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평시민의소리」에서 작가 김용만의 장편소설 『미친 사랑』을 4월 9일부터 인끼리에 연재하고 있습니다. 『미친 사랑』은 지난 1994년 『인간의 시간』이란 제목으로 출간했던 장편소설을 전면 개작한 작품으로 3인칭 소설이 1인칭 소설로 새롭게 태어났습니다.

 

면회온 불청객

뒤란 정원수에서는 매미소리가 요란하다. 숨을 돌린 위병이 아직 발버둥치는 미나의 한 팔을 잡은 채 조용히 말한다.

“도대체 당신 떼쓰는 의도가 뭐요?”

“의도? 그래, 저 새끼 조지는 게 내 의도다.”

“이제 점잖게 얘기합시다. 보아하니 당신도 배운 여자 같은데 인격적으로 해봅시다. 내가 당신한테 욕먹을 이유가 없잖소.”

“너도 한패 아냐?”

“히야, 이거 보통내기가 아니군. 사내를 그런 식으로 옭아매는 모양인데....”

위병은 고개를 돌려 나를 꼬나본다.

“이 병신 같은 사내야, 왜 하필 저런 걸 물었어.”

“죄송합니다. 저런 여자완 싸울 가치도 없습니다. 선배님이 참아주세요.”

“차암 딱한 사내군, 쯧쯧.”

“너 쯧쯧 혀찼어. 네가 뭔데 누굴 동정하니? 내 남편이 어째서 너한테 무시당해야지?”

“어쭈, 남편? 무시? 히야, 이 여자 아주 철학적으로 노네. 남편한테 욕할 땐 언제고. 차암 “오늘 재수 없을라니 별 미친 여자 다 보겠네.”

“야! 내가 미쳐? 코 달리고 눈 달리고 입 달리고, 나 정상적인 여잔데 왜 미쳐?”

“이 여자가 정말....”

“죄송합니다, 참아주세요. 모든 책임은 제가 지겠습니다.”

“뭘 책임진다는 거야, 이 멍청한 사내야.”

“선배님이 당한 수모에 대해서.”

“사내가 왜 그리 못났어, 계집 하나 제대로 못 다듬고.”

“지랄하네, 저 사내쯤 되니까 날 이 정도로 다스렸어. 너 같은 건 어림없으니 까불지 마.”

“어쭈, 이럴 땐 인간 같은데?”

위병은 얼굴에서 분기를 풀며 대신 객쩍은 웃음을 매단다. 잠시 조용해진다. 미나는 위병을 훑어보고 나서 임신 오 개월 된 배를 내 앞으로 배주룩이 내밀며 다가선다. 이제 네놈은 빼도박지도 못하고 꼼짝없이 내 물건이 되었노라는, 마치 부동산의 보존등기 권리증을 손에 쥐었으니 그 소유권을 멋대로 주장하겠다는 투의 자세다.

“도용해 생도, 조용한 데 가서 둘이 해결해 봐.”

미나의 성깔이 좀 눙쳐졌다 싶자 위병은 손을 털며 위병소 안으로 들어간다. 그는 위병소 뒷문을 닫기 전에 침을 뱉듯 한마디를 덧붙인다.

“그래서 경찰관은 세 가지 뿌리를 조심하랬어.”

나는 경찰사회에 유행한다는 그 잠언 같은 농담을 들은 적이 있다. 손뿌리, 혀뿌리, 좆뿌리. 그중에서 어느 것을 더 조심해야 할지는 각자 나름이겠지만, 지금 나는 세 번째 올가미에 씌워져 허덕이고 있는 것이다. 손뿌리와 혀뿌리를 함부로 놀리다가는 구설수나 징계 아니면 최악의 경우 법률적인 상처를 입게 마련이지만 좆뿌리를 잘못 놀리다가는 자칫 인생을 거덜내기 십상이다. 그걸 잘못 놀리면 인간의 슬기로운 지혜가 우매한 미혹으로 탈색되고 희망이 절망으로 무너지고 만다.

“선배님, 해결할 것도 없습니다. 퇴교하면 그만입니다.”

뒤늦게야 위병소에 대고 소리친 나는 벙어리가 되려는 듯 입을 굳게 다문다. 그녀와는 일언반구도 나누지 않겠다는 고집이다.

애시부터 너와의 인연을 거부해 온 나다. 너는 지금 계산을 잘못하고 있다. 나는 이 학교를 그만두면 도로 자유로운 몸이 될 것이다. 너의 그늘에서 벗어나 이제 본래의 순수한 나로, 영원한 이상과 그리움에 불타던 나로 환원될 것이니 네가 무슨 개지랄을 해도 좋다. 그런 배짱이다.

미나는 내 속내를 읽기라도 한 듯 감쪽같이 악다구니를 숨긴다. 그녀가 다시 입을 연 건 나를 따라 부평 시내로 나와서인데 그나마도 부드럽고 조심스러운 말로 동정을 구걸하다시피 한다.

“우리 새출발해요. 당신이 없는 동안 난 거의 미쳐 지냈어요. 당신은 참 이상한 존재예요. 세상에 나를 이처럼 미치게 만들다니. 콧대 높기론 둘째가라면 서러운 난데....”

미나의 눈에서 눈물이 줄줄 흐른다. 나는 그녀의 질퍽한 눈물을 보며 속으로 중얼거린다.


