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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수엄마 2부

2014.10.02 15:21

잔아 조회 수:1627

2부

전문메뉴를 개발하라

가물치론(論)

새우젓을 사러 가면서 웃긴 이야기

병원장 사모님이 직원으로

내 눈은 못 속여

슬픔을 즐겨라

정말 미치겠네

눈물을 안고 떠난 여자

위험한 동거

도대체 원인이 뭐야

동해바다로 대이동

주방장 범도가 떠나다

미스 강, 나를 불행하게 만들어다오

아내와의 전쟁

500원 주고 산 아내

사단장님 고마워요

민주가 일류 사기꾼이 되었다고?

우리 새로 출발합시다

어린 주방장 김춘수

광화문 네거리에서 오줌 눠봐

아버지가 뒈졌다구?

참회의 눈물

이상한 뭔가가 있어

요식업은 종합예술이다

머리 싸맨 능수엄마

너를 버릴 수 없구나

춘천옥 신축공사

변신

춘수 애인을 직원들 앞에 세우다

능수엄마와 미스 강 싸우다

항상 새벽이어야 한다

슬픔은 젤 무서운 귀신이디

춘천옥은 신(神)을 만드는 곳

 

 

 

 

전문메뉴를 개발하라

춘천옥이 쉬는 날이다. 나는 명륜동으로 홍대성을 찾아가는 길이다. 진작 찾아가야 할 곳이지만 차일피일 미뤄진 것이다.

뒷골목에 <명륜 삼겹살>이란 간판이 보였다. 안으로 들어서니 이십여 평 되는 자그마한 식당인데 삼겹살 전문집처럼 써 붙인 간판과는 달리 메뉴판에는 된장찌개, 김치찌개, 순두부, 동태찌개, 매운탕 등 기본식사 메뉴도 붙어있다. 그들 부부 말고도 주방에서 일하는 아줌마 하나를 두고 있는데 몸이 굼떠보인다.

점심시간이 조금 지났을 뿐이지만 손님이 하나도 없다. 잘 될 리가 없어 보인다. 특징도 없고, 분위기도 어설퍼 보인다. 손님은 식당에 들어섰을 때 그 업소에서 풍기는 활달한 분위기, 일테면 생기가 넘치고 푸짐하고 덜퍽진 분위기가 느껴져야지 썰렁한 기분이 느껴지면 발길을 돌리게 마련이다.

홍대성 부부와 이야기하는 동안 한 쌍의 60대 손님이 들어온다. 내가 시범을 보이려고 직접 나선다. 재빨리 물을 떠다주며 쾌활한 얼굴로 주문을 받는다.

“벌써 봄기운이 느껴지죠?”

삼겹살 주문을 주방에 알리고 나서 일부러 손님에게 말을 걸어본다. 친밀한 사이의 남녀가 왔으니 간단히 분위기를 살려줄 참이다.

“그렇네요. 세월 빠르지요.”

남자가 내 말을 받는다. 한마디가 아니고 세월이 빠르다는 말까지 보탠 것으로 보아 내 말을 귀찮아하는 것 같지는 않다.

“저는 고향이 시골이라 봄에 대한 느낌이 유별나거든요. 어린시절 따스한 뒷산 골짜기에서 몰래 담배 피우던 추억이 먼저 떠오르죠.”

“어린시절이면, 몇 살 땐데요?”

“초등학교 오학년쯤 됐을 거에요.”

“어머, 초등학생 때요? 요즘 말로 문제아네요.”

여자가 웃으며 끼어든다. 나는 주방에 대고 반찬부터 갖다드리라고 소리친다.

“철없는 저보다 동네 형들이 문제였죠. 어린이에게 담배를 피우게 하다뇨. 그 형들 중엔 제 사촌형도 끼어 있었죠. 하기야 그 시절엔 담배가 해롭다는 걸 몰랐으니까.”

손님이 음식을 먹고 나가자 나는 홍대성 부부를 앞에 앉혀놓는다.

“불판을 보고 손님한테 민망했어요. 반질반질하게 닦아얄 텐데 때가 껴서 얼굴이 화끈거렸어요.”

나는 부인을 거침없이 닦달한다. 부인은 아무 말 없이 눈만 끔벅거린다.

“내 말 듣기 싫으시면 입 다물게요.”

“아녜요. 왜 그런 말씀을 하세요.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어요. 오신 김에 많이 가르쳐주세요.”

“아까 내가 손님에게 한 태도를 보셨죠? 손님에게 썰렁한 분위기를 보이면 안 돼요. 손님이 없어도 바쁜 것처럼 보여야죠.”

“옳은 말야.”

“너는 입 다물어. 지금 제수씨하고 이야기하는 중이야. 너는 장사 폼부터 익혀야 돼. 만날 술에 빠져 사니까 장사 폼이 잡히겠어?”

“어쩌면 이렇게 제 속을 알아주시는지....”

부인이 내 역성을 든다. 나는 친구에게 계속 화살을 쏜다.

“네놈이 적극적인 태도를 보여야 제수씨도 흥이 나고 직원도 태도가 달라져. 장사는 그냥저냥 하는 게 아니잖아. 네놈이 세상 원리를 몰라서 그래? 왕년에 재산 날려먹은 얘기나 노닥거리지 말고, 이젠 피해의식에서 벗어나라구. 실패 없는 성공 봤니? 너는 나보다 몇 배 행운아야. 지금 이것도 작은 밑천이 아니라구. 죽기 아니면 살기로 덤벼봐.”

“고마워요. 저도 달라지겠어요.”

부인의 눈자위에 물기가 맺힌다.

“주방도 저게 뭐니. 주방이 더러우면 밥맛 나겠어? 네 밥상이 저렇게 지저분하면 밥을 먹겠냐구?”

“제 탓이지요. 이렇게 살다보니 저도 나태해지고, 희망도 없고....”

“그런 정신이면 왜 지금까지 살고 있어요? 일가족 자살하잖구? 깔끔한 손님들은 저 꼴 하나만 봐도 이집의 음식맛과 위생상태를 파악한다구요.”

“면목 없다.”

“메뉴도 문제야. 메뉴가 아홉 가지나 되는데 일단 메뉴로 올려지면 책임을 져야해. 너 아홉 가지를 모두 자신 있게 맛낼 수 있어? 예를 들어 순두부가 자신 없는데 손님이 순두부를 시켰다면 어쩔래? 된장찌개가 자신 있다면 순두부 때문에 된장찌개까지 이미지가 나빠지잖아? 또 메뉴가 많으면 마진도 줄어. 단일 메뉴는 준비가 간단하잖니. 원가절감이 가능해서 가격 경쟁력도 높아지구.”

나는 주방 시설을 살펴본다. 시설이나 도구의 능률적인 활용 등 지적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예를 들어 메뉴에 필요한 도구를 어느 위치에 어떤 식으로 두느냐에 따라 손놀림이 빨라지고 음식 제조 시간이 절약되어 서비스의 질을 높일 수 있다. 또 일이 능률적이어서 인건비도 줄일 수 있다.

“이래가지고 밥을 굶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다. 도대체 너 어떤 인간이야?”

나는 부인에게 하고 싶은 말을 친구에게 빗대어 말한다.

“너 매일 구석구석 윤나게 닦아. 못하겠으면 오늘 밤 쥐약 먹고 뒈져. 네가 뭐가 못나서 이렇게 초라하게 사니?”

“네 충고 고맙다.”

“그 따위 소리 말고, 정신 차려. 우선 삼겹살 맛을 더 낼 수 있도록 굽는 시설이나 파무침 같은 서비스 품목에 신경을 쓰라구. 삼겹살로 여러 가지 상품을 만들어봐. 예를 들자면 와인삼겹, 녹차삼겹, 허브삼겹 같은 걸 연구해보라구. 간판도 삼겹살이니까 전문적으로 키워 봐. 누구도 알지 못하는 노하우가 있을 테니 그걸 찾아내. 그릇도 바꿔봐. 비싸지 않으면서 신선한 이미지를 풍기는 제품으로.”

“알았어.”

“또 하나 중요한 게 있다. 너한테 그 무엇보다 급한 게 말투와 친절미야. 손님을 끌 수 있는 말을 늘 염두에 두라구. 힘들겠지만 변신해 봐. 나도 처음엔 입이 안 열려서 손님을 맞아들이긴커녕 피했어. 일에 미치다보니까 문리가 터지더구나. 이제 술 가져와. 한잔 하자.”

“좋아!”

“좋아? 그럼 나 안 마셔. 새로운 각오를 축하하자는 의미로 마시자는 거지 네놈 주벽에 공헌하자고 마시자는 게 아냐.”

“나도 마찬가지야. 각오를 다지자는 의미로 마시자는 거지 술탐이 나서 좋아한 게 아냐.”

“정말야?”

“그래.”

“너 이제 술도 계산해서 마셔. 뭔 소린고 하니 한 잔이든 두 잔이든 술탐 때문에 마시는 게 아니고, 손님의 흥을 돋아주거나, 아니면 어떤 장삿속 때문에 마시라는 말야. 그러니 취하면 절대 안 돼. 내 말이 뭔 뜻인지 알아?”

“알아. 음주도 수익성을 높이는 도구로 여기라는 거지.”

“그리고 너한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어.”

“뭔데?”

“일류 사기꾼이 되라는 거야. 사기를 치라는 말이 아니라 사기가 뭔지를 알라는 말이다. 한 사회의 구성원이 100명이라면 그 중에서 두세 명만 사기꾼이면 그들에게 나머지는 먹힐 수밖에 없어. 그러니 백 명 모두 사기꾼이 돼얀다구. 그래서 너도 사기꾼이 되라는 거야. 우리 같은 경찰출신은 법을 다뤄봤으면서도 아주 쑥맥이라구. 바보란 말이다. 사회에 나와 보니 우리 같은 바보가 없더라구.”

“방에 들어가 편안히 한 잔 하자.”

“여기 홀에서 마셔.”

“방이 편하잖아.”

“우리가 손님처럼 보이게 해야지. 홀이 텅 비어있으면 들어오려던 손님도 발길을 돌리잖아.”

“그거야 알지만....”

“알면서 그래?”

“그나저나 너 같은 학자 타입이 언제 그렇게 변했니?”

“너도 죽자사자 덤벼 봐. 확 달라진다구. 우리 진화론 배웠잖아.”

홍대성이 머리를 주억거린다.

“그럼 한마디만 더 하고 떠날란다. 절대 자리를 뜨지 마. 손님은 주인이 있어야 그 업소에 믿음이 간다구.”

어떤 일이 생겨도 영업장소를 비우지 말라는 당부를 남기고 나는 밤이 늦어서야 명륜동을 떠난다.

춘천옥 홀에 불이 켜져 있다. 쉬는 날인데 이상하다. 안에 들어가 보니 허마두, 아내, 능수엄마 셋이 어울려 술을 마시고 있다. 허마두가 두 사람을 불러내 어울린 모양이다. 그는 나를 보자 어이없는 말을 꺼낸다.

“네놈 6‧3비상계엄 때 내가 한 말 기억나네?”

“얘가 지금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야? 이십 몇 년 전에 네가 한 말을 어떻게 기억하란 말야. 네놈 유언장이라면 몰라도.”

“기때 내가 이런 말을 했디? 서울은 바빠개디구 네놈 만나기 힘드니께니 차라리 시골로 꺼디라구. 네깐놈은 공돈 뜯을 재간도 없구, 와이로 먹을 줄도 모르구, 반골 기질이라 출세하기도 글렀구, 기러니께니 시골 지서에서 촌색시 델구 연애하는 거이 최고라구,”

“그렇게만 살았으면 얼마나 행복했겠니.”

“지금도 늦지 않았으니 해봐요.”

아내가 말한다. 술을 못하는 아내의 얼굴이 붉으레하다.

“네놈이 우리 마누라를 꼬시고 있구나. 그래 두 남자가 한 여자하고 살지 뭐.”

“정말이네? 늬도 무척 개화했군 기래.”

“내 팔자가 늘어졌네요. 하루는 이 남자 하루는 저 남자....”

밤이 깊어지고 있다.

“우리 모처럼 2차 갈까?”

내 말에 허마두가 손을 내젖는다.

“미치긴. 몇 신데 어델 가자는 게야?”

가물치론

“너는 춘천옥과 원수져서 이득 볼 게 뭐냐?”

모금정 박 사장에게 그의 친구가 묻는다. 한참 동안 입을 다물고 있던 박 사장이 한숨을 내쉬고 나서 친구의 얼굴을 바라본다. 그 친구는 지난번 담배꽁초사건을 일으킨 장본인이다.

“그냥 그래. 그냥 기분이 찝찝해서 그래. 물론 춘천옥과는 메뉴가 다르니까 신경을 끌 수도 있지. 우리는 등심, 안심, 갈비, 차돌백이, 육회 같은 쇠고기만 다루니까 춘천옥과는 부딪칠 게 없지만 그냥 기분이 안 좋아.”

“그런 막연한 말이 어딨어?”

“네 질문이 어려우니까 내 대답이 막연할 수밖에.”

“내 말이 회의적이다, 그 말야?”

