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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수엄마 1부

2014.10.02 15:15

잔아 조회 수:3711


잔아 김용만 장편소설

春川屋 성공 리얼스토리


KBS 라디오 일일연속극 방송 (1회~26회)



            능수엄마

능수엄마가 존재하지 않으면 이 소설도 존재할 수 없다. 그 만큼 능수엄마는 묘한 여자다.



목차

 

1부

 

어디로 사라졌을까?

단골손님 만들기

아무 걱정 마세요

뒤통수에도 눈이 달려야 한다

말 없는 부산항

춘천옥 신장개업 이야기

근로미(勤勞美)는 아프로디테의 자태

음식을 존경하라

밥장사는 성인군자보다 한수 위다

미스 강이 드리모 기쁘시겠네예

그까짓 거야 식은 죽 먹기죠

달빛이 없는 밤이었다

네가 노름꾼 홍대성이냐?

춘천옥 위기를 맞다

꾸며낸 개업설화

평강댁 남편을 꼬드긴 박 사장

보쌈과 막국수 만드는 법

대승옥 새로운 작전

포장마차 시절

평강댁 마음이 흔들리다

선주후면(先酒后麵)으로 못을 박다

심야의 음모

2초는 너무 멀다

보장된 성공

태종대 자살바위에 올라서다

도박으로 다시 거지가 되다

배추를 짜게 절여달라

88올림픽 특정업소

 

 

2부

전문메뉴를 개발하라

가물치론(論)

새우젓을 사러 가면서 웃긴 이야기

병원장 사모님이 직원으로

내 눈은 못 속여

슬픔을 즐겨라

정말 미치겠네

눈물을 안고 떠난 여자

위험한 동거

도대체 원인이 뭐야

동해바다로 대이동

주방장 범도가 떠나다

미스 강, 나를 불행하게 만들어다오

아내와의 전쟁

500원 주고 산 아내

사단장님 고마워요

민주가 일류 사기꾼이 되었다고?

우리 새로 출발합시다

어린 주방장 김춘수

광화문 네거리에서 오줌 눠봐

아버지가 뒈졌다구?

참회의 눈물

이상한 뭔가가 있어

요식업은 종합예술이다

머리 싸맨 능수엄마

너를 버릴 수 없구나

춘천옥 신축공사

변신

춘수 애인을 직원들 앞에 세우다

능수엄마와 미스 강 싸우다

항상 새벽이어야 한다

슬픔은 젤 무서운 귀신이디

춘천옥은 신(神)을 만드는 곳

 

 

 

능수엄마를 찾아라

 

 

삼년 동안 하루도 결근한 적이 없는 여자다. 춘천옥 일이 걱정되어 휴가도 반납해온 여자다. 그런 능수엄마가 오늘 아침 출근길에서 감쪽같이 사라졌다. 남편 말로는 버스정류장까지 바래다주었다고 하니 버스를 타고 오다가 도중에서 내렸을 게 틀림없다.

그렇다면?

나는 다시 남편에게 전화를 걸고 화산동으로 급히 차를 몬다.

능수엄마가 춘천옥에서 처음 일을 시작하고 한 달쯤 지나서였다. 손님이 밀려드는 점심시간에 그녀가 아무 말 없이 업소를 빠져나갔다. 나는 즉시 그녀네 집에 찾아가 남편과 시어머니를 데리고 화산동 일대를 뒤졌다. 다행히 산동네 구석방에서 그녀를 잡아 춘천옥으로 끌고왔다. 휴게실에서 내 취조가 시작되었다. 남편과 시어머니는 옆에 앉아 취조 과정을 지켜보았다.

“왜 일하다 도망쳤지?”

“화투치고 싶어서예.”

“도저히 화투를 버릴 수 없겠나?”

“.....”

“어서 말해 봐!”

“네.”

“남편 자식보다 화투가 더 좋다 그 말이지?”

“그거는 아이지만.....”

“됐다! 손목을 자를 수밖에!”

나는 방문을 열고 홀에서 일하는 미스 강을 불러 부엌칼을 가져오라고 소리쳤다. 그녀는 주방에서 고기 써는 칼을 들고 달려왔다. 나는 칼을 받아들고 소리쳤다.

“오른팔 내밀어!”

“사장님 와 이러십니꺼?”

“사장? 나 지금부터 네 사장 아니다!”

“네?”

“너 같은 인간을 보면 종종 미칠 때가 있어.”

나는 그녀의 오른쪽 손목을 낚아챘다. 손이 파르르 떨렸다.

“어서 빌란 말여, 이 멍텅구리야.”

남편이 타일렀다.

“손을 놔주셔야 빌 거 아이가. 한 손을 몬 쓰는데 우째 빌란 말이고.”

“손을 못 쓰겠걸랑 입으루 빌면 되잖여?”

“사장님, 잘못했심더. 한번만 용서해주이소.”

나는 마지못해 손을 놓아주었다. 그 대신 손바닥으로 그녀의 뺨을 오달지게 쳤다. 금방 그녀의 뺨에 손가락 자국이 벌겋게 살아났다.

“나가! 어서 화투판으로 꺼져! 너 같은 건 생전 빌어먹을 팔자야!”

그날 밤 장사가 끝난 후에 능수엄마 남편과 시어머니를 불러 술자리를 열었다. 술기운이 오르자 능수엄마가 떠들었다.

“우리 사장님 되게 무섭다카이. 진짜 지 손목을 자를라캤능교?”

“내가 허튼짓 하는 거 봤어?”

“사장님 고마워유.”

시어머니가 얼굴을 내밀었다.

“어무이는 사람 패는 깡패한티 머가 고마운교. 아직꺼정 얼굴이 얼얼한데예.”

“능수엄마, 더 맞아야 정신차리겠어?.”

“솔직히 말하는데예, 사장님도 큰소리치실 것 없어예.”

“뭐야?”

“사모님 얘기 들으니까네 사장님도 노름을 했다면서예? 대구에서 공장하실 때 불도 났지만서도 노름 땜에 깨끄이 망했다면서예? 노름만 아니모 어린 자식들캉 굶진 않았을 기다 그러시던데예.”

“그 말은 맞아. 딱 석 달 손을 댔었지. 지금은 고스톱도 칠 줄 몰라. 아예 화투는 만지질 않았거든. 능수엄마도 나처럼 끊으란 말야.”

“지는 그래도 집구석은 안 날렸심더.”

“날려먹을 집이 워디 있다구 그려?”

남편이 내 편을 들었다.

“이 사낸 누구 편을 드능교? 이 바보야, 집구석이라 카모 옷장도 있고, 얼라들 책상도 있고, 이부자리도 있고, 부엌살림도 있고, 냉장고도 있고, 밭에서 쓰는 연장도 있는데 꼭 건물만 집구석이라 카는 줄 아나.”

“남편한테 사내가 뭐야. 또 바보는 뭐고. 더구나 시어머니 앞에서 말버릇이 그게 뭐야. 이걸 그냥....”

나는 주먹을 들었다.

“그래도 우리 며느리가 최곤디유.”

시어머니가 헤헤거렸다. 술판이 웃음바다가 되었다.

정말 잘해주고 싶던 여자다. 받들 만한 사람이 없는 삭막한 세상에서 내가 온 정성을 다해 받들고 싶던 최초의 인간이 능수엄마다. 보쌈김치가 걱정되어 작은아버지 장례를 치르다말고 출근한 여자. 작은아버지 장례식은 자기 없이도 치를 수 있지만 보쌈김치 맛 버리면 손님 떨어진다고 걱정한 여자. 그런 능수엄마가 지금 나를 배신하고 있다. 그녀는 이제 나와 아무 상관없는 타인이 되려 한다. 아름답고 의젓한 춘천옥 마담이 아니라 추하고 속물스런 노름꾼으로 추락하고 있다.

“거기도 읎다는디유.”

화산동을 한 바퀴 돌고온 남편이 걱정스런 표정을 내비친다.

“없어?”

“화투꾼들도 능수엄마를 못 봤다는 거에유.”

“다른 데를 찾아볼까?”

“그동안 화투꾼들이 여러번 꼬드겨도 딱 거절했다는디유?”

한결 마음이 놓인다. 그러면 그렇지. 능수엄마는 시시한 여자가 아니지. 나를 배반할 리 없어. 틀림없이 다른 이유가 있을 거야.

그럼 어디로 갔을까? 교통사고? 혹 교통사고로 죽은 건 아닐까?

그렇다면....

금방 가슴이 뛰기 시작한다. 내게 새로운 일이 생긴 것이다. 가장 보람된 일. 나는 능수엄마의 동상을 세워야 한다. 공원을 조성하여 너른 잔디밭 한복판에 동상을 세워 그녀의 근로미(勤勞美)를 영원히 기려야 한다. 그녀의 묘비에는 이런 글을 새겨 넣을 것이다.

간교한 위선과 모함이 판치는 시대, 이 절망적인 기회주의 시대에 인간답게 살다간 위대한 여성 여기에 잠들다

내 몸이 하늘로 치솟는 기분이다. 인간을 믿을 수 있다는 행복감이 화산처럼 폭발한다. 세상을 악마의 소굴로만 여겨온 내가 어리석었다는 생각이 든다.

“경찰에 신고부터 하자구.”

“좀 더 기다려 보쥬.”

“그럴까?”

“그게 좋겠어유.”

“아냐. 신고부터 해야 돼. 집히는 게 있어.”

“뭔디유?”

“납치당했어.”

“납치라구유? 가진 게 암것도 읎는디 납치라뉴?”

“가진 거야 많지.”

“예에?”

“돈보다 더 값진 것.”

“뭔 말씀이신지 도통 모르겄는디유.”

남편이 빙그레 웃는다.

“이 사람, 지금 웃음이 나와?”

“사장님이 웃기셨잖어유. 짜봤자 똥뿐이 읎는디....”

“무슨 말을 그렇게 해. 똥밖에 없다니? 능수엄마 뱃속은 꽃가루로 채워져 있어. 향기가 그윽해. 능수엄마는 신이란 말야. 거룩한 신!”

“사장님은 역시 대단한 분이셔유. 좨진 맘을 그런 농담으루 풀어주시다니, 참 대단하시구먼유.”

디지털단지 오거리 쪽으로 차를 몰던 나는 속도를 줄이며 남편을 바라본다. 여전히 웃음이 밴 얼굴이다. 퉁퉁한 살집이 거푸집처럼 엉성해보인다.

차를 파출소 앞에 세운다. 풋내기 경찰관 두 명이 의자에 앉아 있다가 벌떡 일어선다. 자기들 선배인 데다 지역 유지로 소문난 나를 그렇게 예우한다.

“납치요?”

경찰관이 놀란 표정을 짓는다.

“아무래도 납치당했다는 생각이 들어.”

“대낮에, 어른인 데다, 사람들이 북적대는데.....”

경찰관의 말에 남편의 눈이 반짝인다.

“정말 그렇네유. 제가 버스정류장까진 바래다줬구, 거기서부터 춘천옥까진 행인들이 널렸구유.”

납치가 아니라면? 혹 노 상무 그자와 튄 게 아닐까? 춘천옥에 올 때마다 고급 승용차 뒷좌석에 앉아 거드름피우던 그 노 상무란 자가 거창한 식당을 차려주겠다고 떠들었겠지. 밤새 몸뚱아리를 껴안고 사장 자리를 준다고 꼬드기니까 홀랑 넘어갔겠지. 죽일 년! 나는 너한테 동상도 세워줄 맘이었는데, 그런 내 마음을 갈기갈기 찢어버려?

금방 내 몸이 떨린다. 다시 분노가 치솟는다. 동상이 여지없이 무너져버린다.

죽일 년! 언제부터 내통했을까? 그놈이 오면 유독 헤헤거렸어. 화장도 짙게 하고. 그놈한테 환정을 사려고 무척 야실거렸지. 죽일 년! 아무리 그놈한테 넘어갔다 해도 장사까지 팽개쳐? 이년! 내 의리가 중하냐, 그놈 몸뚱아리가 중하냐!

어이구, 이 병신새끼! 남의 밭에서 흙벌레로 사는 이 못난 새끼! 좀 똑똑할 게지, 좀 약을 게지, 좀 잘생길 게지, 이 병신새끼 뒈져버려라!

못난 능수아빠에게 욕을 퍼대고 싶다. 일류 회사 상무가 침 흘리는 년인데 저런 흙벌레를 어떻게 사내로 여기겠는가.

“납치야 아니겠쥬?”

남편이 고개를 모로 흔든다. 답답한 모양이다. 꼭 미련한 황소 같다. 평생 흙만 파다 죽을 인간.

내 죄가 크다. 무식한 촌년을 데려다 춘천옥 마담으로 승격시킨 데다 온 종일 멋진 사내들을 상대하도록 훈련을 시켰으니, 제 남편이 뭘로 보이겠는가. 어이구 불쌍한 사내.

정말 납치당한 걸까? 하지만 납치도 짧은 생각일지 몰라. 손님을 의심하자면 노 상무뿐이겠는가. 기다려보자. 늦어도 저녁장사 전에는 무슨 소식이 있겠지.

파출소를 나와 점심을 먹으러 남편과 식당에 들어간다. 오후 두시에 있을 방송 인터뷰 때문에 더 수소문할 수도 없다. 설렁탕을 시켜놓고 춘천옥으로 전화를 건다. 아직도 소식이 없다고 한다. 마음이 점점 다급해진다. 무슨 일이 생긴 게 분명하다.

“어디 집히는 데가 없어?”

“글쎄유....”

“글쎄라니?”

“요즘 전화가 자주 왔걸랑유.”

“전화? 집으로?”

“예에.”

“누군데?”

“저는 모르쥬. 알려주지 않응게유.”

“여자야? 남자야?”

“남자 같아유.”

“누구 전환지 느낌이 있잖아. 능수엄마와 어떤 사인지.”

“도통 모르겠슈.”

“아니, 마누라한테 자주 오는 전환데도 몰라?”

“오는 전화라면 춘천옥일 팅게 관심을 안 뒀쥬.”

“밤 몇 시쯤에 오는 전화지?”

“대중읎어유. 열 시쯤에도 오구, 자정 무렵에도 오구.”

“전화가 길었나?”

“한번 걸려오면 보통 반시간이 넘었슈.”

“그처럼 얘기가 길면 무슨 얘긴지 대충 알잖겠어?”

“이쪽이선 말이 별루 없었걸랑유. 예예, 힘들어유, 안 돼유, 싫어유, 그런 식으로 대꾸만 해준 거쥬.”

“누굴까? 조금도 집히는 게 없어?”

“전혀유.”

“똑똑한 사내군. 여편네가 밤늦게 딴 사내와 통화하는데도 관심을 안 두다니.”

“솔직히 말씀드릴까유?”

“그래 어서 말해봐.”

귀가 번쩍 뜨인다. 드디어 전말이 밝혀질 것만 같다.

“사실은....”

“사실은?”

“사장님과 통화하는 줄 알았걸랑유.”

맥이 빠진다.

“그래, 나하고 뭔 얘기 하는 줄 알았어?”

“히히히....”

“말해. 웃지 말고.”

“미안해유. 제가 오해한 것.”

“뭐야? 그럼 나와 좋아지낸 줄 알았다구?”

“히히히....”

“그래서 모른 척했다구?”

“오해해서 미안해유.”

내 뱃속에서 웃음이 기어나온다. 남편의 마음을 떠보는 것도 재미있을 성싶다.

“내가 능수엄마와 좋아지내면 어떨 참였지?”

“히히히.... 그걸 워떻게 말해유.”

“왜 말 못해? 어서 대답해 봐. 칼 들고 쫓아올 참였나?”

“아녜유. 왜 그런 짓을 해유.”

“그럼 축하해줄 맘였어?”

“히히히....”

“솔직한 심정을 털어내 봐. 그동안 날 원망했겠는데?”

“그게 아니라니까유. 절대로 아녜유.”

“뭐 이런 사내가 있어? 나한테 칼 들고 쫓아와야지, 그냥 둬볼 참였어?”

“히히히.... 이젠 그 얘기 그만해유. 난처하니께유.”

나는 두 손가락으로 남편의 코를 비튼다. 바보 같은 인간! 착한 인간! 남한테 꼭 지고 사는 인간!

“고맙네. 날 그처럼 이해해주니.”

“오해한 것 재차 미안해유.”

“미안 미안만 하지 말고 어서 잘 생각해 봐. 누구와 통화한 건지.”

“글쎄유. 전혀 감이 안 잡혀유.”

남편에게 산동네를 다시 둘러보게 시키고 나 혼자 춘천옥으로 돌아온다. 능수엄마 소식은 아직도 감감하다. 점심 장사에 지친 미스 강을 쉬게 했지만 그녀는 괜찮다며 능수엄마의 빈자리를 메워준다. 나는 다른 직원들에게 미스 강을 도와 손님 안내에 차질이 없도록 하라고 이른다. 손목시계를 들여다보니 방송 인터뷰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단골손님 만들기

아나운서는 맨 먼저 춘천옥 규모에 대해 묻는다. 나는 개업당시 규모와 현재 규모를 사실 대로 비교해준다. 처음에는 테이블 네 개에 직원이 한 명뿐이었지만 지금은 테이블 백 개에 직원 수가 사십 명이 넘는다고 했다. “역시 소문대로군요. 영세업소를 겨우 삼 년 만에 서울의 명소로 키우셨는데, 손님 끄는 특별한 비책이라도....”

“방송 중인데, 좀 이상한 말을 해도 될까요?”

나는 장난기 어린 미소를 짓는다. 아나운서는 호기심이 가득한 표정으로 내 얼굴을 바라본다.

“비결은 간단합니다. 손님을 미치게 하면 됩니다. 그래서 손님을 맞이할 때 말과 행동을 신비스럽게 꾸미려고 애씁니다.”

“신비스럽게요?”

“손님을 모시는 방법이 수천수만 가지니까 일일이 설명할 순 없습니다. 하지만 이건 말씀드릴 수 있죠. 신선한 말, 손님을 긴장시킬 수 있는 말을 구사해얀다는 거죠.”

“그럼 어떤 말이 신선한 말일까요?”

“그거에 대해서도 일일이 설명할 순 없습니다.”

“핵심적인 말은 피하시는군요.”

“피하는 게 아니라 공식적인 말이 없다는 겁니다. 그때그때 분위기나 손님 성격에 따라 말이 달라져야 하니까요. 어서 오십시요, 반갑습니다, 오랜만입니다, 건강해 보이십니다, 더 젊어지셨군요, 그런 상투적인 인사만으로는 손님 마음을 움직일 수 없다는 거죠. 손님이 풍기는 분위기나 반응을 살피면서 순발력 있게 대처해얍니다.”

“좀더 자세히 말씀해주시죠. 이런 손님은 어떻게 대하고 저런 손님은 어떻게 대한다든가....”

아나운서의 질문에 나는 좀더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일테면 말수가 적은 손님한테 공연히 말을 걸었다가는 오히려 낭패 보기 십상이고, 그와 반대로 뽐내고 싶어 하는 손님이나 기분파를 침묵으로만 대해서도 안 되며, 또 지식인으로 보이는 손님에게 유식한 말을 꺼내도 안 되고, 교양티 내는 손님에게 예의 바른 말만 꺼내서도 안 된다고 했다. 그러자 아나운서가 묻는다. 그 중에서 가장 대하기 힘든 손님은 어떤 손님이냐고. 아마 그 질문은 방송과는 관계없이 아나운서의 개인적인 호기심에서 나온 듯싶다.

“가장 조심스러운 손님은 교양을 내세우는 손님이죠. 그 중에서도 더 다루기 힘든 게 쇠말뚝처럼 고지식한 손님이고요.”

내가 잡담 식으로 말하자 아나운서도 소탈하게 웃으며, 그런 손님은 어떻게 다루냐고 묻는다. 나는 그런 손님에겐 일부러 시비를 건다는 말로 아나운서를 긴장시킨다.

“시비요?”

“네. 하지만 그때야 말로 고도의 언변이 요망됩니다. 화내기 십상이니까요. 기분은 잡치되 화는 내지 않을 정도의 시비, 참으로 기술이 필요합니다.”

“재밌는 말씀인데, 시비를 걸었을 경우 만약 손님이 화를 낸다면 그땐 어떻게 대처하시죠?”

“당연히 풀어드려야죠. 그리고 그분에게 이 세상 어디에서도 느껴보지 못한 감동을 안겨드려야죠. 얼굴을 찡그렸다가 웃고 돌아간 손님은 단골이 됩니다. 웃고 왔다가 웃으며 돌아가는 손님은 오히려 단골 만들기가 힘들어요. 여기저기 매력을 풍기고 다니는 사람은 단골집이 없거든요. 단골은 한 곳에만 집중하는 정인(情人)이죠. 그래서 저는 까다로운 손님이 오시면 스트레스를 받는 게 아니라 좋은 요리감이 생겼군, 하고 혼자 미소를 짓곤 합니다.”

“사장님의 시비를 끝까지 오해할 손님이 있잖을까요? 오해가 아녀도 자의식에 상처를 입는다든가....”

“없습니다.”

“한번도요?” “네.”

“대단하십니다.”

“제 언변술이 좋다기보다 손님들이 제 진심을 느끼시는 거죠. 갓난아기도 엄마의 젖가슴을 알아보거든요. 부드럽다고 다 엄마 젖이 아니지요.”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지금 저도 마음이 숙연해집니다.”

아나운서는 잠시 침묵을 지키고 나서 다시 내 말을 유도한다.

“좋습니다. 그렇다면 춘천옥에서는 음식이 맛없어도 얼마든지 손님을 끌 수 있겠네요?”

“그건 불가능합니다. 음식이 맛없으면 제 말과 행동은 영험(靈驗)을 잃게 됩니다.”

“영험?”

“제 말이나 행동은 음식이 맛있을 때에만 마술적인 효력을 발휘한다는 말이죠. 아무리 기막힌 언행을 구사해도 음식이 맛없으면 말짱 헛일입니다.”

“역시 맛에 달렸군요.”

“물론 성패는 맛에 달렸죠. 하지만 맛만 가지고는 밥벌이는 될지언정 부자는 될 수 없어요. 주인은 맛 말고도 손님이 음식에서 두려움 같은 걸 느끼게 해얍니다. 우리 춘천옥에 오신 손님은 왕처럼 대접 받기를 좋아하면서도 어떤 초월적인 존재에 지배당하고 싶어 합니다.”

“음식에 지배당한다.... 어려운 말인데요.”

“손님은 음식을 먹는 것 말고도 그 음식에서 어떤 신비한 권위를 느끼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저는 음식을 상품으로 여기지 않아요. 상품으로 여기는 순간 음식은 신비성을 잃고 맙니다. 저는 밥장사를 돈벌이로 여기지 않습니다.”

사실이다. 뭘 하나 만들어보자, 그 생각뿐이다. 구두에 묻은 흙만 털어놓고 가도 좋으니 편안한 마음으로 오십시오. 그게 내 신조다.

“미쳐도 옳게 미쳐야죠. 섣불리 미치면 이것도 저것도 아닙니다. 제대로 미쳐야 개도 짖습니다. 개는 섣불리 미친 사람을 보면 짖지 않고 눈만 흘겨요. 그 온전한 미침이 바로 봉사정신이죠.”

“그럼 염가봉사도 정성이겠군요?”

“대단하십니다. 염가봉사가 정성이란 걸 어찌 아셨죠?”

“그거야 어린애들도 아는 것 아닙니까? 같은 거면 누구나 싼 걸 찾잖아요?”

“그렇습니다. 염가봉사는 요식업의 삼 대 요소 중 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맛있고 청결한 음식으로 대지에 싹을 틔우면, 애정 어린 서비스로 푸르게 성장시켜, 부담 없는 염가로 화려한 꽃을 피우게 합니다.”

아무 걱정 마세요

저녁 장사가 시작되었어도 능수엄마 소식은 캄캄하다. 미스 강의 얼굴에는 피로한 기색이 역력하다.

“다른 홀 팀이 처리할 테니 휴게실에 들어가 쉬도록 해.”

나는 미스 강의 등을 밀었다.

“안 피곤해요. 끄떡없어요. 아무 걱정 마세요.”

미스 강은 되레 나를 안심시킨다.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는 기회로 잡는 모양이다. 항상 능수엄마와 경쟁관계이니 그럴 만도 하겠지만 하루 이틀이지 계속 감당할 수 없는 노릇이다. 만약 능수엄마가 내일도 나타나지 않으면 홀 팀에서 몸 빠른 직원을 골라 대행시킬 작정이다. 능수엄마가 없으니 홀이 썰렁한 기분이 든다. 그녀의 역할이 너무 컸다는 게 새삼 느껴진다.

“어서 쉬라구.”

미스 강이 과로하여 일을 못하게 되면 보통 타격이 아니다. 나는 갑자기 불안감이 느껴진다. 직원이 40명을 넘지만 부서마다 책임지고 있는 숫자는 몇 명 되지 않는다. 만약 미스 강이 없으면 우리 부부가 나서야 될 판이다, 그러니 능수엄마처럼 믿을 수 있는 식구는 정말 가족 이상으로 귀중한 존재일 수밖에 없다.

손님들이 몰려들기 시작한다. 나는 능수엄마 몫까지 맡은 미스 강을 도와주며 출입문 앞에서 손님을 맞아들인다. 시간이 지날수록 손님들이 불어나자 아내까지 동원시킨다. 능수엄마의 빈자리를 세 명이 감당하는 셈이다. 시계를 보니 밤이 깊어지고 있다. 이제는 능수엄마의 행방이 불안해지기까지 한다. 정말 무슨 큰일을 당한 게 아닐까?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본다. 여전히 감감무소식이라고 한다. 덜컥 겁이 난다. 납치가 분명하다. 경찰에 정식 신고하기로 마음을 정한 나는 카운터로 가서 다이얼을 돌리려고 전화기를 당겨놓았다. 바로 그때 몸이 풀어진 능수엄마가 출입문을 열고 힘겹게 들어선다. 나는 얼른 그녀를 부축해서 휴게실로 데려간다.

“참말로 무서운 놈입니더.”

소파에 앉히자 능수엄마가 처음 입을 연다.

“누가?”

“박 사장 그 인간 말입니더.”

“모금정 박 사장 말이냐?”

“네에.”

“그자가 어쨌는데?”

“하루 종일 자기네 거실에 앉혀놓고 꼬시는 거라예. 모금정에 오모 특별히 대접해주겠다 카며....”

“그 말은 나중에 듣기로 하고, 박 사장을 어디서 만났지?”

“버스에서예.”

“버스라면 얼마든지 자유로울 수 있잖아?”

“차를 탔는데 그 사람이 뒤쪽에 앉아 있는 거라예. 버스가 출발하니까네 내 곁에 와 앉더니만, 잠깐이면 된다 카며 함께 내리자고....”

“그래서?”

“그 말을 믿고 내리니까네 다짜고짜 택시에 태우고 달리는 거라예. 이라믄 몬쓴다고 뭐라 캤더니 자꾸 걱정 말라는 거라예. 잠깐 이야기 하모 된다꼬.”

“내 말은 왜 따라갔느냐 그 말야. 버스에서 같이 내린 것부터가 잘못이잖아?”

“그건 그래예. 물론 안 따라갈 수도 있었지만도 잠깐이라 캐서....”

그녀의 말이 이해는 되면서도 분통이 터진다. 버스에서 따라 내린 그 어이없는 배려가 화날 뿐이다. 박 사장 그자는 이성을 잃은 인간이다. 무조건 춘천옥 망하기만을 비는 인간이다. 그에게서 당한 피해가 뭔지 잘 알고 있고, 그가 뻔뻔한 파렴치임을 잘 알면서 어째서 그자의 말을 들어주냐 말이다.

“어쨌든 넌 온종일 그자와 함께 있었어. 여기 장사는 팽개친 채 말야. 나는 지금 네 정신상태를 말하는 거야. 얼마든지 빠져나올 수 있었잖아? 소리를 치든 몸부림을 치든 어떤 수를 써서라도 여기 춘천옥에 일찍 올 수 있었잖아?”

“....”

“그가 너를 묶든?”

“어데예.”

“너를 칼로 위협하든?”

“어데예.”

“아니면 죽인다고 위협하든?”

“어데예.”

“그런데 왜 함께 있었지?”

“글쎄, 별 것 아닐 성싶어서....”

“너는 별 것 아니지만, 그들은 뭘 노렸지?”

“그냥 자기네 업소로 와 달라고만.....”

“춘천옥 그만두고 말이지?”

“네에”

“그래서, 그러기로 했니?”

“무신 말씀을 그리 하시능교.”

“그럼 안 갈 맘이었고, 그 맘은 변할 수 없는 거지?”

“네에.”

“그렇다면 그 사람 말을 듣는 것은 오 분도 안 걸리잖아? 당신 말 잘 들었다. 하지만 춘천옥에 대한 내 맘은 변함이 없다. 더 이상 나를 잡지 마라. 그 말 할 시간이면 충분하잖아? 그런데 왜 온종일 시달렸지?”

“미안합니더.”

“나는 미안하다는 말 젤 듣기 싫어해. 소파에 누워 쉬고 장사 끝나거든 고백해.”

“멀 고백하라고 그러십니꺼?” “그건 네가 잘 알잖아? 네 맘이니까.”

나는 후딱 휴게실 문을 닫고 밖으로 나왔다.

밤 열 시가 가까워지자 주방에서는 끝내기 청소가 한창이다. 홀팀이 새로 들어오는 손님을 정중히 돌려보낸다. 미스 강의 얼굴 표정이 명랑해 보이지 않는다. 피곤해서가 아닌 듯싶다. 능수엄마의 귀환이 그녀의 기분을 잡친 모양이다.

“앞으로 미스 강이 더 책임감을 가져줘.”

나는 그런 말로 미스 강의 기분을 돋아준다. “네에.” 하고 느리게 대답하는 그녀의 목소리가 우울하다.

“미스 강이 버텨주니까 마음이 든든해. 고단할 텐데 어서 퇴근해.”

“사장님.”

“왜?”

“제 염려는 마세요.”

“그래. 고마워.”

나는 미스 강을 데리고 밖으로 나가 택시를 태워 보낸다. 이제 휴게실로 가서 능수엄마를 만나는 일만 남는다. 무슨 말을 해줄까? 문뜩 내가 어리석었다는 생각이 든다. 의리나 신뢰 같은 덕목만을 끌어안고 살아온 게 뉘우쳐지기도 한다.

“집에 갈랍니더.”

어느새 능수엄마가 출입문을 열고 밖으로 나온다.

“그래라. 어서 집에 가 쉬도록 해.”

긴 말을 나누고 싶지 않다. 나는 택시를 잡아 능수엄마를 태운다. 그런데 그녀가 차에 오르면서 갑자기 눈물을 짓는다. 그녀의 눈물이 궁금했지만 나는 못 본 척하고 얼른 안으로 들어간다.

이튿날 아침 일찍 출근한 능수엄마는 더 환한 얼굴로 직원들과 수다를 떨고, 손님을 맞이할 때도 더 친절한 동작을 보인다. 신임을 회복하려는 의도적인 태도가 역력하지만 나는 일부러 못 본 체하다가 해질 무렵에야 겨우 한마디를 내뱉는다.

“미스 강이 지쳐 있으니 오늘 밤은 너 혼자 다해.”

내 말에 새로 기운을 차린 능수엄마는 금방 여직원 방으로 달려가 미스 강의 등을 다독거리며 너스레를 떤다.

“오늘 저녁장사는 푹 쉬거래이. 나 혼자 감당할끼라. 늬는 내 맘 모른다카이. 내가 늬를 얼마나 아끼는 줄 아나? 미움도 사랑인 기라. 알제?”

미스 강이 피식피식 웃으며 능수엄마의 말을 받는다.

“언니 말 고맙게 접수할 테니 어서 나가봐.”

“가시네, 삐딱하긴....”

능수엄마는 연방 웃음을 날리며 방을 나간다. 어스름이 깔리자 손님들이 밀리기 시작한다.

뒤통수에도 눈이 달려야 한다

바쁜 시간이면 주방도 미치고 홀도 미치게 마련이다. 주방에서는 보쌈과 막국수를 장만하기에 미치고, 홀에서는 밀려오는 손님을 맞아들이기에 미친다. 그때가 되면 능수엄마와 미스 강의 환상적인 안내 모습에 취할 수 있어 흥겹다.

그녀들의 안내 모습은 정말 신들린 동작이다. 한 팔로 손님의 허리를 감을 듯한 친절미와 미소 띤 얼굴로 맞아들이는 그 절묘한 동작은 마치 꽃밭을 날아다니는 나비의 날갯짓처럼 황홀하다.

“어서 오세요.”

이번에는 국회의원들이다. 뉴스시간에 자주 보아온 얼굴이다. 7개의 금배지가 형광불빛에 반짝인다. 그 중에는 당 총재도 끼어 있다. 원로 정치인이 단골인데 그분이 모셔온 모양이다. 하지만 자리가 없다. 그렇다고 복도에 세워둘 수도 없다. 손님들의 시선이 총재에게 쏠린다. 한시가 급하다. 얼른 대책을 세워야 했다. 휴게실도 차 있다.

