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평시민의소리」에서 작가 김용만의 장편소설 『미친 사랑』을 4월 9일부터 인끼리에 연재하고 있습니다. 『미친 사랑』은 지난 1994년 『인간의 시간』이란 제목으로 출간했던 장편소설을 전면 개작한 작품으로 3인칭 소설이 1인칭 소설로 새롭게 태어났습니다.

 

 

 

한일기본조약 가조인

 

인솔자는 점잖게 입을 열었다.

좋은 질문입니다. 에에 그렇습니다. 아주 없앨 수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성욕은 인간의 기본 욕망이기 때문입니다. 거기에 공창의 의의가 있겠지만 예를 들어 대한민국 땅을 사람의 몸뚱이로 칩시다. 또 그 몸 구석구석에 번진 그 종기를 한 곳에만 곪도록 하면 치료가 수월할 텐데 그런 의학적인 처방을 할 수 없느냔 하는 문제점을 해결하는 것이 바로 공창입니다. 한곳에 모아진 종기가 크게 번지지 않도록 계속 치료하는 게 바로 여러분들의 오늘과 같은 업무고요. 그 종기를 필요악이라고 합니다만.”

그럼 온몸의 종기를 한 군데로 모을 곳이 어디가 적당하다고 생각 하십니까?”

그야 팔뚝의 어느 한 부분이 좋겠지. 치료하기가 쉬운 부위고 만약 썩어도 도려내기 쉬우니까. 극단적인 경우 한 쪽 팔쯤 잘라도 될 테고.”

종로는 팔뚝이 아니고 신체의 중심부랄 수 있는 배꼽이 아닙니까.”

중심은 배꼽이 아니고 음분디?”

충청도 출신 대원이 끼여들었다. 인솔자는 한가롭게 담배를 피워물었다. 너희들끼리 재밌게 떠들어보라는 방임의 자세였다.

맞아. 음부야. 그런데 음부가 썩으면 큰일인데. 음부가 썩으면 온 나라가 부패하거든.”

음부하구 나라 기강하구 뭔 상관여?”

껴안는 사람마다 모두 병이 옮잖아. 그러니 음부가 맑아야 팔다리도 맑지.”

그러고 봉게 맞는 말이구먼. 음부가 맑어야 자식두 깨끗이 나을팅게 말여. 후세가 임질 매독 걸리면 큰일이잖여.”

이야기가 걷잡을 수 없이 흘렀다.

자자 그만 떠들고 단속 나갈 채비나 해요. 오늘은 꼭 두 건 이상 실적을 올리도록.”

인솔자가 잡담을 막았다. 나도 사복으로 갈아입고 출동 버스에 올랐다. 오늘 내가 배치된 곳은 종로 3가였다. 현지에 도착한 나는 피카디리극장 뒷골목을 천천히 걸어갔다. 여기저기서 지나가는 남정네를 유혹하는 장면이 목격되었다. 하지만 먹고살기 위해 몸을 파는 그녀들을 도저히 연행할 수 없었다. 아무리 건수 위주의 단속이라 해도 연행할 마을이 들지 않았다. 같은 창녀 중에서도 호텔이나 여관 같은 데로 불려다니는 콜걸이야 그래도 창녀 중에서 부르주아 계급에 속하는 셈이었다. 하지만 길바닥에 벌벌 떨고 서 있다가 겨우 푼돈거리나 얻어걸리게 마련인 공창은 참으로 보기가 딱했다. 골목 구석구석에 새떼처럼 모여 있는 그녀들의 모습은 수용소에서 시래기국을 얻어먹기 위해 차례를 기다리는 난민꼴이나 다를 바 없었다. 그렇다고 그냥 둘 수만도 없었다. 나는 한건이라도 단속을 해야 했다. 빨리 건수를 채운 대원들은 일찌감치 대폿집에 들어앉아 술잔을 기울이며 추위를 달랠 것이었다. 나는 바지주머니에 손을 쑤셔넣은 채 슬슬 골목을 걸어가며 참새가 달라붙기를 바랐다. 찬바람이 골목을 비집고 밀려왔다.

쉬었다 가세요.”

아가씨 하나가 내 팔을 끌었다.

이러지 마.”

나는 얼떨결에 그녀의 팔을 뿌리쳤다. 단속을 해야 할 사람이 단속거리를 버린 셈이었다. 창녀단속을 기피했대서 중대한 업무 포기는 아닐 성싶었다. 도둑과 폭력배를 열심히 잡고 데모를 열심히 막아온 충복인데 그깟 창녀단속을 기피했대서 죄 될 것 같진 않았다. 나는 단속을 포기한 채 앞만 보고 걸었다.