“....”

“나는 네 심정을 솔직히 알고 싶어서 한 말야. 네 말에 무조건 맞장구만 칠 게 아니라, 네 생각을 검토해보자 그거지. 내가 그걸 확실히 인식해야 적극성을 띨 것 아냐?”

“네가 장삿셈이 뭔지를 몰라서 그래. 잘되는 집 그늘에 가려지는 심정, 그걸 안 당해본 사람은 모르지. 검토도 필요 없어. 패자와 승자, 간단한 결과만 있을 뿐이라구.”

“이웃간의 경쟁업체가 오히려 그 경쟁을 가물치로 여기는 경우도 있잖아.”

“가물치?”

“그래.”

“가물치라니?”

“민물고기 장사가 흔히 쓰는 요령이지. 예를 들어 붕어를 두 함지에 담아놓고 판다면 가물치를 넣어둔 함지의 붕어가 더 오래 산다는 거지. 잡혀먹지 않으려고 긴장하니까.”

“스트레스가 보약이 된 셈이군.”

“그렇지. 잡아먹히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치니까 오래 산거지. 그러니 춘천옥 잘하는 것만 골라서 보약으로 써먹으라는 말이다.”

“경쟁업체 둘이 서로 가물치 역할을 한다는 말이군. 요즘 말로 윈윈작전이라 그거지?”

“그래.”

“내가 노리는 게 바로 그거야. 춘천옥이 너무 급성장하니까 어쩔 수 없는 것뿐야..”

“그럼 모금정도 춘천옥 메뉴로 바꿔서 확 붙어 봐. 이판사판인데.”

“그게 바로 네 허점이지. 그게 쉬운 줄 아니? 너는 돈으로 밀겠다는 거지만 돈보다 더 무서운 게 있어. 그걸 춘천옥이 지니고 있다 그 말이지.”

“그게 뭔데?”

“알아보는 중야.”

“맛내는 기술이나 재력 말고 또 뭐가 있다구?”

“누구나 그렇게 생각하지만, 그것 말고도 다른 뭐가 있어.”

“먹는장사 노하우 하면 뻔하잖아?”

“그러니까 알아내기가 어려운 거지.”

“그렇다면 더 말할 필요가 없네. 이미 승자와 패자는 결정됐으니.”

“그래서 대승옥을 이용하려는 거야. 대승옥 처남은 전투요원으로는 탁월하거든. 그의 힘을 빌려 춘천옥을 약화시킨 후 윈윈작전을 펼 참이라구. 거기서 잘 되면 우리가 단독 승자가 될 수도 있고.”

“내 생각엔, 메뉴가 다르니까 서로 협력해서 이 골목으로 손님을 끌어들이면 좋잖을까싶어.”

“글쎄 네 말을 모르는 것 아냐. 그러나 춘천옥이 너무 튀어서 도저히 윈윈이 안 돼. 잠시나마 춘천옥에 브레이크를 걸 수 있는 여건이 필요하단 말야.”

친구는 박 사장의 말이 섬뜩하다. 처남의 업소까지 자기 잇속에 이용하려는 박 사장의 계책이 어리둥절하다. 하지만 박 사장은 박 사장 대로 약은 수를 쓰고 있는 중이다. 그 친구가 돈을 더 꿔줬으면 하는 판에, 처남마저 남으로 여긴다는 철저함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다. 그 친구는 은연중 처남 황 사장을 경계하고 있었다. 모금정을 싼 값으로 인수하려고 돈을 꿔주고 있는 참인데 갑자기 처남이 인근에 업소를 차렸으니 처남매부간의 밀착이 걱정되었던 것이다. 박 사장이 모금정을 자기에게 팔고 처남에게 달라붙으면 큰일이다.

“만약 대승옥이 춘천옥과 가물치 관계가 형성되면 어쩌지?”

친구가 박 사장의 마음을 떠본다.

“그거야 할 수 없지만.... 이 상태로는 위기를 면할 방법이 없어. 춘천옥이 싹쓸이하는 상태라.”

“말이 나온 김에 하는 말인데, 대승옥이 춘천옥을 누를 수 있을까?”

“그래서 작전을 짜고 있잖아. 작전만 성공하면 가능성이 엿보이지.”

“춘천옥을 무너뜨릴 수 있다구?”

“작전 여하에 따라.”

“그 작전이 뭔데?”

“지금은 진행 중이니 나중에 말해줄게.”

박 사장은 살짝 꼬리를 뺀다. 그는 애가 탄다. 도대체 이놈이 왜 이런 식으로 나오는지 궁금하다. 박 사장은 친구가 답답하기만 하다. 네놈이 팍팍 밀어주면 춘천옥을 조질 수 있을 텐데, 박 사장은 감질나게 구는 그 친구가 원망스럽기만 하다.

새우젓 사러가면서 웃긴 이야기

맛좋은 새우젓을 대량으로 구입해서 현장에 보관시키면 맛도 좋아지고 가격도 저렴해서 주기적으로 소래항을 찾는다. 보통 때는 아내와 다녔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바다 구경을 시켜줄 겸 일을 많이 하는 책임자급 직원과 동행할 때도 있다. 하지만 나는 능수엄마와 단 둘만의 동행은 피한다. 아내의 입장도 있거니와 자칫 말썽을 피울까봐 저어했던 것이다.

“춘수, 미스 강, 평강댁은 마카 데불고 다니셨지만도 지는 한번도 못 가봤심더.”

그 말을 들은 아내가 함께 다녀오라고 내게 눈짓을 준다. 눈치 빠른 능수엄마가 대뜸 색안경을 끼고 나오자 아내는 자기 모자를 가져와 씌워주기도 한다. 속은 짠하면서도 경우를 참작해주는 아내의 도량이 고맙다.

시내를 빠져나오자 나는 속도를 내기 시작한다. 기분이 달뜬 능수엄마가 계속 지껄였지만 나는 그녀와의 동행이 어색해 입이 열리지 않는다. 바깥 풍경에 몰입하는 척하거나 이따금 묻는 말에 대꾸해줄 뿐이다. 광명에서 서해안 쪽으로 방향을 트니 도로가 점점 한가해진다.

“와 말씀을 안 하시능교?”

“운전 중이잖아. 귀는 열려 있으니 재밌는 얘기나 해봐. 질퍽한 얘긴 더 좋구.”

“머가 질퍽한 얘긴교.”

“손님들에게 써먹던 진한 농담이나 웃기는 얘기 같은 것.”

“우짠지 사장님캉 둘이 있으니까네 그런 말이 안 나오네예.”

“나를 손님으로 여기면 되잖아.”

“손님예?”

능수엄마는 한바탕 웃고 나서 말을 이었다.

“지가 조금 전 먼 생각을 했는지 아시니꺼?”

“네 머릿속을 내가 어찌 알아.”

“사장님캉 지가 삼십 년쯤 후에 이 길을 달리는 생각을 해봤능기라요. 그땐 지도 환갑을 넘었지만 사장님은 골골대는 할아버지가 됐을 테니까네 지가 핸들을 잡았을 테고, 사장님은 옆자리에 앉아 멀뚱멀뚱 눈알만 굴리실 거라예.”

기분이 고조된 능수엄마는 운전 중인 내 어깨를 톡톡 치며 한껏 흥을 돋는다.

“사장님은 이러실 거라예. 어여 차를 세워줘. 오줌 싸겠어. 그라믄서 자꾸 칭얼대모 지는 차를 길가에 세워놓고, 어서 내려 이 웬수야! 그라믄서 사장님 목덜미를 잡아 길가에 팽개치고는 그냥 차를 출발시킬 거라예. 지는 차를 백여 미터쯤 몰고 가믄서 백미러로 뒤를 살피모, 사장님이 두 팔을 허우적대믄서 날 버리고 가지마! 날 버리모 우짜노! 지발 날 데리고 가얀다카이! 혼자 가지말라카이! 하고 뒤뚱거리믄서 쫓아오는 거라예. 그라믄 할수없이 차를 뒤로 빠꾸해서 다시 태우고는 사장님 대머리를 어루만지며, 어이구 가엾기도 하지. 그러니까네 집을 나설 때는 오줌부터 누랬잖노. 벌써 내 말 까묵었나? 새 옷이 이게 뭐노. 시트도 젖었으니까네 이걸 어쩌믄 좋노. 하고 연방 고시랑거리며 사장님 바지를 벗긴다 그 말입니더. 지는 옷을 갈아입힐라꼬 사장님 팬티를 벗기모 이번엔 깜짝 놀라믄서, 어머 이게 웬 일이노, 이게 아직도 사내 구실하겠다꼬 까부네. 그라믄서 늙은 고추를 손가락으로 톡톡 튕긴다 아입니꺼.”

한바탕 웃고 난 능수엄마는 이런 말도 한다.

“집에 손님이 찾아오모 그들이 보는 앞에선 사장님 입에 음식을 떠넣어주며, 얼마나 잘 드시는지 몰라예. 잘 드셔야 오래오래 사실 텐데, 오래오래 사셔야 지가 사는 보람을 느낄 텐데예. 그렇게 수다를 떨다가네 손님이 돌아가면 사장님을 꼬집고 때리며, 여이 식충아 작작 처먹어! 어쩌자구 어구귀신처럼 잔뜩 처먹기만 하는 거고! 그라믄 사장님 두 눈에서 눈물이 주르르 흐른다 아입니꺼. 금방 마음이 서글퍼진 지는 사장님 얼굴을 가슴에 끌어안고 이런 말을 할 거라예. 당신처럼 착한 인간을 괄세하다이. 당신처럼 인정 많은 인간이 어딨겠노. 당신처럼 정직한 인간이 또 어딨겠노. 당신은 별보다도 더 아름다운 인간 아이가. 내가 죽일 년이제. 죽어서 지옥에 떨어질 년이제. 잉걸불에 자글자글 볶아도 죄업을 다 못 씻을 년이제. 나는 독사보다 더 독한 년이라카이. 당신 같이 훌륭한 인간을 가슴에 품고서도 또 무신 욕심을 내고 있노. 그럴거라예.”

그녀의 우스갯소리를 들으니 몸이 출렁거릴 정도로 재밌다.

이야기를 끝낸 능수엄마가 운전 중인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댄다. 나는 잠시 참아주다가 슬쩍 어깨를 들어 능수엄마의 몸을 떼어놓는다.

“운전하는데 기대면 어떡해.”

“지가 그렇게도 미운교?”

“운전 중이잖아?”

“테레비를 보니까네 운전 중에도 여자가 남자 몸을 껴안고 그럽디더.”

“그건 테레비고 이건 현실이고.”

“와 지를 자꾸 멀리하시능교? 참 얄궂심더.”

“쓸데없는 소리 말고 아까처럼 재밌는 얘기나 해봐.”

“기분이 좋아야 할 얘기가 생기지 이렇게 뻣뻣이 구시모 우째 재밌는 얘기가 나오겠능교.”

“무슨 말야? 내가 기분을 잡치게 했단 말야?” “말씀 안 하시모 지가 기분 나겠능교? 미스 강캉 가실 땐 재밌게 떠드셨을 거 아입니꺼?”

“뭐라구? 얘가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너 왜 그런 생각을 한 거지? 미스 강이랑 다닐 때는 새우젓 얘기만 했어. 어떤 새우젓을 살까, 얼마치나 살까, 남은 새우젓은 어떻게 보관시킬까, 그런 생각뿐인데 뭔 얘길 재밌게 떠들겠냐구. 너니까 헛소리를 들어주는 거야.”

“그라믄 지캉 왜 왔심니꺼?”

“내가 데려왔니? 네가 따라왔지. 네가 이럴까봐 그동안 안 데려온 거라구.”

“그라믄 지가 귀찮을 테니까네 당장 내려주소.”

“얘 또 이 지랄하는 것 좀 봐. 내 이럴 줄 알고....”

“그러니까네 퍼뜩 내려주소.”

“정말?”

“와 내가 거짓말 하겠능교. 퍼득 내려주소.”

“너 이런 식으로 괴롭히고 싶어 따라온 거지?”

“시끄럽소. 딴 말 하기 싫소마. 퍼뜩 내려주이소.”

“다신 데려오나 봐라. 에잇!”

나는 차를 세운다.

“흑흑흑....”

“장보러 가는데 재수 없게 왜 울어?”

“우는 것도 미운교?”

“입 다물엇!”

나는 터져 나오는 웃음을 속으로 꾹꾹 눌러버린다. 눈물을 그친 능수엄마가 언제 울었느냐는 듯 금방 호들갑을 떤다.

“사장님도 노름을 했다 카시는데, 지는 노름방에서 요강 담당도 해봤심더.”

“요감 담당?”

“노름꾼들은 동네 사람 눈에 띌까봐서 오줌도 노름방에서 해결해주잖능교. 그래갖고 방에서 오줌을 누게 요강을 대주는 담당이 있어예. 수입이 많은 직업입니더. 개평이 많지예.”

“그걸 직업이라구?”

“돈 버는 기 직업 아닝교.”

“그래서 많이 벌었니?”

“어데예. 마큰 화투로 날렸지예.”

“잘했다.”

