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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만의 단편소설  <그리고 말씀하시길> 은 해학성과  상징성이 강하다는 평을 받으며  큰 화제를 뿌린 작품이다.

 

 배를 움켜잡고 포복절도할 작품!

 

 

그리고 말씀하시길

 

 

빠끔히 문을 열고 목발부터 디민 용배씨는 나머지 한쪽 다리를 질질 끌어당긴다. 사금파리 같은 샹들리에 불빛이 눈을 아리게 쪼아댄다. 이처럼 화려한 빛 속에 갇혀보기는 난생 처음이다.

대리석 바닥에 미끄러질 듯 몸을 둥싯거리며 홀 안에 들어선 용배씨는 보따리 들린 팔을 추욱 늘어뜨린 채 라디에이터 곁으로 다가간다. 잘 구어진 온기가 금새 얼어붙은 살갗을 녹이자 이번에는 술 트림이 식도를 비집고 기어오른다.

커억.....

용배씨는 일부러 트림 소리를 요란하게 내며 계산대 앞에 서 있는 덩치 큰 사내를 꼬나본다. 검은 양복에 나비넥타이를 맨 그 매끈한 사내는 미소 띤 얼굴로 손님 서비스에만 관심을 쏟고 있다.

지배인인 모양이군.

라디에이터에 몸을 녹이며 잠시 머리를 굴리던 용배씨는 거침없이 빈자리를 찾아가 보따리를 식탁 위에 던져놓는다. 그제야 손님들의 소음에 섞여 지배인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백 원짜리로는 안 통할 것 같애. 오백 원짜리를 꺼내.”

이제 시작이구나, 용배씨의 입이 벙그죽 열린다. 이빨이 시리도록 캐들캐들 웃고 싶다. 매번 경험해보는 재미다. 뻔하다. 지배인은 분명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너처럼 볼썽사나운 놈의 생태를 나는 잘 알고 있다. 상대방의 기를 꺾기 위해 지저분한 주제꼴을 허장스레 꾸며 보이고 목발을 대리석 바닥 아무데나 팽개쳐놓음으로써 손님들로 하여금 혐오감을 느끼게 하려는 네놈의 기본상식을. 더구나 수입을 늘리려고 바쁜 영업시간을 택한 네놈의 약은 수를 모를 내 아니라고.

“난 거지가 아니오. 장사꾼이지.”

지배인의 엄지와 검지 사이에 낀 500원짜리 동전을 흘끗 훔쳐보고 나서 용배씨는 점잖게 웃음을 지어보인다. 순간 얼굴을 험하게 구기려던 지배인은 손님들 앞에서 이래서는 안되겠다 싶었던지 금세 미소를 띠며 식탁 위에 너부러진 수세미 보따리로 시선을 내린다.

용배씨는 지배인이 자기 보따리를 바라보며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를 상상해본다. 시장에서 150원 나갈 수세미 한 장에 500원씩, 그것도 최소한 열 장 묶음 서너 다발을 꺼내놓겠지. 그리고 우리가 한 다발만 사겠다고 하면 이런 큰 식당에서 쩨쩨하게 굴지 말고, 나를 어서 쫓아내려면 요구대로 사줘얄 것 아냐, 그렇게 뻗댈 거라고.

용배씨는 자신의 추리력에 더없는 자부심이 느껴지자 저절로 입이 벙그죽 열린다. 그렇지, 계속 뻗댈 경우 지배인은 틀림없이 이렇게 대들 거야. 이게 엇다 대고 시비야, 다리병신이라고 대접해주니까 조용히 물러나지 못하고 한쪽 다리마저 부러지고 싶어 환장했나, 하며 결국 내 멱살을 거머쥐겠지. 그렇게 불길한 사태가 발생할 경우 용배씨가 이미 통달하고 있는 차선책은 이러하다.

날 죽여도오!

그리고 그 짧은 한마디를 어느 식으로 연출하느냐에 따라 수입이 늘고 준다.

악을 쓸 때는 고도의 기술이 필요하외다. 무턱대고 악다구니로 욱대겨도 안되고 그렇다고 기어드는 목소리로 맥없이 흘려도 안됩네다. 상대방의 말투와 표정을 냉정히 분석해서 그때그때 눈치 빠르게 감정을 조절하되 죽여달라는 그 한마디의 어조가 먼 산울림과도 같이 그윽하고 감동적이어야 합네다.

용배씨는 송갑덕의 가르침을 떠올리며 혼자 행복한 미소를 짓는다. 존경해 마지않는 그의 말을 떠올릴 때마다 용배씨의 마음은 숫제 경건해지기까지 한다.

하지만 각별히 조심할 게 있습네다. 먼 산울림과도 같이 그윽하고 감동적인 목소리와는 달리, 손놀림과 발놀림에서부터 눈살이나 이맛살의 찌푸림에 이르기까지 동작과 표정 하나하나를 건조하고 매몰차게 꾸며내야 합네다. 그래야 상대방이 기분 나쁜 태도로 나옵네다.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듯 점잖게 나올 때가 처신하기에 가장 힘들기 때문에 어떻게든 꼬투리를 잡히도록 수작을 부려야 단가를 올릴 수 있습네다. 한마디로 상대방이 악을 쓰도록 상황을 꾸미는 지혜가 필요하외다. 손님들 앞에서 시끌떨수록 밑지는 건 식당 쪽이지만 어디까지나 경우에 맞도록 시비를 걸어야 손님들한테 동정심을 사게 됩네다. 손님은 저쪽뿐 아니라 이쪽에도 왕이니 말이외다. 손님들한테 동정심을 사면서 상대방으로 하여금 치를 떨 만큼 분노를 유발시키는 기술, 참으로 순발력이 필요하외다. 그 정도 기술을 터득한 걸인이라면 구걸의 경지에 도달한 거나 진배없거니와 그 점으로 볼 때 당신은 걸인으로서의 자질을 충분히 갖춘 셈이외다.

