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의 소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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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서재를 '악마의 소굴'이라고 명명했다. 그렇게 비틀지 않고는 내 낡은 의식과 정서를 날카롭게 다듬을 수 없다. 나를 낯설게 만드는 예술적 혁명은 나 자신을 악마화시기큰 처절함에서 움트게 마련이다. 그 음험한 소굴은 동, 서, 북, 3면이 콘크리트 옹벽으로 밀폐되어 있고 남향의 유리창마저 커튼이 쳐진 상태라 낮에도 스텐드를 켜야 책을 읽을 수 있다.

서재 복판에는 20년 전 서울에서 살 때 구입한 책상이 놓여 있고, 책상 오른쪽 서가에는 고전이 된 석학들의 이론서들이, 왼쪽 서가에는 세계적인 문호들의 저서가, 뒤쪽 서가에는 내 작품집과 자료들이 너절하게 꽂히고 쌓여있다. 방바닥에도 여기저기 책이 쌓여 있는데 치우겠다고 벼르면서 여태까지 미뤄온 그 게으름만이 인간적이고 진짜 나다운 점이다. 내가 이 세상에 살다 간 흔적이라면 그 나른한 나태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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