병원장 사모님이 직원으로

춘천옥 출입문 옆에 붙어 있는 올림픽특정업소, 서울시 지정 전통음식점, 관광지정업소 등 안내판 아래에 직원을 구한다는 쪽지가 항상 붙어 있다. 필요한 직원보다 두세 명은 더 여유가 있어야 마음이 놓인다. 마음이 놓인다는 말은 직원들의 이동이 그만큼 심하다는 말이다. 내내 잘 지내다가도 예고 없이 사라지기 일쑤다. 봉급을 주는 날이 즐거워야할 텐데 주인 입장에서는 항상 불안하다. 다음날 누가 빠질지 늘 그게 걱정이다.

밥장사 하면 천한 직업으로 여겨온 게 사실이다. 포장마차든 대형업소든 음식점 하면 ‘밥장사’로 싸잡아서 폄하한다. 세계 어디를 가도 식당업 하면 부러운 업종이지만 유독 한국만 요식업을 무시한다. 유럽은 젊은이들의 꿈이 레스토랑을 갖는 것이고, 가까운 일본만 해도 손바닥만한 업소인데도 가업으로 이을 만큼 자부심이 대단하다. 하지만 한국은 성공한 업소인데도 떳떳이 내세울 수가 없다.

내가 고향을 등지고 살아온 것도 그 때문이다. 어느 해인지 설에 귀향했을 때였다. 어른들을 찾아다니며 인사를 드리는데 나를 보는 시선들이 곱지가 않았다.

“자네 서울에서 밥장사 한다며?”

모두 깔보는 말투였다. 화가 치민 나는 속으로 이렇게 외쳤다.

“우리 집 한 달 수입이 얼만 줄 아오? 당신네 총재산과 맞먹는단 말요.”

같은 말이면 긍지를 갖도록 격려해줬으면 얼마나 고향이 그리울까. “자네 서울에서 식당 한다지? 아암, 그래야지. 참으로 장하네. 요식업이 얼마나 어려운 사업인데, 아무나 덤빌 수 없는 게 요식업이라구. 자네니까 그 정도로 성공한 거라구. 자넨 역시 대단해.” 그런 말을 해주면 얼마나 존경스러울까.

음식점을 배타적으로 폄하하는 의식구조는 지역에 따라 다르다. 한국은 남쪽보다 북쪽 사람들의 체질이 실용적이라는 말이다. 월남하여 의지간이 없는 곳에서 독하게 살아야 했겠지만 체질적인 차이점을 부인할 수 없다.

요식업으로 크게 성공한 학교 선배 하나가 있다. 부모 따라 월남한 그 선배는 명문인 서울대학교 법대를 나왔지만 사법고시에서 한번 떨어지자 재시험을 포기하고 냉면집을 차렸다. 손바닥만한 식당에서 앞치마를 두르고 대롱대롱 기계틀에 매달려 냉면을 짜는 꼴을 상상하면 그 초라한 모습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런 그가 한국에서 처음으로 극장식 식당을 차렸고, 서울 시내 요지마다에 분점을 차려서 당시로서는 우수 기업체의 외형을 능가하는 매상을 올렸다. 분점마다 냉면집이라기보다 무슨 제품 공장이나 진배없다. 그는 해외에서 다른 사업에도 진출했고, 해외 일류대학의 운영에까지 손을 댄 국제적인 인물로 성장했다.

아침에 장사 준비를 하는데 살결이 맑고 귀티가 흐르는 40대 여인이 보따리를 들고 홀에 들어선다. 일자리를 찾아왔다는 것이다. 나는 두리번거리는 그녀를 의자에 앉혀놓고 손부터 훔쳐본다. 손가락에 반지 낀 자리가 보이고 손등이 매끄럽다. 곱게 살아온 흔적이 역력하다. 보나마나 고급 반지를 끼었을 것이다. 직원으로 일할 여자가 아니다. 나는 빙그레 웃으며 단도직입적으로 묻는다.

“경험 있으세요?”

“네.”

“고생한 분 같잖은데요?”

“남편 사업이 갑자기 무너지는 바람에....”

“고생한 손이 이렇게 고울 순 없죠.”

“원래 피부가 고와서....”

“아무리 피부가 고와도 일한 손은 물때가 끼고 거칠게 마련인데요?”

“아녜요. 식당일 많이 해봤어요.”

“반지는 어쨌어요?”

“네?”

“다이어 반지를 빼고 오셨군요. 무명지에 링 흔적이 역력하잖아요? 일을 배우겠다고, 솔직히 말씀하시잖구. 우리 업소에는 부잣집 사모님들이 후줄근한 모습으로 찾아오는 경우가 종종 있어요. 소문난 업소이고 보니 새로 식당업을 해보고 싶은 분들이 노하우를 배우려고 찾아오는 거죠. 그런 분들은 한두 달 정도 일하다가 장사 노하우를 조금 익히면 사라지게 마련이죠.”

“죄송해요. 실은 남편이 산부인과 원장예요.”

“그런 분이 왜 식당업을 하실려고요?”

“생각해보시면 알잖아요? 만날 여자 다리를 벌리는 게..... 그 때문에 남편은 술독에 빠져 산다구요.”

“이해합니다. 하지만 밥장사가 쉬운 게 아닙니다. 밥장사는 더 괴롭고 힘들어요. 당장 후회하실 겁니다.”

“의지 나름이겠죠.”

“의지? 옳은 말씀에요. 하지만 어떤 극한적인 상항에 처해보지 않고는 성공하기 힘듭니다.”

“극한적인 상항이라뇨?”

“예를 들어 똑같은 신체조건을 갖춘 두 사람이 있다고 해요. 그 둘이 천길 낭떠러지 위에 매달렸는데 한 사람 발밑에 그물이 쳐져 있다면 누가 오래 버틸까요?”

“발밑에 그물 쳐진 사람이 먼저 떨어지겠죠.”

“맞아요. 그 그물이 산부인과 병원인 셈이죠. 아무리 규모가 큰 업소를 차린다 해도 식당을 하다보면 당장 병원 생각이 나게 마련입니다. 내가 미쳤다고 식당을 차렸나, 그렇게 후회할 때가 있다 그 말입니다.”

“죄송해요. 식당업을 해보고 싶어서....”

“굳이 일하시고 싶다면 좋습니다만. 병원장 사모님이 뭐가 아쉬워서, 고생을 사서하시렵니까?”

“돈 싫어하는 사람 어디 있겠어요.”

“돈 즉 식당이라. 식당만 차리면 돈을 벌 수 있다는 말씀이군요.”

나는 커피를 대접하며 일부러 이야기를 이끌어갔다.

“호만 나면 큰돈 벌 수 있잖아요.”

“물론이죠. 하지만 삶의 질도 무시할 순 없잖아요?”

“품위를 말씀하시나 본데....”

“아직도 한국 사회는 밥장사를 폄하하잖아요.”

“한국도 곧 요식업을 자랑으로 여길 날이 올 거예요. 그리고 산부인과 의사 치고 과음 않는 사람 있는 줄 아세요?”

이해되는 말이다. 내 친구가 떠오른다. 산부인과 전문의인 그도 소주를 맥주컵에 따라 마신다.

옷을 갈아입고 나온 그녀는 열심히 상을 닦고, 의자를 정리하고, 젓가락통과 휴지통을 채우고, 물컵을 정리하고, 쓰레기통을 비우고, 합세해서 방바닥을 걸레로 닦는다. 그녀의 이마에 땀이 젖는다. 나는 그녀를 불러 주방에 들어가 보라고 했다. 신입자는 함부로 주방에 들이지 않지만 일을 포기할 여자 같아서 일부러 들여보냈다. 핵심 노하우인 양념 배합은 이미 직원이 출근하기 전에 아내가 끝내놨던 것이다.

따지고 보면 보통 주부들이 주방에서 만드는 양념에 불과하지만 미세한 차이가 맛을 가르게 마련이다. 막국수의 경우 숙련공이 되려면 최소한 2년 정도는 손끝에 익혀야 감을 잡을 수 있다.

“하실 수 있습니까?”

주방에서 땀을 흘리며 나오는 원장부인의 결심을 떠본다. 그녀는 빙그레 웃기만 한다. 나는 그녀를 정중히 현관 밖까지 배웅해준다.

내 눈은 못 속여

“너 일루 와봐.”

“와예?”

“오라먼 와봐.”

평강댁이 능수엄마를 주방 뒤로 몰래 불러낸다.

“딴 사람은 몰라도 나는 못 속잉게 솔직히 말혀.”

“먼 말을 하라능교?”

“너 춘천옥 뜰 맘이잖여?”

“와 헛소리를 하능교?”

“요새 니 일허능 걸 봉게 탐탁찮여. 예전허고는 영 다르단 말여. 니가 딴 맘 먹응 게 틀림읎어. 귀신 눈은 속여도 내 눈은 못 속인다구.”

“헛소리 집어치소. 그 말 하라꼬 불렀능교.”

“너도 그렇지만 사장님이 널 보능 게 예전과 달러. 자꾸 너를 피하는 눈친디, 혹여 사장님허구 뭔 일 냈능겨?”

“뭐라예?”

“그게 뭔 말인지도 몰러? 살을 섞었냐 그 말여.”

“머라? 살을 섞어? 이 노망텡이 미쳤나 보레이. 인자부턴 언니라 안 부를 거구마.”

“어쭈, 요것 콩콩 튀는 것 좀 봐. 지랄 떠는 걸 봉게 뭔 일을 내긴 낸 모양이구먼, 그런디 워디서 일 냈댜? 사장님이 여관은 안 갈 팅게, 호텔로 간남?”

“이 노망텡이 오늘 와 이러노. 미칠라카모 제대로 미쳐얀다이. 내 말 잘 들으소. 언니가 이런 식으로 나오니까네 솔직히 말하겠는데예, 보소, 참말로 먼 일이 있었다카모 내 몸이 활활 타서 춤추고 다니지 풀죽어 다니겠능교? 그라이 인간 심리를 볼 줄 알아야 카는기라. 퇴짜를 맞았으니까네 풀이 죽지 몸을 섞었으모 내가 이라고 다니겠능교. 이 멍충이 노망텡이야.”

“그럼 뭔 일이 있긴 있었구먼?”

“머라?”

“방금 퇴짜를 맞아서 풀이 죽었다고 혔잖여.”

아차, 능수엄마는 자기 말의 실수를 깨닫자 얼굴이 달아오른다.

“예를 들라카모 그렇다는 것 아이가. 언니도 좋아하는 사람캉 존 일 있었다 카모 안 그렇겠능교?”

“그렁게, 니가 사장님을 사모하는 건 사실이구먼?”

“이 노망텡이가 와 자꾸 말 꼬투리를 잡노.”

“허면, 니가 사장님헌티 대들긴 대들었다 이거여?”

“머라?”

“대들응게 사장님이 워떻게 하시던?”

“이, 이, 노망텡이가....”

“껴안아주던? 이불 속에서?”

“하하하하.... 이 노망텡이 옳게 미쳤나부다.”

“솔직히 말해보랑게?”

“하하.... 맞다. 이불 속이서 나를 꼭 껴안고 여기 빨고 저기 빨고 환장하더라.”

“사장님도 별 것 아니구먼. 사내란 똑 같은 겨. 이쁜 지집이 대들응게 녹아버렸구먼. 그나저나 너 사모님 무슨 낮으로 대할래?”

“한 사내 갖고 싸워보는 거지 머.”

“이년이 돌았구먼.”

“돌아도 행복만 하모 될 거 아이가. 이 노망텡이야.”

“너는 참 좋겄다. 팔자 피게 돼서. 이왕 일낸 김에 까짓것 자식도 맨들어버려.”

“낳고 말고지러. 벌써 헛구역질이 난다카이. 얼라만 나모 사모님은 찬밥이 되능기라. 내가 히루 발로 툭 차버릴란다. 그라모 지발 살려달라 매달릴기라.”

“사모님이 너한티 매달린다구?”

“하모.”

“춘천옥도 니꺼 되겄구먼?”

“하모.”

“양평 땅도 니꺼 되겄구먼?”

“하모.”

“그럼 사모님은 거지 되구?”

“당연하제.”

“사모님이 울고불고하면?”

“히루 발로 툭 차면서 이럴란다. 와 재수 없게 찍찍 짜노?”

“사모님이 춘천옥만은 못 준다고 빡빡 우기면?”

“그라믄 사모님한테 이럴란다. 형님은 맘씨가 고우니까네 죄 나한테 주이소. 형님은 천당 가고 나는 지옥 가니까네 그보다 더 존 일 어데 있능교. 이럴란다.”

“으이구 빙신. 꼴을 봉게 퇴짜 맞었구먼. 악착같이 달라붙어서 껴안게 혔어야지, 이 빙신아.”

“그러니까네 환장하겠다이.... 보소, 언니 니가 사장님한테 졸라대라. 불쌍한 능수엄마 껴안아 주라꼬.”

“이 미친년아, 육갑떨지 말고 니 사내한테나 잘해줘. 먹고살겠다구 흙 파는 꼴 불쌍허지도 않냐?”