그런데 아가씨가 자꾸 찰떡처럼 늘어붙었다. 그녀는 경찰관임을 눈치채지 못하고 내 허리를 팔로 휘감아 끌기까지 했다. 그러다가 손끝이 허리춤에 끼워둔 수갑에 닿았는지 기겁을 하며 도망쳤다. 그 아가씨의 도망하는 모습을 보고 골목에 늘어선 다른 아가씨들도 덩달아 후다닥 도망쳤다. 나는 너붓이 웃었다.

재수없게 걸릴 뻔했잖아, 퉤퉤.”

골목 저쪽에서 달아난 아가씨가 침을 뱉었다. 나는 그 침뱉는 짓이 밉지 않았다. 내게 침을 뱉는 그 모욕에서 숫제 연민이 느껴졌다. 나는 언젠가 창녀단속을 나갔다가 아가씨 하나를 놓아준 기억이 떠올라 또 너붓이 웃었다.

  
 

지난번 일제단속 때였다

. 아가씨 하나를 연행하려고 손목을 끌자 그녀는 옷을 갈아입겠다며 잠시 집에 들렀다 가자고 애원했다. 나는 그 정도의 편의야 봐주리라 마음먹고 골목에 붙어 있는 그녀의 방에까지 따라가 주었다.

금방 옷 갈아입고 나올 테니 일분만 참아주세요.”

아가씨는 상냥하게 말을 날리며 방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방안을 살펴보았지만 도주할 구멍이 없어 잠시 문밖에서 기다렸다. 그런데 방에 들어간 아가씨가 좀처럼 나오지 않았다. 이상히 여겨 방문을 열자 그녀는 슈미즈 바람인 채 요 위에 누워 있었다. 어서 나오라고 엄포를 놓아도 사타구니를 벌린 채 누워 베시시 웃기만 했다.

어서 들어오세요.”

그녀는 누운 채 손목만 까딱거렸다. 약이 오른 나는 억지로 끌고 나오기 위해 방으로 들어갔다. 아가씨는 내가 방안에 들어서기가 무섭게 덥석 껴안고 누워 팔을 옥죄었다. 아무리 놓으라고 윽박질러도 막무가내였다. 그렇다고 여자의 맨몸을 떠밀거나 팔을 꺾을 수도 없었다. 여자의 탄력 좋은 육질이 내 가슴 속으로 파고들었다.

절 껴안아주세요.”

어서 놔줘. 안 놓으면 정말 봐주지 않을 테야.”

나는 할 수 없이 흥정조로 말했다.

안 데려간다고 약속하시겠어요?”

놓고 얘기해.”

약속 안 하면 죽어도 안 놓을래요.”

좋아. 약속하지. 그러니 어서 놔.”

어떻게 믿죠?”

경찰이 거짓말하겠어?”

그런 말로는 못 믿겠으니 제 몸을 안아주세요. 제 몸을 갖기 전에는 못 믿겠어요.”

그녀는 더욱 모질게 끌어않았다.

미쳤어? 지금 나는 단속 중야. 다른 데서 건수를 채울 테니 어서 풀어줘.”

좋아요. 그럼 인격을 믿죠.”

그녀는 인격까지 들먹이며 팔을 풀었다. 허리를 세워 일어선 나는 잠시 멍청히 서 있다가 그냥 밖으로 나왔다. 도저히 연행할 수가 없었다. 나는 골목을 걸으며 연방 웃었다. 근무를 끝내고 기동대에 돌아와서도 계속 내 허점을 비웃었다.

데모가 거의 없다시피한 겨울철의 기동대 생활은 쉬는 시간이 많았다. 대원들은 내무반에서 바둑이나 장기로 시간을 보냈는데 그런 모습을 보고 짓궂은 대원이 봄 되면 발바닥에 불이 날 테니 실컷 쉬도록 해.” 하고 훈계조로 떠들었다. 그 짓궂은 농담이 진담이라는 데에 그들의 마음 한 구석에는 늘 불안감이 고여 있었다.

