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평시민의소리」에서 작가 김용만의 장편소설 『미친 사랑』을 4월 9일부터 인끼리에 연재하고 있습니다. 『미친 사랑』은 지난 1994년 『인간의 시간』이란 제목으로 출간했던 장편소설을 전면 개작한 작품으로 3인칭 소설이 1인칭 소설로 새롭게 태어났습니다.

 

 

데모판과 노름판

 

신풍옥 쪽으로 하염없이 걸어갔다. 실컷 취해보고 싶었다. 태어난 자식이 미나가 낳은 애임을 잊을 수만 있다면 용천배기의 몸이라도 끌어안고 싶었다.

선옥은 색시방에서 늦잠을 자고 있었다. 밤새 혼자 손님을 받은 모양이다. 다른 논다니들은 영등포로 떠난 게 틀림없다.

“아침부터 웬일이세요?”

인기척에 눈을 뜬 선옥은 나를 보자 누운 채 기지개를 켠다. 나는 아무 말 없이 그녀 곁에 눕는다.

“왜 이러세요? 주책없이.”

“미안하다, 서둘러서.”

“뭐라고요? 참, 기가 막혀.”

선옥은 나답지 않은 추태에 무슨 사고라도 친 게 아닐까 걱정되는 모양이다. 파출소 직원들 중에서도 말수가 적고 술자리에서도 자세가 흐트러지지 않던 도 순경이 오늘따라 왜 이럴까? 그런 표정이다.

“기분 나쁜 일이 있었나 보죠?”

선옥은 내 팔을 뿌리치고 일어나 앉으며 묻는다. 내가 입을 열지 않자 거듭 재우친다.

“어젯밤 근무하다 사고라도 친 거에요?”

“사고가 아니고, 그냥 슬퍼서 그래.”

“슬픈 거나 기분 나쁜 거나 마찬가지잖아요? 슬픈데 기분 좋을 리 없잖아요?”

“어서 술상을 차려와!”

나는 버럭 소리를 내지른다. 난데없는 고함에 기가 질린 선옥은 벌떡 일어난다. 하지만 주방으로 나가지 않고 제자리에 서서 내 고개 숙인 모습을 살펴본다. 내 눈자위에 맺힌 눈물을 본 모양이다.

선옥은 서둘러 술상을 차려온다. 막걸리 술상에는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해장국 뚝배기와 밥이 오보록이 담긴 주발이 함께 놓여있다. 밥주발은 아침끼니를 챙겨주려는 선옥의 마음세다.

“보나마나 빈속일 텐데 밥부터 드세요.”

선옥의 자상한 말 속에는 내 낯선 눈물에 대한 의문이 묻어 있다. 나는 그녀의 마음속을 알고도 묵묵히 술만 마신다. 술상을 물리고 자리를 뜨면서도 눈물의 내력을 숨긴 채 “몸을 아껴.” 하고 빙그레 웃어만 준다. 몸을 아끼라는 말은 지난달에 실시되었던 풍기문란 일제단속에서 매음으로 걸려들었던 그녀의 전과를 놀리는 말이다. 그때 나는 홀어머니의 병원비를 대려고 몸을 팔러 여관에 갔던 그녀를 몰래 훈방조치했던 것이다.

 

 

 

한일회담 본회담이 이 년 만에 개최되고 4월 국회에서 YTP사건(학원프락치사건)과 학원사찰이 문제화되면서 시끄럽던 시국이 민족적 민주주의 장례식과 무장군인 법원 난입사건으로 걷잡을 수 없이 혼미해졌다.

 

나도 매일 출동했다. 겨울 동안 다중범죄 진압훈련에 진력이 난 터라 현장 출동이 숫제 마음 편했다. 돌에 맞아 머리가 깨지고 정강이뼈가 부러지는 격렬한 데모가 아니면 출동근무는 골치 아픈 파출소 근무보다 단순해서 좋았다. 일상 근무시간에는 이런저런 서류 정리와 방범순찰과 호구조사 따위의 귀찮은 일에 시달려야 되지만 출동하면 그런 잡일 걱정이 없어 마음이 홀가분했다. 고참들은 돌 맞는 게 두려워 파출소 소내근무가 좋을지 몰라도 나 같은 젊은 신참들은 통통 튀는 역동적인 데모 진압근무가 훨씬 구미에 당겼다. 게다가 출동근무 중에는 일상 규범생활에서 좀 자유스러워질 수 있어 좋았다. 엄한 징계사유도 출동 중에는 눈감아주었는데 진압복을 입은 채 아무데서나 화투를 칠 수 있는 것도 그 한 가지 예였다.