“머가 불상하노. 인간은 지 생겨먹은 대로 사는 거 아이가? 그게 천지이친기라.”

“그럼 워째서 그런 남자헌티 시집갔냐?”

“언제 내가 시집갔노, 부모 땜에 그랬지러.”

“부모가 왜?”

“사람 착하고 부지런타고 하도 볶으니까네 몸을 줘삐린기라.”

“지랄 말고 느이 사내헌티 잘해줘. 나 봐라. 내 사내가 워디 인간이냐? 그래도 평생 살아가잖여. 인간사란 뾰족헌 거 읎어. 그냥저냥 살다 죽는 게 인간사여. 그렁게 다신 사장님헌티 개지랄 말고 느이 사내 잘 떠받들어. 알쟈?”

“시끄럽소. 알쟈는 깨뿔이 알자노.”

능수엄마는 홱 돌아서서 뒷마당으로 나간다.

“으이구, 저게 원제나 사람 될른지 모르겄구먼.”

평강댁이 뒤따라나오며 혼자 중얼거린다.

슬픔을 즐겨라

저녁장사를 끝내고 휴게실에서 쉬고 있는데, 아내가 급한 목소리로 나를 부른다. 후딱 아래층으로 내려가니 주방에서 춘수가 부엌칼을 들고 주방장을 꼬나보고 있다. 끝내기 작업을 하다가 주방장이 춘수를 건드린 모양이다 .

“춘수야, 칼 놔!”

나는 급한 김에 고함부터 친다. 춘수가 분을 새기지 못하고 씩씩거리다가 칼을 칼판에 내려놓는다. 주방장이 춘수의 말대답이 괘씸하다며 애비 없는 호로 자식이라고 나무랐다고 한다. 나는 먼저 춘수에게 이른다.

“이유여하를 불문하고 주방장 형님한테 사과해. 미안하다고.”

“싫어요.”

“내 말 안 들을 거야!”

나는 고함을 친다. 그러자 마지못해 “미안해요.” 한다. 주방장은 아무 말 없이 뒷마당으로 나간다. 내가 뒤좇아나가 주방장에게 타이른다.

“혼내려면 그냥 혼내지 애비 없는 호로 새끼가 뭐야. 더구나 부모 없는 앤데 그런 말 하면 쓰겠니?”

“홧김에 나온 소리지만, 저두 아차 했쥬. 그런다구 칼을 들다뉴.”

“그건 내가 혼내줄 테니 앞으론 춘수를 다독거려줘. 불쌍한 동생이다 생각하고, 알지?”

“알았슈.”

나는 주방장의 어깨를 다독거려주고 주방에 서 있는 춘수를 데리고 휴게실로 들어간다. 아직도 춘수는 분을 못 참고 씩씩거린다. 나는 조용히 타이르듯 말한다.

“항상 내가 너한테 뭐라고 당부했지?”

“....”

“큰 걸 생각하라고 일렀지?”

“네.”

“그 큰 거란 게 뭐지?”

“사업체요.”

“그래, 춘천옥 같은 사업체를 네가 운영하고 있다, 그렇게 생각하랬지?”

“네.”

“사업체를 운영하려면?” “속을 많이 썩어야 한다고요.”

“그런데 기분 좀 나쁘다고 칼을 들어?”

“제가 웬만하면 참을라고 했어요. 그 말만 아니면요.”

“그래서 내가 주방장을 나무란 거야. 주방장도 자기가 실수한 걸 알더구나. 그럼 나가서 형하고 같이 일을 끝내. 이따 나하고 술 한 잔 하자.”

웬만하면 화를 안 내던 놈이 칼을 들다니. 모두 퇴근하고 춘수만 남게 되자 나는 휴게실에서 둘이 술을 마신다. 춘수에게 가장 효과적인 교육은 사업체 운영이라고 하는 명분 제시다. 그처럼 커다란 과제를 던져줘야 춘수의 야수성을 고칠 수 있다.

“그럼 이제부터 내 말을 귀담아 들어라. 우선 성질부터 고쳐야 돼. 사업체를 운영하려면 어떤 인품을 갖춰야 하는지 알아? 나를 보라구. 내가 어떻게 손님을 끄는지 잘 배우라구. 이건 돈 주고도 못 배우는 진짜 기술이야. 어찌 보면 돈 벌기 참 쉽니라. 처음 개업할 때 내 처지가 어땠는지 알지?”

“들었어요. 목욕탕 사장님이 말씀하셨어요.”

“목욕탕 사장님이?”

“네.”

“뭐래든?”

“춘천옥 사장님은 참 진실한 분이다, 그러셨어요. 그런데 춘천옥을 처음 꾸밀 때 이웃 사람들이 전기세나 벌지 모르겠다고 비웃었다면서요?”

“인부 살 돈이 없어서 네 아줌마는 시멘트를 개고 난 그걸 발랐니라.”

“목욕탕 사장님이 그 말도 하셨어요. 그때 사장님을 가엾게 여기셨대요.”

“이 지역에서 내가 존경하는 분은 그분뿐이다. 서울대학교를 나온 데다, 이 지역 최고 유지가 목욕탕 수납대에 앉아서 동전 받고 있는 모습을 보라구.”

“저도 알아요.”

“그분처럼 심지가 굳어야 성공한다. 그분도 고생 많이 하셨다. 넌 고아니까 꼭 성공해야 해. 부모 밑에서 호강하며 자란 애들보다 몇 배 성공하라구. 알지?”

“네.”

“다른 애들처럼 철없는 짓 하지 마.”

“네.”

“너를 본보기로 성공시키겠어. 철딱서니 없는 놈들한테 본때를 봬줄 거야. 너를 춘천옥 종이라고 비웃는 놈들에게 네 성공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그게 내 소원이라구. 알겠니?”

“네.”

“그리고, 매사에 철저하고 언제나 뒷단속을 잘해. 기차 역무원처럼 확인 또 확인. 알지? 역무원들은 기차가 갈 방향을 뻔히 알면서도 팔을 들어서 그 방향을 지시하잖니? 그 확인정신이 장사에도 꼭 필요해.”

“네.”

“특히 프로판가스를 조심하라구. 주방장이 확인 안 해도 넌 꼭 확인하란 말야. 터졌다 하면 모든 게 끝장이니까. 인생, 희망, 모든 게 한순간에 사라진다구. 그렇지?”

“네.”

“잠궜는지 안 잠궜는지 미심쩍으면 잠자리에 눴다가도 일어나 확인해봐. 귀찮다고 방치하는 데서 사고가 나는 법이라구.”

“네.”

“술도 적당히 마셔. 술버릇 나쁘면 신용을 잃게 돼. 아무리 사람 좋아도 술주정 부리면 다 싫어하거든.”

“네.”

“그리고, 누구한테든 절대 돈 꿔주지 마. 돈 꿔달란 친구와는 상종하지 마. 암 때고 화를 입게 돼. 형제간에도 돈은 꿔주지 말구. 차라리 그냥 주는 게 나아. 친구한테도 피치 못할 입장이면 꿔주지 말고 그냥 준다고 해. 그것도 한번에 그치고 두 번째 그러면 아주 의를 끊어버려. 물론 너도 돈을 꿔 쓰지 말고. 만약 돈을 꿔 썼다가 못 갚게 되면 그 집에 가서 품이라도 팔아. 신용처럼 무서운 게 없니라. 아무리 험한 세상이라 해도 신용만 지키면 성공하기 쉬워. 신용을 목숨처럼 여기라구. 알지?”

“네.”

“그리고, 너 절대 화투 배우지 마. 화투장은 만지지도 마. 나는 화투가 뭔지도 모르고 바쁘게만 살다가 불과 석 달 만에 살림을 거덜 낸 적이 있어.”

“왜요?”

“그건 나중에 얘기해줄게.”

“사장님.”

“왜?”

“저를 자식처럼 생각해주세요.”

“그럼 그럼. 고맙다. 나도 너를 버리지 않을 테니 너도 날 버리지 마.”

“네.”

“거듭 말하지만 너를 부려먹기 위해 꼬시려고 하는 말이 아냐. 내가 외로워서 그래. 외로움을 풀 수 있는 건 믿음만이 가능해. 서로 믿을 수 있을 때 외로움을 풀 수 있다구. 부부나 자식이나 형제가 좋은 건 서로 믿을 수 있기 때문이지. 즉 외로움을 서로 달랠 수 있기 때문이야. 그럼 딱 한잔만 더 마시고 자자.”

나는 춘수의 잔을 채워준다. 그때 갑자기 춘수가 소리를 죽이며 눈물을 쏟는다.

“이럴 때면 부모님이 보고 싶어요. 아버지 얼굴은 가물거리지만 어머니 얼굴은 캄캄해요.”

나는 가슴 한 구석에 찌릿한 통증이 느껴진다.

“춘수야.”

“네?”

춘수가 얼른 눈물을 닦으며 나를 바라본다. 물기에 젖은 그의 눈이 형광불빛을 받아 반짝인다.

“너는 이제 울면 안 돼. 너는 지금 사업가 수업을 받고 있어. 사업가는 냉정해야 돼. 감상에 빠져선 안 돼. 울고 싶을 때는 혼자 우는 거야. 나는 울고 싶어도 울 수가 없어. 울 장소를 찾기가 힘들거든. 우는 건 자유지만 울 장소는 따로 있는 법이란다. 내 말 알겠니?”

“....”

“울 장소가 따로 있다는 말은 일평생 딱 한두 번만 울어야 한다는 뜻이야. 그땐 정말 실컷 울어보는 거지. 그때 말고는 함부로 울어선 안 돼. 평소에는 울고 싶은 그 슬픔을 즐겨야 해.”

“....”

“슬픔을 즐겨야 한다는 말은, 그 슬픔을 네 성공의 밑거름으로 삼으라는 뜻이야. 목수가 연장이 좋아야 가구를 멋지게 짤 수 있듯, 너는 부모 없는 고아 신세를 좋은 연장으로 삼으란 말이다. 부모 없는 슬픔 따위야 나한테는 아무것도 아냐. 그렇게 슬픔을 극복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지란 말이지. 슬픔을 즐기자, 슬픔을 즐기자, 슬픔을 즐기자, 그렇게 다짐하라구. 나는 부모 없는 고아야, 하고 그 불행을 안고 살면 네가 큰 인물이 될 수 없어. 성격이 삐딱해지고, 소견이 좁아지고, 끝내는 술주정뱅이나 되고, 그렇게 아주 유치한 인간이 된단 말야. 그런 옹졸한 성격은 융통성을 죽인다구, 너는 네 성품을 활달하게 키워야 해. 이것도 이해하기 힘든 말이겠지만 그냥 외워두면 깨달을 때가 있어. 너는 생각이 깊은 애라 금방 깨달을 거야. 알지?”

“네.”

“다시 말하겠는데, 이제 부모님 생각은 잊어버려. 부모님 생각은 네가 성공한 후에 하라구. 알겠어?”

“네.”

정말 미치겠네

오늘도 밤 10시 경에야 장사가 끝났다. 주방 냉장고를 옆자리로 옮기려고 퇴근하는 주방장 범도에게 함께 들어달라고 하자 범도의 얼굴이 금방 굳어진다.

“못해유!

칼날처럼 섬뜩한 목소리다.

“오 분도 안 걸리는데, 싫다구?”

“수당을 주실 거유?”

“나 혼자 들 수 없어 잠깐 도와달라는 거잖아.”

“그것도 엄연히 일이잖유?”

“자네가 이렇게 야박한 사람인가?”

“야박하다구유? 그건 업무하구 별갠데 당연히 대가를 주셔야쥬.”

천길 만길 벼랑 아래로 추락하는 낭패감에 몸이 떨린다. 인간에 대한 신임이 무너지는 그 혼돈이 눈을 멀게 한다. 사방이 절벽이다.

“오늘 기분 상한 일 있나?”

나는 화를 눙치며 조용히 물어본다.

“아무 일 읎어유.”

“내가 자네한테 잘못한 게?”

“읎어유.”

“아무래도 내가 자네한테 실수한 게 있나봐.”

“읎당게 왜 자꾸 그러시쥬? 저한테 화를 내시면 되잖아유?”

“화야 나지. 하지만 화로 풀기는 너무 어려운 싸움이잖나.”

“그럼 저를 때려주세유.”

“그럴 순 없지.”

“참 미치겠네....”

범도가 고개를 숙인다. 어딘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 나는 그의 어깨를 곱게 다독거려준다. 그러자 범도는 또 “미치겠네.”라고 중얼거리며 머리를 긁적거린다.

“자네, 나와 헤어지고 싶어서 그러지?”

“....”

“말해 봐. 그래서 일부러 매정하게 구는 거지?”

“왜 제가 여길 떠날 거라구 생각하세유?”

“그게 아니면?”

“몰라 그러세유?”

“뭘?”

“참 미치겠네. 제가 꼭 말을 해야유?”

그제야 내 입에서 저절로 웃음이 터져 나온다.

“이 사람아, 솔직히 말할 게지 왜 그런 식으로 약을 올려? 자네가 이런 식으로 바보짓을 하니까 미스 강이 마음을 안 주는 거라구.”