사실이었다. 겨우내 조용하던 시위가 이듬해 봄이 되면서 다시 시작되었다. 이번에는 월남파병 반대 시위까지 겹쳐 더욱 격렬해졌다. 지난 연말 미국에서 한국의 전투병력 월남파견 요청이 있게 되자 겨울에 국회에서 국군공병단 파견동의안이 통과되고 비둘기부대가 결단식을 가졌지만 추운 계절이어서 가두시위를 못하다가 날씨가 풀리자 거리로 나온 것이다. 파월한국군 비둘기부대가 결단식을 갖고 시가행진을 할 때도 행진하는 군인들에게 시민들은 박수를 보내고 연예인들은 꽃다발을 목에 걸어줄 정도로 축하 분위기였다. 하지만 날씨가 풀리고 하순에 한일기본조약이 가조인되면서부터 거리는 점점 시끄러워지기 시작했다.

나도 다시 방석모와 방석복과 각반을 착용하고 출동해야 했다. 대나무쪽을 넣어 누빈 그 복장이 아니었으면 많은 경찰관이 더 다쳤을 것이다. 출동하는 경찰관은 누구나 높은 부상 확률을 안고 진압에 나서는 것이다. 머리나 몸통 말고도 아스팔트를 맞고 구르는 돌만 맞아도 앞정강이에 구멍이 날 판이었다.

내가 한양대와 건국대생들의 데모 현장에서 얼굴에 돌을 맞은 것도 그 무렵이었다. 얼굴에 상처를 입고 열흘 동안 경찰병원에 입원했던 것이다.

치료를 마치고 퇴원하던 날이었다. 미나는 대낮인데도 얼근히 취한 채 혼자 춤을 추고 있었다. 집에서 혼자 스텝 밟는 모습은 처음 보았다. 그런데 윗목에 깔끔히 놓인 전축이 낯설었다. 언뜻 보아 고급품인 듯한 그 전축에서는 귀를 쨀 듯한 지르박곡이 터져나오고 있었다.

이상할 것 없어요. 오빠가 사주셨어요. 오늘 집에 왔다 가셨거든요.”

미나는 배실배실 웃었다. 나는 오빠가 다녀갔다는 말이 잘 이해되지 않았다. 그처럼 박 회장에 대한 존재를 까맣게 잊어온 터였다. 미나가 무어라고 오빠에 대한 말을 한참 지껄인 뒤에야 겨우 오빠라니?” 하고 그나마 건성으로 물었다.

처남도 몰라?”

미나가 역정을 냈다. 나는 개똥을 밟았을 때의 낭패감만큼이나 처남이란 말이 구접스러웠다.

징그러운 인간. 그래, 계집의 하나뿐인 헐육도 잊고 살아?”

미안해.”

나는 최소한의 예의를 갖추었다. 좋든 싫든 같이 사는 여자의 형제를 잊어온 것이 미안했다.

박 회장이 집에 찾아온 것은 여동생의 생활 모습을 살피기 위해서였다. 오빠의 그런 관심은 미나로 하여금 더 활개칠 수 있는 뒷심이 되었다. 당장 차림새부터가 세련되고 활동 범위가 넓어졌다. 그녀가 차명구와 더욱 이물없이 접촉하게 된 것도 그때부터였다. 나는 그들의 밀회가 고마웠다. 어서 다른 남자를 만나 내 곁을 떠나주는 게 소원이었다. 미나는 그런 나를 질투도 못하는 바보라며 시비를 걸었다. 그때마다 나는 바보처럼 웃기만 했다.

 

  
 

 

미나는 그렇게 배실거리기만 하는 내가 아니꼬웠다. 질투는 고사하고 계집의 타락을 바라는 내 무관심에 분노가 치솟았다. 미나가 원래 차명구와의 밀회를 표면화시킨 것도 나로 하여금 질투심을 유발시키기 위함이었는데 남의 일처럼 여기고 있으니 속이 탔다. 그녀는 점점 술주정이 늘고 악다구니의 질이 달라졌다.

뭐에 홀렸어도 보통 흘린 게 아니셔. 효정이년 귀신이 씐 모양이죠?”

출동을 마치고 밤늦게 돌아왔을 때 미나는 술 취한 목소리로 내 속을 긁었다.

또 왜 이래? 몸이 떡이 된 사람한테.”

당신만 고단한 게 아니라 나도 고단하다고요. 당신은 육체적으로 고단하지만 난 정신적으로 고단하니 더 죽을 지경이죠. 오늘은 실컷 마셔봤죠. 당신한테 무슨 귀신이 씌었는지 이제 알았거든.”

기분 좋게 놀다왔으면 어서 잠이나 자.”

나는 건성으로 대꾸하며 몸을 씻으러 밖으로 나갔다. 몸을 씻고 방으로 들어와 침대에 누우려 하자 미나가 팔을 낚아채며 소리를 질렀다.

일어나요, 할 얘기가 있어요.”