용배씨와 송갑덕과의 인연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애송이 걸인 시절, 그러니까 한 업소당 기본 수입이 10원짜리 두세 개가 고작인데다 재수 좋게 얻은 100원짜리 한 잎을 큰 횡재로 여기던, 아직 거지때가 덜 묻은 시기였다. 그 당시 용배씨는 때묻은 목발, 지저분한 주제꼴, 거친 말투 등을 어느 식으로 조화롭게 연출해내얄지 그 기본기마저 터득 못한 채 하루종일 덤벙대야만 했다. 그래서 삐까번쩍한 큰 업소를 피해 무름한 조무래기 가게만을 골라 다녔다. 영세업소에서는 적선에 군소리가 따라붙기 일쑤지만 그래도 그 군소리에는 풋풋한 인정이 묻어 있었다. “개시도 못했수다, 우리가 되레 구걸해야 될 판이오, 벼룩의 간을 빼먹지 이런 집엘 다 찾아왔소?” 하고 나무라는 경우가 많았는데 따지고 보면 그런 군소리도 “고단하겠구려, 많이는 못 보태주, 밥은 먹었수?” 하고 이쪽의 존재를 인정해주는 아름다운 정표인 셈이었다.

하지만 큰 업소에서는 그렇지가 않았다. 아무 내색 없이 100원짜리 한 푼을 선뜻 내주는 대신 그 적선에 덤으로 묻어와야 할 어떤 의미성, 즉 관심이 생략되어 있게 마련이었다. 사람을 기죽이게 만드는 것이 바로 그 무관심이었다. 여기에 대해 훗날 송갑덕은 이런 말로 충고해준 적이 있었다.

인정을 구걸하지 말고 돈을 구걸하라.

그 가르침을 명심하고부터 용배씨는 생각이 달라졌지만 지금도 구걸 초년기를 생각하면 등골에 소름이 돋을 정도로 철딱서니가 없었다.

그날도 용배씨는 국수, 라면, 순대국, 떡볶이 등의 싸구려 간판이 즐비한 골목을 뒤지다가 어느 분식집을 찾아가 손을 내밀었다.

“한 푼 보태줍쇼.”

차마 상대방 얼굴을 쳐다볼 수 없어 고개를 숙인 채였다. 아니나 다를까, 주인이다 싶은 아낙의 앙칼진 목소리가 귀를 쨌다.

“오늘 재수가 옴붙었군. 어찌 된 게 손님보다 거지가 더 많아.”

아낙의 등등한 기세에 용배씨는 오금이 저렸다.

“엣소!”

손바닥에 동전 한 잎이 댕동 떨어졌다. 허전한 감촉으로 보아 틀림없이 10원짜리 같았다. 용배씨는 고개를 들어 아낙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판이 둥굴넓직하고 색깔이 누리끼리한 아낙의 얼굴을 보는 순간 웃음이 터져나왔다. 아낙의 얼굴이 영락없이 10원짜리 동전과 닮아 보여서였다.

“왜 웃어?”

장사 안 되는 화까지 덤터기 씌우려는 듯 아낙은 삿대질을 하며 대들었다. 하지만 용배씨는 그저 웃기만 했다. 웃는 게 편해서였다. 그때였다. 텅 빈 식당 어디에서 점잖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공중전화 요금도 이십 원이외다.”

용배씨는 소리난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저쪽 구석자리에서 신사풍의 중년 손님이 혼자 국수를 먹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언제 말을 했느냐는 듯 시치미를 뚝 뗀 채 젓가락으로 국수가닥을 조심조심 거두어 넣는 일에만 열중했다. 분명 주인 쪽을 나무라는 투의, 잔잔하면서도 남의 귀를 빼앗는 듯한 그의 맑은 목소리는 마치 성단에서 흘러나오는 기도 소리와도 같이 용배씨의 가슴을 울렁거리게 했다. 그의 식사하는 모습 역시 신비스러웠다. 손과 입술만이 간헐적으로 움지여질 뿐 도대체가 음식을 먹는 것 같지가 않았다. 희고 갸름한 얼굴과 턱 부분을 우아하게 장식한 긴 수염은 그의 식사동작을 더욱 환상적으로 돋보이게 했다.

밖으로 나온 뒤에도 용배씨는 한참동안 넋을 잃은 채 그 신사의 모습을 되새기며 제자리에 서 있었다. 싸늘한 저녁바람 한 가닥이 코끝을 스칠 때에야 비로소 “곧 겨울이 닥쳐오겠군.” 하고 혼자 중얼거렸다. 그리고 겨울에 대한 막막한 걱정이 살아나자 그는 금새 슬퍼졌다. 아내의 안온한 품속이 그리웠던 것이다. 아내가 골목 어디에서 불쑥 나타나 여보 하며 손목을 잡아줄 것만 같았다.

용배씨는 아내의 가출을 여태껏 자기의 육신 탓으로 여겨왔다. 하지만 그 때문만은 아니었다. 앗살하고 딱 부러지는 걸 좋아한 아내는 용배씨를 처음 만났을 때만 해도 셈평이 후지고 여물지 못한 그의 성격이 모두 착하게만 보였었다. 그의 덜퍽진 가슴은 이 사내 저 사내와 살을 섞어오면서 물크러진 그녀의 육신이 마음놓고 기댈 수 있는 든든한 벽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 벽은 허망하게 무너져내렸다. 기대보았자 뒤로 벌렁 나자빠질 거적에 불과했다. 세상물정을 모른다기보다 아주 반푼이었다. 한 달 일하고도 고작 이십여 일치만 건져오는 위인이 그래도 그 못난 짓을 자랑스러워했다.

“요즘 품삯이 꽤 올랐어.”

용배씨는 손아귀에 쥐어진 지폐의 뿌듯한 감촉이 대견스럽기만 했다.

“열흘치는 어쩌고?”