직원들 옷 갈아입는 방이 떠오른다. 그 지저분한 구석방으로 총재와 의원들을 안내한다. 메밀가루와 고춧가루가 묻은 주방 식구들의 작업복이 벽에 즐비하게 걸려 있지만 손 쓸 여유가 없다. 밥상을 가져다 상판에 백지만 깔게 하고, 방석을 가져와 깐다. 총재를 중심으로 의원들이 자리에 둘러앉자 나는 정중히 예의를 차린다.

“죄송합니다. 지저분해서....”

“이집에 와서 이렇게 자리 잡은 것만도 다행이오.”

총재의 말이다. 의원들의 얼굴에 웃음이 번진다. 내가 인사를 마치고 자리를 뜨려하자 총재가 합석을 권유한다. 그는 나를 자기 곁에 앉히고 직접 소주를 한 잔 채워준다.

“개업한지 얼마나 됐소?”

“삼 년이 넘습니다.”

“부인 솜씨가 좋으신가 보오.”

“무척 애를 썼지요. 맛은 정성에 달렸거든요.”

“맞는 말이오. 정치도 정성이 필요한데....”

총재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린다.

“저분이 부인이신가요?”

사무총장이 복도를 헤집고 다니며 자리 안내하는 능수엄마를 가리킨다. 나는 마담 역할 하는 직원이라고 대답한다.

“대단한 서비스요. 인삿새나 표정이 어쩌면 저리 밝소. 이집은 음식 맛도 좋지만 분위기가 꼭 우리 집 안방처럼 편해요.”

사무총장이 지친 목소리로 말한다. 그의 얼굴에는 정말 쉬고 싶어 하는 간절한 표정이 묻어 있다.

“오늘은 쉬러 온 거니 쥔장의 얘기나 들어봅시다. 도대체 손님 끄는 비결이 뭐요?”

총재가 사무총장 잔을 받으며 말한다. 그런 질문은 하루에도 몇 번씩 듣고 있어 빙그레 웃고 말지만 집권당 총재의 말이라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저는 우리 업소를 단순한 식당이 아닌, 어떤 신비스런 업소로 이미지를 꾸며가고 있습니다. 손님 많은 집, 유명한 집, 그 정도로는 양에 차지 않습니다. 아까 사무총장님께서 안방 같은 분위기라고 말씀하셨는데, 저는 제 업소를 엄마 품속, 친구 하숙방, 회사 사무실, 그렇게 세 가지 유형의 이미지를 갖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손님들의 성격, 취향, 입장을 먼저 파악해서 세 가지 유형 중 한 가지에 친숙해지도록 유도하죠. 외람되지만 총재님께 질문을 하나 드려도 될까요?”

“어려운 건 묻지 마오.”

“갓난 애기도 엄마의 품속을 알아보는데, 왜 그럴까요?”

“엄마의 품속에는 애정이 가득하니까.”

“표현이 아주 시적이시군요. 그렇지요. 애정이 가득한 품속. 손님이 가장 좋아하는 공간입니다. 우리 업소가 바로 포근한 엄마 품속이죠. 일에 지친 사람이나 근심에 찌든 사람도 편안히 음식을 드실 수 있는 휴식처. 애기가 엄마 젖을 물고 빨듯 말입니다. 그렇다면 손님들에게 엄마 품속을 어떻게 만들어 주느냐, 그게 바로 손님을 신비롭게 맞이하는 방법일 텐데, 그건 너무 다양하니까 생략하겠고요, 다른 예를 들겠습니다.”

“얘기가 아주 재밌어지는데.....”

대변인이 분위기를 띄운다.

“아시다시피 이 지역은 공장이 많고, 태반이 수출업쳅니다. 그러니 분임조 별로 야간작업이나 특근할 경우가 많습니다. 일을 끝내면 회사에서 회식비를 받는 경우가 많겠죠. 그때 조원들은 어느 집으로 갈까를 놓고 의논할 겁니다. 그 중에는 저희 업소에 불만을 가진 사람도 있겠지만, 저를 잘 아는 조장이라면 이렇게 나설 겁니다. 그래도 춘천옥이 젤 나아. 그집 사장이 나한텐 꺼뻑 죽거든. 그리로 가야 제대로 대접받을 수 있어. 값도 싸고 분위기도 좋구. 조장은 그런 식으로 조원들을 설득해 앞장을 서겠지요. 그 조장은 춘천옥에 들어서자마자 사장인 저를 찾을 거고, 저를 보자마자 큰소리로 반말을 던질 겁니다. 모두 열다섯 명. 고기는 알아서 주시고. 그러면 저는 일부러 큰소리로 직원을 불러서 호들갑을 떨죠. 김 조장님 오셨다. 이층으로 모시고, 고기는 특별히 알아서 담도록.

그 후 분위기가 익어갈 무렵 그 자리로 찾아가면 조장은 틀림없이 제게 술잔을 내밀게 마련이죠. 저는 한 모금만 받아서 마시는 척하고 직원을 다시 부릅니다. 여기에 콜라 일곱 병 내도록. 저는 술을 얻어 마신 핑계를 대고 음료수를 내겠다는 거죠. 그렇게 분위기를 띄워주고 나서, 일행 중에 표정이 삐딱한 직원을 골라내 일부러 술잔을 내밀며, 우리 집에 섭섭한 것 있어? 하고 속을 떠봅니다. 술김이라 십중팔구는 고백하게 마련이죠. 여직원이 손님에게 차별대우한다든가, 대개 그런 거죠. 저는 그 불만을 해소해주겠다고 큰소리를 치고 나서 그에게 덕담 한마디를 던집니다. 아직 총각일 텐데, 시시한 여잔 상대하지 마. 멋진 걸 고르란 말야, 알지?”

내가 딱 이야기를 멈추자 국회의원들이 뱃살을 잡는다.

“그러니까 그 삐딱한 직원의 자존심에 불을 지른 셈이군. 너는 수준 높은 사낸데 시시한 여자와 상대하지 마라, 기막힌 작전이지. 아주 뛰어난 화술이오. 그러니까 손님을 가지고 노시는군.”

여태까지 조용히 앉아 술만 마시던 원내총무의 말이다.

“기가 막히군. 그렇게 말하면 안 넘어갈 자 없지. 쥔장, 술잔 받으쇼.”

총재가 또 내 잔에 술을 따라준다. 나는 공손히 잔을 받으면서 이만 자리를 뜨리라 마음먹는다. 계속 합석하게 되면 주인에 대한 신비성, 즉 호기심을 유발시킬 수 없다. 주인이 보잘것없는 존재로 이미지가 심어지면 음식도 권위를 잃게 된다.

춘천옥 구조는 출입문을 열면 홀이 있고 홀에서 여러 온돌방으로 들어가게 되어 있다. 춘천옥이 일반 업소와 다른 점은 저녁 피크타임에는 홀 팀의 역할 분담이 두 패로 갈라진다는 데에 있다. 즉 출입문을 열고 홀에 들어서는 손님을 방까지 모시고 가서 테이블을 배정해주는 안내 팀과, 방에서 손님을 인수하여 주문을 받고 음식을 날라주는 서빙 팀이 그것이다. 능수엄마와 미스 강이 맡은 안내 역할은 손님들이 줄서는 집에서나 필요한 이색적인 직책이다.

안내 팀은 빈 좌석을 일일이 파악해서 손님 숫자에 맞춰 신속히 좌석을 배정해야 한다. 그리고 멋진 인사로 손님의 기분을 증폭시켜주는 역할도 맡아야 하기 때문에 아무에게나 안내 역할을 맡길 수 없다. 손님이 겉잡을 수 없이 밀려올 때 쏜살같이 뛰어다니며 “어서 오세요.”를 외치면서도, 그 인사가 예의치례에 불과한 허례가 아님을 보여줘야 한다.

진심으로 당신의 왕림을 환영하며 지금부터 당신의 종이 되겠나이다. 그런 마음이어야 한다.

그처럼 실수 없이 안내하려면 하나의 눈만으로는 일을 처리할 수 없다. 뒤를 볼 수 있는 눈이 더 있어야 한다. 손님을 모시고 방으로 안내하는 동안에도 밖에서 들어오는 손님을 볼 수 있는 눈. 그 눈을 달아주기 위해 나는 그녀들의 능력에 불을 지른다.

“뒤통수에도 눈이 달려야 돼. 앞을 보면서도 동시에 등 뒤에 나타난 손님을 봐야 한다구. 알겠어?”

나는 능수엄마와 미스 강을 앞에 세워놓고 말한다.

“네.”

“너희들이 성공하려면 뒤통수에 눈이 달려야 해.”

“알았어요....”

“내 말이 듣기 싫나?”

“아뇨.”

“그런데 왜 대답이 후지지?”

“말씀은 알겠는 데예....”

“그래서?”

“눈이 얼굴에 달렸는 데예, 우째 고개를 안 돌리고 뒤를 볼 수 있능교.”

나는 터져 나오는 웃음을 억지로 참고 능수엄마에게 더 험한 목소리로 말한다.

“이런 멍청이. 뒤통수에 눈을 달 수 없단 말야?”

“참말로, 될 일을 시켜야제 우째 안 될 일을 시킵니꺼.”

“이 바보야, 일에 미치다보면 정말로 뒤통수에 눈이 생겨.”

“눈이 생긴다고예?”

“그래.”

“차말로 이해 못하겠심더. 아무리 미친다 캐도 우째 뒤통수에 눈이 생기겠능교.”

“이런 무식한 인간!”

나는 일부러 손바닥으로 식탁을 탁 친다. 손이 얼얼하다. 내 나이 40대 중반이지만 가족적인 분위기를 살리고 싶어 친동생처럼 대해주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능수엄마는 가장 허물없는 사이여서 늘 쥐 잡듯이 다룬다.

“네가 제대로 미치지 못해서 그래. 네가 제대로 미쳐봐라. 눈이 안 생기나. 눈은 얼굴에만 달린 게 아냐. 뒤통수에도 달릴 수 있어. 앞에 달린 눈은 육체적인 눈이고 뒤통수의 눈은 정신적인 눈인 게 다를 뿐이야. 항상 손님이 뒤에 서 있다고 의식하면 뒤통수에 눈이 생겨. 영화에서 봤지? 검객이 자다가도 적의 비수를 탁 막잖아?”

“봤어예.”

“비수를 막을 수 있는 건 잠을 잘 때도 가슴을 노리는 적의 비수가 느껴지기 때문이야. 그만큼 무술에 미쳐 있으니까 자다가도 비수를 느낄 수 있는 거라구. 알았어?”

“네.”

능수엄마가 힘 있는 목소리로 대답한다. 그들이 사랑스럽다. 그들이 사랑스럽기에 칭찬보다 욕을 퍼줄 때가 많다.

“어서 오세요. 어서 오세요. 어서 오세요....”

현관 쪽에서 들려오는 능수엄마와 미스 강의 목소리가 간드러지다. 복도에 서서 대기하는 손님들의 모습이 슬슬 멍청해지기 시작한다. 그들 중 넥타이를 맨 두 회사원의 입에서 꿈결처럼 몽롱한 말이 흘러나온다.

“이 집에 오면 내가 이상해지는 것 같애. 꼭 머리가 도는 기분이야.”

“나도 그래. 기분이 묘해지거든. 뭐랄까 흥이 솟는 것 같고, 내 몸이 붕 뜨는 기분이거든.”

그들의 말을 듣는 순간 내 몸에 싸늘한 전율이 흐른다.

“손님들은 미치고 싶어 춘천옥에 오십니다.”

내가 그들의 말에 끼어들었다.

“그런 것 같아요. 영락없이 뭐에 홀리는 기분예요.”

“춘천옥은 손님을 미치게 만드는 공장입니다. 손님들께 이렇게 외치고 싶어요. 미침의 세계를 체험하시오! 제가 직원들을 미치게 하고, 직원들이 춘천옥을 미치게 하고, 춘천옥이 손님들을 미치게 하고, 손님들이 저를 미치게 합니다. 미침의 순환이죠.”

“미침의 순환, 멋진 말이군요. 우리 회사에도 그런 광기가 넘쳐얄 텐데....”

영업이 끝날 무렵 나는 휴게실로 들어가 소파에 눕는다. 퇴근하기가 힘들 만큼 몸이 무겁다. 십여 년 만에 처음 겪어보는 몸살기다. 날마다 일에 치어 아플 겨를도 없었는데 참 이상한 일이다. 능수엄마 일이 나도 모르게 큰 충격으로 작용한 모양이다. 그런데 몸은 쳐지지만 정신은 말똥하다. 소파에 누운 채 아래층 카운터로 전화를 걸어 맥주 한 병을 시킨다. 이윽고 휴게실 문이 열리고, 능수엄마가 쟁반에 마른안주와 유리컵과 맥주 한 병을 챙겨들고 들어온다. 나는 지그시 눈을 감은 채 말한다.

“테이블 위에 놓고 나가.”

하지만 그녀는 병마개를 따서 술을 잔에 부어 놓고도 그냥 서 있다.

“어데 편찮으신교?”

나는 고개만 끄덕여주고 창쪽으로 돌아눕는다. 길 건너 사우나 옥상에는 네온 불빛이 명멸하고 있다.

“솔직히 털어놓겠심더.”

“....”

“와 대꾸를 안 하십니꺼.”

“뭘?”

“지한테 공갈쳤심더.”

“....”

“그자가 사진을 봬 줬심더. 노 상무캉 여관 앞에서 찍힌 사진입디더.”

“....”

“저를 의심 마이소. 퇴근길에 노 상무캉 길에 서 있는데 박 사장이 나타나 사진 한 장 찍으라 캐서....”

“그게 언젠데?”

“지난 달입니더.”

“왜 나한테 사진 찍힌 걸 숨겼지?”

“사장님이 오해하실까봐....”

“그동안 밖에서 그자들과 몇 번 어울렸나?”

“먼 소린교. 사진 찍을 때가 첨이구마.”

“정말?”

“와 지가 거짓말 하겠능교.”

“사진은 지금도 박 사장이 가지고 있겠구나.”

“그래예.”

“너 재판정에서 거짓말 탄로 나면 안 된다. 알쟈?”

나는 일부러 재판을 들먹인다.

“재판이라 캤능교?”

“내가 박 사장과 노 상무 그놈들을 가만 놔둘 성 싶냐? 짜고 한 짓인데.”

“네? 짜고했다고예?”

“안 짰는데 그런 사진을 어떻게 찍을 수 있겠어. 그것도 하필 여관 앞에서 말야.”

“정말 그렇네예. 그자들 아주 흉한 것들 아닝교?”

“노 상무 그자가 어떤 놈인지 잘 알아 봐.”

“싫습니더. 와 그자를 상대하라 카능교? 이젠 여기 와도 쳐다보지도 않을 거구마.”

“어쨌든 그때 노 상무와 둘이 있었잖아?”

“그게 아니고예, 버스 타러 가다가 우연히 만난 거라예.”

박 사장과 노 상무는 가까운 사이일 게 틀림없다. 그들은 능수엄마를 꾀기 위해 작당한 게 분명하다. 마담 격에다 보쌈김치를 책임진 능수엄마를 데려가면 춘천옥에 타격이 크리라고 여긴 모양이다. 그나저나 노 상무는 박 사장과 어떤 사이일까?

말없는 항도

춘천옥은 일년 내내 바쁘지만 하절에 비해 겨울철이 상대적으로 손님이 뜸한 편이다. 단풍이 지고 날씨가 추워지자 허마두가 내 몸을 걱정해준다.

“짐승도 쉴 때가 있는 법이니께니, 늬도 쉴 때가 있어야디. 암소리 말구 이 참에 어디 여행이나 하라메. 업소는 내가 잘 단도리할께니 맘 푹 놓고 쉬라우. 알간?”

내가 항상 이름이 더럽다고 놀려주는 허마두는 고교동창이며 자칭 철학자다. 육이오 때 아버지를 따라 월남한 그는 대학 진학도 포기한 채 동대문시장에서 노점상으로 나이를 먹어오다가 요즘은 장사를 접고 춘천옥 대체인력으로 지내고 있다. 바쁠 때 갑자기 빠지는 직원을 대신하는 일종의 비정규직인 셈인데, 사십대 중반 치고는 몸이 빠른 편이어서 바쁜 일을 응급 처치하는 데는 쓸만한 위인이다. 그는 모르는 분야가 거의 없을 만큼 세상사에 밝다. 아직도 가정을 이루지 못한 그는 인류의 정신사를 움직이는 철학자나 사상가가 되는 게 꿈이었지만 비천한 가정환경은 그를 퇴락의 길로 몰고 갔다. 장가를 못 들었으니 자식도 생길 리 없고, 용돈이 생기면 술집이나 창녀촌에서 몸을 푸는 게 고작이다.

“내 몸을 걱정해주니 고맙다.”

나는 허마두의 말을 듣고 오랜만에 고향에나 다녀오기로 마음먹는다. 어머니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3년 만에 가보는 부여. 어서 다녀가라고 누나의 성화가 빗발쳤지만 하루하루 쫓겨 살다보니 미뤄진 것이다. 그런데 출발 하루 전 부산 한규에게서 전화가 왔다. 자그마치 십사 년 만이다.

“늬 맘 아즉 안 변했나? 십 년 넘게 못 보니까네 속이 탄다. 서운한 거 싹 잊고 퍼뜩 내려온나.”

부여에 들렀다가 그 길로 부산까지 내려갈까? 그런 생각이 들자 갑자기 부산이 그리워진다. 그동안 바쁘게 살아오느라 까막 잊어온 부산이 마치 그리운 연인처럼 내 마음을 유혹한다. 한규에 대한 서운한 감정도 다정한 목소리를 듣는 순간 모두 씻겨지고, 그의 다감한 미소가 눈앞에 어른거린다. 깡패 출신인 한규는 싸울 때만 악발이지 웃는 모습이 참 매력적이어서 간호사였던 애인도 그 은은한 미소에 홀딱 반했던 것이다.

내가 한규를 처음 만난 것은 대전 유성에 있는 공군기술교육단 항공병학교에서 머리를 빡빡 깎고 훈련을 받을 때였다. 당시 우리 내무반에는 두 싸움패가 있었는데 서울패와 부산패인 그들은 주도권을 놓고 늘 으르렁거렸다. 취침점호가 끝나는 밤이면 두 패가 싸움을 벌이는 경우가 종종 있었고, 그 바람에 한규와 친한 나는 서울패의 미움을 사게 되었다.

“느그들 기용이 손대믄 죽인다. 알갔나?”

그런 식으로 한규가 나를 옹호했지만 서울패들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아무 때고 손봐주겠다는 눈치였다. 서울패들은 연병장에서 나를 볼 때마다 침을 이빨 사이로 찍찍 내갈기며 째려보곤 했는데, 한규 역시 그런 기미를 미리 알아채고 내 주위를 살피며 엄호해주었다.

한규가 그처럼 나를 보살펴주는 이유는 내가 그의 연애편지를 써주었기 때문이다. 그의 글은 후지고 칙칙해서 통통 튀는 애인의 정서에 맞지 않았다. 드디어 끝내자는 애인의 편지가 날아왔고, 그날 한규는 머리를 막사 벽에 쾅쾅 박으며 왕머구리 같은 눈물을 쏟았다. 나는 그 모습이 가여워 자진해서 편지 대필을 맡았던 것이다.

“내가 네 깔치 맘을 돌려놓을 테니 걱정 마. 세월이 여류하여 어느덧 꽃피는 춘삼월이.... 그 따위 글로 여자 맘을 사로잡겠어? 그런 글은 케케묵은 풍월이라구.”

나는 밤잠을 설치며 편지를 다듬었다. 세 번째 편지부터 애인의 답장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한규는 자기를 사랑한다는 내용이 적힌 애인의 편지를 들고 내 앞에서 덩실덩실 춤을 췄다. 그 모습을 본 서울패 왕초가 밤에 나를 몰래 막사 밖으로 불러냈다. 나는 마음을 단단히 먹고 왕초의 뒤를 따랐다. 만약 나한테 손대면 한규를 불러낼 참이었다. 그런데 왕초는 나를 우물 가로 데려가더니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뜻밖에도 이런 말을 했다.

“내 깔치한테도 연애편지를 써 도오. 그리고 너도 서울서 고등학교를 다녔는데 나와 한통속이 돼야잖아.”

나는 서울패 왕초의 연애편지를 써주고 나서 이튿날 양쪽 두목을 막사 뒤로 불러내어 화해를 유도했다. 한규가 먼저 손을 내밀었고 서울 왕초가 그 뻣뻣한 손을 곱게 잡아주었다.

한규는 여전히 범일동에 살고 있었다. 작은 규모로 자동차 서비스업을 하고 있는데 돈을 잘 번다고 한다. 낮에는 한규 부부와 셋이 시내구경을 다니고 해질녘에는 영도 쪽으로 회를 먹으러 갔다. 태종대 자살바위가 멀리 보인다. 갑자기 눈자위가 뜨거워진다. 21년 전 공군을 제대하고 부산에서 혼자 외판 생활하던 고달픈 추억이며 죽고 싶어 자살바위에 올라섰던 슬픈 추억이 눈물을 자아낸 것이다.

“내일 밤에는 늬를 환영하는 회식을 열어줄란다.”

한규는 어떻게 하면 나를 즐겁게 해줄지 궁리한 모양이다. 고맙다.

이튿날 밤, 남포동 갈비집 회식장소에 가보니 한규 친구들과 한규네 공장 직원들 열댓 명이 음식상에 둘러앉아 있다. 술판이 무르익자 한규가 나를 한껏 추켜세운다.

“느그들 내가 평소 이 친구 얘기를 하도 많이 했사서 성명은 다 알끼다. 부산과 서울에서 일류 학교만 골라 다닌 천재고, 경찰생활 때도 실력파로 뽑힌 잇찔 형사였으니까네 알만한 친구제. 그란데 이 친구는 이름이 참 별나다이. 얼마나 별난고 하이 성을 바꿔삐린 기라. 원래는 김씬데 이상할 기자로 말이더. 자기를 자기가 이상한 놈이라고 했는기라. 이름도 용만에서 만자를 빼뿌린 기라. 그라이 이름이 머가 됐겠노. 기용이 됐잖갔나. 이름 참 묘하재. 야가 이런 인간인 기라. 그라고 느그들 소문 들어서 알고 있겠지만도, 야는 한국에서 유명한 식당 사장인 기라. 그 바쁜 중에도 내캉 함끼 지내고 싶어서 부산까정 내려왔능기라. 내 말이 뭔 뜻인지 알갔제? 내가 부산 바닥을 휘잡고 있지만도 야 의리에는 꼼짝 못한다카이. 멋진 놈이제. 연애편지도 잘 쓰고.”

한규는 신이 나서 이야기를 줄줄 엮어나간다.

“야 과거가 어떤지 아나? 일등병 시절에 참모총장을 찾아갔는기라. 참모총장이 김구 선생 아들 아이가. 그분한테 찾아가서, 공군 일병 기용 신고합니더. 지가 국방 의무를 필하는 대신 같은 대한민국 국민인 늙은 부모님이 기아선상에 놓여 있심더. 그라이 저를 불쌍히 여기시고 각하의 은혜로서.... 그래갖고 참모총장이 군종감한테 지시해서, 군종감이 야를 불렀는기라. 우째 부모가 그리됐능가 물으니까네 야가 기구한 팔자를 줄줄 엮어나갔는기라. 그래갖고 상병으로 제대했다카이. 똑똑한 놈이제. 그후 내가 가야에 있는 40보급창에서 운전병을 하는데 서울 공군본부 기상부에서 근무하던 놈이 제대복을 입고 낼 찾아왔는기라. 느그들 기상부가 먼지 아나?”

“일기예보하는 곳 아닌교?”

“맞다. 관상대는 일반 행정기관이고 기상부는 우리 공군 부댄기라. 알갔제?”

“알갔심더. 어서 친구 얘기나 계속 하이소.”

판금 담당 박군이 야지를 놓자 한규는 피씩 웃어주고 나서 말을 잇는다.

“암튼 사정을 알고 보니까네 야가 군대 있는 동안 부모님이 뿔뿔이 헤어졌는기라. 살 곳이 없으니까네 아부지는 공주 마곡사에서 절머슴살이하고, 눈 어둔 어무이는 나므 집에서 더부살이하고 계셨는기라. 참담하제. 그래갖고 쫄짜인 내가 부대 기름을 몰래 빼내서 야를 먹여 살렸잖나. 그걸 또 은혜니 머니 했사면서 야가 나를 고맙게 여기는기라. 알갔제? 내가 이런 사낸기라.”

“알았심더. 사장님 훌륭하신 것 다 일고 있심더. 우리 기름쟁이한테만 서럽게 하지만도.”

박군이 또 빈정거리자 한규 얼굴이 붉어진다.

“늬 술 핑계 대고 계속 야지 놓을 거나?”

“사장님 이야기가 재밌어 그라는데 와 야지라 카능교.”

“그렇나? 미안하다이. 그럼 인자부터 느그들 인생 공부 하라꼬 이 친구 팔자를 얘기해 줄테니까네 귀담아 듣거래이. 알제?”

“좋심더. 얼마든지 얘기하이소. 밤새 들어줄 테니까네.”

박군의 말에 직원들의 박수가 터져 나온다.

“이 친군 충청도 두메산골에서 태어나갖고, 초등학교를 1등으로 졸업했지만도 가난해서 중학교에 몬 갔는기라. 그라이 환장하잖갔나. 삶은 고구마 싸들고 무작정 대전으로 튔는기야. 쪼맨한 아가 부모 몰래 가출했으이 그 심정 어떻겠노. 그란데 대전역서 기차를 탄 거이 하필 하행열찬기야. 상행열차 같으모 서울로 갔을 거 아이가. 돈 한푼 없으이까네 차푠들 샀겠나. 차장이 검표하러 다니모 화장실로 튀고 의자 밑에 숨었지러. 그래갖고 새벽에 초량역에서 내렸는데, 느그들 초량역 알제?”

“알고말고요. 철거된 지 얼마나 됐다고 모르겠능교. 부산진역캉 초량역이 우리들 아지트 아녔능교.”

“아지트라? 박군 느그들 게서 머했노?”

“뻔하잖능교.”

“뻔하다? 느그들 게서 소매치기했나? 소매치기 맞제?”

“도둑질은 아이오.”

“그라믄 앵벌이가?”

“퍼뜩 얘기나 하소.”

“내가 한심한기라. 저런 앵벌이놈들캉 한솥밥을 먹으니까네.”

“친구는 그담에 우찌 됐능고, 그거나 어서 말하소.”

박군이 자기들 약점을 덮고 싶어 이야기를 거듭 재촉한다.

“초량역에 내려갖고 배가 고프니까네 구내매점에 있는 먹을 거를 보며 침만 삼켰능기라. 김이 모락모락 나는 오뎅캉 김밥을 보니까네 환장할 거 아이가. 그때 쥔아줌씨가 야를 불러갖고, 늬 배고프제? 어데서 왔노? 충청도서 왔다카이 아줌씨가 야를 착하게 봤다이. 그래갖고 야를 자기 동생집에 맡겼능기라. 그래갖고 고교 선생이던 쥔이 야를 부산중학교에 넣었능기라. 느그들 알제? 부산중학이 부산서 최고 일류 중학교 아이가. 그 바람에 서울 용산고등학교에 진학한기라. 용고는 대한민국 4대공립 아이가. 멍청도 촌놈이 부산중, 용산고를 다녔으니까네 멋진 팔자제. 그란데 그 무렵에 집구석이 팍 망해갖고....”

“그래갖고 우째 됐능교?”

“그래갖고 대학을 몬 가고 군대에 들어가 의가사 제대한 후에 나한테 왔능기라. 인자 얘긴 그만 하고, 나중에 계속 들려줄테니까네 술 좀 마시자이.”

한규는 막걸리 잔을 들어 단숨에 들이킨다. 연거푸 석 잔을 들이키고 난 그는 다시 이야기를 이어나간다.

“우리 애인이 모다논 월급으로 우선 수정동 산동네에 방 한 칸을 얻었지러. 게서 우리 애인캉 함끼 지내도록 캤는기라.”

“함께요?”

“먼 상간이노. 지놈이 날 배신하갔나. 그라고 우리 애인은 주로 기숙사서 지내고 내가 외출할 때만 들렀으니까네.”

“그라믄 애인끼리 만나는 동안 친구분은 우짜고예?”

“야는 외판을 나갔지러. 그란데 입고 다닌 제대복 말고는 옷이 없어갖고 내 신사복을 입고 다녔제. 첨엔 여학생 교복 주름잡는 풀을 팔았지만도 그걸 누가 사겠노. 여고생들 비웃음만 샀다이. 그래갖고 화장품을 들고 다녔지만 그것도 가게서 사지 누가 남자 외판한테 사겠노. 온종일 배만 탈탈 골다가니 라디오 외판하는 데를 찾아갔는 기야. 요즘은 트랜지스터가 손가락맨크로 작지만도 그 시절에는 애기 몸뚱이맨크로 컸지러. 라디오가 금성에서 첨 나올 때고, 국산 전축은 꼴도 못 본 시절인기라. 그라고 그것도 다른 사람들은 실물을 들고 다녔지만도 야는 보증금이 없어갖고 카다로그만 들고 다녔는기라. 남들은 가게마다 들러서 라디오를 직접 틀어주니까네 호감을 사잖갔나. 야는 종이쪽만 들고다니면서 설명을 하니까네 우짜겠노. 그캐도 열심히 뛰니까네 물건을 팔긴 했다이. 하지만도 돈을 우째 모으겠노. 밥값 치르기도 모자랐지러. 그래갖고 맨날 부모 걱정에 잠을 설치다가니 태종대에 갔능기라.”

“태종대는 와요?”

“와는 와고. 자살바위에서 바다에 빠질라고 그랬제. 하지만도 절머슴 아부지캉 장님 어무이를 남겨두고 우째 자살하겠노. 그래갖고 버스 타고 돌아오는데 라디오에서 경찰관 모집 광고방송을 들었는기야. 느그들 야가 신체검사할 때 생긴 일 얘기하모 뱃살을 잡을끼다.”

“먼데예?”

“합격 체중이 55킬로 이상인데 53킬로 밖에 안 나가는기야. 그캐서 판정관 의사가 물을 마시고 오라캐서 양은 대접으로 세 대접을 마시고 달아보니까네 54점 2킬로가 나가는기라. 판정관이 엉덩이를 탁 치며, 한 그릇 더! 캤는기라. 퍼뜩 한 대접을 더 마시고 달아보니까네 저울침이 55킬로에 대롱대롱하는기라. 그래갖고 합격했제. 충청도 촌놈이 우째 그리 지독한고. 물론 부모님 땜에 환장했으니까네 뵈는 게 없겠지만서도, 그란데 5분도 안 돼갖고 야가 졸도했는기야. 머리가 삥 돌더란다. 오줌보가 터지고 나니까네 제정신이 들더라캤다. 기용이 늬 내 말 맞제?”

“맞다.”

내가 맞장구를 쳐주자 한규가 씩 웃는다. 그러자 연회장이 다시 소란스러워진다.

“그래갖고....”

“이제 얘긴 그만 하고 술이나 마시자.”

내 말에 한규가 술잔을 들고 “브라보!”를 외친다. 여기저기서 술잔이 부딪치고 브라보 소리가 요란하다. 그렇게 술기운이 한창 익어갈 무렵 한규가 갑자기 손뼉을 치며 시선을 집중시킨다.

“잠깐 내 말 듣거래이. 느그들 은제든 시간 나모 이 친구한테 경찰 얘기 해달라캐라. 기막힌 얘기가 산더미처럼 쌓였는기라. 알재?”

“그라믄 지금 당장 맛뵈기로 해주시모 안 되능교?”

“오늘은 술도 마셔야 하니까네 다음 기회로 미루자이.”

“조용히 술 마시면서 들으모 되잖능교.”

여기저기서 이야기를 재촉하는 박수가 터져 나온다. 나는 지긋지긋한 경찰 추억담을 꺼내기도 싫거니와 막상 재미있게 엮어나갈 이야기도 생각나지 않아 무춤히 앉아있기만 한다. 그때 한규가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킨다.

“기용이 늬 데모 얘기 있잖나. 그거 해주거라.”

한규가 꺼낸 데모 이야기란 한일회담반대 시위에 얽힌 에피소드를 두고 한 말이다.

춘천옥 신장개업 이야기

복덕방에서 소개한 가게를 둘러보니 구정물을 버릴 만큼 지저분한 골목에 위치한 데다 평수가 좁고 천정에서는 물이 뚝뚝 떨어졌다. 그런 약점을 알고도 임대료가 싸서 계약할 수밖에 없었다. 밑천이 모자라 위치 좋은 가게는 그림의 떡이었다.

가게를 계약하고 잔금을 치를 동안 아내와 나는 다시 한번 막국수를 맛보러 강원도 일대를 뒤지고 다녔다. 춘천과 동해안은 물론 처가댁이 있는 양구 산골까지 소문난 막국수 집이라면 빼지 않고 찾아다녔다. 돈을 주고 사먹는데도 꼭 도둑질하는 심정이어서 눈치를 봐야 했다. 젓가락으로 몰래 다진양념(다대기)을 헤쳐보기도 하고 양념을 국수와 비비기 전에 국수 가닥을 이로 잘라보기도 했다. 양념이 특이한 식당에서는 비닐봉지에 담아와 분석해보기도 했다.