“....”

“낸들 어쩌겠나. 자네와 짝을 지라고 미스 강을 몽둥이로 팰까? 못난 사내 같으니. 암튼 내가 자네를 교육시킬 테니 철저히 배우도록.”

“무슨 교육유?”

“무슨 교육은 무슨 교육이야, 연애교육이지.”

“언제부터유?”

“지금 당장.”

드디어 범도의 얼굴에 화기가 돈다.

“어떻게유?”

“어떤 식으로 교육을 시키든 그건 내가 알아서 할 일야. 자넨 열심히 배우기만 하면 돼.”

“....”

“자넨 자네 성격이 좋다고 생각해?”

“아뉴.”

“알면서 왜 성격을 못 고치지?”

“사람이 달라지는 게 쉽잖찮유?”

“어려울 것 없어. 내 말대로 하면 돼.”

“....”

“첫째.”

“....”

“대답해!”

“예.”

“첫째, 항상 얼굴을 환하게 열고 지내도록.”

“예.”

“둘째, 어떤 일이 있어도 얼굴을 찡그리지 않도록.”

“예.”

“셋째, 아무리 기분이 잡쳐도 얼굴에 미소를 매달도록.”

“예.... 그런디, 첫째 둘째 셋째가 모두 한 뜻이잖유?”

“뭔 소리야?”

“얼굴을 훤히 열라는 거나, 얼굴을 찡그리지 말라는 거나, 얼굴에 미소를 매달라는 거나 죄 한 통속인디유.”

“한 통속?”

“예.”

“맞아. 내가 밝은 얼굴을 강조하는 의미에서 똑같은 말을 반복한 거야. 자네 얼굴에는 만날 먹구름이 끼거든.”

“아무리 애써두 안 되는 걸 워떠케 고쳐유.” “못 고치면 미스 강을 포기해야지.”

“....”

“안 그래?” “글쎄유.”

“고치면 미스 강과 행복해질 거구, 못 고치면 미스 강을 놓칠 거구.”

“....”

“그래도 좋아?”

“글쎄유.”

“그래도 성질머리를 못 고치겠냐구?”

“....”

“대답해!”

“어려운디유.”

“어려우면 때려쳐!”

“왜 자꾸 화만 내세유?”

“자네가 화나게 만들잖아!”

“미안해유.”

“미안한 게 문제야?”

“고쳐야쥬.”

“그래, 고쳐야지. 자넨 역시 똑똑해. 암 똑똑하고 말구.”

나는 범도의 어깨를 다독거려준다. 그는 어린애처럼 배시시 웃는다. 착한 모습이다. 소박한 모습이다. 그들은 큰 걸 노리지 않는다. 사랑하는 아내를 얻어 착실히 소박하게 사는 걸 소망할 뿐이다.

“아름다운 사람이 되면 미스 강의 마음이 저절로 움직인다구.”

“워떻게 하능 게 아름다운 거쥬?”

“그건 나중에 얘기해줄게.”

“알었슈. 암튼 일은 열심히 헐 팅게 제 속맘만 헤아려주세유.”

“알았어. 나하고 합동작전으로 미스 강의 맘을 낚아채자구.”

범도는 고맙다며 연방 헤헤거린다.

그나저나 큰일이다. 미스 강은 범도를 거들떠보지도 않는데, 장담을 해놨으니 그 책임이 어깨를 짓누른다. 공연히 합동작전이란 말을 꺼낸 게 후회스럽다. 어떻게 미스 강의 마음을 돌릴 수 있을까? 또 미스 강 같은 여자가 범도 같은 사내의 수준에 매력을 느낄지도 의문이고, 이미 다른 남자가 있을지도 모르는 판에 장담을 해놨으니, 생각할수록 엉뚱한 약속을 한 게 후회스럽다.

냉장고 옮기는 일을 거절할 정도로 속이 좁아터진 사내인데, 내 딸이라고 해서 그 사내한테 시집가라고 꼬드길 수 있겠는가? 아무래도 죄를 지은 것만 같다. 미스 강에게 죄를 지은 것 같고, 바보처럼 순박해터진 범도에게 사기를 친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자네 냉장고에서 맥주 꺼내와. 너와 술 한잔 해야겠다. 나 괴로워 못살겠어.”

“왜유?”

“자네한테 큰 죄를 지어서 그래.”

“무슨 죄를 지으셨는디유?”

범도가 맥주 두 병을 양 손에 들고 와서 묻는다.

“그건 지금 말할 수 없어. 십 년 후에나 말해줄게.”

어제 마신 술 탓에 늦잠을 자고 영업 준비를 제대로 끝내지 못했는데, 벌써 손님들이 밀려오기 시작한다. 미스 강의 안내하는 모습을 지켜보니 손님을 맞이하는 그녀의 다감한 웃음새가 화려하다. 단골손님인 부일산업 송 부장이 대여섯 명의 직원들을 데리고 홀에 들어선다.

“더우시죠? 시원한 막국수 생각이 간절하셨죠?”

“오늘은 더 예쁜데?”

“내일은 더 예뻐질 거에요. 그래야 왕자님의 눈길을 끌죠.”

“왕자? 누군데?”

“제 눈에 드는 남자요.”

나는 미스 강의 손님 접대하는 모습을 바라보다가 한숨을 내쉰다. 저런 여자에게 어떻게 범도 말을 꺼낼 수 있단 말인가.

출입문이 열리고 탤런트 두 명이 들어선다. 요즘은 인기 연예인들이 자주 찾아온다. 명동이나 충무로처럼 서울 중심지와 거리가 멀어도 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모양이다.

눈물을 안고 떠난 여자

능수엄마가 또 결근했다. 이제는 그녀가 왜 그러는지 이유를 알고 있어 걱정할 일은 아니다. 그녀의 결심에 따를 수밖에 없다. 아니, 결심이라기보다 감정에 따른다는 게 옳다. 그녀는 내가 감당하기 힘든 답변을 강요했고, 그 답변을 거절할 수밖에 없자 떠나기로 작정한 것이다.

결근한지 십여 일이 지나도록 내가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자 능수엄마가 먼저 전화를 걸어주었다.

“거기가 어디냐?”

나는 차분한 목소리로 대꾸해주었다.

“대승옥이지예.”

“대승옥이 뭐하는 곳이냐?”

나는 뻔히 알면서도 수순대로 질문했다.

“식당 아닝교.”

“사장 이름이 뭐냐?”

“황 사장님....”

“일 열심히 해줘라.”

나는 전화를 끊었다. 더 할 말도 없거니와 말하고 싶지도 않았다. 괘씸하진 않았다. 그녀의 슬픈 마음을 해소시킬 수 없는 입장이니 왜 춘천옥을 등졌느냐고 나무랄 수는 없었다. 하필 대승옥에 간 것이 섭섭했지만 그 또한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원망에도 한이 없고 용서에도 한이 없다. 그냥 담담하게 소화할 수밖에 없는 분노였다.

그 후 한 달쯤 지나 능수엄마가 장사 끝날 무렵에 춘천옥에 들렀다. 뜻밖의 행동에 몹시 당황했지만 담담히 받아주었다. 그녀는 아내와 미스 강, 주방장, 평강댁을 차례로 껴안아 주며 너스레를 떨었고, 시종일관 헤프게 웃어댔다.

“보고 싶어서 왔지러.”

모두에게 말했다. 그리고 나에게는 깎듯이 “사장님 안녕하세요?” 라고 표준어로 인사했으며 나도 친절하게 인사를 받아주었다. 나는 어떻게 지내냐고 물으려다 재밌게 지내냐고 바꿔 물었다.

“네. 아주 재밌어예.”

그녀는 쾌활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나는 손님이 많으냐고 물으려다 생략했다. 그 대신 “얼굴이 좀 축났구나.” 하고 찔렀다. 그러자 그녀는 아내에게 과잉반응을 보였다.

“제가 없으이까네 사모님 얼굴이 참 좋아지셨네예.”

“뭔 소리야. 능수엄마가 없으니까 몸이 말이 아닌걸.”

아내가 재치 있게 받았다. 내가 싸늘한 한마디를 보탰다.

“앞으론 되도록 여기 오지 마. 알지? 춘천옥에서는 다른 업소 직원을 꺼리잖아.”

그 말에 능수엄마는 인사도 없이 자리를 떴다. 그녀는 나를 약 올리려고 찾아온 게 틀림없었다.

죽일 년! 네가 춘천옥 떠나는 걸 그처럼 쉽게 결정하다니. 아무리 네 몸을 받아주지 않을망정 춘천옥만은 뜨지 말았어야지. 너는 춘천옥을 네 신전으로 여기지 않고 아무 때나 그만둘 수 있는 식당으로 여겼단 말이냐, 이 죽일 년아, 나는 네가 춘천옥을 네 신전으로 받드는 줄만 알았다, 하느님, 저년의 몸을 갈기갈기 찢어주소서!

그날 밤 나는 혼자 밖에 나가 술을 마셨다. 술기운이 오르자 눈앞에 능수엄마의 환영이 어른거렸다. 그녀의 환영이 슬피 울었다.

사장님, 와 지를 밀어내기만 하십니꺼. 와 한 번도 지를 쓰다듬어 주지 않으십니꺼. 인자부터 지는 암흑 속에서 살아갈 겁니더. 지가 떠나지 않았으모 죽는 도리밖에 없었지예. 지는 죽는 걸로 사장님에게 복수할 맘였어예. 사장님, 와 지한테 고통을 안겨주셨심꺼? 와 지한테 행복보다 고통을 탐내라고 말씀하셨심꺼?

그녀의 환영은 계속 서럽게 울었다. 나는 술잔을 연거푸 비워냈다. 술로 내 몸을 녹일 작정이었다.

미안하다. 내가 네게 더 이상 해줄 게 없구나. 나는 네가 오래오래 내 곁에 머물러 인생을 배우고 세상살이를 배워서 나비처럼 훨훨 날기를 바랐니라.

위험한 동거

“능수엄마는 아무 때고 헤어질 여자니까 너무 상심 말아요. 당신과 함께 지낼수록 그 여자 마음에는 고통만 쌓여요. 장사에 지장은 크겠지만, 장사 땜에 당신이 계속 끌려다닐 순 없잖아요? 솔직히 나도 그런 꼴 더 보기 싫어요.”

아내가 모처럼 속마음을 드러낸다.

“그런 꼴이라니? 내가 능수엄마와 무슨 일이 있다는 거야?”

“지금 능수엄마 땜에 그러는 게 아녜요.”

“그럼 왜지?”

“몰라서 물어요?”

아내가 눈을 흘긴다. 능수엄마 때문에 풀이 죽어 있는 남편의 모습을 이해는 하면서도 옛일을 생각하면 은근히 화가 치미는 모양이다.

“또 그 얘길 꺼내는군.”

“아무리 지우려 해도......”

아내는 눈자위가 뜨거워지는지 얼른 고개를 숙인다. 그 일만 떠오르면 아내의 눈자위는 붉어지게 마련이고, 그때마다 나는 몸을 사리고 숨을 죽여야 한다. 참으로 지겨운 추억이다.

십여 년 전 일이다. 모처럼 고교 동창들과 어울린 자리에서 나는 젊은 미망인 사업가 노경진을 소개받은 적이 있었는데 그녀는 아주 사교적인 성격에 미모가 빼어난 여성이었다. 아내와 포장마차로 하루하루 끼니를 이어가던 나로서는 노경진의 얼굴을 바라보는 것도 민망해서 고개를 돌릴 지경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이틀이 멀다하고 서초동에서 봉천동까지 친구들을 데리고 찾아와 매상을 올려주곤 했다.

“도대체 이해가 안 가요. 이처럼 깨끗하고 지적인 분들이 길거리에서 오뎅과 홍합을 삶아 팔다뇨.”

아내와 나는 노경진의 말에서 자부심마저 느껴졌다. 어느새 노경진은 아내를 언니라고 부르며 아내의 착한 인상을 추어주기도 했다.

“언니 얼굴을 보면 마음이 편안해져요.”

“내가 바보라 그래요.”

“저 같은 사람은 바보가 될 수 없어 걱정이죠. 바보보다 더 무서운 존재는 없거든요.”

삼 개월쯤 지나자 노경진은 이런 제안을 했다.

“기 선생님을 우리 회사에 모시고 싶어요. 마땅한 직책이 없으니 회사 고문 역으로 명함을 새기고, 회사 사옥 후면에 붙어 있는 별채를 고문실로 꾸밀 참에요. 언니와 자녀들도 지금 살고 계신 봉천동에 전셋집을 구하겠으니 깨끗한 환경에서 사시도록 해요.”

우리 부부는 꿈을 꾸는 것만 같았다. 아무리 우리들의 인성을 높이 샀다 해도 이런 횡재를 안겨주다니, 나는 머리가 어지러웠다. 처음에는 거절했지만 노경진은 막무가냈다.

“선생님 같은 인재를 구했으니 오히려 제가 덕을 보는 셈이죠.”