“용역회사에서 일당소개비로 삼분지 일을 떼더군.”

“아니, 잡부 소개비로 그만큼이나 잘라내?”

“일자리 마련해준 것만도 고맙잖아?”

“뭣이 어째? 법적으로 따진다고 떼쓰지 못하고 그냥 뜯겨?”

“그들도 먹고 살아야지.”

용배씨는 배실배실 웃기만 했다.

“저런저런.....”

아내의 입에서 지릿한 한숨이 터져나왔다. 저런 멍청이와 싸우느니 차라리 제 허벅지를 쥐어뜯는 게 나을 성싶었다. 그녀는 착한 것이 얼마나 증오스러운가를 피부로 느꼈다.

“제까짓게 예수 석가모니도 아니면서.....”

아내는 지렁이 같은 용배씨의 웃는 꼴이 시멘트 바닥에 짓이기고 싶도록 혐오스러웠다. 이미 글러먹은 싹수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용배씨 곁을 떠나리라 마음먹었다. 기회는 의외로 빨리 왔다. 동거생활 이태가 채 못되어서였다. 삼층짜리 건축 현장에 나간 용배씨가 병원 신세를 지고 돌아왔던 것이다.

“다리 부러지고도 그냥 기어돌아와? 요 병신!”

병원에서 대충 치료를 받고 목발신세로 돌아온 남편에게 아내는 바락바락 악을 썼다. 이참에 보상비를 받아 월세방 신세를 면해볼까 했는데 기껏 약봉지만 챙겨들고 온 사내의 미련한 모습이 이제 뱀보다 더 징그러웠다.

“내가 헛디뎌서 떨어졌는데 남 괴롭혀 쓰겠어. 수술비 대주고 쌀 사준 것만도 고마운데.....”

“지랄하네. 놀다가 다쳤냐? 질통 메고 오르다 떨어졌는데 모든 게 건설회사 책임이잖아? 공사판 법도도 모르니, 요 병신아!”

“자꾸 병신 병신 하지마. 다친 사람한테 욕 퍼대면 죄 받아.”

“얼씨구. 죄 받아도 좋으니 너 같은 바보는 차라리 뒈져버리는 게 낫겠다. 보상비도 못 받고 도장 찍어준 네 주제를 하늘인들 이뻐하겠니? 내가 눈깔이 뼜찌, 하필 저런 걸 만나서.....”

아내는 용배씨가 병원에서 먹다 남겨온 음료수 깡통 나부랭이를 방바닥에 팽개치고 나서 팍팍 담배를 피워댔다. 밑져도 보통 밑지는 게 아니었다. 전세금을 놓친 것보다 자기 얼굴 구겨지는 하루하루가 더 억울했다. 남들처럼 집안에서 수돗물을 써보지 못하고 우물을 물통으로 지어다 쓰는 팔자가 아닌가. 여름에는 살이 타고 겨울에는 살이 트게 마련이었다. 비록 잡잡하게 기미는 끼었어도 뭇 사내들 시선이 따르던 얼굴 아닌가. 오싹, 그녀는 몸이 떨렸다.

집 나간 아내를 생각하며 골목에 멍청히 서 있던 용배씨는 갑자기 땅이 울리도록 탕탕 목발을 학대했다. 아내를 내쫓은 장본인이다 싶어 그 뻣뻣한 목발이 분지르고 싶도록 미웠다. 그는 술 생각이 간절했다. 골목 저쪽 어귀에 포장마차가 보였다. 성큼성큼 걸어가 포장을 들추며 다짜고짜 소주 두 병을 시켰다.

“씨팔, 십원짜리도 돈이야!”

용배씨는 혼잣말로 걸쭉한 한마디를 내뱉았다. 속이 시원했다. 그리고 그 시원한 뱃속에다 술을 채웠다. 눈 깜짝할 사이에 소주 한 병을 해치우고 두 병째 마개를 땄다.

쏟아내고 싶은 말을 쏟을 수 있는 용기가 인간조건이라면 술에 취할 때에만 용배씨는 가장 인간다웠다.

“씨팔, 백 원짜리 아니면 안 받을 거야.”

용배씨는 연거푸 잔을 채웠다. 몸에 술기운이 오를수록 아내 얼굴이 점점 맑게 떠올랐다. 지금 어디서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그는 아내 생각이 간절했다.

“단가를 올려야 됩네다.”

난데없는 목소리에 용배씨는 얼른 고개를 돌렸다. 언제 들어왔는지 아까 분식집에서 봤던 그 신사풍의 사내가 좌판 옆자리에 앉아 있었다. 용배씨는 그 신사를 보는 순간 저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통성명이나 합세다.”

신사는 곁으로 다가오며 인사를 청했다.

“김용배라 합니다.”

“나 송갑덕이외다. 그러고 저러고 당신 손해 많이 봅데다.”

“예에?”

“당신 사업체는 좋은 생산조건을 갖추고도 효과적으로 써먹지 못하고 있다 그 말이외다.”

“무슨 말씀인지 도통.....”

“경영방식이 서투르다 그 말이외다.”

송갑덕은 일부러 상대방이 잘 알아듣지 못할 애매모호한 말을 주워섬겼다. 용배씨는 유식하게 말하는 그 신사가 대단한 분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분과 마주앉은 것이 광영스럽기도 했다.

“우선 당신의 두툼한 몸집, 그 토지가 넓어서 좋습네다. 두 번째 조건은 미욱한 당신의 체질입네다. 그리고....”

송갑덕은 잠시 말을 멈추고 손가락으로 나무 의자에 걸터놓은 용배씨의 목발을 가리키며 명쾌한 어조로 말했다.

“세 번째는 이 시설이외다. 경영에 있어 필요불가결한 요체죠.”