웃기지 마라. 차라리 네 입이 더러울 때가 마음 편하다.


나는 온순해지려는 그녀의 말투가 비위상한다. 나는 계속 입을 다문 채 발길이 이끄는 대로 무작정 앞질러 걸어간다. 되도록 지저분한 골목을 택해 걷는다. 깨끗한 길은 그녀와 함께 걷기에는 너무 과분한 시혜다. 조용하고 깨끗한 곳에 가면 마음이 순화되고 정제된 말이 흘러나오기 십상이다. 나는 정숙해지려는 미나에게서 되레 공포감이 느껴진다. 논다니가 사내의 살냄새에서 안정감을 느끼듯, 청소부가 쓰레기냄새에서 친근감을 느끼듯, 나는 미나의 악다구니에서 편안함이 느껴진다.

“그럴 거죠? 우리 새출발할 거죠? 저도 현모양처가 될 테니 우리 멋지게 살아요, 그럴 거죠?”

“여기는 어찌 알고 찾아왔지?”

나는 무엇보다 미나가 부평까지 찾아온 게 궁금하다.

“당신 공군친구를 구워삶았죠. 여의도 비행장에서 함께 근무했다는 헌무 씨 말에요.”

아차, 헌무에게 입교 사실을 알린 게 후회스럽다. 부모한테까지 공무원 신분을 숨겨왔는데, 운명의 액은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찾아오고 있었다.

“애는 언제 생겼지?”

“염려 말아요. 당신 애니까요.”

미나는 자기의 정성 어린 말에 대꾸해 주기는커녕 자꾸 겉돌기만 하는 내 무관심이 섭섭한 모양이다.

“어째서 안 뗀 거야?”

“당신이 무조건 좋으니까 낳고 싶어서.”

“구역질나는 소리 마!”

나는 발길을 멈추고 고개를 푹 숙인다. 땅이 빙빙 돈다. 미나가 애를 가졌다니, 미나를 껴안았던 몸이 혐오스럽다 못해 갈기갈기 찢고 싶다. 나는 내 운명에 어떤 불길한 예감이 들지만 그 운명을 피할 도리가 없음을 깨달는다. 당장 낙태수술할 돈도 없거니와 호락호락 넘어갈 미나가 아니다. 방법은 있다. 학교를 퇴교하고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탈출하면 숨어 살 수는 있다. 하지만 겨우 얻은 공무원 신분을 버리자니 당장 부모 봉양이 문제다. 또 사라진다고 해서 미나가 애를 낳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다. 미나는 내 그런 마음속을 눈치채기라도 한 듯 이렇게 야지랑을 떤다.

“탈출하기에는 대한민국 땅이 너무 좁잖아요?」

미나는 길가 그늘 속으로 다가서며 배실배실 웃는다. 그 음침한 웃음은 무슨 일이 있어도 나를 소유하고 말겠다는 강한 자신감의 표출이다.

“넘겨짚지 마. 대한민국은 넓은 땅야. 백년은 너끈히 숨어 살 수 있어.”

실상 그렇다. 팔도강산 어디에서라도 숨어 살 수는 있다. 지금 양심 따위를 가릴 처지가 아니다. 미나와의 별거를 위해서라면 평생을 비열하게 살아도 좋고 무슨 횡액을 자초해도 좋다. 어서 도망치고만 싶다.

“우선 애를 떼자고. 만약 안 떼면 난 직장을 버릴 수밖에 없어.”

“또다시 도망치지 못할 걸요. 당신은 착하니까요.”

“착하다고? 내 양심과 흥정하겠다는 모양인데 그건 어설픈 수작이야. 부산에서 몰래 도망친 걸 보고도 내 됨됨이를 몰라?”

“내가 바본 줄 아세요? 나도 약은 여자예요. 당신을 처음 봤을 때 벌써 당신의 약점을 간파했다구요, 인정 많은 사람이라는 걸. 이젠 애 밴 걸 봤으니 도망칠 당신이 아니죠. 물론 내가 당신 체질에 안 맞는 여자란 걸 잘 알아요. 그래서 당신을 못 찾아도 혼자 애를 키울 참였죠. 애는 영원히 당신에게 올가미를 씌울 테니까요.”

“나는 착한 게 아니라 바보야. 그리고 당신은 나보다 몇 배 훌륭한 여자야.”

“그렇게 꼬신다고 애를 뗄 게 아니니 구질구질한 소리 마세요. 당신이 거짓말하는 건 딱 질색이니까요. 거짓말은 할 사람이 해야 어울려요. 당신은 스스로 자기 양심에 때를 묻히려고 안달하지만 말짱 헛일이에요, 아주 어색하니까요. 내가 교양티를 낸다고 요조숙녀로 봐줄 당신이 아니잖아요? 그와 마찬가지죠. 당신이 아무리 악한 척해도 내 눈엔 서툰 연기로 보일 뿐이에요.”

내 위악적인 말투를 이미 간파한 미나는 골목 건너편을 바라본다. 거기 그늘진 구멍가게 앞길에 강아지 한 마리가 누워 졸고 있다. 개 콧등 근처를 쇠파리가 날아다닌다. 잠시 침묵이 흐른다. 나는 담배를 꺼내 피운다. 그때 미나가 하늘을 향해 입을 벌린다. 그 하품 속으로 내 시선이 빨려든다. 다시 한 번 치가 떨린다.










김용만 소설가·잔아문학박물관 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