노경진은 기용의 꿈을 되살려주기도 했다. 회사 일은 큰일만 봐주고 별채에서 조용히 소설 창작에 몰두하라는 것이었다. 그녀가 나를 사장님 대신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것도 그녀의 치밀한 계산에서 나온 호칭이었다. 작가 생활을 내 운명으로 간파한 노경진은 그렇게 내 마음을 사려고 애썼던 것이다.

나는 가난에 지친 데다 작가의 꿈을 키울 기회다 싶어 노경진의 유혹에 깊이 빠져들었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소망해온 소설 창작에 전염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노경진은 소설 집필실을 핑계 삼아 내 마음을 살 수 있었고, 아내에게는 업무를 핑계 삼아 별채를 밀회장소로 정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아내를 이런 말로 설득했다.

“낯선 의류계에서 성공하려면 밤을 지샐 날이 많을 테고, 그렇게 올인하려면 회사 곁에 머물러야 효율적이죠. 그러니 언니가 이해해주세요. 그 대신 선생님은 일주일에 한두 번은 꼭 집에 가시도록 하겠습니다.”

나는 아내를 속이는 짓이 마음에 걸렸지만 경제적으로 성공할 때까지만 참고 견디자며 설득했다.

“노 사장은 돌봐줄 사람이 아무도 없어. 친정 식구들은 돌봐주긴커녕 뜯어먹는 데만 기를 쓰거든. 그래서 노 사장은 나를 든든한 울타리로 여기고 있단 말야. 사업체는 큰데 어린 딸과 둘뿐이잖아. 솔직히 그 여자야말로 나 같은 사람 만난 게 홍복이지. 나야 말로 양심 바르고 관리능력이 뛰어난 사람인데 어디서 나 같은 일꾼을 구하겠어. 노 사장이 남편감 만날 때까지만 열심히 돌봐주면 한 밑천 챙길 수 있다구.”

“한 밑천 챙기다뇨? 왜 그런 흉한 말을 하죠?”

“흉한 말이 아냐. 노 사장이 공정한 대가를 치러줄 여자다 그 말이지. 나 같은 인간이 비리를 저지르겠어? 요령껏 빼먹어라 해도 못 빼먹을 인간이잖아.”

“노 사장이 의리를 저버리면요?”

“저버리면 할 수 없지. 저버려도 얻는 게 많아. 포장마차에 거는 희망보다야 더 낫잖겠어? 노 사장은 재혼해도 십 년쯤 후에나 생각해볼 일이라고 했어. 그러니 십 년 간 열심히 저축하면 큰 밑천을 쥘 수 있거든. 또 기술과 경영술을 익히게 되면 우리가 회사를 차릴 수도 있고. 노 사장도 그런 말을 했어. 열심히 배워서 성공해보라고.”

“노 사장이 혹 당신을 노리는 거라면 어떠죠?”

“어이구, 우리 마나님 그럴 줄 알았어. 그래서 당신에게 보여준 게 있잖아.”

“뭘 보여줬는데요?”

“그동안 자식 낳고 살아오면서 당신이 이해하고 느꼈을 내 인격! 내 지조!”

아내가 피씩 웃는다. 그 순박한 웃음이 내 가슴을 저민다. 나는 속으로 외친다. 그래, 눈 딱 감고 참아줘. 우리도 잘 살아보자구. 노 사장의 밥이 되어서라도 이 더러운 환경을 개선해보자구. 여보! 오직 당신만 사랑하는 내 맘을 믿어줘.

노경진은 아내의 환정을 사려고 항상 웃는 낯으로 대했다.

“언니 아무 걱정 마세요. 언니가 뭘 걱정하는지 제가 다 알아요. 나도 남편이 있던 주부였으니 그거에 오죽 예민하겠어요. 아무 걱정 마시고 돈이나 벌자구요. 언니도 고생 그만 하고 잘 살아봐요. 내가 별채로 기 선생님을 모신 것도 어서 분발해서 성공하시라는 격려인 셈에요.”

그런 노경진이 나에 대한 호칭을 선생에서 여보로 고쳐 부른 것은 위장 동거를 시작하고 일 년쯤 지나서였다. 그와 반비례해서 아내에 대한 태도가 아부에서 위압적인 태도로 돌변했다. 언니 대신 당신이라며 삿대질도 서슴치 않았다. 나는 그 사실을 뒤늦게야 알았다. 혼자 눈물을 지으며 참아온 아내가 옷 보따리만 챙겨서 집을 나간 것이다. 화장대 위에 남겨진 쪽지에는 간단히 이렇게 적혀 있었다.

“부디 행복하게 사세요. 위대한 작가의 꿈도 이루시고요. 나 같은 여자와 살면 당신의 꿈은 영원히 이뤄지지 않아요. 평생 고생을 면할 길도 없고요. 애들 굶지 않게 라면을 한 박스 사뒀으니 끓여먹여요. 죽을 때까지 나 볼 생각 말고요.”

착한 아내가 얼마나 슬피 울었을까를 생각하니 몸이 떨렸다. 내 생각이 얼마나 유치했던가를 깨닫게 되자 노경진에 대한 원망은커녕 그녀의 얼굴도 바라볼 수 없었다. 나는 그녀 앞에 정중히 무릎을 꿇었다.

“내게 가장 추악한 저주를 퍼부어주오! 내 더러운 인간성이 당신마저 오염시켰소!”

저절로 눈물이 쏟아졌다. 그런 내게 노경진은 거침없이 악다구니를 퍼부었다.

“비열한 인간! 겨우 눈물 바가지야? 내가 이런 좀사내를 건드리다니! 너 같은 인간이 이런 험한 세상에서 잘 살겠다고 깝죽대? 이 사내야, 돈벌기가 그리 쉬운 줄 알아?”

나는 별채에서 몸만 빠져나와 집에서 울고 있는 애들을 데리고 시외버스 터미널로 향했다. 아내의 품성으로 보아 친정집에 숨을 여자가 아니었다. 시댁의 누구를 찾아갔을 게 틀림없었다. 먼저 고향으로 내려간 나는 읍내에 사는 생질녀를 찾아가 엄중히 닦달했다.

“당장 외숙모 있는 데를 밝혀라. 애들이 굶어죽는다. 어서 숨은 곳을 대!”

그날 밤 생질녀는 제 동생집에서 외숙모를 데려왔다. 세수도 못한 남편과 거지꼴 한 자식을 보고 아내는 화 대신 눈물을 지었다. 나는 아내를 찾은 게 즐거워 농담을 던졌다.

“양옥집 장만하려고 여자 치마 속에 들어갔다가 깡통 차고 나왔어.”

아내의 눈물 젖은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그 웃음이 보름달보다 훨씬 밝아보였다. 머릿속이 개운해졌다. 꼭 목욕하고 나온 기분이었다. 다시 포장마차를 시작할 참이었다.

도대체 원인이 뭐야

또 전화벨이 울린다. 벨 소리가 겁난다. 벌써 6월 한 달 동안에 여섯 번째다. 여기저기서 보쌈을 먹고 설사했다는 항의가 빗발친다. 어떤 단체 손님은 거의가 설사에 시달렸다는 것이다. 일단 피해를 입은 손님들은 찾아가 사죄하고 해결을 봤지만 도대체 원인을 알 수가 없다. 아무리 주방 내부를 검사해도 뾰족한 수가 없다. 재료, 기구, 청소상태는 물론 물까지 생수 대신 보리차를 끓여서 낼 정도로 샅샅이 살피고 청결에 최선을 다할 뿐이다.

행주와 그릇은 모두 삶아 쓰고, 직원들의 손톱을 수시로 검사하고, 머리카락을 비롯하여 신체 노출을 단속하고, 양념통은 소형 냉장고를 별도로 조리대 옆에 두고 수시로 꺼내 쓰도록 한다. 물수건도 공급업체 제품 대신 별도로 구입해서 냉동실에 넣고 꺼내 쓴다. 도마도 여러 개 장만하여 교대로 삶거나 햇볕에 말려서 사용한다. 육수냉장고도 깨끗이 사용했는데, 그처럼 주의를 기울여도 가끔 배탈 나는 사고가 발생한다.

도저히 원인을 캘 수 없다. 심지어는 직원을 의심하기에 이르렀다. 혹 누가 해코지하는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자 스스로 놀라 가슴이 떨렸다. 죄를 짓는 것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친분 있는 손님으로부터 정보를 얻게 되었다.

“혹 김치에 굴을 넣지 않았나요?”

“네. 넣었어요. 보쌈김치는 생김치여서 싱싱한 맛을 내려고 굴을 섞었죠.”

“생김치에는 굴을 넣어야 시원하지만 여름철에는 굴이 독성을 품어요. 그게 복통을 일으키죠.”

나는 양념에서 굴을 빼고 얼른 안내문을 써 붙였다.

저희 업소에서는 보쌈김치 맛을 돋우려고 생굴을 첨가해왔아오나

여름철에는 굴이 독성을 품게 되어 부득이 가을철부터 첨가하기로

했습니다. 그 대신 여름철에는 낙지를 넣었습니다.

정말 어이없는 일이다. 경영자의 하찮은 무지가 엄청난 파문을 일으킨 것이다. 내 자신감이 부끄럽다. 그걸 모르고 있었다니, 전문성 없이 재료를 다룬 그 ‘당연한’ 실수를 반성하며 나는 자만심을 억누른다.

원인 규명으로 다시 정상을 되찾았지만 굴을 다루는 해안가를 찾아가 굴의 독성을 알아보았다. 초여름부터 독성을 품은 알이 생기기 시작하므로 뿌연 알을 제거한 후 음식으로 사용하며, 독성이 심해지면 아예 먹지 않다가 가을부터 다시 먹는다고 한다.

내깐엔 주도면밀히 운영해온 것 같지만 허점이 많다는 걸 뉘우친다. 이런 내 실수를 허마두가 꼬집는다.

“내 사유를 방해하는 데는 대포가 필요 없다. 파리 한 마리면 족하다. 파스칼이 한 말이디. 기걸 밥장사에 대입시키믄 이런 말이 되갔디. 식당을 망치는 데는 입지조건이나 기술이 필요 없다. 파리 한 마리면 족하다. 여게서 파리 한 마리가 뭔디를 생각하면 될 거라메.”

그렇다. 파리 한 마리에 해당되는 실수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수백수천 가지다. 그 실수를 찾아내야한다. 그런 면에서는 군 지휘관이 밥장사를 잘할 것이다.

훌륭한 지휘관은 부대 순시를 할 때 구석구석 살피지 않고도 어느 구석이 불결한지를 잘 알고 있다. 막사 어느 구석에는 아직도 먼지가 껴있을 테고, 어느 구석은 전기 합선이 우려되고, 어느 구석은 누수가 염려되고, 어느 구석은 곰팡이가 껴있을 테고, 어느 유리창은 헐거워서 떨어질 위험이 있고, 어느 병사는 선병질적이고, 어느 병사는 무모하고, 어느 병사는 편집광이고....

식당 주인도 식당 구석구석을 치밀하게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가스 불판을 쓰는 업주는 불판이 수십 개 있어도, 한눈에 가스 코크가 모두 잠겨 있는지를 파악해야 한다. 그런 정신은 음식 맛을 내는 데도 마찬가지다.

포장마차에서 <경포대식당>까지 10여 년간 여러 메뉴를 다뤄본 경험은 춘천옥 개업에 유익한 요소로 작용했다. 음식은 손끝의 감각으로 맛을 낸다. 경험 없이는 그 감각이 손끝에 여물지 않는다. 갖은 양념이나 온갖 야채를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는 자신감은 수없이 반복된 시행착오를 통해 축적된다. 음식은 양념의 배합 비율 말고도 재료를 넣는 순서에 따라서도 맛이 달라진다.

김치찌개, 된장찌개, 순두부, 비빔밥, 오징어볶음, 조기매운탕 같은 야채나 생선 중심의 기본 메뉴는 물론이고 설렁탕, 갈비탕, 육개장, 해장국, 불고기, 곱창전골, 제육볶음, 돼지갈비, 소갈비, 등심, 차돌배기, 삼겹살 같은 육류 중심의 메뉴와 냉면, 칼국수, 떡국 같은 분식 메뉴를 취급하는 동안 맛의 기본 원리와 맛의 변화 묘미를 터득했을 것이다.

특히 육류를 다룬 경험은 보쌈고기의 질 향상에 보탬이 되고, 냉면을 뽑아본 경험은 막국수를 뽑는 감각성을 익혀온 셈이고, 갖가지 야채와 양념을 다룬 경험은 보쌈김치와 막국수의 맛을 내는 데에 직접 이바지한 셈이다. 그리고 오랜 경험은 운영의 묘로 작용한 것이다. 남한테 말만 듣거나 요식업 책만 읽고 쉽사리 대드는 짓은 편안한 침대잠자리를 길거리 노숙으로 바꾸겠다는 얼뜨기 짓이나 다름없다.

동해바다로 대이동

춘천옥 식구 31명의 미녀와 10명의 쾌남을 동해안에

쏟아놓으니 국토의 색깔이 달라지도다.