용배씨는 귀가 멍멍했다. 송갑덕의 목소리가 이명처럼 들려왔다. 눈에는 카바이드 불빛과 주모의 음식 만드는 손놀림만이 어른거렸다. 잠자리가 걱정되기도 했다. 아내와 살던 월세방도 당장 비워줘야 될 판이다. 벌써 넉 달 치 월세가 밀려 있었다. 딱부리 같은 집주인의 눈꼴을 어떻게 피해야 될지 그게 제일 걱정이었다.

“그런 좋은 조건을 구비하고서도 적자를 봐서야 되겠습네까? 이제부터 새 경영방식을 가르쳐주리다.”

그제야 용배씨는 귀가 뻥 뚫렸다. 금방 술기운이 싹 가셔버린 그는 송갑덕의 입 가까이로 귀를 세웠다.

“먼저 교활해져야 합네다.”

송갑덕은 간단히 결론부터 내린 다음 용배씨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송갑덕의 입에서 아침햇살만큼이나 소망스런 말이 튀어나오길 기대했던 용배씨는 께름칙하고 교훈답지 못한 말을 듣게 되자 낯을 찡그리며 야바위꾼에게 걸려들지 않으려는 장돌뱅이처럼 바싹 마음을 다잡아먹었다.

“그건 속임수가 아닙니까?”

“그러하외다.”

“송갑덕은 당당한 자세로 대꾸했다.

“그건 못된 짓인데요.”

“아까 십 원짜리를 받을 때 기분 나쁘지 않습데까?”

“조금은.....”

“그런데도 돈 벌기가 싫소?”

“.....”

“처자식은 있소?”

“.....”

“아직 장갈 못 간 모양이군.”

“.....”

“돈 때문이겠지.”

송갑덕은 약올리는 투로 용배씨의 마음을 자꾸 비틀었다. 용배씨의 몸이 점점 뻣뻣하게 굳어갔다. 짜릿한 흥분이 그의 몸을 휘감았던 것이다. 배냇짓과도 같은 원시적인 버릇이었다. 어린 시절 또래들한테 얻어맞을 때도, 아내에게 구박을 당할 때도, 공사판에서 질통을 멘 채 떨어졌을 때도 느끼던 그런 흥분이었다. 그처럼 패배감은 늘 용배씨를 흥분시켰고 그 흥분이 생기를 돋아주었다.

“착하게 살면 복 받는다고 했습니다.”

오랜 침묵 끝에 입을 연 용배씨는 어이없는 말을 쏟아놓았다.

“뭐요? 당신 이상한 종교를 믿고 있군 그래.”

“무슨 말씀이시죠?”

“미쳤다 그 말이외다.”

“내 말이 옳다고 여겨지는데요.”

“누가 그르답디까? 미쳤다는 것뿐이지.”

송갑덕은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팔자 사나운 점괘에 대고 악담을 퍼대는 점쟁이의 심술 사나운 말투 같았다. 대개 점쟁이는 손님의 비절한 팔자를 위로해주기는커녕 되레 약올리는 투로, 그 지랄하니까 그리 되었지 하고 독설을 퍼대기가 일쑤였다. 하지만 그 악담은 당신을 질곡에서 구해줄 수 있노라는, 당신의 운명에 횡액이 끼지 않도록 방패막이해주겠노라는, 그런 자신감에서 나온 말이었다.

“도망쳤습니다.”

용배씨는 느닷없는 말을 꺼냈다. 꼭 하고 싶어 안달이 난 말을 토해내듯 그는 몸을 들썩이며 말했다.

“그랬을 거요.”

“예에?”

“굶는 게 싫어서 도망쳤다 그 말이외다.”

“내 수입으로도 굶진 않았는데요?”

“배곯는 것만 궁긴 줄 아오? 사람답게 살 수 있어야지. 당신이 돈만 잘 벌어보쇼. 몽둥이로 패 쫓아도 도로 기어들 거외다.”

용배씨는 머리가 어지러웠다. 내동 병신 탓일 줄만 알았던 아내의 가출이 돈 때문이었다는 새로운 사실이 부각되자 판단에 혼란이 일었다. 그는 한참만에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래도 돈 벌기가 싫소?”

송갑덕은 재우쳐 물었다. 하지만 용배씨는 뒤통수를 얻어맞은 사람처럼 멍하니 앉아 있기만 했다. 술잔 들린 손이 파르르 떨렸다.

“구걸은 직업이 아니잖습니까?”

“뭐요? 당신이 진짜 거진 줄 아오? 십 원짜리를 받고도 그냥 챙긴 주제에?”

송갑덕은 용배씨의 배알을 아주 터쳐버리고 싶었다. 용배씨의 착한 성미를 개량하기 위해서는 어떤 혁명적인 계기가 필요한데 평생 남한테 당하고만 사는 그를 그냥 두고 볼 수가 없었다.

나 같은 전철을 밟지 말아야지......

애당초 순박하기 그지없던 송갑덕은 사기에 걸려 하루아침에 집을 날림으로써 아내의 가출, 폐병, 행상의 경로를 밟다가 드디어 구걸 세계에까지 이르게 되었고, 이제 겨우 단골 업소마다에 수세미를 조달해주는 시시한 판매업자가 되었다.

“마누라가 보고 싶을 거외다.”

송갑덕은 혼자말로 중얼거렸다. 용배씨도 시선을 멍하니 던져둔 채 아내의 모습을 떠올려 보았다. 무엇보다 아내의 하얀 젖가슴이 그리웠다. 수국꽃봉오리처럼 탐스러운 젖가슴이 아닌가.

“당신이 돈 벌면 틀림없이 찾아올 거외다.”

“그럴까요?”

“오다말다요.”

“그래도 속임수를 써서 돈 벌긴 싫은데요.”

“당신 정말 못말리겠수다. 어찌 그래 앞뒤가 막혔소. 자 내 말을 잘 들어요. 내가 말한 교활은 경영, 즉 장삿속을 말하는 거외다. 그러니 속임수는 나쁜짓이 아니라 세상을 살아가는 한 방편이외다.”