맛이 지역마다 다르고 집집마다 달랐다. 양념 맛이나 사리의 색깔과 씹히는 느낌도 달랐다. 육수를 내는 재료도 달랐다. 맛만 해도 소문난 집보다 이름 없는 집의 막국수가 더 나은 경우도 있었다.

여기저기 다니며 먹어보고 내린 결론은 어느 한 집을 모방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우리 나름의 새로운 맛을 고안해낼 수밖에 없었다. 메밀만 사용해도 씹는 맛이 설고, 전분을 많이 섞어도 너무 질기고 미끄러워서 막국수답지가 않았다. 배합의 비율을 어떻게 맞춰야 제 맛이 날지 실험을 반복했다. 지금도 여행할 때나 일부러 먹어보러 갈 때나 집집마다 배합비율이 다르다는 걸 알 수 있다. 배합에 의한 국수의 맛은 집집마다의 개성인 셈이다.

메뉴가 최종 확정되고 가게 잔금을 치르자 곧바로 시설 작업에 들어갔다. 식탁, 주방집기, 냉장고, 간판 등을 장만하려면 돈이 모자랄 것 같아 홀이나 주방은 내가 직접 꾸미기로 했다. 모래, 시멘트, 벽돌, 목재 등 자재 값 말고는 인건비는 아내와 둘이 때울 작정이었다. 조적과 미장은 물론 도배까지 마무리할 참이었다. 아내는 체로 모래를 치고 나는 쇠손으로 발라서 벽과 부뚜막을 만들었다. 인근 식당 주인들이 서툴기 짝이 없는 내 솜씨를 보고 걱정해주었다.

“기술자를 대지 않고 제대로 꾸밀 수 있겠소?”

물이 새는 천정에는 함석을 대고 도배하니 보기 흉할 만큼 울퉁불퉁했다.

“이런 곳에 손님이 올까요. 전기세나 벌지 모르겠소.”

이웃들의 걱정이 고마웠지만 그건 이미 기득권을 쥔 승자의 여유에 다름 아니었다. 아닌 게 아니라 디지털단지 오거리 (구로공단 오거리) 주변에는 대형 식당과 전문집들이 즐비했다. 그 중에는 자기 건물에다 차린 식당이 대다수였다. 손바닥만한 남의 구멍가게 자리를 세 얻은 나로서는 도저히 경쟁 상대가 안 되었다. 오죽해야 전기세를 걱정해줄까.

가게를 홀과 주방으로 반분했다. 주방을 줄이고 테이블을 한 개라도 더 놓고 싶었지만 보쌈과 막국수 메뉴를 준비하는 데에는 기본 공간이 필요했다. 재료와 반죽통을 놓아둘 공간, 막국수를 뽑아서 삶을 무쇠솥, 요리와 온갖 양념통을 정리해둘 싱크대, 보쌈고기를 삶고 썰 수 있는 작업대, 설거지하고 빈 그릇을 정리해둘 설거지대, 냉장고와 육수통을 놓아둘 구석 등 기본 공간을 빼고 나니 홀은 겨우 테이블 네 개밖에 놓을 수 없었다.

시설을 끝내자 직접 보쌈과 막국수를 만드는 연습에 들어갔다. 막국수만 해도 면을 뽑으려면 그전에 배워야 할 과정이 수두룩했다. 가루를 배합하는 법, 반죽해서 치대는 법, 국수를 짜는 법, 삶는 과정에서도 가마솥 아궁이에 불붙이는 법, 국수를 짜는 순간 불을 조절하는 법. 짜기 직전 끓는 물 숨죽이는 법, 끼얹는 찬물의 양과 조절 법, 짠 직후 막대기로 젓는 법, 익히는 과정에서의 타이밍 조절법, 적절하게 삶아진 국수의 맛보기 식별 법, 만져보기 식별 법, 숙달된 시각적인 식별 법, 사리 트는 법, 헹군 사리의 양 가늠하는 법, 들어서 트는 법, 양념치는 법, 고명 얹는 법, 육수 붓는 법....

반죽의 요령도 맛에 영향을 끼쳤다. 요즘은 기계로 반죽하는 실정이지만 원래는 더운물을 뿌려서 손으로 치대 뽑은 국수가 더 쫄깃했다.

막국수는 뭐니뭐니해도 솥에 삶을 때의 타이밍이 맛을 좌우할 만큼 중요하다. 몇 초만 더 삶고 덜 삶아도 씹는 맛이 다르다. 몇 초만 덜 삶으면 설어서 딱딱하고 몇 초만 더 삶으면 불어터진 국수처럼 물컹하다. 씹는 맛이 쫄깃쫄깃하려면 타이밍을 맞춰야 하는데, 찬물에 헹굴 때에는 손끝의 감각이 예민해야 먹어보지 않고도 삶아진 상태를 알 수 있다. 수많은 시행착오와 경륜이 요망되는 솜씨다. 아내는 막국수를 뽑을 때 솥에서 건져낸 면이 제 맛이 아니면 아낌없이 쓰레기통에 버리곤 했다.

그뿐이 아니다. 사리를 틀어서 탕기에 담고 나서도 갖은 양념을 얼마만큼 신속히 올려야 적당한지, 그 감각도 성패의 조건이 되었다. 아내는 수저로 뜨는 양념의 양에 무척 신경을 썼는데 양념을 많이 뜨면 막국수가 짜고 적게 뜨면 싱거웠다. 통에 든 양념을 신속하면서도 양을 정확히 떠야 하니 모든 작업의 마디마디에 정확도와 속도가 맛의 요소로 작용했다. 그 시시한 작업이 평생 모은 재산을 한 방에 날리게도 하고 맨주먹으로 부자가 되게도 한다. 그래서 나는 이런 말을 한다. 100%에서 99.9%는 잘하는데 0.1%의 하자 때문에 망한다.

개업날이 다가왔다. 개업식은 규모가 창피스러워 친구 두세 명과 이웃집들 여남은 명만 불러 보쌈과 막국수를 대접하는 걸로 대신했다. 첫날인데도 초대손님보다 일반손님 수가 더 많았다. 손님들은 누구나 개업집에 관심을 갖게 마련이었다.

손님들에게 음식이 차려졌다. 손님 대부분은 처음 먹어보는 음식이라 맛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나는 손님들의 반응이 가장 궁금했다. 그 반응이 성패를 좌우할 것이었다. 특히 일반손님의 반응이 더 궁금했다. 초대손님 반응에는 체면과 덕담이 끼게 마련이지만 일반손님의 반응은 거의가 솔직한 표현이었다. 가슴이 조일만큼 반응이 궁금했다. 그렇다고 일일이 물어볼 수도 없었다.

시간이 지나자 한 사람 두 사람 반응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손님들의 눈빛과 표정에 감동이 어렸다. “맛있는데.” “기가 막힌데.” “히트치겠군.” 그런 말이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어떤 손님은 “이렇게 맛있는 음식은 처음이요.” 하며 엄지를 세워보이기도 했다.

거침없는 찬사에 나는 내심 기쁘면서도 그 말을 곧이곧대로 듣지 않고 덕담으로 돌렸다. 개업집에 대한 배려일 성 싶어 흥분을 가라앉혔다. 내일부터는 정식으로 일반손님만 올 테니 그들의 반응이 진짜 평가일 터였다. 그래서 매상도 이웃들이 데려온 손님의 매상은 계산에 넣지 않고 일반손님들이 팔아준 순 매상만 계산에 넣었다. 첫날 총 매상은 15만원 가까이 되었지만 순 매상은 9만원으로 잡았다.

식당은 개업하고 열흘 내로 결판이 난다는 게 내 생각이었다. 매상 그라프가 상승곡선을 그어야지 평행이나 하향곡선을 그리면 망할 징조였다. 그런데 개업 다음날은 두 배 가까운 매상이 올랐다. 또 그 다음날은 매상이 개업날의 4배에 이르렀다. 테이블 4개로는 감당할 수 없어 식탁 사이사이에 개다리소반을 놓고 손님을 받았다. 나머지 손님은 자리가 빌 동안 기다려야 했다. 2명이 앉아야 할 자리에 4명이 좁혀 앉았지만 손님은 출입문 밖에까지 줄을 섰다.

속수무책이었다. 하루가 다르게 손님이 불어났다. 당장 주인집과 의논해서 살림방 두 개를 빌려 손님을 받고 직원 5명을 구했다. 방세는 달라는 대로 주기로 했다. 두 달 후에는 장사가 안 되는 옆 가게를 설득시켜 내보내고 벽을 헐었다. 그런 식으로 테이블 수를 늘려갔다. 하지만 장소를 늘릴수록 손님은 더 밀려들었다. 디지털단지 오거리에는 삼성, LG, 대우 같은 재벌 회사들이 많아 한 사람이 먹고 가면 이튿날에는 수십 명이 몰려왔는데 그만큼 소문이 빠르게 전파되었다. 어느 직원이 먹고 가면 금방 다른 부서로 소문이 퍼졌던 것이다.

개업 반년 만에 주인집을 아예 이층으로 이사시키고 아래층을 모두 홀로 개조하고, 개업 일년 만에 옆집을 사서 자리를 넓혔다. 그래도 자리가 모자라 출입문 밖 길가에 돗자리를 쭉 깔고 소반을 놓아 손님을 받았다. 점잖은 넥타이 손님들이 문전걸식하는 거지꼴이 된 모습을 보며 도로를 지나다니는 행인들은 킥킥거리기 일쑤였다.

어느 때는 윗집에서 길가에 구정물을 버리는 바람에 손님들의 궁둥이가 젖는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나는 옷 젖은 모든 손님들에게 세탁비를 드리고 음식값을 받지 않았다.

바쁜 영업시간에 춘천옥 입구 골목에 서있으면 더욱 재밌는 광경을 볼 수 있었다. 골목으로 꺾어드는 행인은 거의 춘천옥 손님인데 어느 팀이든 일행 중에서 한 사람이 먼저 춘천옥으로 달려갔다. 자리를 잡기 위한 선발대였다. 그 선발대는 능수엄마나 미스 강에게 몇 명의 자리를 예약시키고 늠름한 자세로 일행이 들어오기를 기다렸다. 그러면 일행은 문을 열고 들어서기가 무섭게 “자리 잡았어?” 하고 묻게 마련이었다.

근로미(勤勞美)는 아프로디테의 자태

춘천옥은 이태가 지나자 서울을 비롯하여 전국에 소문이 퍼졌고, 국내는 물론 해외 교포사회에까지 이름이 나는 바람에 체인점 요구가 쇄도했다. 그 무렵 모 재벌 소속 건설회사가 자기네 사업장에 춘천옥 분점을 내달라고 청한 적이 있었다. 어느 날 외출하고 돌아오니 아내가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까 큰 회사에서 전화가 왔는데 우리에게 분점 의향을 물었어. 어마어마한 시설을 꾸밀 예정인가 봐. 백화점에 호텔에 놀이공원까지 갖추는데, 전국에서 소문난 유명 업소 세 군데를 특별히 초대하겠다는 거야.”

“우리 말고 다른 두 군데는?”

“H갈비와 J비빔밥이래. 전화가 수차례 왔어. 즉시 만나자고 했어.”

“글쎄.... 고맙긴 하지만, 손이 모자란데 몸을 쪼갤 수도 없고....”

이튿날 아침 그 회사에서 전화가 왔다. 회사 간부라고 했다. 어쨌든 만나봐야 했다. 나는 시내로 차를 몰았다. 약속장소인 호텔 사무실에 도착하니 벽에 청사진이 쭉 걸려 있었다. 간부가 나만 앉혀 놓고 설계도를 보여주며 브리핑하듯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의 세련된 매너가 돋보였다.

집에 돌아와서 아내와 구체적으로 검토해보았지만 쉬운 일이 아니었다. 분점을 내면 이제 막 불붙기 시작한 춘천옥에 소홀해지기 십상이었다.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분점을 내어 기업적으로 확대할 수도 있겠으나 당분간은 춘천옥만 더욱 튼튼히 키우고 싶었다.

또 한 예는 뉴욕에 갔을 때 생긴 이야기다. 우리 일행이 중심가에 있는 한식집에서 식사를 하는데 사십대로 보이는 동포 신사 세 명이 바로 내 옆자리에 앉았다. 친구들인 모양이었다. 한 사람이 앞자리에게 말했다.

“너 이번에 서울 가면 춘천옥에 꼭 들러봐. 음식도 음식이지만 체인점을 알아보라구.”

그러자 옆자리 친구가 말했다.

“한번만 가볼 게 아니고 여러 번 가봐. 음식은 물론 시설과 분위기도 샅샅이 살피라구.”

“과천 누나 말이 그 집엔 일본 사람들이 많이 간대.”

“보쌈김치가 매울 텐데?”

“별로 맵지 않다는 거야. 호고추를 쓰는가봐.”

호고추 쓰는 것까지 알다니.... 어이가 없었다. 과천에 살고 있을 누나가 춘천옥에 자주 가서 정보를 캐다가 미국 동생한테 알려주는 모양이었다.

“호고추만 가지고는 맛을 제대로 못 낼 텐데?”

“호고추에다 태양초를 섞겠지 뭐.”

“누나가 그것까지 알아냈어?”

“가정주부가 그것도 모르겠니. 배합 비율이 문제겠지.”

“하여간 일본애들 대단해. 어느새 춘천옥에까지 파고들었을까.”

“걔들은 휴대용 김치통까지 들고 간대.”

“기내에서 김치냄새 날까봐 그러겠지.”

“춘천옥은 김치만 팔지도 않거니와 되도록이면 음식을 밖으로 내보내지 않는다는 거야.”

“아마 외국인이라 팔 걸?”

“마지못해 일인분 정도만 싸주겠지.”

“역시 일본 애들은 빨라. 틀림없이 그걸 갖다가 분석해볼 거라구. 걔들 요즘 김치 열이 대단하거든. 머잖아 수출도 한다는 거야.”

사실이었다. 한국에 오는 일본인들은 춘천옥에 들를 때마다 도시락통처럼 생긴 플라스틱 용기를 갖고 오는 경우가 많았다. 하루에 보통 열댓 명 정도 찾아오는 일본인 중에는 낯이 익을 정도로 자주 찾아오는 손님도 있었다. 공단에는 재벌을 비롯한 큰 기업체가 많아 일본인 연구원들이 상주하고 있으며 그들은 일본인인데도 보쌈김치와 마늘을 잘 먹었다. 가끔 미국이나 유럽인도 들르지만 춘천옥에는 의자에 앉는 자리가 없어 허리를 까낸 채 두 다리를 뻗고 앉아 먹는 꼴이 웃음을 자아냈다.

“아주 주인을 만나보는 게 어때?”

침묵을 지키던 친구가 말했다.

“죄 진 사람처럼 눈치 볼 게 아니구 차라리 그래라. 미국에서 왔는데, 이 참에 보쌈 막국수 집을 열려고 하니 협조 좀 부탁드립니다. 그래 보라구.”

“타국에서 고생하다가 겨우 업소를 차리게 되었는데, 망하지 않게만 해달라고 솔직히 사정해보란 말야.”

“어느 잡지에서 읽었는데, 그 집 주인도 어지간히 고생한 모양이더라. 춘천옥을 처음 꾸밀 때도 인건비가 없어서 주인 부부가 직접 꾸몄다는 거야. 그런 집이 한국의 대표 업소가 되다니.”

“운도 무시할 순 없어.”

“운이 무슨 운이야. 정신력과 노력이지.”

나는 입이 근질근질했다. 내가 바로 춘천옥 주인이요, 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들에게 내가 겪어온 여러 고생담과 추억담을 들려주고도 싶었다. 하지만 신분을 밝힐 경우 체인점이나 노하우 요구 등 귀찮은 일만 생길 터였다.

수만리 타국에 사는 동포들이 춘천옥 장사 내용을 꿰뚫고 있다니. 어쨌든 외국에까지 소문난 춘천옥이 자랑스럽기만 하다. 그리고 그 자랑 만큼 종업원들이 고맙다. 춘천옥이 단시일 내에 상승곡선을 그은 것은 두 말할 것도 없이 직원들의 헌신적인 노력에 있고, 그 중에서도 능수엄마나 미스 강 같은 몇몇 핵심 멤버가 일에 미쳐서 가능한 일이었다.

다른 직원들은 일 년 정도 지나야 굼뜨던 몸놀림이 달라지기 시작하지만 능수엄마와 미스 강은 겨우 한 달 정도 지나 몸놀림이 확 달라졌다. 그녀들은 감각이 섬세한 데다 누구보다 열심히 내 지도를 받았고 그대로 실천했던 것이다. 물 컵을 드는 방법이나 행주로 상을 닦는 요령부터 시작하여 고도의 감각훈련까지 내 지도를 알차게 익혀나갔다.

서른두 살인 능수엄마와 스물일곱 살인 미스 강은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자기의 업무에 충실했다. 그녀들은 일을 즐거워했고 일에 보람을 느꼈다.

“일에 미치니께니 예뻐지디. 일에 미친 여잔 미스코리아보다 훨씬 예쁜게야. 근로미(勤勞美)는 아프로디테의 아름다운 자태에 비견되잖갔어?”

허마두가 능수엄마와 미스 강에게 한 말이다.

음식을 존경하라

직원들의 몸에서 점점 긴장이 풀어진다. 홀에 휴지가 떨어져도 선뜻 줍는 사람이 없고, 주방 구석에 구정물이 튀어도 먼저 닦는 사람이 없다. 손님 백 명을 잃기는 쉬워도 한 명을 끌기는 어렵다. 사업체가 무너지는 첫째 이유가 방심이다. 사업이란 긴장의 연속이다. 예견이나 현명한 판단도 긴장에서 우러난다.

손님이 많다고 희희낙락할 때 이미 사업체 한쪽 구석은 무너지기 시작한다. 내가 테이블 하나만 비어도 긴장하는 이유가 그 때문이다. 항상 손님이 대기해야 하는 집에 왜 빈 테이블이 생긴 걸까? 그 의문이 긴장이고, 그 긴장이 풀어질 경우 빈 테이블은 둘, 셋, 다섯, 열로 불어나다가 결국은 문을 닫게 된다.

테이블이 백 개나 되는데 그것 한 개쯤 비면 무슨 상관이냐고, 너무 지나친 조심이라고 생각할지 몰라도 사업체에 독성을 뿜어대는 병균은 구석구석 숨어 있게 마련이다.

더 이상 두고 볼 수가 없다.

출근한 직원이 장사 준비를 마치자 나는 직원을 모두 불러 홀에 앉히고 벽 중앙에다 화선지에 써온 붓글씨를 길게 붙인다.

음식을 존경해라. 음식은 존경 받아야 미소를 짓는다

그리고 상에 보쌈 한 접시와 막국수 한 그릇을 정성스레 차려놓고 예의를 다해 큰절을 올린다. 내 뒤에 삥 둘러서서 황당한 모습을 지켜보던 직원들의 표정이 자못 엄숙하다. 어느 직원은 장난기 어린 표정을 짓기도 하지만 내 진솔한 태도에 눌려 금방 표정을 바꾼다.

큰절을 올린 나는 음식상 앞에 무릎을 꿇고 차분한 목소리로 말한다.

“음식이 존경의 대상이니 정성을 쏟아야겠죠? 정성도 시시한 정성이 아니라 자기의 살과 뼈를 저며서 바치는 지극정성이어야 감응하겠죠? 음식은 그제야 겨우 미소를 짓거든요. 대답해 봐요. 음식이 왜 그처럼 존경스럽죠?”

직원들은 선뜻 이해할 수 없는 말이지만 고개를 끄덕거린다. 홀 안이 금방 조용해진다. 숨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그때다. 억센 사투리가 무거운 침묵을 흔든다.

“암도 모른다카이 지가 대답하겠심더.”

모든 시선이 능수엄마한테 쏠린다. 능수엄마는 홀에 울려 퍼진 자기의 목소리가 민망한지 고개를 숙인다. 나는 그녀의 수줍음 타는 모습을 보며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느라 진땀이 난다.

그녀가 처음 춘천옥을 찾아왔을 때였다. 보따리를 옆구리에 끼고 식당에 들어선 그녀에게 경력을 물었더니, 동네 화투판서 고스톱 친 게 다라며 얼굴을 붉혔던 것이다.

“대답해 봐요, 능수 엄마.”

내 말에 능수엄마가 벌떡 일어선다.

“음식이 도도한 거는 신령님이시니꺼 그렇지예.”

“히야! 능수엄마 대단하군. 음식이 신령님이시라, 그런데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됐지?”

“우리 시어무이가 말했심더. 세상에 존경할 거는 예수님 부처님 말고는 신령님뿐이라고예. 우리 시어무이는 사시장철 정한수를 떠놓고 가정의 화평을 빕니더.”

나는 능수엄마 곁으로 가서 그녀의 어깨를 다독거려주고, 그녀에게 질문을 던졌다.

“신령님 옷은 깨끗할까 더러울까?”

“깨끗하지 와 더럽겠능교.”

“신령님 몸은 깨끗할까 더러울까?”

“그걸 말이라고 하시능교. 옥처럼 희지예.”

“신령님 손톱이나 발톱 속에 때가 꼈을까?”

“사장님도 참 짓궂심더. 와 시시한 농담만 하십니꺼.”

“농담? 네 생각엔 농담 같나?”

“농담 아니고 그럼 뭐꼬예.”

“음식에 때가 껴도 좋다는 거야?”

“음식 깔끔한 거 하고 신령님 때하고 먼 상관입니꺼.”

“능수엄마가 방금 뭐라 했지?”

내가 다른 직원들에게 묻자 미스 강이 용감하게 대답한다.

“음식을 신령님이라고 했지요.”

박수가 터져 나온다. 능수엄마는 내게 입을 삐죽거리다가 야멸차게 쏴본다. 나는 직원들을 해산시키고 밥을 먹도록 했다. 그때 밖에서 들어온 허마두가 내 귀에 대고 모금정 박 사장의 동태를 알려준다.

“박가 놈이 왔다갔다 하고 있으니께니 바짝 긴장하라메. 또 뭔 꿍꿍이짓을 하려는지 몰라.”

“가만 둬. 제 멋대로 수작을 부리게.”

“기래도 무슨 짓을 할지 모르잖갔어?”

“이 사람, 그런 데에 신경 쓰면 장사 못해. 우리가 정직한데 겁날 게 뭐가 있어. 그쪽이 일을 저지르든 말든 우리 일만 충실하면 돼. 샘이 나서 그러는 걸 어쩌란 말야.”

“속 한번 넓구나야. 네가 예수네? 네가 부처네?”

“가만히 참는 것도 전술이야. 그것도 아주 쓸만한 전술이라구.”

나는 넉넉한 미소로 허마두를 감싸준다. 하지만 나 역시 속으로는 박 사장이 어떤 짓을 할지 신경이 써진다. 사소한 해코지에서부터 새 메뉴 개발 등 위험 요소는 늘 있게 마련이다. 지금은 메뉴가 다르지만 언제 우리와 똑 같은 메뉴로 대들지 모르잖은가.

박 사장이 우리를 질투하는 것도 자기네는 우리보다 월등한 시설을 갖추고도 손님이 없기 때문인데, 춘천옥만 아니면 보쌈 막국수 전문집을 차릴 수도 있을 것이었다. 그가 담배꽁초 사건 같은 해코지를 일삼는 것도 춘천옥의 힘을 와해시키려는 술책이었다. 춘천옥 세 배가 넘는 너른 터에 정원과 주차장을 꾸민 데다 박 사장이 지역 유지로 행세하고 있으니 맛에 따라서는 위협적인 업소로 달라질 수도 있다.

일년 중 가장 성수기인 지난 초여름 어느 날이었다. 손님들이 밀려오는 점심시간이라 직원들은 숨 돌릴 새도 없이 바빴다. 그때 홀 복판에 앉아 음식을 들던 중년 사내가 소란을 피웠다. 그가 치켜든 젓가락에는 담배꽁초가 끼어 있었다.

“야! 이게 뭐야! 담배꽁초잖아!”

능수엄마가 그 자리로 달려가자 손님은 더 악을 썼다.

“뭐 이런 집구석이 있어! 막국수에 꽁초를 넣어 팔다니!”

“죄송합니더. 죄송합니더. 음식을 다시 차리겠심더.”

“뭐? 죄송해?”

사내가 앞자리 일행에게 소리쳤다.

“일일리 걸어서 경찰 불러! 아냐, 구청 위생과로 걸어. 이런 집은 아주 허가를 취소시켜야 돼!”

모든 손님들의 시선이 그에게 쏠렸다. 그냥 지나칠 일이 아니다 싶어 내가 찾아가자 손님은 더 악을 썼다.

“죄송합니다. 직원이 큰 실수를 저질렀나 봅니다. 개업 후 이런 일은 처음입니다. 음식을 다시 차려오겠습니다.”

“다시 차려? 필요 없어!”

그는 굳이 꽁초가 든 막국수 그릇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구청에서 나올 때까지 이 그릇에 손대면 절대 안 돼.”

“알겠습니다. 증거를 인멸하지 않을 테니 화를 푸세요. 그리고 새 음식을 드세요.”

나는 감정을 죽이며 끝까지 정중히 대했지만 손님은 막무가내였다. 계속 일행에게 구청에 전화를 걸라고 야단이었다. 나는 뭔가 집히는 데가 있어 조용히 말했다.

“전화는 제가 걸어드리죠.”

나는 전화기 쪽으로 몸을 돌렸다. 그러자 앞자리 일행이 말렸다.

“전화까지야 걸 필요 있겠소. 행정처분을 받으면 우리도 맘이 편하겠어요? 이 친구가 홧김에 한 소리니....”

“아냐. 이런 큰 식당은 관청과 내통할 테니 이걸 가지고 검찰에 가자구.”

꽁초를 휴지에 싼 손님은 자리를 뜨며 연방 떠들어 댔다. 나는 거듭거듭 사죄하면서도 속으로는 면밀히 검토해 보았다. 아무래도 이상했다. 주방에는 담배 피우는 직원이 없는데, 꽁초가 막국수에 들어갈 리 없었다. 일부러 넣었으면 모를까.

“여기 앉아 드시는 게 뭐하시면 식사를 휴게실에 차리겠습니다. 잠간 휴게실에서 담배 한 대 피우며 화를 푸시지요. 그동안 위생과 직원이나 경찰을 부르겠습니다. 검찰에 고발하신다니 저희도 공무원을 불러야 합니다.”

그들은 내 말에 목소리를 죽였다. 나는 그들을 휴게실로 안내하고 음식을 차려오게 했다.

“안 먹어요. 괜찮아요.”

“그래도 시장하실 텐데....”

나는 어떻게든 그들과 오래 있고 싶었다. 일행 중 앞자리 손님이 어디서 본 듯한 얼굴이었다. 그리고 소리친 손님의 시비가 너무 과장된 수법이었다. 전에도 주방 실수로 잡티가 들어간 적이 두어 번 있었지만 이렇게 소란을 피운 적이 없었다. 한 번은 사죄로 해결되었고 한번은 손님이 위생과에 신고했지만 벌칙 받을 만한 실수가 아니어서 무마되었다. 하지만 이번은 고의성이 농후했다. 이정도의 소란이라면 다른 저의가 있을 게 틀림없었다.

“그런데.... 사장님은 어디서 뵌 분 같습니다. 혹 모금정 박 사장님과 아시는 사이가 아니신지....”

나는 말 없는 손님에게 물었다.

“무슨 말요? 이 친구가 누굴 안다는 거요?”

“박 사장님과 같이 다니시는 걸 본 적이 있어서요. 죄송합니다. 잘못 볼 수도 있어서.”

“그야 맞소. 박 사장은 내 고향 친구요. 그런데 왜 그 말을 지금 꺼내는거요?”

“난처한 입장이라, 박 사장님과 아시는 분이면 더 죄송해서지요.”

“실은 내가 중간에서 입장이 난처했었소. 친구네의 바로 앞집이니 이 친구를 역성들 수도 없고.... 그래서 사실은 내가 중간에서 무마할 참이었죠.”

“고맙습니다. 이런 식으로 알게 되니 더욱 민망합니다. 나중에 박 사장님께 사과드리지요. 제가 사건을 무마하려고 박 사장님을 들먹인 건 아닙니다. 검찰에 고발하실 걸로 알고 저도 대책을 세우겠습니다. 제가 직접 위생과와 경찰에 전화를 걸겠습니다. 특히 경찰에서 기본 조사는 해야 저도 안심이 됩니다.”

나는 소파에서 일어나 전화기를 들었다. 그러자 친구 되는 손님이 서둘러 내 팔을 잡았다.

“이제는 박 사장 입장도 있으니 없던 일로 하지요. 제가 들어도 친구 말이 좀 과했지요. 이깐 일로 검찰까지 들먹였으니.... 오히려 죄송합니다.”

나는 마지못해 자리에 앉았다. 정말 경찰을 부를 참이었다. 너무 저의성이 드러나는 행패였다. 춘천옥 이미지 손상을 노린 게 분명했다. 하필 손님이 많은 시간을 택해 실컷 창피를 준 게 아닌가. 단순히 꽁초 때문에 잡친 기분이라면 주인의 사죄를 받아주거나, 만약 금품을 노리는 짓이라면 떠들지 않고 주인부터 불러 엄포를 놓게 마련이었다.

“우선 자체적으로 주방 식구들을 철저히 조사하고 미심쩍은 감이 잡히면 경찰을 부를 작정입니다.”

나는 은근히 그냥 있지 않겠다는 속내를 내비쳤다.

“자, 두 분이 손을 잡으시오.”

조용한 손님이 소란 피운 손님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러자 소란 피운 손님이 먼저 내 손을 잡고 흔들었다.

“검찰 운운은 홧김에 한 말이니 오해 마세요.”

하지만 다른 손님들에게 보인 춘천옥 이미지는 손상이 컸다. 암튼 그들은 손해 본 것 없이 성과를 거둔 셈이었다.

장사꾼은 성인군자보다 한 수 위다

아침에 직원들과 장사 준비를 하는데 허마두가 콧김을 확확 내뿜으며 언성을 높인다.

“그냥 놔둬? 경찰을 시켜 닦달하면 금방 들통 날 텐데 그냥 둬?”

“조금은 손해 보며 살자구. 지고 살면 마음이 편해.”

“머이? 지고 살자? 도대체 늬가 머네?”

“나는 바보다. 가장 위대한 바보. 그래서 너 같은 바보를 좋아한다.”

“미친놈 헛소리하긴. 늬까짓 게 무슨 성인군자라구. 기껏해야 밥장사 주제에.”

“네가 모르는 말을 하는구나. 밥장사는 성인군자보다 한 수 위야. 성인군자는 관념 속에 묻혀 살지만 밥장사는 육체로 그 관념을 검증 한다구.”

“철학자 앞에서 까불지 말구, 내 말 잘 들으라마. 이번 참에 박 사장 기놈을 바싹 조이자구. 기 놈이 시킨 게 틀림 없으니께니 철저히 캐보잔 말이디.”

“뭘 캐. 참는 게 최고야. 자기들도 양심이 있어서 뒤로 물러선 거잖아.”

나는 허마두의 어깨를 툭툭 친다. 모금정 박 사장이 음료수 박스를 사들고 춘천옥을 찾아온 것은 그때다. 홀에 들어서자마자 나와 허마두에게 허리를 굽혀 인사한 박 사장은 휴게실 소파에 앉자 더욱 공손한 자세를 꾸민다.

“어제 일은 정말 죄송하게 됐습니다. 제 친구가 담배꽁초 땜에 소동을 피웠다는데, 대신 사과드립니다.”

박 사장의 저의가 뭔지 몰라 머뭇거리는 사이 허마두가 끼어든다.

“친구분 일인데 왜서 박 사장님이 사과하십네까? 길코 사과할 일이 있으믄 본인이 찾아와 사과하는 거이 순서 아님메?”

“자넨 상관할 일이 아냐. 박 사장님 성의를 이해해야지. 어찌 됐든 잘못은 우리한테 있잖은가.”

“머이? 늬 지금 잘못이라고 했네? 기래, 머가 잘못이누? 그러니께니 경찰에 신고하랬잖네? 바쁜 영업시간에 소란 피워 개디군 춘천옥 이미지 손상이 얼마나 큰디 알간? 확실히 수사해서 진실을 밝혀야잖갔어?”

“고정하시죠. 제가 다시 사과드립니다.”

“또 사괍네까? 기럼 친구분이 일부러 꾸며낸 일이다, 기겁네까?”

“일부러 꾸미다뇨. 그건 천부당만부당한 말씀이죠.”

“기럼 왜서 자꾸 사과한다는 게요? 그런 헛인사로 우리가 창피당한 걸 대봉 치겠다 기겁네까?”

“너 왜 이래? 이유야 어떻든 이웃간에 미안해서 찾아오셨는데 왜 이러는 거야? 어서 사과드려.”

“사과? 미쳤네 사과하게?”

“박 사장님 죄송합니다. 이 친구가 원래 다혈질이어서....”

“성품이 곧으셔서 그러시지요. 기 사장님은 참 행복하십니다. 이런 친구분을 두셔서.”

“머이? 당신 지금 날 가지고 노는 게요? 내 성품이 곧아개디구 기런다는데, 머이 어드렇다는 게요? 이 양반이 뺀질거리긴.”

“허마두! 너 왜 이래!”