내일 일찍 출동야. 고단한데 어서 자야지. 할 얘기가 있으면 나중에 하자고.”

출동이 나한테 뭔 상관에요. 나한테 필요한 건 지금 당신과 싸우는 일야.”

그냥 앉아 있을 테니 어서 말해봐. 싸울 일이 뭔지.”

나는 하품을 하며 침대모서리에 앉았다.

효정이년 편지를 모두 태웠죠.”

…….”

왜 꿀리세요?”

꿀리다니? 꿀리는 것 좋아하네. 내가 꿀릴 게 있어야 겁나지. 일기장을 뒤진 모양인데 뭐 별난 게 적혀 있었나?”

네까짓 게 뭔데 꿀려. 네가 나하고 무슨 상관인데 꿀리냐 말야. 나는 그렇게 말을 보태려다 참았다. 그런 싸움 자체가 무의미했다. 다만 미나가 일기장을 뒤졌다는 그 월권행위만이 비위상할 뿐이었다. 사내의 비행을 뒤지는 것도 그런 짓을 할 만한 여자가 해야 이치에 맞았다. 건방지게 아내 행세를 해? 나는 은근히 부아가 났다.

일기에 이렇게 적혀 있던데요. 나는 이제부터 허수아비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고. 참 기가 막혀.”

내가 허수아비로 살아간다는 게 왜 기가 막혀? 그건 내 자유야. 그리고 당신이 그걸 왈가왈부할 필요 없잖아? 내 옛날 역사일 뿐인데.”

좋아요. 옛날 역사라고 해요. 그런데 그년 편지를 왜 여태까지 보관해 왔죠?”

상식적인 얘기를 하자는 건가? 당신을 만난 뒤에는 과거를 깨끗이 잊어라 그 말인가?”

그래요.”

좋아 잊어버리지. 그 대신 조건이 하나 있어. 당신도 나를 잊어줘.”

호호호. 그것 참 말 되네. 아주 더러운 조건인데 그래.”

그러니 헛소리 말고 잠이나 자자고. 나 피곤한 사람이니까.”

그래요. 잡시다. 나는 더 피곤하니까. 더럽지만 할 수 없지. 내가 필요해서 데리고 사는 사내니까. 시팔, 나도 언제 거룩한 몸이 돼보지.”

거룩한 몸이라니? 갑자기 그게 뭔 소리야?”

오늘 나는 드디어 거룩한 몸을 껴안았다. 일기에 그렇게 써 있던데? 효정이년 몸뚱어리를 껴안고 그렇게 읊었겠지?”

자세히도 읽었군. 하지만 몸뚱어리가 아니라 무덤을 껴안고 그런 말을 했을 거야. 그나저나 당신도 충분히 거룩한 몸이 될 수 있어.”

어떻게?”

죽으면 돼. 효정이처럼 죽기만 하면 거룩해질 수 있어. 숨이 끊어진 당신의 몸을 껴안고 내가 그렇게 외칠 거라고. 효정이 무덤을 안고 그랬듯 말야. 효정이도 인간이었는데 죽으니까 바로 거룩한 존재가 되더라고. 정말야. 내 눈에 그렇게 보였어.”

혼자 놀고 있네.”

미나는 벌떡 일어나 담배를 피워물었다. 나도 침대모서리에 앉은채 담배를 피워물었다.

효정이년은 죽은 귀신이지만 나는 산 귀신이 되어 너를 물어뜯을 거야, 평생.”

평생 물어뜯든 말든 피곤하니 어서 잠이나 자.”

오늘도 차 부장과 춤췄어요. 그 사람 춤솜씨가 대단하던데요.”

미나는 내 무관심을 흔들어보고 하다못해 욕이라도 듣고 싶어 계속 지껄였다. 하지만 나는 멍하니 천장에 담배연기만 날리며 잘했어.” 하고 말을 흘렸다. 미나는 그런 사내가 얼빠진 정신병자로만 보여 아찔했다. 그래서 내 무관심을 깨볼 요량으로 옷을 훌훌 벗어던지며 의미 있는 자태를 꾸며보였다. 미나의 육체가 매캐한 불빛속에서 흐느적거렸다.

내 몸 어때요?”

팬티만 걸친 미나가 몸을 뒤틀며 말했다. 그래도 내가 담배만 빨아대자 침대 모서리께로 다가왔다. 나는 요염하게 접근해 오는 그녀가 두려웠다. 그건 어찌할 수 없는 불가항력의 도전이었다. 내 곁으로 다가온 그녀는 살며시 내 목을 껴안았다.

기쁘게 해줘요. 부산에서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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