“글쎄요....”

“당신도 당하고만 살긴 싫죠?”

“예에.”

“그럼 사람이 달라져야겠죠?”

“예에.”

“그럼 내 말을 잘 들어야겠죠?”

“예에.”

그 대답말고도 용배씨는 몇 차례 더 예에 할 수밖에 없는 송갑덕의 회유책에 말려들었다. 그들은 밤늦게까지 이야기꽃을 피우며 술을 마셨다.

“수세미는 사둔 게 많습니다.”

지배인의 목소리는 의외로 부드럽다. 순식간에 용배씨의 팔다리에서 맥이 빠진다. 초판부터 일이 눙쳐질 것만 같아 당혹스럽기도 하다. 지배인이 시비를 걸어와야 할 텐데, 계속 점잖게 나오면 걱정이다.

“썩는 물건도 아닌데 넉넉히 사두지 그래요?”

용배씨는 보따리를 풀고 열 개 묶음 수세미 두 다발을 내놓으며 능글맞게 졸라댄다.

“그럼 다섯 장만 주세요.”

지배인이 떠름한 표정으로 말한다.

용배씨는 손사래를 친다. 수세미 한 장당 70원, 천 원에 다섯 장을 팔아보았자 기껏 650원 남겨먹는 셈인데 여기처럼 손님이 많고 덩치가 큰, 더구나 바쁜 영업시간인데 그 정도의 수입으로는 자꾸만 밑진다는 생각이 든다. 그는 메뉴판을 집어든다. 돈까스, 함박스텍, 비프스텍 따위의 낯선 이름들이 개미떼처럼 우굴거린다. 용배씨는 그 개미떼를 털어내기라도 하듯 손가락으로 메뉴판을 통통 튕긴다.

레스토랑 쪽에서는 분명 이렇게 생각할 것이외다. 네놈이 음식을 사먹겠다며 고단수 수작을 부리겠다 이거지. 설령 음식을 차려준다 해도 트집 없이 곱게 먹을 리 없고, 물 가져와라 휴지 가져와라 실컷 부려먹고 나서 나 돈 없으니 무전취식으로 집어넣으라며 바락바락 떼를 쓰겠지 하고 말이외다. 그때 당신은 작전을 바꾸어 극적으로 상대방의 허를 찔러야 됩네다. 주인이 가장 꺼리는 행패는 뭐니뭐니 해도 손님을 괴롭히는 것이니 말이외다. 그렇다고 무작정 거칠게 굴어서는 절대 안됩네다. 재차 다짐합네다만 손님들에게 동정을 사야 합네다. 동정을 사지 못할 경우 주인측의 폭력을 정당화시킨다는 사실을 명심해얍네다. 수세미처럼 하등 구매의욕이 없는 상품을 팔아달라면서 예의바르게 대든다, 여기에 묘미가 있는 것이외다. 식당에 와서 수세미 살 사람이 누가 있겠소. 그러나 당신의 그 강매행위를 상대방이 폭력으로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기교를 부릴 때 수입원이 발생되는 법이외다.

자, 그러면 손님을 괴롭히는 것이 주인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느냐, 그 문제를 따져봅세다. 한마디로 주인측은 손님들이 적선하는 모든 액수가 다 자기 호주머니에서 나간다는 손실감을 느끼게 마련입네다. 자기 업소에 있는 손님 각자의 기분을 재화로 여기기 때문이죠. 다시 말해서 매상과 직결되는 그 귀중한 재화를 당신이 축내고 있다 그겁네다. 동정심에서건 체면에서건 마지못해 하는 적선인데 그 지출을 기분 좋아할 손님은 하나도 없을 것이니 말이외다. 그러니 주인이 나서서 상행위를 만류하는 거외다. 물론 흔한 각본입네다만 그때부터가 당신의 순발력이 필요하외다. 날 죽여도오 하고 그것도 악쓰지 않고 애절하고 비통하게 토해낼 때까지의 과정을 어느 식으로 한 단계 한 단계 연출하느냐에 따라 사업의 성패가 좌우된다 그겁네다.

보따리를 챙긴 용배씨는 송갑덕의 말을 떠올리며 천천히 손님석으로 걸어갔다. 가벼운 미소를 머금은 채 가까운 테이블로 다가간 그는 먼저 허리부터 굽히고 나서 조심조심 수세미를 꺼낸다. 수세미 쥔 손을 가늘게 떠는 엉너리짓도 잊지 않는다. 첫 번째 손님한테서의 성공 여부는 다음 차례의 장사에서도 성패가 좌우된다는 사실을 알고 용배씨는 인상이 좋아보이는 남자 손님석으로 먼저 다가간 것이다. 예상한 대로 500원 짜리 동전 한 잎이 손바닥에 올려졌다.

“수세미는 필요없소.”

손님은 용배씨가 보따리를 풀기도 전에 가슴을 내밀며 말한다. 쓸모 없는 상품을 돈 주고 사느니 동전 한 잎으로 미리 시비를 피하려는 눈치다. 용배씨는 초판부터 일이 잘 풀린다고 생각하며 두 번째 테이블로 목발을 옮긴다. 한가족 모임이다. 그는 여자 곁을 피해 남편 쪽으로 다가간다. 여자의 적선은 언제나 손길이 가늘다. 그래서 남편 곁으로 다가간 것이다. 물론 예외가 있기는 하다. 뚱뚱하고 말수가 많고 음식을 게걸스레 먹는 여자 손님이 대개 기분파에 속한다. 오히려 남자보다 씀씀이가 클 경우도 있다.

하지만 조심해야 될 것은 그런 여자들도 가족과 함께 어울렸을 때는 자기가 이 세상에서 제일 짠 자린고비 주부이기나 한 듯 인심이 대쪽처럼 메마르다는 사실이다. 그걸 모르고 기분파다 싶어 함부로 대들다가는 욕사발을 뒤집어쓰기 십상이다.