“와 이래? 담배꽁초 개디구 검찰에 신고하겠단 놈을 기냥 두네? 빙신!”

“그래서 박 사장님이 대신 사과하러 오셨잖아.”

나는 얼른 박 사장을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거듭 그에게 예의를 차리며 모금정 앞까지 배웅해주고 돌아오니 허마두가 기분 좋게 떠든다.

“기딴 놈은 창피를 줘야디. 기래야 함부로 못 까불디. 기 놈은 보통 놈이 아니라메. 눈 하나 까딱 않고 사과하는 폼을 보라우. 치사하고도 무서운 놈이디. 제 잇속을 위해선 남 구두도 핥을 놈이라메. 기 놈 눈 다르고 입 다른 걸 봤디? 눈빛을 보니께니 야비가 잘잘 흐르잖네. 늬 정신 바짝 차리라우.”

“정신 차릴 것 없어. 나는 그 놈보다 한 수 위야.”

“내가 심한 말을 하는데도 샐샐 웃는 놈인데, 네가 한 수 위라구?”

허마두가 피씩 웃는다.

“암튼 잘했다. 수고했어. 우리 춘천옥에 이런 문지기가 있으니 마음이 든든하구나.”

미스 강이 드리모 기쁘시겠네예

영업이 끝나고 휴게실에서 잠시 소파에 앉아 쉬고 있는데 능수엄마가 오렌지 주스를 한 컵 따라가지고 온다. 시키지 않은 일이다. 마지못해 내가 받아 한 모금 마시고 내려놓자 그녀가 엉뚱한 말을 한다.

“제가 갖다드리는 거라 그러시능교?”

“그게 뭔 소리야?”

“다른 사람이 갖다들이모 웃으며 마시잖겠능교.”

“누가 갖다주면 좋아한다는 거야?”

나는 능수엄마를 매서운 눈으로 바라본다. 그동안 내 친절을 오해한 모양이다. 내 친절이 자기에게 어떤 흑심을 품어서가 아닐까 오해한다면 보통 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노골적으로 내 솔직한 심정을 꺼낼 수도 없다. 만약 꺼낼 경우 그녀는 자존심이 상할 테고, 당장 춘천옥을 그만둘지 모른다.

“말해 봐! 누가 갖다주면 즐겁게 받아 마신다는 건지 어서 말해 봐!”

나는 일부러 목소리를 높인다.

“아니라예. 신경 쓰지 마이소. 그냥 해본 소리라예.”

“그냥 해본 소리? 너 지금 나를....”

“화내시지 말라니까예.”

“어? 얘 좀 봐. 너 말투가 그게 뭐야?”

“미스 강이 갖다드리모 저처럼 냉대하시겠능교.”

“뭐야! 너 지금 뭔 소리 하는 거야?”

“화내시지 마이소.”

“어? 어? 빈정거려? 얘 오늘 왜 이래?”

내가 벌떡 일어나자 능수엄마는 잽싸게 나가버린다. 처음 당하는 일이다. 그동안 능수엄마의 마음을 읽고는 있었지만 이처럼 노골적으로 나오기는 처음이다. 박 사장에게 끌려간 후로 내게 더 적극적으로 대하고 있다. 마치 그 사건을 내 마음을 끌기 위한 도구로 활용하려는 눈치가 역력하다. 나는 되도록 그녀와의 대화를 피하고 있지만 그 결과가 오늘 같은 대담한 접근을 초래한 셈이어서 어떤 식으로 대해야할지 고민이다. 아내가 능수엄마의 마음을 눈치 채고 걱정한 적이 있어도 “이 사람이 나를 뭘로 보는 거야?” 하고 되레 화를 냈던 것이다.

정말이다. 나는 능수엄마의 성실한 태도가 예뻐서 잘해줬을 뿐이다. 나는 잘 알고 있다. 만약 그녀를 가까이 대해줄 경우 어떤 일이 생길지 뻔하다. 그녀와 헤어질 수밖에 없다. 헤어지지 않으면 영업에 지장을 줄 만큼 내가 심적으로 시달려야 하고 조심해야 한다. 자칫 아내 앞에서도 내 가슴에 파고들지 모를 여자다. 아내와 셋이 서 있을 때에도 꼭 아내와 나 사이에 끼어들 만큼 대담한 짓을 해왔다. 그때마다 아내는 혼자 피씩 웃고 말았지만 아내의 성질 역시 어느 순간 폭발할지 모른다. 지금까지는 억지로 참고 있을 뿐이다.

“아무리 장사도 중하지만, 무슨 대책을 세워야죠.”

“대책? 그럼 능수엄마를 내보내자고?”

“나도 그건 원치 않지만....”

“차라리 내가 안 나오는 게 낫지, 타격이 너무 커. 춘천옥 조화도 깨지고. 능수엄마 없으면 미스 강도 어쩔지 몰라.”

“어쩌다뇨?”

“능수엄마가 없으면 나중에 어떤 태도를 보일지 모른다구. 그래서 균형이 중요한 거야. 그 균형을 잡아주는 게 주인 역할이구.”

“끝까지 내 식구처럼 지낼 사람 없나? 사람 마음은 꼭 변하게 마련인가? 해로하는 부부처럼 평생 함께 지낼 수는 없을까?”

“당신이라면 그러겠어?”

“우리 같은 주인만 있다면 그럴 수 있죠. 같이 잘 살면 되잖아요.”

“부질없는 말 그만 하고.... 능수엄마는 정말 좋은 사람이야. 능수엄마를 새사람 만들면 돼. 능수엄마에 대한 대책은 그거야. 더구나 당신은 쉬어야 될 사람인데 능수엄마 없인 안 돼.”

“겉으론 너무 의지하는 기색 보이지 말아요. 지금도 우리의 속내를 짐작하고 대담한 짓을 저지르잖아요.”

“능수엄마의 의식수준을 높일 수밖에 없어. 공부시키는 거야. 그게 왕도지.”

아내의 몸이 점점 쇠약해져가고 있으니 능수엄마 없는 장사는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오히려 능수엄마에게 더 의지해야 될 판이다.

“지난번 박 사장이 능수엄마를 데려갈 때 말에요. 그때 박 사장을 뿌리치지 않고 따라간 것도 당신의 관심을 끌기 위한 수작이었어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어. 하지만 너무 비약적인 생각은 하지 마.”

아내는 내가 능수엄마 같은 여자의 유혹에 빠질 남자가 아니란 건 믿고 있다. 내가 그런 유혹에 빠질 남자라면 능수엄마보다는 미스 강에게 더 마음을 둬야 한다. 미스 강은 능수엄마보다 모든 면에서 훨씬 나은 편이다. 나이는 어려도 감정조절이 탁월하고 어른스럽고 지적 수준도 높다. 능수엄마가 얼굴이 좀 나을 뿐이지만 그것도 얼굴 형상에 불과할 뿐 미스 강처럼 우아한 이미지가 아니다.

그런데 어찌 보면 그 저속함이 연민을 느끼게 할 때가 있어 나 스스로 놀랄 때가 있다. 내가 누구를 좋아한다는 것은 내가 그를 가엾게 여긴다는 뜻이다.

나는 오랜만에 능수엄마를 내 승용차로 집에 데려다주기로 마음먹는다. 다방에 데려갈까 했지만 차라리 차를 태워주는 게 자연스러울 성싶다.

차가 달리는 동안 점잖게 앉아 있던 능수엄마가 화산동 산기슭에 이르자 내 손을 잡아 차를 세우게 한다. 그리고 핸들을 잡고 있는 내 허리를 덥석 껴안는다. 달빛이 괴괴하다. 어느새 그녀가 흐느끼고 있다. 나는 그녀의 머리칼을 쓰다듬어준다.

“능수야, 네 맘을 잘 알고 있다. 고맙다. 하지만 그 맘으로만 끝나야 한다. 나는 네가 그럴 여자라고 믿는다. 네가 그래야 나도 마음 놓고 너를 아껴줄 수 있어. 만약 네가 오늘 같은 짓을 거듭하면 우리 사이는....”

“우리 사이는예?”

그녀가 내 가슴에 얼굴을 묻은 채 말한다.

“너와 나는 언제까지고 같이 지내야 해. 그러기 위해 우리는 서로 자기 가정을 잘 지켜얀다구. 알지? 나는 영원히 네 오라버니야. 네가 가장 사랑하는 오라버니. 알지? 나는 너를 어떻게든 잘 살게 해줄 거야.”

“싫어예. 잘 사는 것도 싫어예.”

나는 억지로 내 허리를 감싼 그녀의 팔을 푼다. 그녀가 다시 나를 감싸 안는다. 나는 시동을 걸고 차를 거칠게 몬다.

“차 세워예. 제발 세워예.”

“네가 나와 헤어지고 싶은 모양인데....”

“차라리 죽고 싶습니더.”

나는 차를 세운다. 그녀는 소리 내어 울기 시작한다. 감당할 수 없는 설음이 그녀의 몸을 뒤흔든다. 차에서 내린 나는 그녀의 감정이 가라앉기를 기다렸다가 다시 차에 올라 시동을 건다.

언덕을 넘자 들판에 외따로 서 있는 능수네 슬레이트집이 보인다. 농장 주인이 내준 집이다. 나는 집 멀찍이 차를 세우고 밖으로 나간다. 달빛이 더 밝아진다. 창문 밖으로 새나온 불빛이 달빛에 녹아 뿌옇게 보인다. 그녀의 집 안에서 애들 소리가 들려오고 이내 쪽대문이 열린다.

“당신여?”

능수아빠의 모습이 보이자 능수엄마가 명랑한 목소리로 소리친다.

“응. 사장님이 늦었다고 데려다주셨어.”

그녀의 연기력에 마음이 놓인다. 능수아빠가 일궈놓은 밭도랑이 달빛 속에서 물결친다.

그까짓 거야 식은 죽 먹기죠

“하느님도 무심하시지, 있는 새끼도 웬수 같은디 이게 웬 벼락이냐 말여. 인간을 괴롭혀도 유분수지 정말 하느님도 너무하시네유.”

뒷마당에 앉아 배추를 다듬던 평강댁의 눈에서 갑자기 눈물이 쏟아진다. 생각지도 않은 임신이 사실로 밝혀지자 하늘이 원망스러웠던 것이다. 마흔네 살에 애를 배다니, 참으로 모진 섭리다. 애를 낳으면 일도 못할 테니 무슨 수로 새끼 다섯을 먹여 살릴지 눈앞이 캄캄하다.

“육시헐 인간, 어디서 품만 팔아도 새끼를 굶기진 않을 틴디....”

평강댁은 자신의 배를 주먹으로 쿡쿡 치며 이번에는 남편을 원망한다. 애를 뗄 수밖에 없는데, 그러자니 남편이 문제다. 평생 돈을 벌어본 적 없이 술독에 빠져 사는 주제에 자식 욕심 하나는 유별나다. 혼자 신세타령을 하던 평강댁은 아내가 나타나자 자초지종을 말한다.

“남편 몰래 애를 뗄 수밖에 읎는디, 병원에서는 보증인을 세우라구 헝게 워쩌면 좋을지 모르겄슈.”

“남들 같으면 경사난 일인데....”

아내는 평강댁의 처지를 이해하면서도 함부로 나설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더구나 애를 떼는 일이잖은가.

“어려운 부탁이지만 사모님이 남편 대신 보증을 서주셨으면....”

“애 아빠를 설득해봐요.”

“그 인간은 제 임신 사실도 몰라유. 그 인간이 알면 애를 뗄 수 읎구먼유. 애를 나믄 우리 식구 죄 굶어죽어유. 그렁게 사모님이 저를 불쌍히 여기시고 편의를 봐주세유. 그 은혜는 죽어서두 안 잊을 팅게유.”

그 말을 듣고 아내는 병원에까지 동행해서 보증을 서주기로 한다.

그런데 낙태수술을 끝내고 한 달쯤 지나서였다. 그 사실을 알게 된 남편 문씨가 춘천옥을 찾아와 “죽인 자식을 살려내라.”고 악을 썼고, 아내가 넉넉히 봉투를 준비해서 문씨의 입을 막았다.

그날 문씨의 행패를 지켜본 모금정 박 사장은 혼자 미소를 지으며 입맛을 다셨다. 저 자와 친해놓으면 뭔가 소득이 생길 거야. 춘천옥 앞에서 고함친 험상궂은 사내가 누구인지 수소문하던 박 사장은 사내가 춘천옥에서 일하는 평강댁의 남편 문씨임을 알아냈다.

당장 문씨를 찾아간 박 사장은 그를 술집으로 데려갔다. 그런 식으로 안면을 익힌 박 사장은 이번에는 문씨를 술집으로 불러내 푸짐한 미끼를 던졌다.

“거두절미하고, 좋은 일거리가 생겼소.”

박 사장의 말에 문씨 얼굴이 금방 환해진다.

“문형이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 액수가 달라지니 알아서 해요. 춘천옥을 얼마큼 닦아세우느냐에 따라 수입이 늘고 준다 그 말이죠. 이 좋은 기회를 최대한 활용해보세요.”

“말씀은 이해하겠는데, 그 일이란 게 뭡니까?”

“조바심 낼 줄 알았소.”

박 사장은 문씨가 춘천옥을 찾아가 행패부릴 절차 하나하나를 구체적으로 가르쳐준다. 문씨는 술잔을 거듭 비웠지만 술기운이 오르지 않는다. 긴장한 탓이다. 박 사장이 문씨의 속을 떠본다.

“낙태수술 당시 춘천옥에서 돈을 얼마나 받은 거요?”

“얼마 받지 못했어요. 안 식구 한 달 치 봉급 정도죠.”

“그만큼 문형이 무능했던 거요. 이번엔 체면 차리지 말고 막나가란 말요. 그래야 큰돈을 챙길 수 있어요. 내 말 알겠소?”

“네.”

“문형은 앞으로 내 말만 잘 들으면 좋은 일이 생길 거요.”

“이제 우리 사이에 망설일 게 뭐가 있겠어요.”

“그래 맞아요. 우린 고향도 서울 토박이라 뜨내기완 다르죠. 의리가 강하고 똑똑하다는 말이오.”

“그래서 나는 큰일 아니면 손대기 싫어요. 그런 식으로 살아왔고요.”

박 사장은 속으로 문씨를 비웃는다. 네 사고방식이 그런 식이라 평생 백수건달로 살아왔겠지.

“그럼 말을 정리해봅시다. 방금 내가 문형한테 신신당부한 꼬투리가 뭐죠?”

“춘천옥에서 마누라를 종으로 삼을려구 애를 낙태시켰다....”

“맞아요. 그런 식으로 몰아붙여요. 실수 없도록 하고요.”

“그까짓 거야 식은 죽 먹기죠.”

“식은 죽 먹기가 아닐 수도 있으니 조심해요.”

박 사장은 문씨에게 거듭 다짐한다. 춘천옥 점심장사가 끝나갈 무렵에 찾아가 현관 앞에서 고함을 쳐야 가장 효과적이라고 설명한다. 점심장사 시간을 피해야 동네 식당 주인들이 많이 구경나올 테고, 그래야 동네에서 춘천옥 이미지 손상이 클 것이다.

“애들 학용품이나 사줘요.”

박 사장이 내민 봉투를 받아 쥔 문씨는 서슴없이 일을 치르기로 마음먹는다. 문씨의 각오를 확인한 박 사장은 기분 좋은 낯빛으로 다짐한다.

“문형, 우리 사이를 부인한테는 철저히 숨기도록 해요. 부인이 아시면 춘천옥 귀에 들어갈지 모르니까요.”

“그건 염려 마세요. 그럼 춘천옥 일은 바로 실행할까요?”

“지난번 떠든 지가 한 달도 안 되는데, 날짜를 넉넉히 늘려잡아요. 너무 서둘지 마세요.”

문씨는 마음이 조급하다. 어서 일을 저질러야 용돈이 생길 텐데, 박 사장의 서둘지 말라는 당부가 답답하다.

달빛이 없는 밤

아내가 작은아버지 회갑 잔치를 치르러 오랜만에 친정에 갔을 때다. 바쁜 여름철인 데다 미스 강의 휴가가 겹치는 바람에 나는 업소에 남아 안내역을 맡아야 했다. 그날 밤이었다. 서초동 집에도 못가고 휴게실 옆방에서 혼자 자고 있는데 누가 창문을 두드렸다. 잠에 취한 상태라 노크 소리가 꿈결처럼 아련했다.

“누구요?”

하지만 아무 대꾸가 없었다. 불을 켜고 벽시계를 보니 분침이 막 자정을 넘어서고 있었다. 도로 침대에 누웠다. 또 노크소리가 들렸다. 다시 수하를 하자 그제야 가느다란 목소리가 들려왔다. 능수엄마였다.

옷을 주어입고 홀로 나가 출입문을 여니 술 취한 능수엄마가 내 몸으로 넘어지며 목을 껴안았다. 숨이 가쁠 만큼 단단한 포옹이었다. 느닷없이 당한 일이라 겨우 몸을 부축해서 휴게실로 데려와 소파에 앉혔다. 하지만 소파에서 벌떡 일어나 다시 내 몸을 껴안았다. 이번에는 감당하기 힘들만한 완력으로 옥죄었다. 짙은 향수 내와 뭉클한 육질이 사정없이 파고들었다.

“이러지 말고 소파에 앉아.”

하지만 그녀는 더욱 밀착하며 몸부림쳤다.

“지 몸을 이대로 두모 죽습니더.”

나는 몸을 맞긴 채 그냥 서 있기만 했다.

“어서예. 어서 벗겨주이소.”

그녀의 몸을 떠밀 수도 없고 받아들일 수도 없었다. 팔을 풀자면 발악에 가까운 완력이 필요했다. 그렇다고 완력을 써봤자 순순히 물러날 여자가 아니었다.

“이 기회를 사년 반 동안 기다렸심더. 그라이 오늘 밤만....”

“암튼 소파에 앉아서 이야기 하자. 어서 팔을 풀어.”

“그라믄 지를 꼭 껴안아주이소.”

나는 두 팔로 그녀의 어깨를 감싸주었다. 그러자 느닷없이 입술을 포개며 더 거세게 옥죄들었다. 난처한 순간이었다. 억지로 능수엄마의 팔을 풀고 밖으로 나가면 그만이지만 그녀는 춘천옥에 출근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몸을 섞으면 계속 그녀의 뜻을 받아줄 수밖에 없고, 춘천옥 분위기가 망가질 게 뻔했다. 솔직히 능수엄마가 미스 강처럼 자제력과 분별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시간이 흐르면서 제 멋대로 춘천옥을 휘저을 게 틀림없었다.

“술 좀 가져와.”

나는 숨통을 열고 싶었다.

“싫습니더. 지 몸을 안아주모 술 가져오겠심더.”

“능수야, 나도 네 몸을 껴안고 싶어. 하지만 기분대로 할 수 없는 게 우리 입장 아니냐. 그러니....”

“제발 지금은 이 순간만을 생각해주이소. 딴 생각은 말고예..”

“술을 마시며 얘기하자구. 네 말처럼 모처럼 가져보는 조용한 시간이잖니. 내가 술을 가져올 테니 함께 마시자.”

“핑계 대지 마이소.”

나는 그냥 서 있기로 마음먹었다. 그녀의 팔에서 힘이 빠지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갑자기 내가 비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의 맑은 영혼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현실적 타산이 수치스러웠다.

“능수야 내가 비굴한 인간이구나.”

순간 그녀의 몸이 떨린다 싶더니 흐느끼기 시작했다.

“사장님. 와 지를 이렇게 만들었심꺼. 와 지 같은 짐승을 사람으로 만들었심꺼. 와 지 같은 쓰레기를 옥처럼 가꿨심꺼? 네? 대답해보이소.”

그녀의 울음소리가 점점 더 짙어졌다. 울고 또 울었다. 그 눈물에 녹아 몸이 자연스레 풀어졌다. 나는 그녀를 소파에 뉘고 밖으로 나갔다.

네가 노름꾼 홍대성이냐?

한창 바쁜 저녁시간에 카운터에서 전화벨이 울리고, 전화를 받은 경리직원이 나를 부른다. 나는 바삐 카운터로 걸어가 수화기를 받았지만 송화자의 주변이 시끄러워 말이 잘 들리지 않는다. 술집 같다.

“여보세요? 누구시라구요?”

“선배님 저 송민홉니다. 송민호.”

우선 후배란 말에 친절히 대꾸는 했지만 송민호가 누구인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뭐라구? 거진 임검소?”

나는 그제야 누구인지를 알고 반색한다. 내가 거진 임검소장으로 있을 때 대진 임검소에 파견된 부하 직원이다. 현재 강릉서 형사과에 근무하고 있는 그는 휴가를 얻은 김에 서울에 왔다가 내 소식을 들었다는 것이다. “장사가 끝나기 전에 도착하겠습니다.”

가슴이 두근거린다. 16년 만에 만나는 데다 나를 극진히 모시던 후배가 아닌가. 내가 집을 비울 때는 우리 가족을 보살펴주기도 한 은인, 만나면 오래오래 껴안고 싶다.

내가 송민호를 처음 만난 것은 거진 임검소장으로 발령을 받고 관할 구역인 대진 임검소를 처음 순시할 때였다. 그날 어판장에는 사람들이 북적거렸지만 임검소는 텅 비어 있었다. 대원이 2명인데 소년 혼자 난로 가에 앉아 졸고 있다가 나를 보자 벌떡 일어나 눈을 비볐다. 임검소 사환이었다.

“모두 어디 갔니?”

“저, 저, 술집에.... 계신데요.”

“어서 안내해.”

부두 뒷골목에 있는 허름한 목로주점이었다. 순경 계급장을 붙인 채 개다리소반을 놓고 막걸리를 마시던 두 대원이 나를 보자 벌떡 일어나 경례를 붙였다. 그때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송민호가 비틀거리는 부동자세로 떠들었다.

“회가 싱싱합니다. 어서 들어오세요.”

“대낮에 이게 뭔 짓이야!”

나는 원칙부터 세웠다.

“소장님도 술을 좋아하신다고 들었습니다. 방금 잡은 우럭입니다. 간첩은 오지 않을 테고, 날씨는 으스스하고, 폭풍주의보 땜에 배도 묶여 있고, 술뿐이 더 있겠습니까. 마침 잘 오셨습니다. 어서 신 벗고 들어오시죠.”

나는 별 도리가 없지 싶었다. 군기를 잡겠다고 소리쳐봤자 군인도 아닌 경찰인데 술집 주인한테 웃음 사기 십상이었다. 신을 벗고 들어갔다. 회가 입에 당겼다. 막걸리를 두어 사발 마시자 송순경이 젓가락을 두드리며 배호가 불렀던 <누가 울어>를 목이 째져라 토해냈다.

“소장님도 한 곡조 뽑으세요. 그래야 속이 시원해집니다.”

지휘관 체면이 여지없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에라 모르겠다 하고 나도 두어 잔 거듭 비우고 나서 <꿈꾸는 백마강>을 불렀다.

“분대장님 노래 솜씨가 보통 넘습니다. 경찰 때려치우고 가수로 나가세요.”

부대 편제로 볼 때 내 공식 직함은 분대장이고 통속 명칭은 소장으로 불렸다. 작전 지역으로는 경찰의 일개 분대가 군대의 연대 구역을 관장했다. 어쨌든 그게 송민호와의 첫 만남이었다. 그는 가난한 우리 집에 날마다 땔감과 반찬거리를 대주고 앞을 못 보는 어머니와 친구처럼 어울리는 바람에 그 치매노인은 아들인 나보다 송민호를 더 좋아했다.

목포가 고향인 송민호는 서울에서 강릉 아가씨를 만나는 바람에 동해안까지 흘러왔으며, 그래서 나 같은 역마살 낀 팔자를 좋아한다고 했다.

“역마살이 가장 이상적인 팔자라고 생각해요. 흘러다니는 인생보다 더 기막힌 게 또 있겠어요? 권력, 재물 그런 것 다 필요 없죠. 제가 목포에 산다고 해봐요. 이런 감정 느끼겠어요? 고향을 떠나 있으니까 목포가 더 아름다운 거죠. 그만큼 슬퍼지고요.”

송민호는 장사가 끝날 무렵에야 춘천옥에 도착했다. 그는 내 또래의 사내를 하나 데리고 왔는데 술 냄새가 풍기는 그 사내는 택시에서 내리자마자 거침없이 나를 껴안는다.

“임마, 기용 너 부자 됐다고 날 괄씨하니?”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이지만 선뜻 떠오르지 않는다.

“선배님, 홍 형사님을 모르세요? 옛날에 같이 데모 막으러 다니셨다면서요?”

송민호의 말에 그제야 내 입이 열린다.

“뭐야? 홍대성? 네가 노름꾼 홍대성이냐?”

“그래, 타짜 홍대성이야.”

“너 지금 어딨어?”

“벌써 그만두고 지금은 따라지신세다. 부모님한테서 몇 푼 물려받은 거 사업한다고 다 날렸어. 그래서 이렇게 술로 산다.”

“그런데 너희들은 어떻게 아는 사이지?”

“제 처삼촌이세요.”

“뭐라구? 저런 노름꾼이 처삼촌?”

“노름꾼은 옛말이고, 지금은 술꾼이신데.... 문제가 많으시죠.”

“야 민호야 죄 불어버려. 아무 때고 다 알 텐데 뭐.”

홍대성이 자신의 실정을 털어놓으라고 말한다.

“삼촌은 지금 명륜동 골목에서 삼겹살집 하세요.”

“얘가 장사를? 보나마나 파리만 날리겠구나.”

“너 어찌 그걸 아니?”

“뻔하잖아. 이렇게 술 처먹고 다니는데 장사 되겠어? 순사 시절에도 술병을 달고 살았잖아.”

“기용이 넌 변한 게 하나도 없구나. 그때나 지금이나 선생노릇은 매한가지야. 사실은 벌써 널 만나고 싶었지만 창피해서....”

“그럴 거다. 네놈 자존심이 보통 아니지.”

영업이 끝나고 직원들이 퇴근하자 홀에 술상이 차려진다. 아내와 허마두와 능수엄마도 동석한다. 능수엄마는 아내가 남게 한 모양이다. 나는 홍대성과 송민호에게 정식으로 허마두를 소개한다.

“이 친구는 손목시계를 팔아서 내 등록금에 보태준 바보야. 자기도 구차하게 살면서 왜 그런 못난 짓을 했는지.”

“진짜 바보짓을 하셨네요. 이런 배신자를 친구로 삼다뇨.”

홍대성이 허마두와 악수하면서 나를 배신자라고 농을 친다.

“내가 왜 배신자니?”

“나보고는 장가들지 말자면서 일찌감치 결혼했잖아. 그 바람에 나는 사귀던 부잣집 처녀를 놓쳤고.”

“배신자 맞습네다. 저보고도 가난하게 살자믄서 이레 돈을 벌잖습네까.”

“두 놈한테 미안하다. 하지만 나대신 우리 마나님을 원망해라. 살자고 매달리고 돈 벌자고 졸라대고....”

“또 내 원망에요? 이 양반은 저를 원망하는 재미로 산다니까요.”

술이 몇 순배 돌자 홍대성의 입에서 자연스레 데모 진압 이야기가 나온다. 고달픈 세월이었지만 지내놓고 보니 술안주가 될 만큼 향수 어린 추억담이다.

“출동 중에는 아무데서나 화투를 칠 수 있어 좋았지. 평상시 같으면 문책을 당할 일이지만 사기 진작을 위해 그 정도 비행쯤은 눈감아줬거든.”

경찰서 강당에서건 대기 버스에서건 데모 현장에서건 상황이 잠잠해지면 여기저기 대여섯 명씩 모여앉아 도리짓고땡 판을 벌였는데, 특히 각 경찰서원이 모이는 공공건물이나 운동장 같은 집단 휴식처에서는 시장 난전처럼 노름판이 즐비했다.

다만 화투치는 중에 언제 학생들이 교문을 박차고 나올지 몰라 그게 조바심 날 뿐이었다. 한참 끗발이 오를 때 상황이 벌어지면 기분이 잡쳤다. 더구나 돈을 잃고 열이 달아오른 상태에서 상황이 벌어지면 노름판을 거덜 나게 한 학생들이 원망스러웠다.

“새끼들 하필 돈 깨질 때 튀어나올 게 뭐람.”

분통이 터질 노릇이었다. 차라리 돈을 땄을 때 튀어나오면 좋을 텐데 하필 돈을 털린 판에, 그것도 꾼 돈으로 겨우 노를 잡을 차례인데 그 복구할 기회를 빼앗는 해코지가 괘씸했다. 참말이지 돌멩이고 뭐고 냅다 쫓아가서 주동자 몇 놈을 요절내고 싶었다.

돈을 잃은 대원들은 대일 굴욕외교가 어떻든, 학원탄압이 어떻든 그까짓 건 문제가 아니었다. 또 데모대들이 길거리를 휩쓸든 말든, 그래서 자유민주주의 낙원을 건설하든 말든 상관할 바 아니었다. 높은 상관들처럼 데모 잘못 막았다고 추궁당할 리도 없고, 다만 돈 잃을 때는 잠잠하다가 끗발이 오를 때쯤 교문을 박차고 나오는 데모대들의 약올리는 해코지가 부아를 긁을 뿐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는 고대나 연대보다 교내시위가 잦은 서울대 데모가 마음에 들었다. 서울대 중에서도 데모꾼이 가장 많은 문리대는 데모를 위해 생겨난 학교 같았다. 하지만 교내시위로 끝나는 경우가 많아 온종일 대기하며 화투판을 벌일 수 있어 좋았다. 바로 옆에 있는 법대도 둘째가라면 서러울 만큼 데모가 심하지만 문리대만큼 드세지는 못했다.

“법대 놈들은 함부로 까불다간 판검사 못해먹으니까 조심해야지.”

홍대성이 화투장을 죄며 한 말이었다. 동대문서 소속인 그는 영등포서 소속인 내가 지원 나오면 누구보다 반가워했다. 홍대성은 화투판에서 돈을 잃은 적이 없을 정도로 실력이 타짜 수준이었다.

춘천옥 위기를 맞다

봄기운이 얼굴을 스친다. 햇살이 따스하다. 곧 꽃이 필 것이다. 춘천옥 장사도 꽃이 흐드러질 무렵부터 매상이 커지기 시작한다.

하지만 장사가 잘 되는 대신 호사다마라고 뜻밖의 마(摩)가 찾아오는 경우도 있는데 이번에 닥친 마는 춘천옥 존폐가 달린 무서운 마다.

가산 디지털단지 오거리에 보쌈•막국수 전문집이 가든처럼 크게 꾸며진다는 소문이 자자했다. 춘천옥 잘되는 걸 샘내온 사람들은 얼굴에 고소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춘천옥 끝장나는 것 아냐?”

노골적으로 약 올리는 사람도 있었다. 어쨌든 방심할 수 없는 일이었다. 실제로 가든 공사가 시작되자 춘천옥에는 싸늘한 위기의식이 감돌았다. 아내는 한숨을 내쉬었다.

“운동장처럼 너른 장소에, 깨끗한 정원에, 화려한 실내에, 관록 있는 주방장에, 맛만 좋으면 손님이 몰릴 수 있죠.”

더구나 주인은 재산가여서 큰 농장도 갖고 있다니 품질 좋은 고기와 야채를 무제한 공급 받을 수 있고.... . 우리로선 도저히 가격경쟁에서 이길 수 없을 것 같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으니께니 아무 염려 말라우요.”

허마두는 사기를 높이려고 애를 쓰지만 나도 흔들리는 마음을 어쩔 수 없다. 다시 배고픈 시절로 되돌아가는 게 아닌가 싶어 두렵기도 하다.

개업일이 다가오자 만국기가 거리를 꽃밭으로 만들고 화환이 골목을 메우다시피 한다. 손님들이 줄지어 몰려간다. 춘천옥 단골손님들은 앞을 지나갈 때마다 얼굴을 외면하거나 미안한 표정을 짓지만, 어떤 이는 일부러 춘천옥을 힐끔거리며 활개치듯 지나가는 경우도 있다. 춘천옥을 그처럼 좋아한 단골이 저럴 수가 있을까? 하지만 내 잘못이 뭔지를 알아야겠다. 내가 잘못한 게 없으면 저토록 춘천옥에 불만을 가질 리가 없다. 내게도 뭔가 허점이 있다. 혹 내 자신감 때문이 아닐까? 강한 자신감이 오만으로 비친 건 아닐까?

하나 둘 테이블이 비기 시작한다. 그 놀라운 현실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정말 망하는 걸까? 종업원들의 얼굴에서도 위기감이 느껴진다. 모두 풀이 죽은 상태다. 나는 종업원들의 사기를 북돋으며 즐겁게 분위기를 살려나간다.

“아무 걱정 마. 오늘부터 우리 부부가 직접 뛸 거야.”

아침상에서 내가 한 말이다. 아내가 주방팀을 지원하고 나는 홀팀 지원에 나설 참이다.

“우린 원칙만 지키자우요. 맛에 더 정성을 쏟고 손님 안내에 더 신경을 쓰자우요.”

허마두의 말에 내가 힘을 보탠다.

“우리 돈 많이 벌어놨어. 저쪽에서 가격경쟁하자면 끝까지 붙는 거지 뭐. 나 원래 거지였어. 도로 거지 돼봤자 본전이거든.”