 

평상시 같으면 문책을 당할 일이지만 사기진작을 위해 감독자들도 그런 비행을 눈감아주었다. 경찰서 강당에서건 대기버스 안에서건 심지어 데모 현장에서도 상황이 잠잠해지면 여기저기 대여섯 명씩 모여 앉아 도리짓고땡 판을 벌였는데 특히 각 경찰서 대원들이 모이는 공공건물이나 운동장 같은 집단 휴식처에서는 시장 난전처럼 노름판이 즐비했다.

 

우리는 노름을 하면서도 언제 학생들이 교문을 박차고 나올지 몰라 조바심이 났다. 한참 끗발이 오를 때 상황이 벌어지면 기분을 잡치곤 했다. 더구나 돈을 잃고 열이 달아오른 상태에서 상황이 벌어지면 노름판을 거덜나게 한 학생들이 원망스러웠다.

“새끼들, 하필 돈 깨질 때 튀어나올 게 뭐람.”

저절로 분통이 터져나왔다. 차라리 돈을 땄을 때 교문을 튀어나오면 좋았을 텐데 하필 돈을 털린 판에, 그것도 꾼돈으로 겨우 노를 잡을 차례인데 그 복구할 기회를 빼앗는 해코지가 괘씸했다. 참말이지 돌멩이고 지랄이고 냅다 쫓아가서 주동자 몇 놈을 요절내고 싶을 때도 있었다.

 

돈을 잃은 대원들은 군사독재가 어떠하든, 민주주의가 어떠하든, 대일 굴욕외교가 어떠하든, 학원탄압 언론탄압이 어떠하든 그까짓 게 문제가 아니었다. 또 데모대들이 길거리를 휩쓸든 말든, 독재정권을 무너뜨리든 말든, 그래서 자유민주주의의 낙원을 건설하든 말든 상관할 바 아니었다. 높은 사람들처럼 데모 잘못 막았다고 추궁당할 리도 없었다. 다만 돈을 잃을 때는 잠잠하다가 끗발이 오를 참에 교문을 박차고 나오는 데모대들의 약 올리는 해코지가 부아를 긁을 뿐이었다. 그들은 퍽퍽 돌이 날아오르고, 탕탕 최루탄을 쏘아대고, 웽웽 앰뷸런스에 부상자가 실려가고, 그렇게 분탕질을 칠 때도 마음은 어서 대기 상태로 돌아가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어서 대기 상태로 돌아가야 다시 판을 벌일 수 있을 것이었다.

 

그런데 학생들이 아주 해산해 버려 상황이 끝나도 섭섭했다. 상황이 끝나면 그날의 노름도 끝나게 되어 돈을 잃은 입장에서는 영영 복구할 기회를 잃고 마는 것이다. 그래서 노름꾼에게 가장 바람직한 데모 형태는 학생들이 저녁 늦게까지 학교에서 버티는 교내시위였다. 학생들이 교내에서 해질녘까지 버티면 진압대원들은 온 종일 도리짓고땡을 즐길 수 있었다.

 

교내시위만은 못하지만 완전 해산 보다 나은 또 다른 데모 형태가 있었다. 밀고 밀리는 피스톤식 데모였다. 밀고 밀리는 그 사이에 짭짤히 쉴 수 있는 여유가 생겨 번개치기식으로 한판 붙을 수 있어 다행이었다. 학생들은 경찰측이 밀린다 싶으면 사정없이 밀어붙이고 자기네가 불리하다 싶으면 일단 후퇴했다가 전열을 가다듬어 다시 공격하곤 했는데 끈덕지기로 소문난 연세대생이나 고려대생 같은 데모대와 밀고 밀릴 때는 온 종일 번개치기로나마 노름판을 벌일 수 있어 좋았다. 그들 두 대학 데모대들은 몇 십 명만 남아도 끝까지 버티는 바람에 질 좋은 노름 기회를 제공했던 것인데 그들이야말로 데모 전문가인 데모꾼이었다.

 

 

/글 김용만·그림 이영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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