“장군감으로 생겼네요. 사모님도 고우시고.”

용배씨는 먼저 어린 아들녀석과 아내에게 덕담을 한 대접씩 퍼담아준다. 아들이나 아내의 생김새로 보아서는 좀 속보인다 싶지만 그런 칭찬은 기초적인 접근방법이다. 비록 거지같은 말종인간의 수작이라 해도 그런 칭찬은 아무리 퍼부어도 식상하지 않을 터이다. 되레 성미가 호탕한 남편은, 정말 내 마누라가 잘 생겼소? 하고 분위기를 살리는 경우가 허다한데 그런 남자의 적선은 대개 액수가 굵다.

“고맙소.”

손님은 용배씨를 쳐다보지도 않은 채 간단히 대꾸해준다. 그의 깔끔한 복장만큼이나 매끄러운 태도다. 용배씨는 손님의 공식적인 태도에 무안해져 말없이 곁에 서 있기만 한다. 그렇다고 그 자리를 간단히 포기할 수도 없다. 만약 그냥 떠날 경우 자기의 행동 리듬이 깨지기 십상이다. 행동 리듬의 파괴는 수입의 감소, 즉 사업실패의 요인이 된다. 그는 하필 양복 차림의 손님을 택한 것이 후회스럽다. 물론 접근방법이 있긴 하다. “씨팔 더럽게 양반이구먼.” 하고 한마디만 거칠게 뱉아도 일이 쉽게 풀릴 것이다. 하지만 여러 테이블을 돌아야 할 텐데 겨우 두 번째 테이블에서 불상사가 발생할 경우 더 우려먹을 수 있는 나머지 기회를 놓치게 된다. 그는 송갑덕씨의 말을 떠올린다.

형식적으로 대하는 손님은 기분으로 통할 수밖에 없습네다. 그들은 소위 품위를 중히 여기는 부류이기 때문에 당신도 교양을 떨어야 합네다. 우선 옷매무새를 고치고 밝은 표정으로 침묵을 지켜라 그 말이외다. 그러다가 손님 쪽에서 되레 무안을 느낄 때쯤에 다시 경건한 말투로 접근하게 되면 천 원짜리 지폐 한 장쯤은 우려낼 수 있을 것이외다.

“정말 행복하신 분위깁니다.”

용배씨는 다시 시도해본다. 그래도 남자는 여전히 식사에만 열중한다. 용배씨는 배알이 뒤틀렸지만 억지로 참고 얼굴에 미소를 매단다.

“저는 가족이 없기 때문에 이처럼 다복하게 어울린 가족을 보면 눈물이 날 정도로 부럽죠.”

“아직 가족이 없으세요?”

남편의 무관심이 미안했던지 아내가 대꾸해준다. 하지만 아내 역시 어서 떠나가주었으면 하는 눈치가 역력하다. 철없는 아들녀석만 눈망울을 굴리며 용배씨의 거동에 흥미를 느낀다. 용배씨는 이제 애를 붙들고 늘어질 참이다. 가장 자연스럽고 효과적인 수법이다. 어느 부모나 정갈한 어린 자식의 몸에 거지의 불결한 손길이 미치는 걸 좋아할 리 없다. 용배씨는 바로 그걸 노렸다. 그건 질좋은 수입원이다.

“아가 몇 살이지?”

용배씨는 짜장 허리를 굽혀 애한테 접근한다. 그리고 다섯 살 표시로 손가락을 쫙 펼쳐보이는 애한테 “에그 손도 예뻐라.” 하며 잡아줄 듯 손을 내민다. 마악 손이 닿을까말까할 순간, 드디어 아내의 입에서 다급하면서도 상냥한 말이 튀어나온다. 그녀는 얼른 애를 끌어당기며 “몇 장 팔아드리세요.” 하고 남편에게 턱짓을 한다. 그제야 남편은 주머니를 뒤져 천 원짜리 한 장을 꺼낸다. 마치 사기를 당한 듯 그의 얼굴은 몹시 구겨진 상태다.

용배씨는 세 번째 테이블로 접근한다. 친구 사이인 듯한 두 손님 중에서 몸집이 빼빼한 사람은 성깔이 까탈스러워 보이고 다른 안경 낀 손님은 기분이 좀 언짢은 상태인데 술이 취해 있어 다행이다. 흔한 경우는 아니지만 그런 형의 손님일수록 제대로 걸려들기만 하면 액수가 상상외로 크다. 대개 넋두리하길 좋아하는 그들은, 당신 팔자도 참 기구하구먼. 좆도 세상살이가 더러워서 술 안 마시고 배기겠소. 자 서로 나눠씁시다 하고 손에 잡히는 대로 건네준다.

용배씨는 얼굴에 미소를 진하게 그리며 서슴서슴 다가간다.

“수세미 한 장만 팔아주세요.”

용배씨는 송갑덕의 말대로 공식적으로 접근한다.

“뭐요? 수세미를?”

손님은 눈을 치뜬다. 하지만 용배씨는 정중히 받는다.

“적선하는 셈치고 팔아주세요.”

“적선? 당신 거지요 장사꾼이오?”

이때다 하고 용배씨는 한번 피씩 웃어 보인다.

“그 중간쯤이외다.”

“중간쯤? 허, 허허, 하하하하..... 당신 참 편리한 사람이군. 하기야 요령껏 실속차리는 게 약은 수지. 자 나를 기분 좋게 웃긴 수고비요.”

덜퍽지게 웃고 난 빼빼한 손님은 호주머니를 뒤져 천 원짜리 두 장을 꺼내 든다. 그때 안경 낀 손님이 친구의 손에서 돈을 나꿔채고 대신 술잔을 내민다.

“한잔 들면서 얘기합시다.”

안경 낀 손님은 술을 따라주고 나서 말을 잇는다.

“사실 난 당신한테 실망했소. 그래서 저 친구가 기분 좋게 주려던 사례금을 내가 도로 회수한 거요.”