“그러지 말고, 우린 거꾸로 가격을 올리면 어때요?”

미스 강이 엉뚱한 제안을 한다.

“맞아. 나도 동감야. 메뉴 품질을 더 고급화시켜서 값을 올리자구.”

아내가 맞장구를 친다. 모든 직원들의 눈동자가 반짝거린다. 놀랍기도 하지만 뭔가 달라질 듯한 감이 느껴진 모양이다.

“제복을 바꾸모 어떻겠능교.”

능수엄마의 제안이다.

“메뉴를 늘리면 워떨까유?”

이번에는 주방장이 의견을 내민다. 평소 말이 없는 주방장의 제안이 나오자 모두 의외라는 표정이다. 주방장이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다는 게 아주 고무적이다.

“주방장이 이처럼 적극적으로 나오니까 나도 용기가 생기는군. 암튼 생각들이 모두 참신해. 역시 춘천옥은 강해. 오늘 밤 일찍 장사 끝내고 회식을 열자구.”

나는 회식상에 아구찜, 닭찜, 생선회 등 색다른 음식을 차리라고 지시한다. 그 중 아구찜은 우리가 춘천옥을 개업하기 오래 전, 음식점을 처음 시작할 때의 메뉴다. 색다른 음식 이름이 나오자 박수소리가 요란하다. 그때 야채 담당 평강댁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낸다.

“그런디…, 아침에 출근하다 들은 얘긴디…, 개업집 대승옥 사장이 바로 모금정 처남이래유.”

“박 사장 처남이라구?”

“세상에 이럴 수가.... ”

갑자기 분위기가 조용해진다. 모든 시선이 내게 집중된다. 나는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려고 지그시 눈을 감고 애써 태연한 모습을 보인다.

“괜찮아. 얼마든지 대책이 있어.”

“우째 이럴 수가.... 기어 일을 벌렸네예.”

능수엄마가 한숨을 내쉰다.

“아냐. 신경 쓰지 마. 장사는 냉정해. 그럴 수도 있는 거야.”

직원들을 안심시키지만, 이번에는 아내가 분기를 터뜨린다.

"박 사장 처남이라면 동네에서 진작 소문이 났을 텐데.... 아무도 개업 때까지 대승옥 말을 일언반구도 안 비치다니. 우리 건물 쥔도 박 사장과 친한 사인데....”

아내의 말을 듣자 나는 갑자기 소름이 돋는다. 내 주변 사람들이 모두 내게 덤벼드는 것만 같다. 장사 잘 되는 것이 이처럼 죄가 된단 말인가.

영업이 끝나고 회식이 열리자 나는 낮에 토의했던 개선점을 알리려고 자리에서 일어선다.

“함부로 서둘 경우 위험이 따를 소지가 있어서 우선은 제복만 바꾸기로 했어요. 그러니 각자 옷 모양이나 색깔을 생각해보도록 해요. 당장 바꿀 테니 낼까지 의견을 제시하도록. 채택된 사람에겐 상을 줄 거요.”

내 말이 끝나자 허마두가 일어나 말을 잇는다.

“회식 장소니께니 짧게 한마디만 하갔시오. 당분간만 참아 보자우요. 손님이 계속 떨어져도 흔들리지 말라우요. 메뉴를 늘려도 안 되고 값을 올려도 안 되디요. 거더 차분히 기다려보다가네 대책을 세우자우요. 인근에 개업집이 생기면 당장은 타격이 오잖갔쇼? 누구나 한번쯤은 가보게 마련이디. 기러티요? 이번이 좋은 기횐지도 몰라요. 큰 개업집을 이기면 다신 흔들리디 않아요. 기러니께니 이번만 잘 넘기면 앞으론 끼떡없다 이거디. 알갔시오?”

박수가 터져 나온다. 나는 주방장에게 건배를 시킨다. 술잔이 돌면서 분위기가 무르익자 저절로 노래판이 벌어진다.

“네 말이 옳아.”

나는 허마두의 어깨를 다독거려주고 슬며시 밖으로 나온다. 대승옥은 아직도 불빛이 환하다. 그래, 당분간은 참는 수밖에 없어. 나는 주먹을 부르쥔다.

꾸며낸 개업설화

1986년 여름, 춘천옥에서 MBC-TV 인기 프로인 김수현 작 <사랑과 야망> 촬영이 몇 개월 동안 계속되었다. 한번에 탤런트와 스텝 등 수십 명이 오는데 춘천옥 앞에는 손님과 구경꾼들이 들끓었다. 당시 최고의 시청률을 올리던 인기 프로인 데다 이덕화, 차화연, 노주현, 김용림, 김청, 남능미 등의 연기를 보려고 사람들이 몰려왔다. 점심 전에 찍는 바람에 우리 업소 주방팀이 엑스트라로 나올 때도 있었다. 그 무렵이었다. 촬영이 끝나고 음식을 먹으며 쉬는 시간에 스텝 중에서 누가 내게 물었다.

“요식업은 아무나 성공하는 게 아니죠?”

“글쎄요. 내 경험으로 봐선 성공 확률이 아주 낮은 편이죠. 요즘 서울대 법대 입학 경쟁률이 몇 대 일인 줄 모르지만, 식당업 성공률은 1000대 1쯤 될 겁니다. 그런데 성공을 어느 선에 놓고 평가하느냐가 문제인데 면밀히 따지고 보면 크게 성공하는 확률은 10000대 1쯤 될 겁니다. 누구나 쉽게 달려드는 업종이지만 요식업만큼 어려운 게 없어요. 우선 미적 감각이 예민해얍니다. 화분은 어디에 놔야 하고 휴지통은 어디에 숨겨야 하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또 적응력이 필요합니다. 심리분석도 필요하고요. 상대하는 사람이 여러 계층이고 다양하잖습니까? 그들 모두와 친해지려면 사람 볼 줄 알아야죠. 그렇다고 너무 약아서도 안 됩니다. 약삭빠른 것보다는 좀 미련한 게 낫죠. 후덕해얍니다. 하지만 허허해선 안 됩니다. 주도면밀해얍니다. 한눈에 구석구석을 살필 줄 알아야 실수를 예방합니다. 순발력이 있어얍니다. 대처능력, 누구나 실수를 저지르게 마련이지만 그 실수를 신속히 전화위복시키는 재주가 있어야죠.”

“히야!”

“복잡하죠?”

“그런데 사장님은 왜 힘든 요식업을 택했어요?”

바라던 질문이다. 나는 속으로 마침 잘됐다 싶어 스텝 진을 웃기려고 이야기를 재밌게 꾸며나간다.

“내가 요식업을 시작한 동기는 이렇습니다. 어머니가 나를 잉태하실 때 태몽이 참 묘했다고 해요. 맑은 하늘에 냅다 번개가 치더니 산과 들에 쌀이 쏟아졌대요. 쌀은 순식간에 밥이 되고, 세상천지는 온통 하얀 쌀밥으로 뒤덮였답니다. 그런데 곰 한 마리가 나타나서 그 많은 쌀밥을 죄 먹어치웠고, 배가 부른 곰은 잠을 자면서 점점 귀여운 애기 모습이 되어갔다는 겁니다.”

“그럼 그 애기가 사장님이시군요.”

“그렇죠. 그러니 나는 밥장사를 할 수밖에요. 만약 밥장사를 기피하면 벼락 맞아 죽을 팔자죠.”

나는 태몽 이야기를 항상 입에 담아왔다. 직원이나 손님한테는 물론 친척, 친구 심지어 식구들에게까지 서슴없이 늘어놓았다. 그런데 유독 아내만이 내 말을 물고 늘어졌다.

“어머니한테서 그런 말 들어본 적 없어요. 어머니가 돌아가셨으니 당신 멋대로 꾸며낸 말이겠죠.”

“태몽을 엄마가 함부로 누설하셨겠어?”

“누설? 이 양반 되게 웃기네. 꿈 얘긴데 뭐가 대단한 거라고 어머니가 자식한테까지 숨겨요. 그리고, 태몽 얘길 숨기는 엄마 봤어요?”

옳은 말이다. 세상 어머니들은 자기의 태몽이 특별할수록 더 떠들고 싶어 안달한다. 우리 어머니는 자랑할 태몽이 있으면 머리에 이고 다니며 떠들어댈 여자다. 하지만 나는 어머니한테서 태몽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다. 그만큼 내 출생은 시시했던 것이다. 처음부터 나는 존재가치가 없는 존재였다. 이웃집 개도 짖지 않을 존재, 그게 나였다.

“당신 신분 추락을 변명하려고 그런 얘길 꾸몄겠죠. 밥장수 된 게 창피해서 변명거리를 만든 거라구요. 손바닥만한 식당을 차린 게 창피했던 거죠. 안 그래요? 태몽이 이러하니 난 밥장사를 할 수밖에 없었소, 그렇게 둘러대고 싶었겠죠? 맞죠? 그래서 탄생설화를 만들었죠?”

“탄생설화가 아니고 개업설화야.”

“개업설화도 마찬가지에요. 당신은 이런 말을 하고 싶었을 거에요. 남들은 생활수단이나 돈 벌기 위해서 식당을 차렸지만 난 다르오, 식당을 차린 게 아니고 식당이라고 하는 예술품을 만들 참이오, 난 원래 예술가가 되는 게 꿈이었소.”

“역시 대단한 마누라군. 이렇게 똑똑하니까 남편이 살림을 거덜내도록 놔뒀겠지.”

“뭐라구요? 노름하지 말라고 울고불고한 게 누군데?”

“물론 당신이지. 하지만 내가 뭐랬어. 돈을 몽땅 챙겨서 애들과 도망치랬잖아? 끝장을 보는 게 노름꾼 생린데, 울고불고한다고 화투판에 안 끼겠어? 쥐도 새도 모르게 도망쳤으면 재산을 반은 건질 수 있었잖아.”

“당신은 원래 거지 팔잔데 잘된 거죠 뭐. 돈하고는 담쌓고 살았잖아요.”

“그런 체질이 사업하면 똑소리나게 한다구.”

“암튼 내 생각엔 개업설화가 좋겠는데, 그 방향으로 줄기차게 밀어봐요. 태몽꿈을 만들었으니 그걸 개업설화에 이용해보라구요. 신라의 개국설화도 박혁거세가 알에서 태어났기에 더 신비로운 거죠. 박혁거세가 엄마 뱃속에서 나왔다면 싱겁잖아요?”

“맞아. 그거였어.”

내가 태몽을 꾸며낸 이유는, 아내 말대로 밥장사를 폄하하던 시절에 포장마차 주인으로 추락한 내 체면을 변명하려는 의도였다. 장래가 촉망되던 사람이 공장이 불탄 데다, 홧김에 화투에 손을 댔다가 하루아침에 거지신세가 되었고, 사십대 중반에 초라한 업소에서 앞치마를 둘렀으니, 무슨 수로든 그 꼴을 변명해야 했는데 그 변명이 운명론이었다.

“한마디로 밥장사는 운명이다, 그 말씀이군요.”

조연출 담당 AD가 말한다. 나는 그에게 좀 색다른 내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내가 단순히 밥장사에 불과하지 않다는 걸 강조한다.

“그런데요, 나는 내 운명에 반역하고 싶을 때가 있어요. 그런 나 자신이 두려워요. 온 정성을 기울여 쌓고 있는 춘천옥도 언제 부숴버릴지 몰라요. 나는 누구에게도 지고 살긴 싫지만 나 스스로 나를 무너뜨리고 싶을 때가 있어요. 그게 내 부조리죠. 알뜰하게 탑을 쌓다가도 한순간에 무너뜨려버리는 그 파괴심리가 나를 순결하게, 아름답게, 도도하게 치장해주죠.”

여태까지 초가집 한 채 장만하지 못하다가 이제 겨우 기틀을 잡았는데, 양옥집도 장만하고, 경치 좋은 수도권에 땅도 수천 평 사놓고, 고급 승용차도 굴릴 수 있는데, 게다가 국내는 물론 외국에서까지 춘천옥 체인점을 내달라고 조르는 판인데, 이게 무슨 방정맞은 갈등인가? 나는 왜 이런 인간으로 구조되었을까?

평강댁 남편을 꼬드긴 박 사장

늦가을 햇살이 낙엽 위에 깔리는 오후. 춘천옥 앞에 택시 한 대가 선다. 택시에서 내린 문씨는 다짜고짜 주인 나오라고 고함부터 치기 시작한다. 무슨 일인지 몰라 밖에 나와 본 아내에게 그는 삿대질하며 더 악을 쓴다.

“당신은 엄연히 살인자야. 살인자가 어떤 처벌을 받을 진 알고 있겠지?”

순식간에 지나던 행인들과 동네 사람들이 모여든다.

“돈만 있으면 사람도 죽일 수 있는 세상이라지만, 남 여편네 꼬셔서 애를 띠게 해?”

주방에서 일하다 뛰쳐나온 평강댁이 남편의 행패를 말렸지만 역부족이다. 그녀는 남편의 팔을 잡고 소리친다.

“차라리 날 죽여. 워쩌자구 고마운 사모님한티 행패부리는 거여 이 웬수야.”

“요게 뒈질라구 환장했나? 뭐야? 고마운 사모님? 제 집구석에서 실컷 부려먹고 싶어 애를 띠게 했는데 고맙다구? 이 멍청한 여편네야, 너를 춘천옥 귀신 만들려구 한 짓도 모르고 고마운 사모님이냐?”

“좋아. 정이나 사모님을 괴롭히겠다면 내가 칵 죽어버릴 팅게 알아서 혀.”

“어쭈, 이게 엇다대고 지랄야? 그래 뒈져봐라. 너 뒈지면 사모님인지 네모님인지는 사람을 둘 죽이는 셈이 되니까 어서 뒈져.”

“악마도 이런 짓은 안 할 거구먼. 인두겁을 쓰고 워떻게 이런 행패를 부린댜?”

“자희 아빠 심정을 이해해요.”

드디어 아내가 나선다.

“우선 동네가 창피하니 안에 들어와서 조곤조곤 얘기하죠.”

아내의 말에 문씨는 모른 척하고 안으로 들어온다. 솔직히 안으로 불러들인 아내의 조치가 반갑다. 밖에서 오래 떠들수록 춘천옥 체면을 세워주는 꼴만 되고, 평강댁이 떠들수록 자신의 입장만 난처해질 뿐이다.

이처럼 더럽게 풀리다니....

평강댁의 행동을 미처 예기치 못한 게 큰 실수다. 춘천옥 애먹이는 것만 생각했지 마누라가 춘천옥 편을 들어 일을 그르칠 줄은 미처 몰랐던 것이다. “육시헐 년!” 문씨는 돈 벌 기회를 빼앗는 마누라를 몽둥이로 두들겨 패고 싶다.

모금정 앞에서 문씨의 행패를 쭉 지켜보던 박 사장 역시 평강댁의 도발에 속수무책이다. “일이 묘하게 풀리는군.” 박 사장은 머리를 절래절래 흔든다. 춘천옥을 괴롭히기는 고사하고 역효과만 날 판이다. 저런 인간과 손을 잡고 무슨 일을 도모하겠는가. 박 사장은 담배를 꺼내 퍽퍽 피워대며 문씨를 원망한다. 다음에 만나면 교육을 단단히 시켜야지. 박 사장은 문씨가 춘천옥 안으로 사라지자 얼른 모금정 안으로 사라진다. 길거리에 서있던 동네 사람들도 뿔뿔이 흩어진다.

문씨는 춘천옥 휴게실에 들어서기가 무섭게 다시 악을 쓰기 시작한다. 어느 식으로 악을 쓰느냐에 따라 수입이 늘고 준다는 박 사장의 말을 떠올리며 목소리를 높인다.

“아무리 참으려 해도 사지가 떨려 못 참겠소. 눈도 떠보지 못하고 죽은 새낄 생각하면 환장하겠단 말요. 오늘은 사생결단을 내러 왔으니 그리 아쇼.”

“이 사내가 미쳤어. 하늘이 무섭지도 않은감? 애 띤 게 사모님 잘못이냐구? 내가 보증 서달라고 애걸해서 허락하신 건디 이러큼 애를 먹여 쓰겠냐구? 인정 많으신 사모님잉게 아무 잘못 읎는디두 돈까정 주셨잖여? 그런 은혜를 모르고 배은망덕한 짓을 혀?”

“배은망덕은 큰일이고 새끼 죽인 건 작은 일이냐?”

“새끼를 내가 죽였지 사모님이 죽였남? 워째서 자기 죄를 남한티 씌우냐 말여. 그러구 손가락 하나 까딱 않는 주제에 새끼 탐만 부려서 워쩌자는 거여? 이번에 애를 났으면 새끼가 다섯인디 뭘루 멕여살리구 뭘루 가르칠 거냐구? 내가 품 파는 것도 한계가 있는디, 당신은 내가 불쌍하지도 안 혀? 어서 말해봐 이 웬수야!”

“이런 썩을....”

문씨는 주먹을 들었다가도 이목 때문에 평강댁을 어쩌지 못한다. 평강댁이 성질을 죽이면서 말한다.

“자희아빠, 일단 앉아봐. 그런디 오늘 왜 이려? 그러고 봉게 참 이상하구먼. 오늘 워째서 이러는 거여? 귀신한티 홀린 건 아닐 테구, 누구 꾐에 빠진 거여?”

“뭐라구? 내가 어느 시러배 놈 말을 들었다고 그래? 내가 남의 꾐에 넘어갈 사람야? 하여튼 사모님한테 한 가지 부탁이 있는데요....”

“말씀하세요.”

“우리 자희를 데려다 쓰세요. 봉급은 알아서 주시고, 생활이 영 말이 아녀서....”

“이 인간 진짜 미쳤구먼. 그 어린 걸 워쩌자구 그런 말을 하는 거여? 그리구 왜 사모님한티 폐만 끼칠려구 그려?”

“정정당당히 일하고 노임 받는 건데 폐는 무슨 폐야. 이 집은 항상 일할 사람이 필요하잖아.”

“자희아빠 말씀은 평강댁하고 의논할게요. 그런데 자희가 지금 고이죠?”

아내는 문씨 속을 훤히 알고 있다. 그냥 돈을 요구하기가 난처해서 딸 핑계를 댔을 게 틀림없다. 자희는 미성년자라 이런 데서 일할 수도 없는 처지다. 아내는 문씨가 돌아가자 평강댁에게 물어본다.

“아저씨가 아무래도 이상한데요. 갑자기 왜 저러시죠?”

“글쎄요.... 잘은 모르지만 눈치가 박 사장을 가끔 만나는 것 같아요.”

아내는 고개만 끄덕거리고 나서 평강댁에게 봉투를 건네준다.

“자희 등록금에 쓰세요. 그나저나 씀씀이가 많은 집에서 평강댁 혼자 벌고 있으니 안타깝네요.”

“안 돼유. 이런 돈은 못 받어유. 지난번에도 죄를 졌는디유.”

“이 돈은 평강댁을 생각해서 드리는 거에요.”

아내는 봉투를 억지로 쥐어준다.

“지가 생전에 죄를 많이 져가지구.... 사모님 죄송해요. 번번히 이렇게 신세만 지구....”

아내는 눈물짓는 평강댁의 어깨를 껴안아준다. 착한 그녀가 고맙고 가엾기만 하다.

보쌈과 막국수 만드는 법

대승옥이 문을 열고 두 달쯤 지났을까, 춘천옥 문 닫겠다고 비아냥거리던 단골손님들이 다시 찾아온다. 능수엄마는 “저 인간들이 와 또 왔능교.” 하고 분통을 터뜨리지만 나는 능수엄마에게 더욱 친절히 대해주라고 타일른다. 그녀가 음식을 날라주자 한 손님이 넉살좋은 웃음을 날린다.

“저집은 끝장야. 그래가지고 무슨 장사를 한다구....”

“와예?”

“보쌈이 굳어서 못 먹겠어.”

“굳어예?”

“고기가 장작개비처럼 뻣뻣해.”

재고를 판 모양이다. 나는 개업집 주인과 주방장이 준비해온 과정을 상상해본다. 그들은 보나마나 개업 전 춘천옥에 여러 번 들렀을 테고, 보쌈이나 막국수를 먹어보며 이런 말을 했을 게 분명하다.

“아무것도 아녜요. 제 냉면 맛을 보셨죠? 이 따위 막국수는 눈감고도 만들 수 있어요. 이 집이 잘 되는 건 독점이라 그래요. 우리가 오픈하면 금방 문 닫아요. 보쌈은 더 쉽거든요. 이 집은 항정을 쓰는데 더 맛있는 부위가 있걸랑요. 그리고 이 집은 서비스로 주는 게 없잖아요? 기껏 카운터에서 껌 하나씩 주는데, 우리는 수정과를 서비스하자구요. 그러면 품위도 있고, 맛도 고상하고, 게다가 그릇을 고급제품 쓰면 음식이 화려해보이구요. 이 집 그릇 보세요. 촌티가 나고 지저분해보이죠? 그릇과 후식만으로도 이 집 손님 다 뺏을 수 있어요.”

하지만 단골손님 말을 들어보니 주방장은 가장 중요한 걸 미처 예상 못했던 것 같다. 재고품 처리 말이다. 삶아서 팔고 남은 고기를 어떻게 처리할지를 미처 고민하지 않은 모양이다. 그게 문제다. 보쌈을 간단히 생각한 주방장이라면 남의 업소를 망치기 십상이다.

예를 들어 보쌈고기는 한 시간 넘게 삶아야 되기 때문에 주문 받은 즉시 내올 수 없다. 그런데 100인 분을 미리 삶았을 경우 70인분만 팔렸다면 나머지 30인분은 버려야 한다. 만약 아까워서 냉장고에 저장했다 쓸 경우 손님은 돌아서게 마련이다. 그렇다고 모두 버리자니 매일 적자를 보게 된다.

그뿐 아니다. 고기 부위에서부터 삶을 때의 첨가 재료나 타이밍, 그리고 고기를 써는 방법 등 손에 익힐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론만으로 통하지 않는 게 음식 맛이다. 손끝의 예민한 감각과 그 감각을 훈련시킨 숙달된 경험 없이는 음식은 제 맛을 낼 수 없다. 맛을 흉내만 내려면 걱정할 것 없다. 장사음식이라 보통 맛으로는 통하지 않는다. 사랑하는 가족과 부유한 삶을 영위하느냐, 아니면 온 식구가 보따리를 들고 길바닥을 헤매느냐는 갈림길이 그 맛에 달린 것이다.

막국수의 정밀한 맛을 어떻게 이론으로 가늠할 수 있겠는가. 더구나 냉면과 막국수는 기본 재료가 다르고 가루를 배합해서 반죽만 하는 데도 숙달이 필요하다. 삶는 시간이 몇 초만 초과해도 불어터지고 몇 초만 미달해도 설어버리는 게 막국수다.

새로 막국수 기술자를 키우려면 최소 이삼 년이 걸려야 한다. 반년쯤 보조팀에서 일하다가 막국수를 뽑는 경우도 있지만 제대로 배우려면 오랜 숙련이 필요하다. 프랑스에서는 요리사를 키우는데 양파껍질을 벗기는 훈련에만도 오랜 기간을 투자한다. 기초부터 다지게 하기 위해서다. 막국수 면을 뽑으려면 그전에 배워야 할 과정이 너무 많다. 가루를 배합하는 법, 반죽해서 치대는 법, 국수를 짜는 법, 국수를 삶는 과정에서도 가마솥 아궁이에 불붙이는 법, 국수를 짜는 순간 불을 조절하는 법, 짜기 직전 끓는 물 숨죽이는 법, 끼얹는 찬물의 양과 조절법, 짠 직후 막대기로 젓는 법, 익히는 과정에서의 타이밍 조절법, 적절하게 삶아진 국수의 맛보기 식별법, 만져보기 식별법, 숙달된 시각적인 식별법, 사리 트는 법, 헹군 사리의 양 가늠하는 법, 들어서 마는 법, 양념 치는 법, 고명 얹는 법, 육수 붓는 법....

막국수를 담아내는 기술도 쉽지가 않다. 탕기에 사리를 틀어 놓고 어떤 순서로 양념과 기름을 치고 고명을 얹어야 제 맛을 유지할 수 있는지 고심해야 한다. 막국수는 불고 퍼지는 성격이 강하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양념을 순서대로 쳐야 한다.

그 외에도 육수를 잘 내야 하는데 대개 육수는 사골이나 등뼈를 쓰기도 하고 두 가지를 반반 섞어 쓰기도 하고, 닭을 사용하기도 한다. 육수를 끓이는 데는 물에 다시마, 무, 파뿌리, 말린 고추, 마늘, 생강, 감초 등을 넣기도 하는데 고기의 종류에 따라 다르고, 요즘은 각자의 실험에 따라 다양한 방식이 있다.

보쌈 준비도 마찬가지다. 오히려 감각과 열의가 막국수보다 더 요구되는 메뉴다. 고기를 고르는 법, 생고기를 써는 법, 삶는 법, 삶는 물에 냄새 제거용 용재 섞는 법 등 여러 가지다. 대개 마늘, 생강, 된장, 정종, 감초, 당귀, 월계수 잎 등을 넣지만 각자 실험에 따라 다양한 재료를 쓸 수 있다.

보쌈은 삶는 기술 못잖게 써는 기술도 중요하다. 우선 두께를 일정하게 썰어야 한다. 너무 엷어도 안 되고 두꺼워도 안 된다. 보쌈김치로 싸서 먹어야 되니 두 재료의 화합된 맛에 맞춰야 제 맛을 느낄 수 있다. 칼도마 사용에 있어서도 생고기를 썰 때는 세균 서식이 덜한 플라스틱 제품을 사용하고 익은 고기를 썰 때는 도마에 고기의 열을 뺏기지 않도록 나무 도마를 사용해야 한다.

고기를 써는 속도 역시 먹는 맛에 영향을 끼친다. 고기를 통에서 건져내 빠른 속도로 썰어야 따뜻한 맛을 즐길 수 있고 서비스 면에서도 빨라서 좋다. 춘천옥에서는 가끔 보쌈 초보직원들에게 ‘고기 썰기’ 경연대회를 열어 사기도 높이고 적합한 인재를 발굴하기도 한다. 김춘수, 오만기, 조자림 모두 경연대회에서 발굴 된 인재들인데 조자림은 현재 막국수 팀이지만 보쌈 기술자이기도 하다. 두 메뉴는 꾸미로 나오는 메뉴여서 춘천옥 주방 식구는 모두 두 메뉴를 두루 섭렵해야 주방 책임자가 될 수 있다.

주인은 주방장 보다 더 높은 기술을 지녀야 한다. 주인이 주방장보다 기술이 모자라면 항상 약자가 되어 속을 썩게 마련이다. 주방장이 배짱을 부려도 가차 없이 대책을 마련할 수 있어야 제 맛을 유지할 수 있다. 주인이 요리 경험이 풍부해야 성공할 수 있다는 말이다. 주인의 요리 솜씨가 어떠냐에 따라 성패가 좌우된다. 주방장도 개인 입맛에 따라 맛이 천차만별이다.

주방장의 음식 솜씨가 손님 누구의 입맛에나 맞아야지 그렇지 못하면 그 집은 망하기 십상이다. 그래서 주방장이나 주인은 누구보다 미각이 예민하고 맛의 수준이 높아야 한다. 남들이 싫어하는 입맛을 지녔다면 손님이 좋아할 맛을 낼 수 있겠는가.

여기에서 말한 수준이란 세대간이나 성별간에나 보편성을 지닌 맛을 의미한다. 물론 어린이가 좋아하는 맛과 어른이 좋아하는 맛이 다르겠지만 그 어린이도 집에서 부모가 만든 반찬이나 밥을 먹고 자랐기에 패스트푸드 같은 특별한 별식이 아니면 맛의 보편성을 지녔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음식 맛이 모든 이에게 백 퍼센트 맞을 순 없다. 그 퍼센티지가 높을수록 성공률이 높을 것이다. 예를 들어 70 퍼센트가 현상유지라면 80퍼센트는 조금 저축할 것이고 90퍼센트는 많이 저축할 수 있을 것이다.

식당 손님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주인의 입장을 양해 받을 수 없는 게 음식 장사다. 지금 주방장이 없으니 두 시간 후에 오세요, 내일 오세요, 일주일 후에 오세요, 그런 말은 통하지 않는다. 또 주방장이 없어서, 주방장이 휴가 가서, 주방장이 아파서 지금은 맛있는 음식을 드릴 수 없으니 양해하시고 다음에 오시면 맛있게 해드리겠습니다, 그런 말도 통하지 않는다.

가능한 것은 망하는 길밖에 없다.

그래서 주인의 숙달된 솜씨가 필요한 것이다. 규모가 회사식 운영 체계여서 주방 직원 한두 사람 없이도 변함없이 회전이 된다면 모르되, 주방장에게만 의지하는 소규모 업소라면 주인이 먼저 더 나은 솜씨를 익혀야 한다.

모든 사업체가 그렇지만 특히 요식업은 직원 관리가 가장 힘든 업종이다. 다른 업종은 처음부터 직장에 애착을 갖고 입사한 셈이지만 식당 업무는 고달프고 복잡한 일이어서 주인이 항상 사정하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주인의 일과에서 가장 중요한 업무는 신참을 데리고 틈틈이 마음을 잡아주는 일이다. 그러니 처음 들어온 신참은 한 달 넘겨주기를 바라는데 한 달 정도 시달리면 어느 정도 일이 몸에 배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 달 넘긴 직원은 반년을 넘겨주기 바라는데 반년이 넘으면 일 년을 넘길 가능성이 있고 그 후로도 오래 견딜 수 있어 내 식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애정이나 신임이나 의리 같은 덕목으로 통할 수 없는 게 요식업의 주인과 직원 사이다. 아무리 주인이 좋아도 다른 데보다 힘들고 보수가 적으면 떠나게 마련이어서 주인은 항시 불안하다. 물론 큰 꿈을 갖고 요식업을 운명적 차원으로 수용할 직원이라면 몰라도 주방장에게 전적으로 의지한다는 것은 내 무기를 적에게 맡기는 것과 같다.

대승옥 새로운 작전

춘천옥을 무너뜨리지 않으면 대승옥이 죽는다. 춘천옥 죽이기 작전은 그래서 운명적인 절대항이기도 하다.

일차로 능수엄마를 데려와야 한다. 능수엄마는 춘천옥 마담인데다 보쌈김치를 책임진 춘천옥 보배이니 그녀만 데려오면 춘천옥 죽이기 작전의 1단계를 성공리에 완수할 수 있다.

다음에는 능수엄마를 통해 춘천옥의 메뉴를 책임지고 있는 주방장을 데려오고, 주방장이 그가 짝사랑하는 미스 강을 데려오면 춘천옥은 마비된다.

대승옥 황 사장은 매부 박 사장과 의논을 끝내고 나서 시원한 맥주를 들이킨다. 기분이 상쾌하다. 초판에는 시행착오를 겪었지만 계획대로 새롭게 시도하면 충분히 성공할 수 있다. 실패 없는 성공이 있겠는가.

개업 직후 손님이 떨어지자 위기감이 느껴지던 황 사장은 박 사장과 머리를 싸매고 대책을 협의해왔다.

“계획을 잘 세워 봐. 첨엔 주방장 그놈새끼가 농간을 부려서 실패했으니 이번엔 정신을 바짝 차리라구.”

“그래서 매부와 고민하는 것 아녜요. 하여튼 그런 식으로 작전을 짜면 틀림없이 성공할 거에요.”

“춘천옥 사장이 너무 날고 기는 자라 함부로 장담해선 안 돼.”

“우선 능수엄마를 끌어들여야 가능한 일에요. 하루 빨리 능수엄마를 만나도록 해요. 제발 서두르세요. 술만 마시지 말고.”

“알았어. 처남 일이 내 일인 걸.”

“그나저나 능수엄마가 입을 열지 말아야 할 텐데. 봉급을 춘천옥 배로 주겠다고 꼬신 걸 알면 춘천옥이 더 긴장할 텐데. 암튼 이번에 능수엄마를 잡아오긴 참 잘했어요. 그 일로 그나마 정보를 얻게 됐잖아요.”

“그년도 정보를 흘려준 죄 땜에 함부로 입을 열지 못할 걸.”

“주방장이 미스 강을 짝사랑한다는 사실도 큰 정보죠. 재료 소모량은 말할 것도 없고, 배추 저리는 소금 비율이며, 보쌈김치 만드는 요령까지 중요한 정보가 한두 가지 아니거든요.”

“아무튼 능수엄마 잡아온 일 땜에 내가 얼마나 속이 탔는지 몰라. 어쨌든 춘천옥을 죽이지 않고는 다른 대책이 없어.”

박 사장은 맥주 한 컵을 단숨에 마신다. 이 지역에서는 아무도 덤비지 못할 내게 난데없는 적이 생기다니. 그는 춘천옥이라고 하는 보잘것없는 영세업자가 하루아침에 세상을 뒤집어 놓는 꼴을 보고 마음 편할 날이 없다. 거기에다 손님마저 뺐겼으니 피가 바싹바싹 마를 수밖에. 자기네 집 단골이 춘천옥으로 들어가는 꼴을 보면 내장이 뒤집힐 지경이다. 부자간에도 어쩔 수 없는 게 장사샘 아닌가.

