김용만 소설가·잔아문학박물관 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