용배씨는 난데없이 자기의 벌이를 방해하는 그 안경 낀 손님이 눈꼴사나우면서도 그렇다고 그 돈을 억지로 빼앗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안경 낀 손님은 친구가 준 돈을 자기 손에 쥔 채, 아무리 얄팍한 세상이라 해도 지조를 지키며 살아야 한다는 둥 시답잖은 말만 늘어놓는다. 그는 이런 말도 한다.

“지조란 바로 멋이죠. 당신은 원래 걸인으로서의 멋을 온전히 갖추고 있었소. 당신이 처음 이 레스토랑에 들어설 때만 해도 다리를 끄는 지친 표정이며 동정심을 자극하는 보따리가 오래간만에 거지다운 거지를 보는구나 하고 날 흥분까지 시켰다오. 내 찌든 기분을 훈훈하게 풀어주고 그동안 까막 잊어왔던 나다운 점, 다시 말해서 남에게 동정심을 베풀지 않고는 못 배기는 내 본성을 잠시 일깨워줬다 그 말요. 하지만 당신의 어색한 속물적인 행동이 그런 내 기분을 여지없이 뭉개놓고 말았소. 당신은 규격품처럼 잣대로 재듯 행동하려 했는데 환정을 사려고 의도적으로 엉너리치는 당신의 짓거리가 무슨 감동을 주겠소.....”

안경 낀 손님은 말을 하다말고 술잔을 든다.

“대단히 죄송합니다. 앞으로 조심하겠습니다.”

용배씨는 어서 그의 말을 자르고 싶어 무조건 고개를 주억거린다. 그의 말이 무슨 뜻인지도 이해 못한 채 그저 입에 밴대로 사죄하듯 뇌까린다. 송갑덕은 말했었다.

자기가 잘났다고 조리를 세워 떠드는 손님에게는 절대 따져서는 안됩네다. 무조건 죄지은 사람처럼 고분고분해야 됩네다.

용배씨의 공손한 사과는 금방 좋은 결과를 가져왔다. 안경 낀 손님은 자기 말을 잘 들어준 성의표시라며 손에 쥔 지폐를 도로 건네준다.

돈을 받아든 용배씨는 지배인을 흘끗 훔쳐보고 나서 점잖아 보이는 손님석으로 스적스적 걸어간다. 대개 첫 번째나 두 번째 테이블을 돌 때 주인이나 지배인이 나서게 마련이지만 이 업소처럼 그냥 놔두는 경우가 더러 있는데, 지금 용배씨가 점잖은 손님 좌석으로 접근한 것은 당연히 의도적이랄 수 있다. 그런 좌석이어야만 대개 끝마무리를 거칠게 엮어나갈 수 있다. 점잖고 성질이 깐깐해 보이는 손님은 함부로 술책에 말려들지 않는 법이어서 시비를 걸기에 안성맞춤이다.

“한 장 팔아주쇼.”

용배씨는 일부러 목소리를 높인다.

“뭘 팔아달라는 거요?”

손님의 말은 초판부터 차디차다. 눈에 보이지 않소 하고 대뜸 수세미를 코앞으로 내밀려다 말고 용배씨는 고운 말씨로 대꾸해준다.

“수세미를 팔러왔습니다.”

“여기가 시장골목이오?”

손님은 아니꼬운 눈으로 쳐다본다.

“시장에서만 물건을 팝니까?”

용배씨도 한번 삐딱하게 받는다. 손님은 네 멋대로 수작을 부려보라는 듯 자세를 오롯이 가다듬는다. 용배씨는 기회를 잡기라도 한 듯 목발로 바닥을 탕탕 치며 노골적으로 대든다.

“씨팔 누군 이짓 하고 싶어 하나!”

보따리에서 수세미를 댓 장 더 끄집어낸 용배씨는 손님에게 떼쓰듯 내민다. 하지만 손님은 눈씨 한 점 흩트리지 않고 젓가락질만 계속한다. 그때 지배인의 굵직한 팔이 용배씨의 몸을 막는다.

“손님한테 이러심 안됩니다. 이리로 오시죠.”

나비 넥타이를 맨 지배인의 차분한 목소리가 용배씨를 계산대 쪽으로 유혹한다. 그런 식으로 나오리라 지레 짐작한 용배씨는 제 자리에서 계속 버틴다. 뻗대는 것도 수입을 올리는 유리한 조건이다.

“우리가 많이 팔아드릴게요.”

지배인이 이번에는 팔로 용배씨의 허리를 휘감아 부축하듯 끌어당긴다. 용배씨는 옆구리에 강한 통증이 느껴진다. 지배인의 팔꿈치가 송곳처럼 찔려왔던 것이다. 손님들이 보기로는 친절히 모시는 호의로 착각하리만큼 그의 폭력은 은밀하면서도 치밀하다.

역부족인 상태로 현관 앞까지 끌려나온 용배씨가 마지막 수입을 올리려고 악다구니를 쓸 참인데 지배인의 눈짓을 받은 경리 아가씨가 얼른 5천원짜리 지폐 한 장을 꺼내준다. 만약 그 지폐가 아니었던들 용배씨는 아이고 갈비 부러졌네 하며 거꾸러질 판이었다.

갑작스런 충격은 손님들에게 산뜻한 기분을 느끼게 하는 법이외다. 그 산뜻한 기분을 흔히들 동정심이라고 얘기합네다만 어쨌든 순간적으로 치솟는 손님들의 그 팽팽한 감정이야말로 가장 큰 재화입네다. 그때 당신은 잔인하리만큼 냉정해야 되는데 소리를 질러서도 안되고 누가 일으켜 세워주면 몸이 축 늘어진 상태로 그저 신음소리만 흘려야 합네다.

