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평시민의소리」에서 작가 김용만의 장편소설 『미친 사랑』을 4월 9일부터 인끼리에 연재하고 있습니다. 『미친 사랑』은 지난 1994년 『인간의 시간』이란 제목으로 출간했던 장편소설을 전면 개작한 작품으로 3인칭 소설이 1인칭 소설로 새롭게 태어났습니다.

그들 데모꾼들의 데모형태는 영락없는 게릴라 전법이었다. 경찰측의 격파작전에 의하여 산산이 부서져 부스러기로 남은 그 악바리들은 쥐가 고구마를 갉아먹듯 이 골목 저 골목에서 출몰하여 지친 진압부대를 갉아먹었다. 그런데 그 오금 갉아먹기식 전술 때문에 진압부대는 끝내 철수할 수 없었고 그 덕택에 틈틈이 노름을 즐길 수 있었다.

물론 노름하기에 가장 적합한 양질의 상황은 데모 없는 대기상태였다. 상황이 벌어질 듯싶어 아침부터 잔뜩 대기하고 있는데 교문을 박차고 나오기는커녕 교내시위도 없는 평온한 침묵상태, 그날은 온 종일 지겹도록 판을 벌일 수 있었고 판돈도 굵었다.

그런 경우가 가장 빈번한 곳이 서울대학교 문리대였다. 문리대에서는 큰 데모판이 벌어질듯하면서도 온 종일 조용히 보내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때마다 출동 병력은 소방서 대기실 다다미바닥에서 넉장거리로 퍼질러앉아 노름판을 벌였다. 동숭동 문리대 앞에는 공교롭게도 소방서가 있어 진압부대원들은 바로 데모 소굴 코앞에서 편안히 앉아 노름을 즐길 수 있었다. 그처럼 문리대 상황이야말로 양질의 노름판을 제공했던 것이다.

서울대학교 중에서도 데모꾼이 가장 많은 문리대는 데모를 위해 생겨난 학교 같았다. 바로 옆에 위치한 법대도 둘째가라면 서러울 만큼 데모가 심하지만 문리대만큼 드세지는 못했다.

“법대놈들은 함부로 까불다간 판검사 못해먹으니까 조심해야지.”

홍기평이 개평 뜯은 돈을 세어보며 한 말이었다. 동대문경찰서 직원인 그는 자기 관내에 지원 나온 나와 만나는 것이 무엇보다 즐거웠다. 우리는 자주 전화로 우정을 나누었지만 서로 업무가 바빠 데모판에서나 만날 수 있었다. 동대문서는 서울대를 끼고 있어 큰 상황이 벌어지면 영등포에서까지 지원해 주고 있었다.

“법대생들이야 체면치레 땜에 나오겠지.”

나로서는 법대생 하면 점잖게 고시공부나 하는 줄 알았다.

“아냐, 독종이 많아. 밖으로 나오는 건 문리대보다야 덜하지만 아주 질긴 놈들이야. 그놈들은 한번 시작하면 끝을 보고 만다니까.”

“문리대와 붙어 있어서 물든 거겠지.”

“맞아, 도미노현상은 데모판에서도 적용되거든. 의대나 미대는 도로가 가로놓여서 오염이 덜 됐지만.”

“의대와 미대는 학교의 위치가 동향이라 데모를 자주 안할 거야. 아침부터 햇살을 받기 때문에 학생들의 성격이 밝게 마련이거든. 하지만 문리대나 법대 같은 서향집 학생들은 늘 저녁 햇살을 받고 지내는 바람에 석양 특유의 관조적이고 허무적인 분위기에 젖기가 일쑤여서…….”

“그래서 까딱하면 돌을 들고 튀어나오는군.”

“데모를 자주 하니까 귀찮긴 하지만 역시 학생은 사유가 깊어야 학생답지.”

“그럼 데모를 자주 하라는 말 아닌가. 역시 자네는 엉뚱한 데가 있어. 그나저나 문리대에 정치외교학과만 없어도 덜 시끄러울 거야. 하기야 대학교에 정치학과가 뭐 필요해. 육사 출신만 해도 너무 숫자가 많은데.”

“자네 큰일 날 소리 하는군. 나보다 더 조심할 사람이야.”

“골치 아픈 얘기 그만하고 개평이나 뜯으러 가지.”

홍기평은 내 팔을 끌었다. 저쪽 소방대원 대기실 다다미 바닥에는 노름판이 여기저기 널려 있었다.

“개평 뜯을 게 아니라 우리도 한판 붙자고.”

내 느닷없는 말에 홍기평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자네 같은 학자도 노름할 줄 아나?”

“조금 해봤지.”

나는 미나와의 갈등을 잊기 위해 한두 번 화투에 손댄 적이 있었다. 화투에 손대는 시간에는 모든 잡념을 잊을 수가 있었다.

“혁명적이군.”

홍기평이 나를 놀려주었다. 우리는 노름판으로 다가가 구경꾼들 속에 섞였다. 어느새 판돈이 커져 있었다.