허마두의 머리에서 나온 현수막이다. 진리 해안 모래톱에 걸쳐놓고 단체사진부터 찍는다. 직원들의 복장 색깔이 화려하다. 모자도 형형색색이다. 버스 앞창에는 <춘천옥 동해안으로 대이동>이라고 쓴 종이가 붙어 있다. 버스기사가 내 카메라로 열심히 사진을 찍어댄다.

일정은 미리 송민호가 짜둔 대로다. 오늘 진리에서 주문진을 거쳐 속초까지 갔다가 거기서 자고, 내일은 거진에서 대진을 거쳐 마차진까지 둘러보고 도로 강릉과 대관령을 거쳐 귀경하기로 되어있다.

다시 버스에 오른다. 송민호가 동승하자 직원들 사기가 하늘을 찌른다. 이번 여행은 분위기를 살리고 각오를 새롭게 다지려는 데에 목적이 있다.

“형님 오시는 김에 춘천옥 식구들을 단체로 데려오면 어때요? 일년에 한번씩 단체 나들이를 하신다면서 이참에 동해바다를 구경시키세요. 직원들 사기도 오를 거구요.”

동해안은 전혀 생각지 못한 일이지만 송민호의 말이 그럴듯했다. 아내도 처음에는 황당하게 여기다가 흔쾌히 동의했다. 일박이일인데 하루 더 쉰다고 손님이 왕창 떨어질 것도 아니었다. 출입문에다 이틀간 쉰다고 큼지막하게 써 붙이면 된다. 생각할수록 송민호의 마음 씀씀이가 고맙다. 탕아를 집으로 돌려보내주는 자상한 경찰관의 마음 같다.

시끄럽던 버스가 금방 조용해진다. 송민호가 마이크를 잡은 것이다.

“이 버스는 지금 속초를 향해 달리고 있습니다. 그 사이 재밌는 얘기 하나 하겠습니다. 춘천옥 사장님이 이곳에 임검소장으로 부임해서 일주일 만에 아버님이 돌아가셨는데, 하도 가난하니까 제가 이장한테 부탁해서 된장하고 고추장을 거둬오게 했죠. 그랬더니 한 사발이면 될 텐데 리어카로 가득 싣고 온 거에요. 어민들이 서로 바가지로 퍼온거죠. 아마 출항 잘 시켜달라고 그랬을 겁니다. 도로 동네에 나눠줬지만, 그 대신 소장님이 얼마나 어민을 아꼈는지 아세요? 나이 든 어민들은 지금도 그 고마움을 잊지 못하고 있어요. 소장님은 어민의 편의를 봐주려고 통금시간을 지키려는 군인들과 어지간히 싸웠지요. 그때 국가적인 큰 사건도 터졌지만 그 얘긴 생략하겠습니다.”

이번에는 내가 마이크를 잡는다.

“속초에서 자고 내일은 거진에 갈 텐데, 내가 그곳 임검소장을 지낼 때 겪었던 추억을 한 토막 들려주지.”

박수가 터져나온다.

“겨울철이라 거진항은 전국에서 몰려든 명태잡이 어선으로 북적거렸어. 바다에서 군사분계선을 잘못 넘어 북한 경비정에 끌려갔다가 돌아온 배도 더러 있었지. 귀환선이 입항할 때면 부두는 사람들이 백절을 쳤는데, 귀환어부들 중에는 장난인지 참말인지는 몰라도 ‘원산에서 소장님 안부를 묻던데요.’ 하고 내게 말을 걸며 북한제 담배를 빼주기도 했어. 그들은 모두 연행되어 조사를 받아야 했거든. 북한에 끌려가 환대를 받고 돌아오니 사상이 달라졌다는 거야. 겨울바람만큼이나 쌀쌀한 시대였지. 하지만 읍내 길거리는 늘 술 취한 어민들로 소란했어. 그들은 어한기인 봄을 두려워하지 않았어.

봄에는 데구리배(저인망어선)로 잡어를 훑으면 됐거든. 그런데 그 해 봄부터는 어족 보호를 위해 당국의 시책으로 불법어로를 강력히 단속했어. 겨우내 명태가 산더미처럼 쌓였던 어판장은 먼지만 풀풀 날렸지. 빈 바구니를 든 아낙들이 출항을 애타게 기다리며 내 눈치만 살폈어. 다른 지역에서는 데구릿배를 출항시키는 바람에 책임자가 구속되었다는 방송이 연일 시끄러운데 함부로 출항시킬 수도 없고. 지역 유지들은 청와대에 진정서를 내고 국회를 찾아다녔지만 별 대책이 없었지. 아무리 처지가 딱해도 불법을 조장할 수는 없었거든.

날짜가 지날수록 인심이 흉흉해졌어. 영세어민들은 일거리가 없어 배곯을 지경이었지. 메마른 어판장에 쭈그리고 앉아 있는 아낙들의 얼굴에는 점점 그늘이 짙어갔어. 그 참담한 모습이 내 마음을 괴롭혔다구. 그들의 풀어진 눈동자에서 보리쌀을 꾸러 다니던 어머니의 퀭한 모습을 읽었어. 나는 다만 며칠간이라도 출항시켜줄 궁리를 했지. 문책을 당해봤자 징계밖에 더 먹겠는가. 징계의 대가로 잠시나마 저들의 주름살이 펴진다면 두려울 게 없다는 묘한 용기가 솟아났어. 출항카드에 도장을 찍으라고 명령했지. 결과는 뻔했어. 삼사 일이 지나자 강릉 본대에서 급전이 날아오고, 검찰에서 출두지시가 떨어졌어. 신문과 방송에서 시끄러웠어. 나는 당장 한가한 양양에 있는 남해 임검소로 피신했지. 거기서 몸을 피한 채 징계 날짜만 기다리는데 갑자기 출동하라는 무전이 온 거야. 북평 쪽에 무장공비가 출몰했다구. 한 달간 산 속에서 작전하고 대장과 함께 본부로 돌아와 내무장관과 청장에게 보고했지. 그때 대장이 청장에게 내 말을 했어. 신문 보도와는 달리 내가 어민들에게 인정을 베푼 것뿐이라고. 그래서 가벼운 징계를 먹었지. 구속이 감봉 1개월로 끝난 거야. 그 대신 북쪽 오지에 있는 양구경찰서로 쫓겨났어. 거기에서 어땠는지 알아? 누구를 만났는데.... 누굴 만났을까?”

“강릉서 좋아지낸 애인요.”

“틀렸어.”

“서울서 같이 근무한 경찰 친구요.”

“틀렸어.”

“사모님요.”

미스 강이 맞춘다. 나는 미스 강의 말에 토를 달아준다.

“공무원으로 임용된 아가씨에게 신원조회가 나왔는데 다른 직원의 소관인 것을 막걸리 한 되 사주기로 하고 내가 맡았거든. 결국 술값 500원을 주고 처녀 하나를 산 셈이지.”

박수가 터져 나온다.

버스는 어둠이 깔릴 무렵에야 호텔에 도착한다. 우선 방을 배정하고 나서 다시 버스에 오른다. 미리 시내 횟집에 마련한 회식장소로 이동하니 식탁마다 음식과 술이 차려져 있다.

식사를 마치자 노래판이 벌어진다. 제일 먼저 미스 강이 <아파트>를 멋지게 뽑자 젊은 직원들이 일어나 춤을 춘다. 다음에는 춘수가 청년답잖게 <꿈에 본 내 고향>을 부르고, 이어서 아내가 <돌아와요 부산항>을 부르고, 다음부터는 앉은 순서대로 한 곡조씩 부른다. 한 바퀴 돌고 나서 송민호 차례가 되자 나는 그에게 <목포의 눈물>을 부르게 한다. 다음 차례인 내가 배호의 <누가 울어>를 마지막으로 부르고 회식을 끝낸다.

호텔방에는 밤이 늦어서야 들었다. 하지만 젊은 직원들은 떼를 지어 바닷가로 나간다. 나는 3층 방에서 창문을 열고 그들이 흔들어대는 디스코 춤을 구경하며, 저들에게 어떻게 하면 더 잘해줄지를 생각해본다. 직원들에게 보너스를 주고, 입사 날짜마다 파티를 열어주고, 기념품을 증정해오고 있지만 항상 죄스러운 마음이 느껴지곤 한다. 나보다 잘 살지 못하는 저들이 가엾기도 하고 혹 내가 저들의 노동력을 착취하는 건 아닌지 돌이켜보기도 한다.

지금 능수엄마는 대승옥에서 손님을 맞아들이겠지.... 그래, 그것이 네 운명이라면 어쩔 수 없구나. 다만 내 마음을 추스르기가 힘들 뿐이구나. 지금 여기에 네가 있다면, 네 싱거운 웃음소리가 저 바다에 번지고 있다면....

“능수엄마가 없으니까 왠지 허전해요. 바보 같은 것. 춘천옥 식구들이 여기 온 걸 알면 얼마나 가슴이 쓰릴까. 누구보다 신나게 떠들 텐데.”

“당신도 능수엄마를 생각한 모양이군.”

“안 할 수 있어요? 여기 가도 걸리고 저기 가도 걸리는데.”

“우리 부부는 바보를 좋아하는 체질인가 봐.”

나는 아내에게 너붓이 웃음을 지어 보인다. 바다 멀리에서 작은 불빛이 흔들거린다. 별빛 같다.

하루 일과를 무사히 끝낸 탓일까? 갑자기 술 생각이 난다. 방에서 쉬겠다는 아내를 남겨두고 나는 밖으로 나간다. 밤바람이 서늘하다. 길 건너에 술집 간판이 보인다. 그쪽으로 걸어가는데 길가 포장마차에서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온다. 주방장 범도가 누구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궁금해서 천막 안을 살짝 들여다보니 미스 강에게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처음 보는 광경이다. 범도가 미스 강에게 대들다니, 그들의 대거리가 궁금하다. 나는 포장 뒤에 서서 그들의 대화를 엿들어본다.

“나는 미스 강을 위하는 일이라면 발 벗고 나섰슈. 미스 강이 불행한 일을 당하면 목숨을 걸구래두 도와주고 싶었슈. 그런 내 맘을 몰라주는 미스 강이 원망스러워유.”

“미안해요. 범도씨가 착한 분이라 따뜻한 우정으로 지내고 싶었던 거에요. 나는 누구와도 연애 같은 건 생각해본 적 없어요. 우리 언니의 불행한 결혼을 본 후로 혼자 살기로 결심했어요. 사실 남자와 사귈 여유도 없어요. 사업가가 되는 게 내 꿈이라고 말했잖아요? 일을 배우는 것 말고는 아무 생각 없어요. 암튼 범도씨에게 오해를 사게 한 점 죄송해요.”

“우리 사이에 죄송이 뭔 소용이래유.”

“범도씨 자꾸 우리 우리 하시는데, 듣기가 좀 거북해요.”

“그럼 대승옥에 가는 건 어떻게 해유?”

“대승옥에 가는 거라뇨?”

“함께 글루 가자고 말했잖유?”

“일방적으로 말해놓고 함께 가다뇨? 대승옥엔 가기도 싫거니와 간다 해도 내 마음이 끌릴 때 갈 거에요. 그런데 왜 자꾸 동행을 강요하는 거죠? 내내 얘기했지만 나는 누구에게 얽매이는 것 정말 싫어요.”

잠시 침묵이 흐른다. 그 침묵을 미스 강이 깬다.

“나는 춘천옥에도 오래 있지 않을 거에요.”

미스 강의 말이 거슬렸지만 범도를 떼어놓기 위해 둘러댄 말이겠지 하고 나는 걱정을 지워버린다.

“그럼 워디로 갈건디유?”

“그거야 모르죠.”

“술 좀 드세유.”

“난 피곤해서 그만 들어가 자야겠어요.”

“오늘밤 둘이서 재밌게 지낼 참였는데....”

“이렇게 둘이 보냈잖아요?”

미스 강이 웃으며 일어난다. 나는 그들을 피해 서둘러 술집으로 걸어간다. 우연히 미스 강의 마음을 확인한 셈이다.

주방장 범도가 떠나다

영업을 끝내고 옷을 갈아입은 미스 강이 퇴근을 미루고 휴게실로 나를 찾아온다.

“주방장 얘길 들으셨어요?”

“무슨 얘길?

“춘천옥을 그만두고 대승옥으로 간댔어요.”

“직접 주방장한테 들었어?”

“첨엔 저보고 같이 가자고 졸랐지만 거절했어요. 당치도 않은 소리죠.”

“봉급을 더 준다고 꼬셨을 텐데?”

“봉급이 문제가 아니죠. 아무리 돈 벌러 나온 일이지만 경우가 있잖아요.”

“고마운 말이지만, 현실적으로는 보수가 우선이지. 보수가 많으면 유혹을 거절하기가 힘들어. 능수엄마에게 내가 얼마나 잘해줬어. 그래도 보수를 더 준다니까 떠났잖아. 미스 강도 언제 마음이 동할지 모른다고. 이제 주방장도 거기로 갔으니 미스 강을 줄기차게 유혹할 텐데?”

나는 은근히 미스 강의 마음을 떠본다.

“만약 제가 춘천옥을 뜬다 해도 거긴 안 갈 거에요. 부모님은 오히려 잘됐다고 말씀하셨어요. 이젠 맘 놓고 춘천옥에서 일하게 됐다고요.”