“춘천옥 쉬는 날 보면 온 동네 식당이 잔칫집 같아요. 춘천옥 손님이 사방으로 흩어진 거죠. 그러니까 춘천옥이 자기네 손님을 배급줬다고 보면 돼요. 그만큼 춘천옥 위력이 센 거죠. 바꿔 말하면 춘천옥이 온 동네 손님을 싹쓸이한다는 말이거든요.”

“내 생각은 달라. 춘천옥이 손님을 싹쓸이하는 게 아니라 다른 지역 손님을 긁어모은다고 생각해. 만약 춘천옥이 없으면 이 지역 손님들이 다른 데로 간다는 거지. 동네 가게들이나 시장에서도 모두 그런 말을 하거든. 이 지역이 춘천옥 덕을 보고 있다구. 나도 그건 동감이야. 그러나 다른 업주들한테는 춘천옥 탓으로 돌려야 돼. 춘천옥의 적이 많을수록 우리한테 유리하니까.”

“매부 말씀대로라면 춘천옥이 애물만은 아니잖아요?”

“춘천옥으로 너무 쏠리는 게 문제라구. 어느 정도 평형을 이뤄야 하는데 완전 독점이라 다른 업소들은 공생은 고사하고 숨도 못 쉴 판이지.”

“어쨌든 춘천옥이 외부 손님들을 끌어주니까 찌꺼기 손님일망정 덕을 보는 게 아녜요?”

“그건 그렇다고 볼 수 있지만, 대승옥은 춘천옥과 같은 메뉴라 힘든 싸움을 해얀다구. 그래서 춘천옥을 넘어뜨려야 돼.”

처남매부간의 대화는 끝없이 이어진다. 처남이 그만 자리를 뜨려는 매부에게 자꾸 말을 건다.

“제가 직접 능수엄마를 상대하면 안 될까요? 매부가 그녀를 소개해주시면?”

“그건 아직 일러. 어느 정도 맘을 돌려놓은 후에 접근해야 돼.”

“능수엄마 그년이 매부 말에 왜 고분고분했는지 몰라요. 춘천옥 사장이 그처럼 아껴주는 인물인데.”

“인간사는 원래 그런 거잖아. 아무리 잘해줘도 뭔가 속으로 불만이 있게 마련이지.”

“그 불만을 알아야 해요. 그게 낚싯밥이죠. 매부는 춘천옥 식구들과 접촉할 수 있으니 잘 살펴줘요.”

“이젠 접촉이 힘들어. 그동안 사이가 나쁜 데다 대승옥을 차렸으니 정말 원수지간이 됐다구. 그래도 일단 능수엄마와 말을 텄으니 어떻게든 계획대로 움직여야지.”

밖으로 나온 박 사장은 시장에 있는 기름집을 찾아간다. 춘천옥에서 무슨 기름을 쓰는지 알아서 대승옥도 그걸 써야 한다. 박 사장은 기름집 주인을 만나자 노골적으로 말한다.

“대승옥에도 춘천옥처럼 존 걸 대주세요. 제 처남은 아직 장사 경험이 부족하니 잘 돌봐 주세요.”

“춘천옥과는 개업 때부터 거래해오지만 한번도 실수한 적이 없습니다..”

“그런 데를 거래하려면 무척 힘드실 거에요.”

박 사장은 은근히 춘천옥을 들먹인다.

“제 직업인데 힘들 건 없죠. 저희는 신용을 생명으로 여기고 있어서 더 조심하고 있어요. 지금이야 도사가 됐습니다만 초창기에는 예상 못한 실수를 저질렀죠. 한번은 춘천옥 사장님이 찾아와서 걱정을 하시는 거에요. 기름에서 쩐 내가 난다고요. 제가 맛을 봐도 그렇더라구요. 아무리 검토를 해봐도 원인을 몰라 미치겠더라구요. 시설을 깨끗이 청소해도 여전했어요. 깨를 볶을 때 세심히 주의해도 소용없었어요. 나중에 알고 보니 기름을 짤 때 쓰는 보자기에서 원인을 찾았어요. 보자기에 묻은 찌꺼기가 상해서 맛을 버린 거죠.”

주인은 허탈하게 웃고 박 사장은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로 그 웃음에 화답한다.

포장마차 시절

춘천옥을 개업하기 전까지 아내와 나는 자그마치 10년 동안 먹는장사로 고생해왔다. 그 최초의 먹는장사가 적은 밑천으로 시작할 수 있는 포장마차였다. 요즘은 규모가 큰 포장마차도 생겼지만 그 시절에는 길가에서 리어카 좌판을 펴놓고 오뎅, 꼼장어, 홍합, 해삼 등을 안주거리로 팔거나 김밥, 국수 등을 끼니거리로 파는 게 고작이었다. 어둠이 깔릴 무렵 사내가 리어카 포장마차를 길거리에 끌어다 놓고 카바이트 불을 켜주면 아녀자가 애를 업은 채 음식을 만들어 잔술을 파는 것이 그 시절의 포장마차 모습이었다.

내가 직원들에게 포장마차 이야기를 처음 꺼낸 것은 지난 겨울 회식 때였다. 교육적인 차원에서 고생담을 꺼냈는데, 그때 막국수 팀장인 김춘수는 우리가 포장마차를 했다는 게 신기하고 재미있는 모양이었다.

“해질녘이 되면 나는 밀짚모자를 눌러쓰고, 아줌마는 수건을 덮어쓰고 함께 포장마차를 끌고 다녔지. 아줌마는 내가 포장마차에 얼씬도 못하게 했지만 무거운 리어카를 여자 혼자 어떻게 끌 수 있겠어.”

“사모님 고생이 크셨겠네요. 사장님과 함께 하시지 그랬어요?”

“남편이 공사판 인부 노릇은 할망정 포장마차를 끌고 다니는 게 정말 싫었어요. 아무리 가난해도 이상주의에 불타는 남편을 그렇게까지 망가뜨리고 싶지 않았던 거죠.”

아내의 말이었다.

“아줌마가 고생한 얘기 하나만 들려줄게. 나는 지금도 버스정류장에서 울었다는 아줌마의 말을 잊을 수 없어. 포장마차 안주거리를 사러 아줌마 혼자 염창동 수산시장에 갔을 때였어. 물이 질질 흐르는 홍합 자루를 머리에 이고 시내버스를 타려는데, 기사가 버스 문을 닫는 바람에 아줌마는 홍합자루를 머리에 인 채 길바닥에 뒹굴고 말았다는 거야. 그때 아줌마는 뒹굴면서도 홍합자루를 놓지 않았대.”

“그게 사장님의 가슴에 맺혀서 지금도 그 말씀을 하시는군요. 그럼 포장마차는 얼마 동안 하셨어요?”

미스 강이 물었다.

“이 년쯤.”

“그 후 바로 식당을 차리셨나요?”

“무슨 돈이 있어 가게를 차리겠어. 음료수 공장 짓는 공사판에 함바 자리가 생겨 포장마차를 그만뒀던 거야. 그런데, 돈을 벌긴 고사하고 포장마차로 번 돈마저 날렸지. 돈을 뗀 거야. 업자가 인부들 품삯 떼먹고 도망치는 바람에 돈 대신 받은 전표가 휴지가 되고 말았어.”

“세상 참 무섭네요.”

춘수가 말했다.

“하지만 훌륭한 사람도 있어. 포장마차를 시작할 무렵이었어. 우리는 재래시장 건물에 붙은 헛간에서 월세살이를 하고 있었는데 하루는 시장 사장이 찾아와 나보고 청소를 맡아달라는 거야. 고맙게 여기고 우리 부부는 열심히 일했지. 온종일 지저분하고 냄새나는 시장 쓰레기를 치웠어. 일년쯤 지났을까, 그때 묘한 일이 생겼어. 하루는 청소를 끝내고 사무실에 들렀는데 갑자기 형사 둘이 들이닥치더니 사장 동생을 데리고 가는 거야. 내가 잘 아는 형사들이지만 창피해서 얼굴을 피했어. 사장네 집안은 발칵 뒤집혔지. 사장도 무슨 영문인지 몰랐거든. 그날 밤 나는 아무도 모르게 관할 경찰서를 찾아가 두 형사를 만나봤어. 그들은 나를 보자 선배님 오래간만이라며 반가워하더군.”

“선배님이라뇨?”

“나도 그 생활을 해봤거든.”

“그럼 사장님이 형사 출신이라고요?”

“왜, 내가 이상해 보이냐?”

“그게 아니고요, 너무 뜻밖이라....”

“딱 십년 했어. 배고픈 시절이라 경찰이 뭔지도 모르면서 봉급 땜에.... 그 시절엔 공장 취직해봤자 밥 얻어먹고 용돈 몇 푼 받는 게 고작이었거든.”

“왜 그만두셨어요?”

“그 얘긴 나중에 하기로 하고, 암튼 형사들에게 사건 내용을 물었더니 경제사범이라는 거야. 우선 큰 범죄는 아니구나 싶어, 내가 신원보증을 서줄 테니 데려갈 수 없겠느냐고 물었지. 그들은 한참 망설이다가 유치장에서 피의자를 데려왔어.”

“히야, 대단하시네요.”

“이튿날 아침 사장이 나를 찾아와서 대뜸 돈 다발을 내놓는 거야. 백만 원이라고 했어. 지금 돈으로 치면 거금이었지. 형사들을 만나 써달라구. 그리고 나한테는 별도로 고마움을 표시하겠다는 거야. 나는 아무 말 없이 그 돈을 주머니에 넣고 두 형사를 불러내 경찰서 주변 식당으로 갔어. 그들은 내가 대구에서 크게 성공했다는 소문을 들었다며 돈 번 비결을 묻더군. 지금 내가 거지꼴인 걸 모르고.”

“대구에서 성공한 선배가 서울에서 리어카 끄는 걸 안다면 참 기가 막혔겠네요.” “암튼, 형사들한테는 대구에서 돈 잘 번다고 했지. 금방 들통 나겠지만 창피해서 망한 얘긴 숨겼어.”

“그래서요?”

주방에서 보쌈을 다루는 오만기가 끼어들었다. 내 이야기가 재밌는 모양이었다.

“형사들과 헤어지고 나서 곧바로 사장을 찾아가 쓰고 남은 돈을 돌려줬지. 백만 원 중에서 식대와 술값으로 삼만 원을 쓰고 남은 돈 구십칠만 원을 내놨더니 사장이 도로 집어넣으라는 거야. 모두 끝낸 일이라며 남은 돈을 받으라고 해도 사장은 오히려 화를 냈어. 자기가 나섰으면 그 돈 몇 배가 부서질 텐데, 너무 고맙다며 나보고 남은 돈을 그냥 가지라는 거야. 나는 극구 사양했지.”

“사례비로 생각하시면 되잖아요? 포장마차로는 그런 목돈을 어떻게 만지겠어요.”

“물론 갖고 싶었지만 나는 공돈을 싫어해. 내가 어릴 적에 아버지께서 늘 말씀하셨어. 남의 물건은 티끌도 만지지 마라. 그게 내 철학이 됐다구.”

“그래서요?”

“돈을 방바닥에 놓고 얼른 나왔지. 그런데 이튿날 밤에 사장이 그 돈을 들고 우리 헛간 방에 찾아오신 거야. 또 거절했더니 이번에는 화를 내시면서 당신 바보요? 그렇게 소리쳤어.”

“진짜 바보시네유.”

오만기가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내가 끝내 안 받겠다고 고집을 부리니까 그냥 돈을 들고 나가셨어. 그런데 이튿날 아침에 보니까 부엌 바닥에 그 돈다발이 있는 거야. 또 돈을 들고 사장을 찾아갔더니 이번엔 웃으며 나를 설득시켰어. 그 돈으로 헛간 옆에 붙은 방을 세 얻어 줄 테니 그 방으로 이사하고 헛간에 식당을 차리라는 거야. 그 대신 어서 벌어서 그 돈을 갚으래. 할 수 없이 그러기로 했지. 대여섯 평 되는 헛간에 <경포대식당>이란 간판을 달고 김치찌개, 된장찌개, 돼지갈비 같은 식사와 안주를 메뉴로 정했는데, 시장 사람들이 팔아주는 바람에 그냥저냥 먹고살 수는 있었어. 안식구는 음식을 장만하고 나는 홀 일을 보며 둘이 열심히 장사했지. 날짜가 지나면서 차츰 노하우가 붙는 바람에 몇 푼 저축할 수 있었어. 매일 3백 원, 4백 원 저축하다가 나중에는 천 원 가까이 저축할 때도 있었어. 우린 저축하러가는 게 큰 재미였지. 삼 년쯤 지나 원금에 이자를 보태서 사장을 찾아갔는데 원금만 받고 이자는 내 앞으로 내던지는 거야. 사람이 너무 맑아도 못 사는 법이라며 화까지 내셨어. 지금도 그분을 생각하면 세상이 아름답게 보이지. 언젠가 여기 춘천옥으로 한번 모신 적이 있는데 그 이듬해 돌아가셨어. 아무리 험한 세상이지만 그런 분도 계셔.”

“훌륭한 분이네요.”

“춘수, 만기, 너희들 훌륭하다는 게 뭔지 아니? 남한테 감동을 주는 것, 그걸 말해. 감동을 주는 삶, 너희들도 늘 그런 정신을 갖고 세상을 살도록 해라. 그런 정신을 갖는다면 함부로 철없이 굴겠어? 식당 일이 고단하다고 그만두고, 기분 나쁘다고 그만두고, 애인 생겼다고 그만두고, 친구 꾐에 빠져 그만두고, 그래서 쓰겠냐구? 인생에서 너희들 나이 때가 얼마나 중요한 시긴지 알아?”

김춘추와 오만기가 “네.” 하고 대답했다. 결심이 섰다는 목소리였다.

평강댁 마음이 흔들리다

“여보, 당신이 내 말을 들어준다니까 너무 행복해. 우리가 꼭 신혼여행 떠나는 기분이군.”

문씨가 평강댁의 손을 잡아준다. 택시는 안양유원지 쪽으로 달리고 있다.

“박 사장을 만나주긴 허겄지만 단단히 조심해유. 그 능구랭이 같은 인간 꾐에 빠졌다간 큰일 낭게. 오늘 틀림읎이 과분한 부탁을 헐 팅게 딱 선을 긋도록 해유.”

평강댁은 박 사장이 뭘 요구할 건지 이미 짐작하고 있다. 춘천옥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히지 않겠다고 다짐은 하지만 자신도 자기 마음을 믿을 수 없을 것만 같다.

어느새 유원지에 있는 약속 장소에 들어선다. 호화로운 일식집이다.

“이렇게 사모님이 동행해 주셔서 영광입니다.”

미리 약속 장소에 대기하고 있던 박 사장이 평강댁을 보자 허리를 푹 숙인다. 뻔히 아는 사이인데도 사모님이니 영광이니 하고 추켜세우는 데다 홀에 들어서기가 무섭게 두 손으로 방에까지 안내하자 평강댁의 마음이 달뜨기 시작한다. 남한테 대접을 받는 것이 좋기는 하다. 더구나 지역에서 제일 규모 있는 업소의 사장한테서 특대접을 받고 보니 기분이 상쾌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방문을 열자 문 앞에 서 있던 신사가 평강댁에게 정중히 허리를 숙인다. 대승옥 황 사장이다. 자리에 앉자 이내 생선회와 술이 차려진다. 황 사장이 정종병을 들고 맨 먼저 평강댁 잔을 채운다. 평강댁으로서는 처음 대하는 요리다. 잔이 모두 채워지자 박 사장이 먼저 입을 연다.

“제가 부담을 드리려고 모신 게 아닙니다. 우리가 서로 잘 사는 방법을 모색하자는 차원이지요. 춘천옥은 이미 자리를 잡은 집이니 새로 출발한 대승옥도 망하지는 말아야겠다는 취지에서 사모님의 협조를 바랄 뿐입니다. 죄송한 말씀이지만 그 성의에 보답하는 의미에서 앞으로 저와 황 사장은 사모님을 지극정성으로 모시겠습니다. 자 그럼 건배는 문사장님이 선도해주세요.”

문씨가 “대승옥을 위하여!”를 외치고 술잔이 비워지자 분위기가 살아나기 시작한다.

“문 사장님도 뵐수록 정이 가는 분이시더군요.”

황 사장이 문씨의 기분을 한껏 살려주자 문씨가 평강댁을 추켜세운다.

“제 안식구는 사람이 너무 착해서 춘천옥에 큰 은혜를 입은 걸로 착각하죠. 정당히 일하고 받는 보수를 공짜로 덕을 본다고 여긴다 그 말입니다. 그러니 내가 설득하기가 힘들어요.”

“부부는 그래야 조화를 이루죠. 하여튼 사모님의 협조를 기대합니다.”

박 사장이 서서히 속내를 드러내기 시작한다.

“사실은 춘천옥에서 숨은 공로자는 사모님이에요. 배추 고르는 법, 배추 절이는 법, 김치 만드는 법, 보쌈의 맛을 좌지우지하는 직책이다 그 말입니다.”

“사실은유, 배추를 다루는 게 쉰 일이 아니쥬. 배추를 고를 때도 갓이 얇아야 허구, 속이 노랗구, 키가 중키구, 지리면 안 되구, 소금도 수입산은 맛이 써서 못 써유. 그리구 배추를 절이는 것도 기술이 필요하구먼유. 김장하듯 배추를 쪼개서 절이면 안 되구요, 잎사귀를 한 장 한 장 떼어내서 부채꼴처럼 펴놔야 골고루 절여져유. 절이는 소금 양도 잎사귀허구 줄기허구는 뿌리는 양이 달라야 해유. 똑같이 절이면 잎사귀는 엄청 짜지거든유. 인자 됐쥬?”

“역시 전문가시군요. 이렇게 전문가들이 만들어내는 음식이라 춘천옥이 승승장구하겠죠. 사모님, 제발 우리 대승옥 좀 살려주세요.”

이번에는 황 사장이 평강댁에게 매달린다.

“지가 무슨 수로 살린대유.”

“더 들려주실 말씀이 많을 것 같은데요....”

“글쎄유.... 허기사 더 중한 얘기가 있긴 있쥬.”

“그게 뭔데요?”

황 사장이 평강댁에게 몸을 기울이며 귀를 모은다.

“아무리 소금을 잘 뿌려도 시간이 문제구먼유. 씻을 시간에 맞춰서 자명종이 울리게 해놔두 소용읎구먼유. 이건 순전히 저만 아는 비밀인디, 꼬갱이도 안 되구 중간치 잎사귀 하나를 쑥 뽑아서 가운데를 탁 꺾어보먼 대충 알쥬. 이게 삭정이 꺾어지듯이 뚝 부러지먼 안 절여진 거구, 그냥 고무맹크루 휘어지먼 너무 시간이 지난 거구, 증말 알맞게 절여진 것은 소리가 툭 허구 반만 꺾어지걸랑유.”

평강댁은 실력을 늘어놓다 보니 이제는 자랑하고 싶은 생각이 들어 이야기가 저절로 흘러나온다.

“배추를 바구니에 건져놓고 오래 놔두먼 단맛이 죄 빠져서 질겨지구, 배추를 건지자마자 바로 버무리면 물기가 많아서 질퍽거링게 적당한 시기에 속을 넣는 것두 중허구먼유.”

“그러면 속을 어떻게 만드는지 그걸 말씀해주시죠.”

“속유?”

“네.”

“그건 지 소관이 아닌디유.”

박 사장과 황 사장은 가슴이 두근거린다. 궁둥이를 들었다 놨다 안절부절 못한다. 드디어 황 사장이 가슴 속에 품어온 낚싯밥을 확 드러내고 만다.

“사모님, 솔직히 말하겠습니다. 지금 월세로 사시죠? 우리 대승옥을 키워주시면 월세를 전세로 바꿔드리겠습니다.”

그 말에 문씨의 얼굴이 달아오른다. 잘만 하면 사주팔자가 필 것만 같다.

“여보 이렇게 애를 태우시니 모든 걸 확 털어놔버려. 도와드리려면 홀딱 벗고 도와드려야지, 안 그래?”

“지는 속이나 다대기 같은 양념허구는 거리가 멀어유. 모든 양념은 사모님이 취급허니께유.”

“배추 버무리는 속을 모르실 리가....”

“그거야 대충은 알고 있지만. 지가 죄인이 될 순 웂쥬.”

“죄는 무슨 죕니까. 사모님 실력인데 무슨 죄냐구요. 그런 건 마음 쓸 일이 아니니 아무 염려 마시고....”

“여보 어서 속 만드는 법을 말씀드려.”

“그럼 잘은 모르지만 대충 말씀드릴게유. 우선 무를 채쳐서 소금을 살짝 뿌려놓으면 숨이 어느 정도 죽응게 거기다 양념을 해유. 물이 많은 무는 물기가 많이 생깅게 좀 따라버리구 나서 영념을 허걸랑유. 기본 양념에는 파, 마늘, 생강, 고춧가루, 미나리, 쪽파, 젓국, 당근, 배, 밤, 굴, 그런 걸 너어가지구 버무리걸랑유. 김치 속은 그게 다쥬.”

“그럼 막국수 다대기를 말씀해주시죠.”

아까부터 열심이 노트에 기록하던 박 사장이 핵심적인 요구를 내비친다.

“그건 증말 몰라유. 기본 양념이야 누구나 알 테구, 아주 맛을 좌지우지허는 중한 뭔가가 있을 틴디 그건 사모님만 아시거든유. 개업 때부터 아무헌티두 비밀이어유. 양념을 담당허는 주방장 헌티두 절대 비밀로 혔응게유.”

“그걸 알아야 할 텐데.... 사모님께서 무슨 수를 써서라도 알아내셔야.... 그 은혜는 당장 보답해드릴 테니....”

“하여튼 지가 알아보는 디까지는 알아보겄지만, 쉽진 않을 거구먼유.”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사모님 은혜는 잊지 않을 겁니다. 참 그리고 사모님도 우리 대승옥으로 오셔야 합니다. 우리 같이 출세해봐요.”

“암요. 안 식구 대승옥 가는 거야 식은 죽 먹기죠.”

평강댁은 귀신한테 홀리는 기분이다. 이 정도 함정에 빠질 줄은 미처 몰랐다. 양심에 찔리고, 두려움에 소름이 돋는다. 그녀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 남자들도 모두 일어난다. 박 사장과 황 사장은 여전히 흥분 상태다. 평강댁에게서 얻어낸 수확이 예상을 초과한 것이다. 그들은 평강댁에게 계속 굽실거린다. 문씨는 자기 마누라가 대접받는 모습을 보니 자부심이 느껴진다. 세상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여보, 오늘 당신 너무 멋졌어. 아주 대단해. 잘만 하면 우리 형편이 펴질 거라구.”

“그나저나 오늘 소득이 뭐에유? 겨우 밥 얻어먹은 것뿐에유?”

“소득이야 챙겼지.”

“뭐라구유?”

“아까 헤어질 때 내 주머니에 넣어준 봉투가 두툼했어.”

“그럼 어여 내놔봐유.”

“서둘긴. 천천히 내놓을 팅게 기다려.”

“기다릴 게 뭐가 있대유?”

그제야 문씨는 주머니에서 봉투를 꺼내 보인다.

그전보다 일찍 출근한 평강댁은 아내가 비밀창고로 들어가기만을 기다린다.

주방에 붙은 그 조그마한 방에는 나와 아내만 사용하는 재료들이 쌓여 있고 엄격히 출입이 통제되고 있는데 직원들은 그 방을 비밀창고라고 불렀다. 춘천옥에서 사용하는 일반 재료들은 커다란 냉장창고에 들어 있지만 다진 양념이나 육수 등에 들어갈 몇몇 비밀 재료는 별도로 보관하여 아무도 모르게 아내가 배합해왔다. 평강댁은 지금 그 비밀창고에 있는 특수재료를 알고 싶어 속을 태우고 있는 것이다.

드디어 아내가 빈 양념통 대여섯 개를 들고 주방 뒤로 돌아가고 있다. 평강댁은 아무리 가슴을 진정시키려 해도 자꾸 두근거린다. 이래도 되는 걸까? 이렇게 양심을 속이고 의리를 저버려도 되는 걸까? 평강댁은 머리가 귀살스럽다.

아내는 비밀창고 문 앞에 주방팀이 놓아둔 양푼을 창고 안으로 옮겼는데 그 속에는 칼로 다진 파와 양파, 그리고 기계로 간 마늘, 생강 등이 들어있다. 거기에 고춧가루, 간장, 깨, 설탕, 후추 같은 기본 재료와 두어 가지 비밀 재료를 배합해서 통에 옮겨 담아 문밖 선반에 올려놓으면 막국수팀이 냉장고에 넣어 보관한다.

평강댁은 아내의 동정을 살피다가 조심조심 비밀창고 쪽으로 접근한다. 창고 앞에 몰래 다가온 평강댁은 쓰레기장으로 가는 척하다가 문에 귀를 모은다. 안에서 부시럭대는 소리가 들린다. 재료를 꺼내는 모양이다. 평강댁은 몸을 낮추고 슬며시 문을 밀어본다. 아내는 창쪽으로 돌아앉아 기본 재료를 배합하고 있다. 그리고 두툼한 봉투 두 개를 집어다 양념통 옆에 놓는다. 글씨도 없고 아직 가루를 쏟지도 않았다. 곧 배합하겠지. 평강댁은 계속 숨을 죽인 채 아내의 거동을 주시한다. 드디어 아내가 봉투를 든다. 평강댁은 가슴이 뛴다. 곧 비밀 재료가 밝혀질 거라 생각하니 몸이 떨린다. 두려움과 환희가 뒤섞여 두방망이질을 친다. 그때였다. 느닷없는 목소리가 가슴을 찢는다.

“아줌마, 뭘 열심히 들여다보세요?”

홀 서빙 담당 진애경이다. 그녀는 홀을 청소한 쓰레기를 버리러 뒤란에 왔다가 비밀창고 안을 들여다보는 평강댁을 발견한 것이다. 아내가 얼른 문을 열자 평강댁은 창고 문 앞에 어중간한 자세로 서서 몸을 떨고 있다. 아내는 아무 소리 없이 문을 닫고 양념을 배합하고 나서 아직도 창고 앞에 서 있는 평강댁을 데리고 휴게실로 들어간다.

“나는 누구보다 평강댁을 믿고 지내왔어요. 아무 염려 말고 솔직하게만 말해줘요. 숨길 수도 없는 입장이니 내 마음을 솔직하게 풀어줘요.”

“지가 미쳤구먼유. 돈에 눈이 멀어서 사내 꾐에 놀아났슈. 그 죽일 인간이 결국 지를 이 지경에 이르게 했구먼유.”

“평강댁 맘을 죄 알아요. 그러니 아무 걱정 말고 모두 털어놔요. 그래야 의가 상하지 않죠. 나는 벌써부터 평강댁의 맘이 흔들릴 거라 예상했어요. 모금정과 대승옥의 유혹이 얼마나 집요하겠어요. 또 남편의 설득을 거절할 아내가 어디 있겠어요. 이미 나는 평강댁이 변심할 거란 걸 예상했어요.”

“이년이 죽을 때가 됐나봐유. 이러큼 환장한 년이 세상 천지에 있겄슈. 인두겁을 쓴 지가 왜 이런 악마가 됐는가 모르겄구먼유. 지가 사모님 대할 낯이 읎응게 춘천옥을 떠날 수밖에 읎네유. 부디 용서해주셔유.”

‘딴맘 먹지 말아요. 모두 이해한다고 말했잖아요. 박 사장이 다대기 비밀을 캐오라 했겠죠?“

“맞어유.”

평강댁의 눈에서 눈물이 줄줄 흘러내린다.

“나는 평강댁 심정을 이해하니 아무 걱정 마세요. 평강댁이 알고 있는 정보만 알려줘도 대승옥은 큰 덕을 본 셈이니 그에 합당한 사례를 받으세요. 다만 더 이상 알려주지 않으면 돼요. 모든 재료를 알려준다 해도 솜씨에 따라 맛이 다르겠지만요. 딸이라고 해서 모두 어머니의 솜씨를 낼 수 없는 것처럼요.”

“사모님 은혜를 이런 식으루 갚다뉴.”

평강댁은 아내의 소매를 잡고 계속 눈물을 짓는다.

선주후면(先酒后麵)으로 못을 박다

일요일 점심시간에는 손님이 좀 뜸한 편이다. 그 대신 오후 늦게부터 손님이 밀리기 시작한다. 직장인들은 보나마나 집에서 늦잠을 자고 느지막이 일어나 저녁 무렵부터 외식을 즐길 것이다. 춘천옥 장사준비도 주말에는 느긋이 끝낸다.

셔터를 열자 손님들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나와 허마두는 안내팀이 편히 옷을 갈아입도록 직접 손님을 맞이한다. 주말에는 가족 단위로 찾아오는 손님이 많다.

그들 손님 중에서 점잖아 보이는 60대 부부가 유독 내 눈길을 끈다. 방으로 안내하면서 부부간에 나누는 대화를 들으니 기업체 사장이다. 부인의 차림새가 무척 화려하면서도 기품 있어 보인다.

“사장님께서는 저희 집이 첨이신가 봐요.”

자리를 안내하며 내가 먼저 말을 붙인다.

“소문을 듣고 진작 오고 싶었지만 기회가 없었소.”

“오늘도 내가 가자고 해서 온 거에요.”

남편의 말에 부인이 밝은 목소리로 받는다. 나는 그 말에 농을 단다.

“어쩐지 사장님이 게을러 보이시더라구요. 아마 사업도 사모님 덕에 성공하셨을 거에요.”

“그 말은 옳소. 그래서 이런 예쁜 옷도 사다 입힌다오.”

“아 그러셨군요. 사모님은 이런 옷을 입고 계시니 참 괴로우시겠어요.”

“춘천옥 사장님은 역시 보는 눈이 다르네요. 안 입고 싶어도 성의를 봐서 입긴 하지만, 자랑이나 말아야죠.”

“운명으로 여기고 참고 사세요. 어찌 보면 사장님도 불쌍하시거든요. 게으른 팔자보다 더 가여운 팔자가 어딨겠어요.”

“나도 쥔장이 불쌍해보이는데?”

남편이 끼어든다.

“네 맞습니다. 저는 얻어맞는 팔자로 태어났지요. 어려서는 어머니한테 종아리를 맞았고 결혼해서는 아내한테 뺨을 맞으며 살아가지요.”

노부부는 한바탕 신나게 웃는다. 부부는 음식을 먹는 일보다 나와의 이야기를 더 재미있어 한다.

“쥔장, 이제 농담보다 실속 있는 말을 나눕시다. 정말로 이 사람이 내가 사다준 옷을 싫어할 것 같소?”

남편의 진지한 물음에 나도 표정을 다듬고 부인에게 물어본다.

“사모님은 어떠세요? 솔직히 말씀해주세요. 사장님이 사다주신 옷을 정말 좋아하십니까?”

“솔직히 말해서, 아직은 좋아합니다.”

“아직요? 정말 멋진 말이군요. 아직이라.... 그럼 세 가지 유형이 나올 수 있겠네요.”

“세 가지 유형이라뇨?”

“방금 사모님이 ‘아직은’이라고 말씀하셨어요. 저는 남편이 옷을 사다줬을 경우 아내의 반응을 두 가지로 예측했죠. 남편이 사다준 옷을 좋아하는 경우와 싫어하는 경우. 그런데 사모님으로부터 ‘아직은 좋아하는’ 경우가 또 있다는 사실을 배웠죠. 하지만 세 가지 유형 모두 아내는 싫어할 겁니다. 남편이 사다준 옷을 좋아하는 경우도 애정 차원의 확인에 불과할 뿐이지, 심리 저 밑바닥에서는 그 선물을 거부하는 본심이 꿈틀거린다는 말이죠.”

“왜요?”

“남편에게서 자유롭고 싶어서죠. 아내는 원래 반역자거든요.”

그들 부부는 신나게 웃는다. 한참 웃고 난 남편이 내게 묻는다.

“쥔장 부인은 어떻소?”

“저는 아예 옷 사올 엄두도 못 냅니다. 찢어버리니까요.”

“그렇다면 심각한 상탠데....”

“그래서 이혼하고 싶지만 춘천옥을 깨지 않으려고....”

“저분이 사모님이세요?”

부인이 어느새 내 뒤에 와 있는 아내를 보며 웃는다.

“또 저를 헐뜯나보죠? 이 양반은 손님을 즐겁게 해드린다고 매일 저를 악마로 만들어요.”

“저렇게 고울 수가.... 저렇게 후덕한 얼굴이니 손님이 끓지.”

남편이 내 아내의 얼굴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그가 이번에는 벽에 붙은 액자를 보며 아내에게 묻는다.

“先酒后麵(선주후면)이라.... 저 붓글씨는 누가 쓴 거요?”

“제 남편이 쓴 거에요.”

“쥔장이 썼다구요? 언제 서예를 공부했소?”

“초등학교 시절 습자시간에 써본 거죠.”

“술을 먼저 마시고 면을 먹어라?”

“맞습니다. 막국수를 드시기 전에 보쌈 안주로 술을 드시라는 뜻입니다.”

“하여튼 기막힌 광고 문안이오. 메밀은 비타민 B1, B2가 쌀의 3배나 많고 단백질도 다량 함유하고 있어 쌀이나 밀보다 풍부한 영양을 지니고 있다 하오.”