오천원짜리를 받아쥔 용배씨가 그 액수만큼 수세미 꾸러미를 내놓으려 하지만 지배인은 끝까지 공손한 태도로 수세미를 도로 보따리 속에 넣어준다. 당신의 행동이 비록 계획적인 수작이라 해도 우리 업소의 경영철학인 공생의 미덕으로 포근히 감싸주겠소 하는 도량 넓은 태도다.

현관문을 나서는 용배씨의 얼굴에 웃음이 번진다. 돈 버는 일이 참 쉽다는 생각이 든다. 다리병신 된 것이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어서 송갑덕을 찾아가 오늘의 성과를 자랑하고 싶다.

그는 발길을 재촉한다. 레스토랑 건물 모퉁이를 돌아 어둠이 깔린 골목길을 서둘러 걸어간다. 그때다. 어디서 인기척이 난다 싶었는데 용배씨의 이마에 순간 불꽃이 튄다.

“이 새끼!”

용배씨는 맥없이 비틀거린다.

“아까 준 돈 도로 내! 쥐도 새도 모르게 패죽일 테니!”

지배인의 주먹이 용배씨의 콧잔등을 한 차례 더 짓이긴다. 찝찔한 액체가 입술 사이로 젖어든다. 용배씨는 날 죽여도오 하고 악을 써대지만 이미 기가 꺾인 목소리는 발악으로서의 의미를 잃은 채 어둠 속을 맴돌 뿐이다. 밝은 곳과 손님이 많은 홀 안에서만 그의 악다구니는 제구실을 했다. 그는 처음 어둠에서 무섬기가 느껴진다. 멀리서 깜박거리는 네온빛이 마치 부엉이눈처럼 괴물스럽다. 어둠 속에서 악쓰는 방법을 가르쳐주지 않은 송갑덕이 원망스럽기만 하다.

그분은 폭력에 대항하는 방법을 모르는 걸까?

용배씨는 송갑덕의 능력이 의심스러워지자 금방 허탈감이 느껴진다. 송갑덕이 곡두일지 모른다는 의심이 들기도 한다. 밤새 싸워 이긴 도깨비가 대낮에 보니 빗자루에 불과했다는 민담처럼 송갑덕이란 존재가 아무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용배씨는 쏟아지는 코피를 감당하기 위해 고개를 뒤로 꺾는다. 까만 하늘이 곤두박질치는가 싶더니 우수수 별들이 쏟아져 내린다. 쏟아지는 별 사이를 아내가 둥둥 떠다니며 맹추 맹추 하고 용배씨를 비웃는다. 그녀는 너 같은 바보하고 살면 나까지 미쳐버려, 하고 빈정거리기도 한다.

“얼른 꺼지지 않고 뭘 꾸물대?”

세 번째 불꽃이 튄다. 이번에는 눈두덩 근처다. 용배씨는 마지막 기력을 살려 날 죽여도오 하고 또 한 차례 용을 써본다.

“뭐가 어째? 이게 어디서 허튼 수작 배워가지고 함부로 까불어?”

네 번째 불꽃이 튄다.

“말해. 또 올 거야 안 올 거야?”

지배인은 다섯 번째 주먹을 치켜든다. 용배씨는 더 이상 아픔을 참을 수 없어 승복하기로 마음을 돌린다.

“다시는.....”

용배씨의 목소리는 죽음을 맞아들이는 병상의 유언처럼 정중하면서도 칙칙하다.

“정말이지?”

“예에. 다시는.....”

“알뜰히 동냥질이나 해처먹어, 알쟈?”

“예에.”

“아암 그래야 착하지.”

빼앗은 오천원짜리 지폐를 자기 호주머니에 쑤셔넣은 지배인은 목소리를 낮추어 인정 어린 투로 말한다. 그리고 파출소에 신고하는 따위의 후환을 마무리할 작정인지 구겨진 천원짜리 한 장을 꺼내 용배씨에게 불쑥 내민다.

“받아.”

“괜찮아요.”

“받아.”

끝내 거절하는 것도 반항일 성싶어 용배씨는 고맙다는 사례까지 보태주면서 코피 묻은 손으로 돈을 받아든다.

“그러고 보니 당신 착한 사람이군. 복 받겠어. 아암 착하면 복 받고

말고.”

지배인은 철없는 애를 어르듯 용배씨의 어깨를 다독거려준다. 용배씨는 자기의 착함을 인정해주는 지배인에게 다정한 미소를 지어 보인다. 아내도 송갑덕도 자기의 착함을 뱀처럼 징그러워했는데, 지배인은 착하면 복 받는다고 말했잖은가.

용배씨는 지배인의 우람한 체구가 볏짚단처럼 따스해 보인다. 지배인이야말로 진실을 분별할 줄 아는 존경할 분이다. 그는 지배인 앞에 똑바로 서서 마치 초안문서를 읽어나가듯 이렇게 시부렁거린다.

“아버지께서 늘 말씀하시길 착하면 복 받는 법이니 언제나 자기 본분대로 행동하라 하셨죠.”

“옳은 말이지.”

“사람이란 원래....”

“알았어.”

지배인이 용배씨의 말을 냉큼 자른다. 너 따위와 노닥거릴 계제가 아니니 어서 꺼지라는 말투인데도 눈치 어둔 용배씨는 줄곧 넋두리를 펴낼 참이다.

“사람이란 원래 미련한 구석이 있어 사람일진대 미련하게 사는 것이 본분인고로......”

“알았어.”

“착하게 산다는 것은 바로......”

“알았다니까.”

지배인은 홱 몸을 돌려 레스토랑 쪽으로 걸어간다. 그리고 골목 어귀에 서 있는 누구에겐가에 떠들어댄다.

“저런 머저리가 그럴듯하게 수작을 부렸다는 것이 참 이상해. 수세미 한 장 안 날리고도 거뜬히 몇 천원 벌었으니 말야.”

그 말소리는 용배씨의 귀에도 뚜렷이 들려온다. 순간 용배 씨의 몸에 뜨거운 열기가 치오른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