출동 중의 도박은 도박이 아니었다. 어쩜 그 도리짓고땡은 데모 진압업무에서 발생하기 쉬운 직원들의 불평 따위를 흡수하는 질 좋은 샌드백일지 몰랐다. 그리고 출동 중의 도박은 잔치판이나 진배없었다. 누가 노를 잡고 판돈을 긁기라도 하면 개평을 뜯으려는 왈패들이 몰려왔다. 그 왈패들은 데모도 잘 막고 매사에 적극적이지만 묘하게도 화투를 즐기지 않았다. 그들은 개평 뜯은 돈으로 상황이 끝난 다음 술을 즐기는 게 고작이었다. 홍기평도 왈패 중의 하나였다.

왈패들을 각 경찰서마다 있게 마련이었다. 데모 진압에는 서울 시내 경찰서가 뒤섞이는 경우가 많았는데 어떤 노름판은 각 경찰서 대항전이 되는 경우도 있었다. 그때마다 왈패들은 자기네 경찰서 직원들의 끗발을 응원해 주고 개평을 챙기기도 했다.

“자넨 절대 화투 손대지 마. 나도 그전에 해봤지만 돈 잃으면 역시 기분 나빠. 아무리 심심풀이라지만 그것도 도박은 도박이야.”

돈을 잃고 핼쑥한 채 앉아 있는 대원의 모습을 보며 홍기평이 내게 충고조로 말했다.

 

 

홍기평은 언제나 충고조의 말을 좋아했다. 나는 생도시절의 추억 한 토막을 잊을 수 없다. 입학하고 한 달쯤 지난 어느 일요일 밤이었다. 모두 외출해 버린 내무반은 조용했다. 학교에 남아 있던 나는 내무반에서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냈다. 식사는 구내식당에서 때웠다. 해가 기울고 어둠이 깔리자 하나 둘 귀가하는 생도들이 늘었다. 그때 외박하고 들어온 홍기평이 책을 보며 누워 있는 내게 사설을 늘어놓았다.

“자네는 집이 없나? 보고 싶은 사람이 그리 없어? 외출 않고 만날 책이나 뒤적이고 있으니 참 보기가 딱하군. 그리고 책을 읽을 바에야 법률서 같은 실속 있는 책을 볼 게지 왜 쓰잘데없는 것만 읽어?”

홍기평이 말한 쓰잘데없는 책이란 철학서적이었다. 나는 빙그레 웃어주기만 했다. 술기운이 아직 남아 있는 홍기평은 계속 지껄였다.

“그런 책을 읽는 모습만 봐도 골치가 딱딱 아프고 상종하고 싶지도 않네. 그러니 우리의 우정을 위해서 재고해 보게. 자네나 내나 아수라계에 발을 디딘 이상 애숭이짓은 삼가야지.”

“애숭이짓이라니? 좀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게.”

재미를 돋우는 홍기평의 말에 나는 토를 달았다.

“그러니까 경찰사회의 문턱을 기준 삼아 인간계와 아수라계로 구분 된다는 거지. 이제 아수라계의 구성원이 된 자네는 탐독해야 될 철학서가 따로 있네. 이제까지 읽은 건 인간계에서 소용될 뿐이고 지금부터 읽어야 될 철학서는 수준이 다를 걸세.”

“어떻게 다르단 거지?”

“그건 나도 잘 모르네만 암튼 인간계에서 읽는 것과는 달라야 할 걸세. 자네도 배웠잖나. 세상을 온통 범죄사회로 보라고.”

홍기평은 껄껄껄 웃었다.

“자넨 벌써 경찰기질이 몸에 뱄군. 나는 말야, 나는 앞으로 경찰계를 인간계보다 더 높은 천상계로 끌어올릴 작정이야.”

이번에는 내가 껄껄껄 웃었다.

“밖으로 나가세.”

한참 웃고 난 홍기평이 내 팔을 끌었다. 귀교시간이 자정까지여서 밖에 나가 술 마실 시간은 남아 있었다. 내무반을 나온 우리는 부평 시내 쪽으로 걸어갔다. 단골집은 시내 입구에 있었다.

“내 깔치가 자네를 보고 싶다더군.”

술집에 들어가 자리를 잡자 홍기평이 애인 이야기를 꺼냈다. 나는 친구 애인의 얼굴이 떠오르자 웃음부터 났다. 그녀는 처음 소개받은 자리에서 내게 미국 배우 윌리엄 홀덴을 닮았다며 싱거운 말을 했는데 눈매가 서글서글하여 붙임성이 좋은 여자였다.

“나도 뵙고 싶군.”

“깔치가 자네한테 반했어. 자네는 여자가 좋아하는 타입인가 봐. 깔치가 자네 얼굴에 우수가 젖어 있다고 그러던데 혹시 무슨 근심거리라도 있나?”

홍기평은 그때까지만 해도 미나에 대해서는 모르고 있었다. 미나가 학교에 찾아와 소란을 피우기 훨씬 전이었다.

“아냐, 내 기분은 항상 쾌청해.”

나는 빙그레 웃어주었다. 홍기평은 고개를 갸웃거리고 나서 술잔을 들었다. 우리가 대폿집에서 막걸리를 두어 되 마시고 돌아왔을 때는 자정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글 김용만·그림 이영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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