메밀에 대한 상식을 털어놓은 사장은 머리를 끄덕이며 선주후면을 되뇐다. 사실 요즘 메밀에 대한 신문보도가 빈번한데 그의 말대로 메밀은 건강식품으로 호평이 나 있다. 특히 필수아미노산인 트립토판, 드레오닌 라이신뿐 아니라 인, 칼슘 등이 많이 함유되어 있어 메밀은 다른 곡물에 비해 소화가 잘 되고 변비, 고혈압, 당뇨에 좋다는 것이다. 메밀이 이처럼 건강식으로 인정받는 것은 인체의 모세혈관을 튼튼히 하는 비타민P의 하나인 루틴(RUTIN)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루틴은 고혈압, 당뇨, 동맥경화, 궤양성질환, 동상, 치질 등의 단기 치료에 효과가 인정되어 임상적으로 이용되고 있는 성분이다. 따라서 메밀은 신경을 많이 쓰는 직장인, 성인병에 시달리는 중년에 권장할 만한 식품이다.

보쌈은 장수 식품으로도 알려져 있다. 중풍으로 알려진 뇌졸중이나 치매 같은 뇌혈관 질환은 오랫동안 사망 확률이 높았지만 돼지고기 소비가 증가한 요즘에는 현저히 떨어진 상태다.

“장수국 일본에서도 장수촌으로 소문난 오키나와의 경우 돼지고기의 소비량이 우리나라의 7배 가까이 돼요. 더구나 보쌈은 삶은 고기여서 더욱 안전한 건강식이죠.”

선주후면을 처음 말한 사람은 수필가이며 아동문학가인 조풍연 선생이다. 한국일보 편집국장을 지낸 그분은 우리가 독산동 언덕에서 실비식당을 차렸을 때부터 단골이었는데, 그때 막국수는 여러 식사 메뉴 중의 하나였고, 술안주로는 돼지고기볶음을 메뉴로 삼고 있었다. 젊은 부부가 열심히 사는 모습이 곱다며 보쌈 메뉴를 권했던 것이다.

“막국수는 산이 많은 강원도나 함경도에서 즐겨 먹었는데, 겨울철 늦은 밤에 출출하면 잠자는 애들까지 깨워서 먹였지. 그런데 막국수를 먹기 전에 술을 곁들이면 기가 막히거든. 그 안주로 보쌈을 해보라구.”

그 바람에 보쌈을 전문메뉴로 선택했고, 보쌈과 막국수를 한 꾸미로 엮어서 본격적으로 이미지를 심어주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음식 맛이 문제였다. 돼지고기는 어느 부위를 써야할지, 어떻게 삶아야할지, 보쌈김치는 어떤 모양과 어떤 맛을 내야 할지, 가장 맛있는 김치를 담으려면 어떤 재료를 써야 하고 어떤 식으로 실험해야 할지, 준비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손님들 입에서 “아아!” 감탄사가 나와야 소문이 퍼질 텐데, 시시한 맛으로 개업하면 망하기 십상이었다.

개업 초에는 막국수만 먹거나 보쌈만 먹는 손님들이 많았다. 나는 손님들에게 선주후면을 권했다. 막국수를 먹기 전에 보쌈을 안주 삼아 술을 드는 게 순서라고 설득했다. 일년쯤 지나고부터는 손님마다 보쌈과 막국수를 꾸미로 시켰고, 나중에는 아예 보쌈과 막국수를 보쌈 몇 개 막국수 몇 개라고 주문했다. 예를 들어 부부가 왔다면 “큰 것 하나 국수 둘.” 하고 시켰는데, 보쌈을 큰 접시와 작은 접시로 구분했기에 ‘큰 것’ ‘작은 것’으로 주문했던 것이다.

지금은 아예 손가락으로 간단히 주문하기도 한다. 큰 접시는 엄지를, 작은 접시는 새끼손가락을 들어 보인다. 예를 든다면 다섯 명이 와서 큰 접시 두 개와 막국수 다섯 개를 시킬 경우, 입을 열지 않고도 엄지를 보인 다음 손가락 두 개와 다섯 개를 연속으로 보여주면 그만이다.

작은 접시의 용도는 양이 적어서 시키는 경우도 있고, 먹다가 조금 부족해서 추가로 시키는 경우가 있다. 암튼 막국수만 먹고 가는 손님은 거의 없고, 혼자 오는 손님도 거의 없다.

先酒后麵, 그 네 글자가 춘천옥을 키워준 셈이다. 보쌈과 막국수는 이제 보편화된 꾸미 메뉴가 되고 있다.

심야의 음모

“그러니까 언제 춘천옥을 그만둘지 확실히 말해봐요.”

“쪼매만 기다려주이소. 머가 그리 급한교.”

박 사장의 말에 능수엄마가 신경질적으로 대답한다.

“내일 밤에는 퇴근 무렵에 황 사장을 만나러 갑시다.”

“그건 괜찮은데예, 춘천옥을 바로 그만둘 순 없심더.”

“하루라도 빨리 봉급 많이 준다는 데서 일하지 그래요?”

“몰라서 묻는교. 오래 있던 데라 그런다카이.”

“대승옥에서 일하면 거기서도 정이 붙어요. 사람 사는 게 다 그런 거지 뭐. 춘천옥보다 봉급을 두 배나 받을 텐데 그보다 더 고마운 데가 있겠소?”

능수엄마는 박 사장이 따라주는 술을 단숨에 삼킨다. 술집은 조용하다.

“이따 택시 타고가요.”

박 사장이 차비를 능수엄마 손에 쥐어준다. 박 사장은 요즘 용돈이 두둑하다. 대승옥 처남이 춘천옥 직원들을 빼내달라고 내준 공작금이다.

“싫습니더. 이 돈 받을 수 없심더.”

“차빈데 받아요. 조건 있는 돈이 아니라구요.”

“그라도 안 받을랍니더.”

능수엄마가 끝내 거절하자 박 사장은 돈을 도로 집어넣으며 말머리를 돌린다.

“노 상무는 자주 만나오?”

“봰지 오래 됐심더. 그란데 그분은 와 식당을 안 하십니꺼.”

“지금 생각 중이라오. 기왕이면 거창하게 시작할 거니 자본이 엄청나게 들거든. 춘천옥 따윈 열 개를 보태도 안 되지. 노 상무가 업소를 차리면 이 근방 손님을 싹 쓸 텐데 그 사람한테 잘 보여요. 그래야 출세하지.”

박 사장은 거짓말을 보탠다.

“그라믄 바로 노 상무님 개업하는 데로 가면 될 텐데 와 대승옥으로 가라 카능교?”

“여기저기서 경험을 쌓아보라는 거요. 한 집에만 머물면 장사 요령을 제대로 배울 수 없잖소. 춘천옥에서 잘 했으니 이번에는 대승옥에서 히트를 쳐보란 말요. 그래가지고 노 상무네서 일하면 진짜 일류가 되는 거지. 보나마나 노 상무 업소에서는 사장 역할을 맡을 거요. 이래저래 능수엄마는 복이 터진 거요.”

박 사장이 능수엄마의 손을 꼭 쥐어준다. 능수엄마가 손을 빼며 묻는다.

“그란데예, 박 사장님과 노 상무님은 어떤 사인교?”

“아주 가까운 사이요. 앞으로 나하고 황 사장하고 노 상무하고 능수엄마까지 넷이서 크게 사업을 벌일 거요. 그러니 능수엄마도 큰 꿈을 꿔봐요. 시시한 춘천옥에 매달리지 말구. 그나저나 노 상무와는 재미가 좋소? 그 사람은 힘이 세서 능수엄마 몸이 녹을 거라구.”

“시끄럽소. 먼 숭한 말을 하능교. 낼 그런 여자로 보능교?”

“그건 농담이고, 나중에 주방장과 미스 강도 대승옥으로 데려올 수 있는 거죠?”

“그거는 지금 장담할 수 없심더.”

“그럼 가능성은 있다, 그 말이군.”

“주방장은 몰라도 미스 강은 힘들거라예. 그 아는 보통내기가 아니라요.”

능수엄마는 미스 강의 말이 나오자 금방 질투심이 솟는다. 그 속내를 박 사장이 알아채고 미스 강 이야기를 숨겨버린다. 사실은 오늘 미스 강과 주방장에 대한 정보를 얻고 싶었는데, 능수엄마의 마음을 읽고 미스 강은 포섭이 힘들겠다는 결론을 내린다.

“인물이야 능수엄마를 따라올 여자 없지. 그런데 춘천옥 사장도 능수엄마를 침 흘릴 텐데?”

“그분은 지 같은 거 쳐다보지도 않심더.”

“그 사람도 남잔데 능수엄마 같은 미인을 마다할 리 없지. 속으로는 침을 흘릴 거야. 안 그래요?”

“시시한 소리 그만 하소. 듣기 싫소마.”

“어허, 짜증내는 걸 보니 능수엄마가 춘천옥 사장을 좋아하는 모양이군?”

“와 이러능교. 와 춘천옥 사장님을 들먹이능교. 그분은 여자를 모르는 남자니더.”

“그럼 능수엄마가 먼저 대들어보지 그래요? 일이 잘 되면 아주 춘천옥을 차지할 수도 있잖아?”

“이만 갈랍니더. 밤도 늦었고예.”

능수엄마가 벌떡 일어난다. 박 사장은 순순히 놓아준다. 그는 능수엄마의 마음을 읽고 나니 개운찮은 기분이 느껴진다.

그렇구나, 능수엄마가 춘천옥을 뜨려는 까닭이 짝사랑 때문이구나. 그게 괴로워서 반항하는 거구나. 저런 여자가 대승옥에서 춘천옥에서처럼 몸과 마음을 바쳐 일할까? 어쨌든 금년 내로 춘천옥을 반죽음 시키고 내년에는 문 닫게 만들어야지.

술집에서 나온 박 사장은 대승옥으로 향한다. 대승옥 홀에는 불빛이 희미하게 살아있다. 황 사장이 기다리고 있다는 표시다. 그는 혼자 맥주로 조바심을 삭이고 있는 중이다. 업소가 더 망가지기 전에 하루빨리 춘천옥 핵심 멤버를 끌어와야 한다. 급한 대로 어서 능수엄마를 데려와야 새로 출발할 수 있다. 춘천옥 손님들이 대승옥에 와 있는 능수엄마를 보면 마음이 흔들릴 건 뻔하다. 춘천옥이 잘 된 이유도 능수엄마 수단 때문이라고 그는 믿고 있다. 게다가 주방장까지 데려오면....

“여태까지 기다린 거야?”

“어찌 됐어요?”

황 사장은 박 사장의 미소 띤 얼굴을 보자 금방 가슴이 뛴다.

“잘 됐어.”

“그러실 줄 알았죠. 저는 매부를 믿었거든요.”

“날짜를 당기라고 했어.”

“못을 박았나요?”

“박은 거나 진배없지. 오래 있던 곳이라 그러니, 말미를 달라고 하더군.”

“수고하셨어요. 하지만 아시다시피 주방장놈 때문에 개업을 망치고 나니 하루가 급하네요. 이대로 가면 한두 달 내로 문을 닫을지 몰라요. 그 새끼가 음식을 망치는 바람에 이미지가 엉망입니다. 그러니 어서 복구하지 못하면 끝장이죠.”

“너무 걱정 마. 개업이 중하긴 하지만, 춘천옥 멤버들이 모이면 금방 성황을 이룰 거니. 솔직히 춘천옥도 주인이 잘나서 히트 친 건 아냐. 운이 좋아서 직원들을 잘 만난 덕이지.”

“능수엄마가 들려준 말에서 색다른 건 없었나요?”

“대승옥에 오면 열심히 하겠다고 다짐했어. 그런데 그년이 사장놈을 좋아하나봐. 대승옥에 와서도 일을 잘 해얄 텐데....”

“그거야 제게 맡기세요. 춘천옥에서보다 더 열심히 하도록 만들테니까.”

“봉급도 두 배 준다고 거듭 확인해줬어.”

“잘 하셨어요. 무슨 말로 꼬시든 데려오기만 하면 돼요.”

“얼굴이 잘 생긴 데다 손님 홀리는 게 아주 천부적인 여자야. 이럴 줄 알았으면 개업 전에 그런 일꾼들을 준비해 놓고 문을 열 걸 그랬어.”

“제가 경험이 없어서.... 후회가 막심합니다. 매부가 진작 코치만 해줬어도....”

“또 내 탓야?”

“탓이 아니고요, 좀 아쉽다 그거죠.”

“하여튼 조금만 더 기다려. 그나저나 새로 온 주방장은 어때?”

“몸은 빠른데 기술이 모자란 것 같아요.”

“제대로 된 일꾼 만나기가 하늘에서 별 따기군. 춘천옥 주방장을 데려올 때까지만 그냥저냥 부려먹어. 그 사람만 오면 대승옥 음식 맛이 춘천옥 맛과 똑 같겠지. 능수엄마는 손님을 몰고 올 테구.”

두 사람은 술잔을 연거푸 비운다. 벌써 자정이 넘은 시각이다.

2초는 너무 멀다

우리나라에서 대답 끝에 존칭어가 붙기 시작한 것은 근래의 일이다. “알겠습니다 사장님” “그러겠습니다 회장님” “명심하겠습니다 선생님” 그 소리를 처음 들었을 때는 무척 어색했지만 지금은 그 존칭어가 빠지면 마음 한 구석이 섭섭할 정도다. 한갓 생존전략에 불과한 언사라 해도 그 형식이 싫지는 않다. 내용주의를 최고의 덕목으로 여기며 살아온 내가 형식논리에 젖어가고 있다는 증거다.

그만큼 시대가 변하고 내가 변하고 있다. 갓 쓰면 말 타고 싶다는 말처럼 한국 사람들 생활에 여유가 생겼으니 좀더 나은 서비스를 받고 싶어 하는 건 당연하다. 이제는 서비스의 질을 가지고 따질 시대가 되었다. 어떤 서비스가 제대로 먹혀들지를 생각할 때 가장 효험이 큰 서비스는 역시 진실성이다. 고전적인 단어지만 진실은 여전히 위력을 발휘하게 마련이다.

그런데 그 존칭어를 춘천옥에서 처음 사용한 사람이 능수엄마다. 어쩌면 한국에서 처음일지 모른다. 나는 다른 직원들에게도 그런 식으로 대답하도록 교육시킨다. 더구나 서빙 팀은 직접 손님과 부딪치는 직책이라 더욱 필요한 대답이다.

그것 말고도 나는 직원들의 교양에도 신경을 쓴다. 특히 능수엄마와 미스 강은 손님들과 항상 대화를 틀 수 밖에 없는 입장이어서 개별적으로 조심시키곤 한다. 얼굴이 반반한 능수엄마와 몸매가 늘씬한 미스 강은 남자 손님들의 시선을 받기가 십상이어서 분위기를 살리는 너스레와 품위를 철저히 구분하도록 주의를 주곤 한다.

나는 손님을 어떤 식으로 모셔야 할지 그 태도에 대해 서빙 팀을 수시로 지도하지만, 성과는 교육보다 각자의 행동 감각에 좌우된다. 피크타임이 되면 능수엄마와 미스 강의 눈빛이 점점 신비스러워진다. 한참 손님 안내에 열중하다보면 그녀들의 눈은 신비롭고 아득해진다.

아름답다.

홀과 방 사이를 슬리퍼도 신을 새 없어 맨발로 뛰어다니며 손님을 모시는 그녀들의 연속동작이 눈부시게 아름답다. 이마에 땀이 맺히면 더욱 아름답다. 여인의 땀은 향기롭다.

안내 팀은 손님들을 자리에 앉히는 기술이 탁월해야 한다. 식탁 배정이 서비스에 그만큼 중요하다. 피크타임에는 10명 앉을 자리에 20명이 앉을 때가 허다하다. 엮어서 앉을 도리밖에 없다. 식탁을 중심으로 한 줄이 삥 둘러앉으면 그 뒤에 겹으로 또 한 줄이 둘러앉는다. 한 줄로는 아무리 chacha히 앉혀도 모두 앉을 수 없다.

손님들은 겹으로 앉고도 불평하지 않는다. 오히려 방석에 궁둥이를 붙이는 것에 자부심을 느낄 정도다. 그처럼 손님이 불평하지 않고 자부심을 느끼게 하는 것도 서빙 파트의 정성이다.

“이따 옆자리가 비모 넉넉히 눠 드시게 할거구마.”

능수엄마의 그 말에 모두 깔깔 웃는다. 어떤 짓궂은 남자 손님이 “난 침대 펴놓고 먹을 거야.” 하면 능수엄마는 이렇게 대꾸한다. “나도 일 때려 치고 곁에 누울 기라.” 그때 만약 그 짓궂은 손님이 손이라도 잡을라치면 능수엄마는 눈을 부라린다.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게 까부노.”

또 한바탕 웃음판이 벌어진다.

손님들이 술잔 돌리는 모습을 보면 나는 웃음이 터지다가도 마음이 아플 때가 있다. 현금을 내고 음식을 사먹는 귀한 손님이면서도 너른 자리에서 점잖게 대접 받지 못하고 몸을 비틀어 술잔을 돌리는 꼴이 민망하고 안타깝다. 그래도 춘천옥에 오면 기분이 좋단다.

뒷줄 사람이 식탁 건너편 사람의 술잔을 받으려면 엉덩이를 들고 동료 어깨 사이로 팔을 밀어 넣어야 한다. 그리고 앞줄 사람이 자기 뒤쪽 사람에게 술잔을 줄 때는 몸을 뒤로 돌려야 한다.

술잔은 앞 사람이나 옆 사람한테 주는 게 상식이지만 춘천옥에서는 뒷사람한테도 술잔을 줘야 한다. 춘천옥은 그처럼 묘한 상식을 만드는 곳이다.

젓가락으로 안주를 집을 때도 뒷줄 사람들은 엉덩이를 들어야 한다. 엉덩이를 들어야 상에 놓인 자기의 젓가락이나 수저를 들 수 있다. 먼 곳의 안주를 집으려면 엉덩이를 훨씬 높이 들어야 하고, 더 먼 곳의 안주를 집으려면 아예 엉거주춤 일어나야 집어먹을 수 있다. 어떤 사람은 아예 안주를 접시에 덜어서 뒤쪽 방바닥에 놓고 먹기도 한다.

그런데 그것도 편히 먹을 수 없다. 또 다른 팀들이 복도에 즐비하게 서서 자리 나기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영락없이 수용소에서 밥을 타먹는 형국이다. 그처럼 얄궂은 자리지만 일류 재벌 회사의 중역이나 부장급 간부들은 물론, 고급 공무원, 대학교수, 고급장교들도 끼어 있다. 그들은 다른 업소라면 진짜 왕 대접을 받을 신분이다.

2초는 너무 멀다.

1초가 손님의 기분을 좌우한다.

손님은 출입문을 열고 홀에 들어서는 순간 인사가 1초만 늦어도 기분이 잡치게 마련이다. 그 대신 출입문을 여는 순간 인사를 받으면 기분이 산뜻해진다. 그처럼 신속한 인사속도는 손님의 기분지수를 상승시킨다. 그런데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손님을 모시는 태도다. 인사 속도가 기분지수의 30%를 상승시킨다면 손님을 모시는 태도는 70%를 상승시킨다. 그러니 새 손님이 출입문을 열고 들어오고 있다는 사실을 일일이 뒤돌아보지 않고도 뒤통수의 느낌으로 감지해야 한다는 말이다.

“일에 미친다는 건 춘천옥을 위해서만은 아냐. 바로 너희들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는 예행연습이라구. 남의 업체에서 열성을 바치는 사람이 훗날 자기 사업에서도 성공하게 마련이지. 적당히 눈치만 살피는 자들이 세상에서 가장 미련하고 불쌍한 존재들이야. 나는 자동차 서비스공장에 다닐 때 급한 검사 차량이 있으면 나 혼자 밤을 새우곤 했어. 남들은 근무시간 끝나기 무섭게 씻고 나가지만 나는 혼자 남아서 밤새 칠을 했어. 만약 칠이 안 되면 검사를 받을 수 없으니 그 손해를 회사가 책임져야 해. 어느 날 사장이 집에까지 찾아와 함께 공장을 운영하자고 했어. 말단 사원인 나를 부장으로 승진시켜주겠다는 거야. 사장도 미친 사람이었지. 아무리 직원이 착실하다 해서 그런 엄청난 제안을 할 수 있어? 하지만 가능해. 나도 그런 직원이 있으면 그런 제안을 했을 거야.”

“부장자리를 와 거절했능교?”

“거절할 수밖에 없었지. 요식업으로 승부를 내고 싶었거든. 암튼 고맙다. 춘천옥이 이렇게 큰 것도 모두 너희들 덕이야.”

나는 능수엄마와 미스 강의 손을 잡아준다. 이제 그들의 일은 몸에 밴 상태다.

일은 체질에서 우러난다. 몸에 배지 않은 일은 일이 아니다. 삽으로 흙을 파는 데도 체질화된 삽질은 모양부터 다르다. 삽으로 흙을 판다고 모두가 삽질이 아니다. 식당에서 음식을 차려다주는 직원의 태도를 눈여겨보라. 음식 그릇을 나르는 걸음걸이와 음식 그릇을 상에 놓는 폼, 그리고 손님을 대하는 인삿새가 어떤지를. 자기의 몸을 아끼지 않고 섬세한 동작으로 올인하는 여자. 그들은 일에서 낙을 찾고, 자기의 괴로움이나 외로움이나 슬픔을 일로 녹여버린다. 일에 미치면 눈물을 흘릴 여유가 없다.

“사장님.”

능수엄마가 손님 여남은 명을 안내하다말고 나를 부른다. 자리가 듬성듬성 빌 무렵이다. 손님 중에 TV에서 종종 보아온 낯익은 손님이 한 분 끼어 있어 나는 일행을 얼른 조용한 구석방으로 안내한다. 모 그룹 총수다. 총수는 내가 직접 깔아준 방석에 앉으며 누구에게랄 것도 없이 건성으로 “이 집이 막국수 잘한다는 그 집인가?” 하고 묻는다. 나는 방을 나가다 말고 일부러 삐딱하게 받는다.

”시골서 모 심다가 오셨나요?”

수행원들의 표정이 일제히 긴장된다. 하지만 나는 마음이 태평하다. 재벌 총수라면 어떤 인생을 살아왔는지 뻔하다. 별별 사람을 다뤘을 테고 무수한 난관을 극복했을 테니, 시시하게 식당 주인이 던진 농담을 갖고 얼굴을 붉힐 소인이 아니다. 역시 내가 예상한 대로 총수가 먼저 분위기를 살린다.

“쥔장이 재밌는 분이군.”

그제야 수행원들의 표정이 도로 밝아진다. 나는 깍듯이 예의를 차린다. “버릇없게 굴어서 죄송합니다. 누추한 집을 찾아주셔서 영광입니다.”

총수는 쥔장도 같이 한잔 하자며 나를 자기 곁에 앉힌다. 그리고 술좌석 분위기가 익어갈 무렵 어이없는 말을 꺼낸다.

“우리한데 장사요령을 한마디 들려주쇼.”

나는 일이 바쁘다는 핑계를 대고 얼른 자리를 뜬다. 나보고 그만 나가달라는 말일 성싶다. 재벌 총수로서 노골적으로 나가달라는 말 대신 그런 우회적인 말을 쓰겠지, 그게 내 생각이다.

“기거이 아니라메. 총수는 진정으로 늬 말을 듣고 싶었을 게라구. 나가달란 말이 아닐 게야.”

허마두가 진지한 표정으로 말한다.

“글쎄.... 하지만 내가 그 자리에서 무슨 말을 하겠니. 무슨 말을 한다는 것이 주제 넘는 짓이지. 그저 총수 기분만 전환시켜드리는 게 도리잖겠어? 아마 총수는 내 말에서 어떤 해방감이 느껴졌을 거야. 남한테서 굽실거리는 대접만 받다가 모처럼 시비조의 농을 듣고 보니 색다른 감정이.....”

“사실 기러티. 일상적인 예우에 실증이 나갔디. 인간은 예우에도 실증이 날 만큼 자유롭고 싶을 때가 있으니께니.”

내 말에 동감을 표시한 허마두는 경쾌한 목소리로 말을 잇는다.

보장된 성공

영산홍 철쭉꽃이 피어나고 있다. 모처럼 허마두가 아침 일찍 나오는 바람에 아내와 셋이 휴게실에서 차를 마실 수 있게 됐다.

“오늘 직제를 발표한댔디?”

“미스 강을 어떻게 대우하면 좋을지 모르겠어. 그냥 둘 수도 없구.”

“능수엄마를 마담 시킬 때 난리를 치렀잖아요. 주방장까지 미스 강을 편들어서 그만두겠다고 옷까지 벗었죠. 미스 강이 선밴데 왜 마담 자리를 능수엄마에게 주느냐는 거지.”

아내의 말에 허마두가 고개를 끄덕인다.

“길쎄, 마담이 둘일 수도 없구....”

“이러면 어때요. 미스 강 봉급을 마담 수준으로 올리고 홀 책임자로 지정해주면요. 그러니까 마담과 홀 책임자는 같은 직급이고 봉급도 같은데 편의상 마담이란 이름을 붙였을 뿐이다, 그렇게 설득시키죠.”

“기러면 능수엄마가 삐치지 않갔시오?”

“그거야 내가 능수엄마를 설득하면 돼요.”

아내가 적극적인 태도를 보인다. 장사 준비를 끝내자 나는 직원들을 홀에 모이라고 지시한다.

“오늘은 그동안 생각해온 직제를 발표하려고 모이게 한 겁니다. 여러분, 손님들이 능수엄마를 뭐라고 부를 때가 있죠?”

“마담요.”

풋내기 아가씨가 대답한다.

“그건 보통 불리는 이름이고 특별한 경우에는 어떻게 불리죠?”

“사모님이라고요.”

팔짱을 끼고 서 있던 미스 강이 대답한다. 능수엄마보다 반년 먼저 들어온 미스 강으로서는 능수엄마의 승진이 못마땅했다. 그 불만이 여태까지 삭지 않아서 사사건건 마찰을 빚고 있다. 나는 그전부터 생각해온 직제를 발표함으로써 불만을 해소할 작정이다.

“손님들이 능수엄마를 사모님이라고 부른다니 나는 물러나야겠네.”

내 말을 가로챈 아내가 능수엄마를 보며 쌩긋 웃는다. 아내의 농담에 웃음꽃이 핀다. 그처럼 분위기를 살린 아내가 이번에는 미스 강 곁으로 가서 나란히 앉아 말을 걸어준다. 나는 아내의 동정을 살피다가 입을 연다.

“그동안 여러분들이 애쓴 덕에 우리 춘천옥의 발전은 눈부실 지경이오. 대한민국을 통틀어도 춘천옥처럼 상승곡선을 그은 업소는 없을 거요. 직원도 사십 명을 넘잖소. 직원 숫자가 이만한 식당은 전국에서도 한두 군데뿐일 거요. 그러니 일반 회사처럼 직제를 두는 것도 효율적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우선 책임자 셋만 지정하겠소. 부장을 세 명, 과장을 네 명으로 정할까 해요. 부장급은 주방장, 마담, 홀 책임자인데 셋은 모두 동등한 위상이오. 다만 주방장이 다른 부장들보다 봉급이 조금 높을 뿐이오. 여러분도 알다시피 주방장과 마담은 이미 정해져 있고 홀 책임자만 없는데, 그 자리를 미스 강으로 정했소. 사실 미스 강은 능수엄마보다 먼저 입사했지만 나이가 어려서 능수엄마를 마담으로 정했던 거요.

과장급은 보쌈팀장, 막국수팀장, 김치팀장, 경리, 그렇게 네 명으로 정했소. 위상은 역시 모두 동등해요. 이제 일반회사처럼 직급을 두었으니 그분들과 함께 의논해서 춘천옥을 세계 최고의 요식업소로 키울 작정이오. 여러분은 누구나 착실히 오래 근무하면 간부가 될 수 있어요. 아직도 우리나라에서는 식당업을 깔보는 경향이 있는데, 유럽 등 선진국에서는 청소년들의 꿈이 식당이오. 레스토랑을 차리는 게 평생 꿈이지. 직원도 외모나 인격면에서 가장 인정받는 직종이어서 가장 우수한 결혼상대로 인정받고 있소. 특히 주방장은 신분상으로도 대단한 권위를 인정받고 있어요.”

“사실 권력 면에서는 주방장이 사장보다 세지.”

아내가 일부러 엄살을 떤다. 아내의 그 말 속에는, 주방장의 성깔이 아니꼽지만 참을 수밖에 없다는 내색이 묻어 있다. 지난달에도 이틀간이나 예고 없이 빠졌잖은가. 봉급을 올려달라면 차라리 속이 편할 텐데, 미스 강이 말을 안 들어준다 해서 술을 퍼마시고 이틀간 사라졌으니 주인 입장에서는 환장할 노릇이다. 그때마다 아내와 나는 미스 강에게 “참아줘.” 하고 애원하기 일쑤다.

주방장을 갈아 치우면 될 게 아니냐, 하지만 그렇게 쉬 생각할 일이 아니다. 주인이 직접 요리하려면 모를까, 막국수 맛이 변하는 날에는 아무리 유명한 업소라 해도 휘청거리기 십상이다. 그래서 주방장 밑에서 일하는 김춘수를 은밀히 후보자로 키우고는 있지만 그 녀석 또한 성깔이 만만치 않다. 입사한지 반년도 안 된 주방 초보자가 보쌈팀과 싸우다가 벽돌을 집어던진 악발이다. 부모 없이 자란 데다 혼자 막 굴러먹었으니, 하얀 살결과 온화한 말투 속에 숨겨진 성깔이 보통 아니다. 강원도 놈이라고 순하게만 보아온 내 판단에 여지없이 흠을 내곤 한다. 녀석의 불꽃같은 성깔을 눙치려고 나는 늘 신경을 곤두세워야 한다. 장사가 끝나면 자식뻘인 김춘수를 데리고 함께 술을 마시며 세뇌시키기 일쑤다.

“우리 업소에 취직하러 들어오는 네 또래가 일년에 백 명이 넘는다. 그런데 너도 알지만 그 중에서 몇 명이나 남아 있니. 세 명도 안 돼. 모두 공장이나 다른 편한 일자리를 찾아갔어. 겨우 몇 달 버티던 애들도 친구 꾐에 빠져 결국 빠져나가고 말지. 친구들이 찾아와 꼬셔낸단 말이다. 춘천옥 귀신이 된다고 누가 알아주냐? 우린 여섯 시에 퇴근해서 디스코장에 가는데 미쳤다고 밤 열 시까지 고생하냐? 그런 식으로 꼬신단 말이다. 그런데 너는 벌써 이년을 넘겼어. 앞으로 넌 출세가 보장된 셈이라구. 앞으로 십 년만 참고 기술과 장삿속을 익혀봐. 그동안 나이도 먹을 테고, 봉급도 저축해서 돈도 모을 테니, 네 고향 읍내에 땅을 장만해서 업소를 차리면 벼락부자가 될 수 있어. 기술, 돈, 경험, 모두 갖췄으니 성공은 보장되잖아? 내 말이 뻥이냐? 맞지? 네 또래지만 다른 놈들은 모두 철이 없잖니? 퇴근하면 가불한 돈 쑤셔 넣고 다방이나 디스코장을 떠돌다보면 장래가 뻔하잖아? 평생 월급쟁이밖에 더 해먹겠어? 그러니 넌 그런 꼴 되지 말고, 죽었구나 하고 딱 십 년만 버텨봐. 나중에 맘 잡아준 내 은공 잊지 말구.”

“십 년이나요?”

“사실은 십 년도 짧아. 최소한 이십 년은 버텨야 장삿속을 완전히 터득할 수 있어. 그땐 사십 대에 접어들 나이니 실패할 리도 없구. 공자님 말씀대로 불혹의 나이란 말야.”

“결혼은 어떻게 하죠?”

“물론 장가는 내가 보내주지. 직원 중에서 두고두고 쓸만한 아가씨를 골라 봐. 예쁘고 배운 아가씨도 얼마든지 생길 거야. 미스 강처럼 참한 아가씨를 얼마든지 만날 수 있어. 경험 있는 여자를 아내로 삼을 테니 꿩 먹고 알 먹고 아냐? 어때? 내 말이 널 오래 있도록 꼬시는 거냐? 네가 판단해 봐. 내 말이 틀리니? 실감나지 않아?”

“실감 나요.”

“네가 생각해도 황당한 말 아니지? 인내심이 그처럼 성공의 첩경이 되는 거야.”

춘수는 인내심이 성공의 첩경이라는 내 말에 “알겠어요.” 라고 대답한다. 나는 춘수와 어깨동무하고 밖으로 나간다. 꼭 아버지와 아들이 어깨동무하고 술집에 가는 형국이다.

태종대 자살바위에 올라서다

오늘 서초동 집으로 이사하는 날이라 춘천옥에는 나가보지 못한다. 이삿짐센터 사람들은 날이 어두워서야 짐정리를 끝내고 돌아간다. 나는 혼자 밤늦게까지 책장을 정리하다가 옛날 일기장을 뒤져본다. 내가 공군을 제대하고 부산에서 고생할 때의 일기다. 그 무렵의 일기 속에 적혀 있는 참담한 내용을 아내에게 읽어주고 싶어 일기장을 들고 안방으로 들어간다.

“기막힌 얘긴데 읽어줄 테니 들어봐.”

나는 아내 곁에 앉아 일기를 읽기 시작한다.

5월 11일

옷이 없어 제대복 차림으로 다시 외판원 모집 사무실을 찾아갔다. 이번에는 치마나 주름을 잡는 액체 풀이었다. 교복 따위를 다림질할 때 뿌리면 줄이 빳빳해져 멋지다는 것이다. 풀병을 들고 우선 가까운 여고를 찾아갔다. 벌써 점심때가 훨씬 지난 모양인지 배가 고팠다. 학교에 도착한 나는 학생들의 눈에 잘 띄는 교문 앞에 보자기를 깔고 갖가지 크고 작은 풀병을 늘어놓았다. 하지만 거들떠보는 학생이 없었다.

“교복을 멋지게 다려 입으세요.”

지나가는 여학생들에게 선전했지만 겨우 고개만 돌려볼 뿐이었다. 해가 기울 무렵에야 늦게 귀가하던 여학생 서너 명이 다가와 에멜무지로 물었다.

“그 병에 든 게 뭔교?”

“네네, 교복 다리는 풀인데요. 한번 다리면 스커트 줄이 항상 빳빳합니다. 이거 한 병이면 일 년 내내 쓸 수 있죠.”

“정말 줄이 지워지지 않능교?”

“그럼요, 저는 거짓말을 못합니다.”

“누가 아저씨한테 거짓말한다 캤능교.”

“처음 장사라 아직 말이 서툴러서…”

“변명은 그만하고예, 혹시 옷이 삭지 않능교?”

“안 삭습니다. 걱정 마세요.”

“처음 장사라카면서 우째 삭는지 안 삭는지 아능교. 그라고, 교복에 너무 멋부리모 후라빠라 욕먹습니더. 다음번엔 필요한 물건을 팔러 오소.”

“고맙습니다.”

“안 팔아주는데 머가 고맙능교. 이 아재 참 어리숙하네.”

학생들은 그냥 돌아가는 게 미안한지 고개를 까딱거렸다. 온 종일 그냥 서 있는 게 지겹던 차라 그 나마의 반응을 보여준 깐깐한 학생들이 되레 고마웠다. 그녀들의 말마따나 안 팔릴 물건 같았다.

일기를 다 읽고 나서 나는 아내의 얼굴을 살펴본다. 그런데 눈물을 흘릴 줄 알았던 아내는 어느새 깊은 잠에 빠져 있다. 아무리 고단해도 남편의 가슴 아픈 역사를 들으면서 잠에 빠지다니. 나는 섭섭한 마음이 들어 아내의 몸을 흔든다. 아내는 몸을 뒤치더니 “어서 자지 않고 뭘해.” 한다.

“잠이 와? 남편의 가슴 아픈 역사를 듣고도 슬프지 않냐구?”

“처음에야 슬펐지.”

“뭐라구?”

“벌써 세 번째거든. 미아리 살 때 듣구, 봉천동 살 때 듣구, 지금 서초동 이사 와서....”

아내는 입을 크게 벌려 하품한다. 아직도 잠에 취한 모양이다. 하품하는 아내가 꼭 돼지 같다.

나는 잠자리에 누웠지만 좀처럼 잠이 오지 않는다. 정신이 더 맨숭맨숭하다. 수정동 산동네 입구에 있는 ‘다리목 순댓국집’이 떠올랐던 것이다. 밥을 덜퍽지게 퍼주는 싸구려 집이었다. 사십 대 과부인 아줌마는 나를 ‘착한 총각’이라고 불렀다. 잘 곳이 없으면 자기네 목로에서 자라고 했다. 고마웠다.

“그라고 내캉 함끼 장사합시더. 묵고 자고 용돈도 줄 테니까네 일하다가 존 자리 생기모 떠나믄 될 거 아이가. 안 그렇소?”

나는 돼지 내장을 씻는 일부터 시작해서 솥에 끓이는 일도 익혀나갔다. 생강과 메밀가루를 넣어 둬 번 삶아서 헹궈내면 냄새가 말끔히 제거되는데 그 과정이 내 몫이었다.

순댓국집에서 잠을 자기 시작하고 며칠이 지나서였다. 한밤중에 아줌마가 방에 들어와 자라고 깨웠다. 나는 추위에 몸이 떨리던 참이라 사양할 겨를이 없었다. 방은 따스했다. 내 잠자리는 어느새 윗목에 깔려 있었다. 아줌마의 자리는 아랫목이었다.

따스한 방에 눕자 이내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새벽녘쯤 되었을까, 잠자리가 뒤숭숭해 깨어보니 여자가 알몸인 채 이불 속에 들어와 있었다. 나는 꼼짝도 못하고 그냥 누워 있었다. 아줌마가 무엇을 요구할지 뻔히 알면서도 당장 쫓겨날 것이 두려워 묵묵히 참고 있었다. 하지만 이내 아줌마의 손이 샅 속으로 들어와 물건을 주물럭거렸다. 나는 일부러 코를 골기 시작했다.

아줌마의 숨소리가 점점 거칠어졌다. 내 사타구니도 주책없이 핏대를 세웠다. 그래도 연방 코를 골며 바로 누워 있기만 했다. 드디어 여자의 몸이 내 위로 슬금슬금 기어올랐다. 그녀는 두 팔을 내 어깨 양 옆으로 세워 상체를 지탱하면서 두 다리를 벌려 내 물건을 감쌌다. 여자의 숨소리가 점점 거칠어졌다. 그래도 나는 죽은 척 누워 코만 골았다. 잠을 깬 척하면 서로 낭패였다.

십여 분쯤 용을 썼을까, 끙끙 신음소리를 내던 여자는 내 허벅지를 두 다리로 감으며 모로 쓰러졌다. 나는 더욱 힘차게 코를 골았다. 후유, 여자의 긴 숨소리를 듣고 나서야 코고는 소리를 그쳤다.

아침을 먹을 때 아줌마는 생글거리며 계란 프라이를 내 밥에 올려놔 주었다. 나는 모처럼 만에 덜퍽진 아침상을 받았다.

“총각 몸이 하도 말라깽이라서 계란 두 개를 구웠지러. 우짜든가 몸 성한 게 최곤기라예. 안 그렁교?”

아줌마가 너스레를 떨었다.

“맞아요. 하지만 나는 몸이 아주 당찹니다. 몸이 좋으니까 잠도 푹 자고 코를 많이 골죠. 한번 골아 떨어지면 누가 떼매가도 모릅니다. 그리고 잠이 깊으면 코를 곤히 곤다고 해요. 수없이 굶었는데도 아직 힘이 존가 봐요.”

“우짠지 어젯밤 코를 되게 골데예. 시끄러버서 내사 잠을 안 설쳤능교. 코고는 사람이사 몸이 건강타지만서도 코를 너무 곱디더.”

“그럼 오늘부턴 밖에서 자지요. 내가 코를 골면 아주머니가 시끄러울 텐데....”

“아이요, 걱정 마소. 아모 걱정 말고 방이서 푹 자소. 추분데 목노서 우째 잘기라고.”

“고마워요.”

나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밥 한 수저를 덜퍽지게 퍼 넣었다. 쌀밥이 입에 가득 차는 그 풍요가 즐거웠다.

“이거 한잔 드소. 해장엔 막걸리가 최곤기라예.”

“이렇게까지 맘을 써주시니 은혜가 태산 같습니다.”

“은혜가 무신 은혠교. 우짜든가 힘이나 썽하소.”

“나야 굶지 않으면 본래 황소 힘이죠. 이걸 보세요.”

나는 팔뚝에 힘을 주고 훌렁 까보였다.

“에그그, 그기 사내 팔잉교. 칠십 노인 팔이나 영락없구마. 어무이 체구가 안 씰했지예?”

“어머니는 몸이 작으시지만 자식들은 모두 실해요.”

“하기사 몸 큰 여자라꼬 실한 얼라 낳는 기 아니지러, 나맨크로.”

“아주머니 애기가 어쨌는데요?”

“비실대다가네 안 죽었능교. 아홉 살 적에.”

아줌마는 눈을 끔벅거리다가 이내 표정을 바꾸어 수굴수굴하게 웃었다. 슬픔을 감추려는 그녀의 수고가 돋보였다.

“당분간은 잠자리 걱정 마소.”

하지만 오래 있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서 돈을 벌어 셋방을 구하리라 마음먹었다. 날마다 신문에서 사원모집 광고를 들춰보았다. 마침 라디오 외판원을 모집한다는 광고가 났다. 서둘러 남포동 대리점을 찾아갔다.

라디오는 전기용과 T-604 등이 있었다. T-604는 트랜지스터로 몸체가 커서 메고 다닐 끈이 달려 있었다. 전축은 아직 국내에서 생산되지 않았다.

장사는 이튿날부터 시작되었다. 라디오를 일수로 팔고 한 대당 수당으로 받는 몇 푼이 수입이었다. 그런데 나는 보증금을 낼 수 없어 카탈로그만 들고 다녀야 했다. 아무리 열심히 뛰어도 공치는 날이 많았다. 남보다 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해도 수입이 뻔했다. 혼자 지내기도 힘들었다. 실물을 메고 다니는 직원들도 외판은 직업이 아니라며 팽개치기 일쑤였다.

당장 부모 모실 일이 큰일이었다. 더구나 청운의 뜻을 펼쳐보기는 이미 꿩 궈 먹은 셈이었다. 희망이 없었다. 나는 도스토예프스키 같은 작가나 니체 같은 철학자가 되는 게 꿈이었다. 그러나 공부할 기회는 점점 멀어졌다. 자살을 결심한 것도 그 무렵이었다.

도박으로 다시 거지가 되다

손님이 좀 뜸한 오후다. 카운터 앞에 서 있는 나를 재식이 먼저 알아본다.

“사장님, 이거 얼마만이죠? 십오 년 넘지요?”

호들갑을 떠는 재식이 낯설어 보인다. 옛날에 차를 닦을 때는 순해빠진 애였는데 덩치도 커지고 호탕해 보인다.

“지금 어디서 뭐하니?”

“수원에 있는 정비공장에서 도장반장으로 있습니다. 공장은 작지만 무척 바쁩니다. 춘천옥 소문을 듣고 일부러 찾아왔죠. 수원에도 춘천옥 소문이 파다합니다.”

“수원 손님이 많아. 안양 손님 인천 손님도 많고. 암튼 반갑다. 너를 보니 기분이 묘하구나.”

나는 재식을 데리고 방으로 들어간다. 힘도 좋고 꾀를 부릴 줄 모르는 착한 애였지만 밤에 주차한 차에서 몰래 휘발유를 빼내 팔려다가 불을 낸 장본인이다. 불이 나자 도망쳤고 그동안 소식을 모르다가 오늘 만난 것이다. 나를 불행하게 만든 놈, 잡으면 죽이고 싶을 만큼 미웠는데 만나니 반갑기만 하다.

“죄송합니다. 진작 찾아봬야 하는데요. 공장 태우고 홧김에 노름도 하셨다죠. 모든 게 저 때문에.... ”

“불내고 어디로 갔었니?”

“부산에 가 있었죠. 참, 사장님도 부산서 대구로 오셨죠?”

“공장이 철거되는 바람에....”

그러니까 서울경찰청 인사과에 사표를 수리해달라고 요청한 게 춘천옥을 개업하기 12년 전이었다. 하지만 사표수리가 되지 않았다. 마음을 돌리라는 상사의 애정이 고마웠다. 정보과장(나중에 국회의원)은 당장 사표를 거두라고 노발대발했다.

“자네처럼 유능한 정보형사가 왜 이래? 서울대학교가 연일 시끄러운데 채증을 누구한테 맡기란 말야? 서울대학교는 자네가 젤 적임자야.”

업무를 핑계 댔지만 사실은 어디서 어떻게 먹고 살 거냐고 걱정하는 말이었다. 고마운 말에 자꾸 눈물이 났다.

나는 사표가 수리도 되기 전에 신분증, 권총, 수갑을 반납했다. 결국에는 사표가 수리 되고 퇴직금도 받았다. 225,000원. 처음 만져보는 목돈이었다. 아내, 아들, 딸 3식구를 데리고 원주를 거쳐 부산에 도착했다.

중앙동 철거지역에 셋방과 공터를 얻어서 자동차 <광택센터>를 차렸다. 부산에서 처음 시도한 업종이라 잘 될지 걱정이었다. 직공 두 명을 구해서 며칠 동안 광고지를 들고 자가용마다 찾아다니며 선전했지만 반응이 신통치 않았다.

주말을 택해 나는 하얀 작업복을 입은 채 직원을 데리고 골프장으로 선전을 나갔다. 동래에 있는 골프장에 도착한 것은 한여름 볕이 따가운 오후였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직원들을 시켜 트렁크에서 장비를 꺼냈다. 둥근 그라인더처럼 생긴 광택기와 왁스통, 콤파운드에 희석제를 섞은 연마제, 변압기와 샌더 등을 꺼냈다. 나는 주차장에 쭉 세워놓은 고급 승용차 중에서 때가 가장 칙칙한 차를 골라 기사에게 말했다.

“이 차를 유리처럼 광을 내줄게요.”

공짜로 닦아준대도 기사는 얼굴을 찡그렸다. 그때 20대로 보이는 젊은 기사가 다가와 손가락으로 광택기를 가리키며 어깨를 깝죽댔다.

“이기 광을 내는 기곈교?”

“네 그렇습니다. 어느 차든 거울처럼 광을 낼 수 있습니다.”

“저거도 광이 납니꺼?”

젊은 기사는 맞은편 줄에 세워진 검은색 지프를 가리켰다. 여기저기 래커 칠로 땜을 한데다 먼지 때가 절어 차 전체가 우중충했다.

“걱정 마세요. 여기 주차한 차 중에서 젤 깨끗한 차로 만들 겁니다.”

“진짠교?”

“못 믿으면 본네트만 그냥 닦아드릴게요.”

작업준비를 끝낸 나는 구경꾼을 모으려고 차 보닛에 광택기를 대고 스위치를 올렸다. 왕왕대는 소음이 온 주차장에 진동했다. 그늘 밑에 삼삼오오 모여 있던 기사들이 작업광경을 보러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나는 보닛에 콤파운드액을 묻히고 기계로 갈며 직공들에게는 걸레로 구석구석 닦게 했다. 거기에 왁스를 칠하고 융 걸레로 닦자 보닛은 거울이 되어 햇살을 튕겼다. 나뭇잎들이 그 거울 속에서 너울너울 춤을 추었다.

“와아 기똥차데이!”

“잇찔이구마! 똥차가 왕 됐다카이!”

여기저기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성공이었다. 공장에 손님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그런데 개업 두 달만에 집과 공장이 철거되는 바람에 문을 닫고 대구로 떠나야 했다. 모든 걸 포기하고 용달차에 가족을 싣고 처음 가보는 대구로 향했다.

명덕로터리에 있는 공터를 월세로 얻어 천막을 쳤다. <로터리공업사>라고 쓴 간판을 내걸고, 부산에서처럼 골프장을 찾아가 선전하니 금방 자가용이 밀려들었다. 대구 역시 광택이 처음이었다. 도꼬이(단골)는 부산보다 더 의리를 지켰다. 한번 다녀간 손님은 우리 공장만 찾아왔다. 대구 시내에는 기업적인 큰 공장이 여러 군데 있었지만 직공 댓 명을 데리고 일하는 우리 업소에만 종일 차가 밀렸다.

중동전쟁으로 유류파동이 일어난 바람에 길거리에 차가 뜸했지만 우리 공장은 늘 바빴다. 내 신용 때문이었다. 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차를 출고시키지 않고 더 다듬어주었다.

“제 맘에는 차지 않아요. 이대로 나가시면 제 신용이 떨어져요.”

나는 신용을 생명처럼 여기며 살아갔다. 아버지는 내가 어릴 때부터 늘 신용을 지키라고 말씀하셨다. 보릿고개 시절 봄철에 쌀을 꿔먹고 가을에 갚을 때도 아버지는 꼭 쌀을 키로 까불어 뉘를 가리고, 발로 말을 툭툭 쳐서 한줌이라도 더 담아지게 했다. 아버지의 그런 신용정신은 내 몸 속에 육화되어 내 생을 건실하게 지켜주었다.

날이 갈수록 고객 차가 줄을 섰다. 개인 승용차와 회사차는 물론 도청 차, 시청 차, 법원 차, 검찰청 차, 영남대 차, 계명대 차, 심지어 미군부대 차까지 단골이 되었다. 까다로운 외국인 고객도 우리 공장에 들어오면 마음이 놓이는지 “베리 굿!”을 연발했다.

일에만 열중하다 보니 내 꼴은 거지꼴이었다. 수염을 깎을 새도 없었다. 추운 겨울날이었다. 일을 하다 말고 공장 옆에 있는 다방에 갈 일이 생겼다. 대구에서 가장 큰 ‘제일택시’ 사장이 만나자고 했던 것이다. 다방에 들어가니 톱밥 난로가 열을 뿜어내고 있었다. 나는 난로 곁으로 가서 몸을 녹이며 홀을 두리번거렸다. 저쪽 구석에서 제일택시 사장이 나를 보고 손을 흔들었다. 그때였다. 난데없이 누가 내 배를 쳤다.

“어서 나가!”

다방 마담이었다. 나를 거지로 본 모양이었다. 나는 빙그레 웃으며 사장이 앉아 있는 자리에 가 앉았다. 택시회사 사장이 그 거지를 반기는 모습을 본 마담이 얼른 동석하며 사죄하는 뜻으로 아양을 떨었다.

“이를 우쩌먼 좋으니꺼.”

“아니, 로터리공업사 기 사장을 모른다카이 말이 되나.”

사장이 껄껄 웃자, 마담은 거듭 머리를 조아리고 나서 서비스로 위스키티 두 잔을 챙겨오며 홀에서 서빙하는 아가씨들을 불렀다.

“느그들은 기 사장님 얼굴도 모르나? 내가 이래 죄를 짓도록 말이더. 응?”

“지들도 매일 로터리공업사에 커피배달은 하지만도, 이분이 사장님이신 걸 몰랐심더. 직원인줄 알았심더. 저런 분을 우째 사장님인 줄 알겠능교.”

나는 넉넉한 웃음을 날려주었다. 그처럼 잘 나가던 공장에 불이 났다. 고급 외제 차 등 주차한 차들을 모두 태우는 바람에 다시 거지가 되었다. 그래도 기술과 시설이 남아 있어 재기할 수 있었는데, 이번에는 화투에 홀려 진짜 거지가 되고 말았다.

불에 타버린 공장을 보며 시름에 잠겨 있을 때였다. 예전에 단골손님이었던 자가용 운전기사가 기분 전환하러 나가자고 꾀었다. 그는 나를 데리고 변두리 동네 구석 집으로 데려갔다. 안방에서는 화투판이 벌어지고, 그날 나는 돈 몇 푼을 땄다. 그게 미끼였다.

이튿날부터는 정식으로 노름판에 끼게 되었다. 노름꾼은 나까지 모두 6명인데 그 중에는 관광버스 사장, 건설회사 사장, 지물 도매상, 대형 중국집 사장도 끼어 있었다. 우리를 뒤에서 돌봐주는 패거리로는 장소 제공자, 돈 대주는 물주, 식사를 제공해주는 식모, 오줌 요강을 대주고 음료수를 사다주는 처녀까지 가지각색이었다. 그들은 모두 수고비를 몇 배로 챙겨 결국 노름꾼들의 돈은 그쪽으로 흘러가게 마련이었다.

화투판에 나간지 석 달 만에 나는 거지가 되고, 관광버스는 버스를 날리고, 도매상은 거래처를 날리고, 건설회사는 부도를 내고, 중국집은 식당을 날렸다. 중국집 사장은 아버지가 홧김에 목매 자살했는데 장례를 치르자마자 다시 화투를 잡았다. 그는 탈탈 털리고 나서도 노름판 뒷전을 맴돌며 개평을 뜯어 먹고 지냈다. 그 사람은 지금 어디서 깡통을 차고 다닐까?

참 묘한 일이었다. 만약 그때 내가 노름판에 끼지 않았다면 지금 춘천옥을 운영하고 있을까? 처자식을 굶길 수 없어 부득이 서울로 떠나야 했고, 그 바람에 포장마차를 하게 되었고.... 그렇게 생각하니 노름판에 끼길 잘했고, 노름판에 끼도록 동기 부여한 재식의 실화가 고마웠다. 만약 재식이 불을 안 냈다면 지금까지 차를 닦고 있을지 모른다.

배추를 짜게 절여달라

“우리 복잡하게 생각 말고 간단히 계획을 세워요. 평강댁이 문형 부인 맞죠?”

“당연하죠.”

박 사장의 말에 문씨가 명쾌한 대답을 날린다. 그들은 소주 한 병을 금방 비우고 또 한 병을 시킨다. 불판 위에서는 삼겹살이 자글자글 익고 있다. 박 사장은 문씨와 어울리면 춘천옥을 넘어뜨릴 무슨 해법이 생길 것만 같은데, 손에 잡힐 확실한 성과가 없을 것만 같아 불안해진다.

“세상에서 문형과 가장 친한 사람은 부인이니, 부인을 설득하는 건 쉬운 일이겠죠?”

“그거야 식은 죽 먹기죠.”

“그래요. 식은 죽 먹기죠. 그런데 식은 죽 먹기가 아니란 데에 문제가 있는 거라구요.”

“예? 무슨 말씀이세요?”

“저번 일을 보니 보통 문제가 아니더라구요. 문형은 부인하고 가장 친한 게 아니라 가장 먼 적이더라 그 말에요. 왜 그렇죠?”

“걱정 마세요. 그거야 간단해요.”

“또 몽둥이찜을 생각한 것요?”

박 사장은 답답하다. 이런 인간에게 중책을 맡길 수밖에 없으니 앞일이 막막하기만 하다.

“몽둥이 대신 밤에 잘 껴안아 줘야죠. 여자 맘을 그렇게 몰라요? 정성껏 껴안아주면서 사랑한다고 속삭이란 말요. 거기다 눈물을 글썽이면 여자는 환장하게 마련이지. 그런데 겨우 몽둥이찜을 생각하오?”

“무슨 말씀인지 알아요. 그거야말로 식은 죽 먹기죠.”

“다시 말하지만 간단한 일을 어렵게 만들지 말라구요.”

“내가 왜 어렵게 만든다고 그러세요? 자꾸?”

박 사장은 문씨의 손을 꽉 잡고 일부러 손을 부르르 떤다.

“죽이는 일야!”

“예?”

“죽이는 일이라구.”

“누구를....?”

“춘천옥을 죽여야 문형과 내가 크게 성공한다구.”

“어떻게 죽이려구요?”

“너무 간단해. 짜게만 저리면 돼.”

“뭐를요?”

“배추!”

“배추를 짜게만 저린다?”

“그것뿐이야.”

“그리 쉰 일을 갖고 우리가 길게 고민한 거네요.”

“....”

“왜 말씀을 안 하세요?”

“문형 부인이 그 일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소.”

“참 사장님도, 걱정할 걸 걱정하셔야죠.”

“보통 걱정거리가 아니죠.”

박 사장은 벌떡 일어난다.

“오늘은 술 그만 해요. 문형이 평강댁 맘을 돌린 후에 마시자구요.”

밖으로 나온 박 사장은 휭 차를 몬다.

“저 사람이 돌았나? 식은 죽 먹기보다 더 쉰 일을 갖고 저렇게 끙끙대다니?”

문씨는 혼자 피씩 웃고 나서 담배에 불을 댕긴다. 그때 멀리 사라진 박 사장 차가 도로 돌아오고 있다. 박 사장은 자기가 제안한 일이 너무 비양심적인 일인데다 자칫 법망에 걸릴지 몰라 방금 세웠던 계획을 취소시킬 마음이다. 평강댁을 시켜 배추를 짜게 저리거나 아주 싱겁게 저려서 제 맛을 내지 못하게 할 작정이었는데, 막상 그렇게 시키려니 무척 조심스러웠던 것이다. 평생 문씨에게 약점을 안고 사는 꼴이어서 겁도 나거니와 만약 평강댁이 남편 말을 듣지 않는다면 더욱 큰일이었다.

“왜 돌아오신 거에요?”

“문형, 아까 내가 한 말은 좀 더 생각을 해봐야겠소. 아무래도 별 효과가 없을 것 같아요. 주인이 금방 맛을 알아볼 텐데, 공연히 부인만 신용을 잃게 되고 결국은 문형한테도 이득 볼 게 없을 것 같소. 다른 방도를 연구해봐요.”

“그러고 보니 그렀네요. 김치 맛이 이상하면 제 식구만 난처해지겠죠. 박 사장님 말씀대로 우리들 생각이 짧았나 봐요.”

“맞아요. 하루 이틀 김치가 짜다고 춘천옥 망할 리도 없구.”

그날 밤 문씨는 평강댁을 끌어안고 마음을 떠본다. 춘천옥 김치만 짜게 해주면 큰 돈을 주겠다는 사람이 있다고 말을 흘려본다. 그러자 평강댁은 남편의 몸을 떠밀면서 버럭 소리를 지른다.

“우리 일가족 죽어버리자구.”

“뭐야? 이 여편네가?”

“춘천옥에서 쫓겨나면 이나마도 못 살 틴디 워떻게 허냐 말여. 춘천옥 만큼 대접해주는 디가 읎을 틴디. 나도 다른 데서는 일하고 싶잖응게.”

“그냥 해본 소리야.”

“박 사장인가 그 인간하고 놀아나는 모양인디....”

“이 여자가 지금 뭔 소리야.”

“사모님도 눈치 채고 있응게 조심혀. 굶어죽고 싶으면 박 사장하고 놀아나든가 멋대로 하라구. 그러구 앞으로 허튼짓 했다간 그대로 일러버릴 팅게 알아서 혀. 그분들도 참는 데 한계가 있어. 자칫하면 쇠고랑 찰 줄 알라구.”

“다 처자식과 먹고살자는 일야.”

“뭐여? 먹고살자는 일이 기껏 그런 못된 짓? 나 춘천옥에서 쫓겨나믄 혼자 몰래 내뺄팅게 알아서 혀. 증말 당신 같은 인간하군 살기 싫응게 조심하라구. 인자 당신한티 매 맞고 살기 싫어. 한번만 내 몸에 손대면 새끼고 지랄이고 모다 팽개치고 내뺄 팅게 그리 알어. 예전에는 새끼 땜에 도로 겨들어왔지만 인자는 애들이 컸응게 옛날과 달러.”

“알았어.”

문씨는 아내를 도로 껴안았지만 평강댁은 몸을 벌떡 일으킨다.

“환장하겠구먼. 이 인간이 언제나 철들 건지....”

“여보, 미안해. 그동안 내가 잘못했어. 앞으로는 당신한테 절대 나쁜 짓 안 할 거야. 하기야 내가 평생 바람피운 적 있어? 술 좋아한 것뿐이잖아.”

“바람 필라도 돈이 있어야 피지. 빈털터리한티 어느 년이 달려들 거여.”

“내 맘속에는 당신뿐이란 뜻이지.”

문씨는 평강댁을 냅다 끌어안는다. 품안에서 평강댁이 발버둥을 쳤지만 남자 힘을 당해낼 수 없다.

“이건 강간여.”

“부부간에 강간이 어딨어.”

평강댁의 몸은 벌거숭이가 된다.

“후유, 이 웬수....”

어느새 평강댁의 팔이 사내의 등을 껴안고 있다. 몸을 풀고 난 문씨는 혼자 미소를 짓는다. 박 사장과 황 사장한테서 건네받을 돈 봉투가 눈앞에서 어른거린다.

88올림픽 특정업소

“오늘자 몇몇 신문에 올림픽 특정업소가 실렸더군. 금천구는 춘천옥 보쌈과 막국수가 선정됐어.”

이 교수한테서 걸려온 전화다. 친구는 보도의 요점을 설명해준다. 서울시 각 구마다 소문난 특정 메뉴를 정해서 올림픽 때 활용한다는 내용이다. 종로구는 무엇, 서대문구는 무엇, 영등포구는 무엇, 용산구는 무엇, 그런 식인데 동대문구는 홍릉갈비, 마포구는 마포갈비, 그리고 금천구는 춘천옥이 선정되었다. 내년에 열리는 올림픽 준비의 하나로 외국 관광객들이 들릴 업소를 정부 차원에서 선정한 모양이다.

춘천옥은 위생시설에 정성을 쏟는 중이다. 특히 화장실에 신경을 쓰는데 88올림픽을 앞두고 화장실 문화가 새롭게 번지고 있었다. 춘천옥에서는 화장실을 내실의 중심 공간으로 여겨 꽃병까지 놓아두고 서울시장의 표창까지 받았다. 화장실에 대한 표창장이 처음에는 어색하게 여겨졌지만 나중에는 너무 값진 표창임을 깨달았다.

서울 시내 공중변소도 새롭게 단장되어가고 있었다. 물론 관청이 앞장서서 지도하지만 가는 곳마다 냄새가 진동하고 지저분했던 공중변소가 개축되고 미화되었다. 업소의 화장실도 내실 개념으로 인식이 바뀌었다. 점점 화장실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국민정서로까지 번져갔다. 화장실 선진화는 개인과 국가의 정신적, 물질적 선진화를 상징하며 한국인의 문화수준을 향상시키는 데에 크게 공헌할 것이었다.

점심시간 무렵이다. 축구 국가대표선수인 H선수(현재 국가대표 감독)가 갓 결혼한 아내와 현관에 들어선다. 남편이 한국 축구를 대표하는 선수라면 아내는 한창 연예계에서 인기를 누리고 있는 미모의 여성이다. 나는 단골손님인 그들 부부를 외딴 방으로 안내하고 함께 동석하곤 한다. 그들 부부는 인기인의 이미지와는 다르게 알뜰한 여느 부부처럼 소탈하다. 특히 H선수의 미소에는 그라운드를 종횡무진 누비는 축구선수의 이미지와는 사뭇 다른 수줍음이 배 있다.

C선수와 함께 80년대 한국 축구의 대표 스타로 부각된 선수다. C선수가 ‘갈색폭격기’로 통했다면 H선수는 ‘진돗개’로 통했으며, C선수가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한창 인기를 모을 때 H선수는 히딩크가 한 때 감독으로 있었던 네델란드의 아인트호벤 구단에서 뛰었다. 그는 86년 멕시코 월드컵 출전을 위해 C보다 앞서 귀국하게 된다.

아시아 예선에서 일본을 물리치고 오랜만에 자력 진출한 한국은 아르헨티나, 불가리아, 이탈리아 등 유럽 및 남미의 강호들과 겨루게 된다. 한국팀은 차범근, 허정무, 최순호, 김주성 등 최강의 멤버로 짜여졌지만 세계축구의 강호들과 겨루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아르헨티나와의 첫 번 째 경기에서 한국은 3대1로 졌지만 월드컵 본선에서 최초로 얻은 득점골이라는데 의미가 컸다. 더구나 이탈리아전에서 3대2의 성적을 낸 것은 큰 성과로 평가될 수 있는데 거기에 H선수가 한 골을 추가시켰던 것이다.

“아르헨티나 전에서 후반에 마라도나를 마크했는데 정말 힘들었죠?”

내 조심스런 물음에 그는 곤혹스런 표정을 짓는다. 세계 매스컴이 태권도축구라고 비아냥댔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라도나의 독무대를 그냥 두고만 볼 수는 없었을 것이다.

“이탈리아전에서 후반 사십삼 분에 기적 같은 골을 날렸는데, 기분이 어땠어요?”

내 달뜬 칭찬에도 그의 말은 여전히 담담하다. 승리하지 못한 데에 대한 부담감인 듯싶다. 어쨌든 한국이 월드컵 본선에 가차 없이 출전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데에 86’멕시코월드컵은 한국축국의 명예로운 전환기로 삼을 만하다.

점심시간이 끝나고 한가해질 무렵 아내가 우리도 새로운 경영전략을 세워보자고 말한다. 나는 허마두, 능수엄마, 미스 강을 데리고 아내를 따라 휴게실로 들어갔다. 자리에 앉자 아내가 먼저 말문을 연다.

“세상이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데 구태의연할 순 없죠. 우린 그동안 내용적인 면만 치중해왔는데 형식적인 면에도 관심을 두자는 거죠. 화장실 개량처럼 가장 중요한 일에 소홀해온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직원들에게도 경쟁력을 길러준다든가. 새로운 발상을 가져보자구요.”

아내의 말이 신선한 자극을 준다. 타성에 젖어있는 줄 알았는데, 아내의 고심이 고맙기만 하다.

“사장님, 화장실을 이쁘게 꾸며보이소예. 꽃병도 놔두고 촛불도 켜두고, 그라믄 분위기가 훨씬 살 거 아닝교.”

능수엄마가 놀라운 제안을 한다. 혹 가정집은 몰라도, 화장실에 꽃병을 놓거나 촛불을 켜둔 업소는 서울 시내에 하나도 없을 것이다.

“능수엄마레 발상이 대단하외다. 아주 천잽네다.”

“당장 그런 식으로 공사를 하라구.”

나는 아내와 허마두에게 말했다.

 

 

2부에서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