“그럼 부모님은 주방장과 멀어지기를 바라신 모양이군.”

“당연하죠. 솔직히 저는 여러 번 뜰까 했어요. 범도씨가 안 뜨면 제가 뜰 수밖에 없었죠. 지금까지 못 뜬 건 사장님 때문예요. 부모님도 항상 사장님 같은 분과 지내라고 말씀하셨어요. 인생을 배우라고요.”

“고마워. 그러고 보니 부모님을 뵌 게 오래됐군.”

“제 부모님들은 사장님 팬이세요.”

“정말 몸 둘 바를 모르겠군. 혹 미스 강이 보탠 말은 아니겠지?”

“보탠 게 아니고요, 오히려 제가 한두 가지 생략했죠.”

“나에 대한 얘길 더 하셨다구?”

“좀 맹한 분 같은데 그 맹한 것이 사람을 매혹시키더라, 그러셨걸랑요. 그리고 그 맹한 것이 자꾸 사람의 마음을 맑게 씻어주는 것 같더라....”

“아빠가? 엄마가?”

“엄마가요.”

“그럼 집에 가서 엄마 아빠 당장 이혼하시라고 그래. 나도 당장 이혼할 테니.”

“엄마는 늙으셨는데요?”

“몸이야 늙으면 어때? 마음만 젊으면 되지.”

“실은 그 말은요, 엄마 말씀이 아니고 제가 꾸며낸 말이걸랑요.”

미스 강은 그 말을 던지고 얼른 밖으로 나간다.

주방장 범도가 나를 찾아온 것은 이튿날 아침이다. 출근복도 갈아입지 않은 채 휴게실로 들어왔다.

“저 다른 데로 갈거유.”

범도의 말은 간단하다. 날씨는 내 기분만큼이나 우울하다. 밖에는 비가 내리고 있다. 미스 강으로부터 들었던 사실이라 감정은 오히려 차분하다. 나는 어디로 갈 건지도 묻지 않는다.

“그동안 고생 많았다. 너는 창업 공로자라 오래오래 지내면서 의지하고 싶었는데, 네가 자청해서 떠나겠다니 어쩔 수 없구나.”

“먼디로는 안 가유.”

“대승옥으로 가는 것 알고 있다. 어디에 가든 열심히 해라.”

“종종 놀러 올게유.”

“그건 안 된다. 너도 잘 알겠지만 일단 춘천옥을 떠나면 발길을 끊어야 한다. 내가 아끼던 능수엄마도 춘천옥을 떠난 이상 얼씬도 못하게 했잖니. 너희들은 여기 오는 게 재밌을지 몰라도 우리는 상처가 크다. 또 여기에 남아 있는 사람들의 기분도 상하게 되니 찾아오지 마라. 네가 다른 곳에 가는 것과는 다르다. 내 가슴에 못을 박겠다는 건데, 무슨 낯으로 찾아온다는 거니.”

“미안해유.”

“나도 너한테 이런 말을 하는 것이 가슴 아프다. 그 집에서 너한테도 봉급을 배로 올려준다고 했을 테니, 그게 진실이면 우리 집에 있을 필요 없지.”

“미안해유.”

“나는 너를 잊지 못해. 착한 너를 어떻게 잊겠니. 네가 처음 왔을 때 땀을 삘삘 흘리며 메밀을 반죽하던 일 생각나니?”

“예에.”

“그땐 참 신났었지. 영업 끝나면 우리 둘이 술 마시러 다니구.”

나는 그 말만 던져주고 서둘러 휴게실을 나와 주방 쪽으로 걸어간다. 그가 배신당할 걸 뻔히 알면서도 말리지 못하는 게 마음에 걸렸지만 어쩔 수 없다. 내 말을 진심으로 들어 줄 리가 없는 범도다.

미스 강, 나를 불행하게 만들어다오

“요즘 사장님 맘이 어떠실지 잘 알아요. 그렇다고 너무 염려 마세요. 제가 능수엄마만은 못하지만 열심히 할게요.”

“미스 강, 솔직히 말할까? 능수엄마는 그게 한계야. 더 발전할 수 없어. 세상에는 한계가 있는 사람이 있고, 그 한계를 뛰어넘을 사람이 있어. 미스 강은 얼마든지 발전할 수 있는 인간이야. 몰라보게 달라질 수 있다는 거지. 내 말 알겠어?”

“예.”

“그럼 능수엄마와 미스 강의 차이점을 한마디로 말하지. 능수엄마한테는 방금 내가 미스 강한테 한 말을 할 수 없어. 그 말을 이해 못하니까. 하지만 미스 강에게는 방금 했잖아. 왜지? 왜 그런 말을 했지? 미스 강은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라 한 거야. 그게 두 사람의 차이점이라구.”

“고마워요. 저를 그렇게 봐주셔서.”

“고맙다는 말 듣고 싶어 한 말이 아냐. 사실대로 말 한 것뿐야. 다만 그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서 어떻게 해얄지 그건 미스 강의 몫이지.”

“명심하겠습니다.”

“그러니 최고가 되겠다는 사람은 누구든 춘천옥에 남을 가치가 있지만, 그럴 수 없는 사람은 어서 봉급 많이 주는 곳을 찾아가야지.”

“제가 양심에 찔리는 게 있어요.”

“뭔데?”

“제가 주방장과 진정으로 어울릴 수 있다면 이번에 못가도록 했을 거에요. 그렇지만 멀리할 사람이어서 떠나길 바랐지요. 붙잡지 못한 것, 양심에 찔려요.”

“범도는 자기 수준에 맞는 길을 택했을 뿐야. 그가 대승옥에서 배신당할 것도 알고 있어. 그렇다고 그 앞일을 말해준다고 믿지도 않을 것이며, 오히려 내가 이상하게 보일 뿐이라구. 우리집 봉급 수준이 한국 요식업에서는 최고액수라고 자부해. 미스 강도 알다시피 나는 직원들에게 어떤 식으로 고마움을 표시할까 그걸 고심해온 사람이야. 그런 보수의 두 배를 계속 줄 업주가 있을지 그게 의문이라구. 또 계속 준다 해도 주방장이 그런 터무니없는 보수를 받을 만한 사람인지....”

“무슨 말씀인지 알겠어요. 제가 아까 양심에 찔린다고 말한 게 바로 그 뜻이었어요. 범도씨에게 세상물정을 일깨워주고 싶었지만....저와 상관없는 사람이어서.”

“그래?”

놀라운 일이다. 미스 강의 수준이 이 정도란 말인가. 그녀의 높은 의식수준에 오히려 내가 조심스러워진다.

“미스 강.”

“네?”

“왜 이런 일을 하는 거지?”

“식당 일이 어때서요?”

“상식이란 게 있잖아.”

“저도 사장님 같은 사업가가 되고 싶어서 그래요.”

“결혼도 해얄 텐데?”

“저는 시집 안 가요. 멋진 사업가가 될 거에요.”

“도전정신이 기특하군. 미스 강?”

“네?”

“나 춘천옥 망해도 할 수 없어. 다만 최선을 다할 뿐야.”

“염려 마세요. 이 참에 저도 제 능력을 실험해보고 싶어요.”

나는 얼른 밖으로 나가 하늘을 올려다본다. 하늘에는 별이 총총하다. 감당 못할 눈물이 쏟아져 내린다. 실컷 울고 싶다.

나는 실컷 우는 게 소원이다. 서럽게 울 기회가 없었다. 절머슴 아버지와 눈먼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도, 아침 끼니가 없을 때도 서럽게 울어보지 못했다. 그런데 지금 무시해왔던 한 직원 때문에 실컷 울게 된 것이다. 나는 마음껏 눈물을 쏟아낸다. 몸이 가벼워진다. 그때 바로 곁에서 인기척이 느껴진다. 어느새 미스 강이 내 곁에 머물고 있다. 겨우 눈물을 멈춘 내 입에서 엉뚱한 말이 흘러나온다.

“미스 강, 너도 내 곁을 떠나다오! 그래서 나를 불행하게 만들어다오!”

아내와의 전쟁

아내와의 전쟁은 노경진과의 위장 동거 이후 시작되었다. 그전에는 부부싸움을 제대로 벌인 적도 없거니와 다퉜다 해도 아내는 방구석에 얼굴을 묻고 조용히 눈물만 흘리는 게 고작이었다. 그만큼 순박했다는 말이다. 그런데 노경진과의 ‘동거 사건’이 터지고부터는 하루가 다르게 억새풀처럼 날카로워졌다. 다만 남이 보는 앞에서는 예전처럼 상냥한 모습을 보이는 바람에 춘천옥 식구들은 아내가 식칼을 들었다는 사실을 알 턱이 없다. 내가 재미 삼아 칼 든 이야기를 꺼내면 모두 내가 꾸며낸 말로 여길 뿐이었다. 그만큼 아내는 착하고 점잖은 여자로 이미지가 심어져 있는 것이다. 나는 아무리 내 입장을 세우려 해도 아내는 천사가 되고 나는 악마가 될 뿐이다.

아내와의 전쟁 양태는 시기에 따라 달랐다. 초반전에는 적을 약올리는 정도에 그쳤고, 중반전에서는 적에게 마음의 상처를 내는 정도로 조심스러운 싸움이었다. 하지만 후반전에 접어든 요즘은 터졌다 하면 육박전이다.

전쟁터는 거실, 안방, 주방을 가리지 않지만 대회전은 주로 거실에서 치러지게 마련이었다. 무기도 처음에는 베개, 책, 손톱 등을 사용하다가 전세가 점점 치열해지면 티브이 리모컨, 씨디 케이스, 이쑤시겟통, 전화기 등으로 발전하고, 드디어 육박전이 터지게 되면 눈에 띄는 모든 것, 일테면 커핏잔, 과일접시, 의자, 화분, 복사기, 오디오, 티브이, 컴퓨터, 액자, 조각품, 도자기, 전기밥통, 심지어 식칼까지 동원했다. 그 중에서도 원자폭탄 격인 식칼은 주로 아내가 사용했는데, 평소에는 나보다 얌전하고 참을성 많은 아내지만 눈이 뒤집힐 정도가 되면 사정없이 장롱이나 방문을 찍었다.

재산 피해도 엄청났다. 몇 백 만원 피해는 속출하고 천만원대의 피해가 발생할 때도 있었다. 한 번은 아내가 천육백 만원짜리 자개농을 부엌칼로 작살낸 적이 있다. 우리가 가난한 시절에는 꿈도 꿔보지 못한 재산이다. 백만 원 보증금에 월세 십만 원을 내고 단간방에서 시부모까지 여섯 식구가 살 시절에는 평생 벌어도 손에 쥘 수 없을 것만 같은 액수였다. 그런 재물을 아내는 화났다 하면 애들 장난감 부수듯 거덜내곤 한다. 문짝만 해도 한 군데만 찍으면 손해가 덜할 텐데 안방문, 애들방문, 심지어 화장실문까지 찾아다니며 찍는다. 만약 억대의 승용차가 집안에 있었다면 그것도 작살냈을 것이다.

그런데 참 묘한 일이 하나 있다. 화가 치밀 때는 물불 가리지 않는 아내지만 그녀가 가장 증오하는 물건에는 칼을 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서재에 놓인 쌀통만한 상자가 바로 그 물건인데, 상자에는 내 일기장이 보관되어 있고, 그 일기에는 노경진과 바람피운 내용이 적혀 있는 것이다. 하지만 아내는 절대로 그 상자에 손을 대지 않는다. 값비싼 캐나다 산 홍송 문짝이나 천만원대의 자개농까지 작살내는 아내가, 전쟁의 주적(主敵)인 남편이 애지중지하는 물건에 손을 대지 않으니 이해할 수 없는 노릇이다. 화날 때는 고사하고 평상시에도 부숴버려야 할 저주물이 아닌가. 그런데 눈이 뒤집힌 상태에서도 온전히 남겨두는 이유가 뭘까?

암튼 전쟁 후의 피해는 금전적 손실말고도 정신적 시간적 피해 또한 만만찮다. 칼로 물을 베면 일초도 안 걸리고 원상복귀되지만, 우리 부부싸움은 그런 물베기가 아니다. 칼자국이 흉측한 집안을 상상해 보라. 또 상처난 가구를 교체하기 위해 가구점을 뒤지고 다니는 심정과 수고를 상상해 보라.

가구를 새로 들이는 데도 부숴버린 가구보다 더 나은 제품을 들여놔야 그나마 마음의 상처를 달랠 수 있는 법이다. 전보다 못한 것을 들이면 상심을 달래지 못하여 전쟁 후유증은 오래 가게 마련이다. 그러니 더 좋은 가구를 사기 위해 오랜 시간 고심하며 가구점을 뒤져야 하는 그 수고는 상상만 해도 징그럽다.

아내에 대한 실망은 거기에 있다. 아무리 화가 나도 참을 일이 있잖은가. 아내보다 성질이 더 급한 나도 부엌칼을 들고 설치진 않는다. 한번 들으면 어딘가를 찍어야 상대방한테 체면이 서는 법이니, 그 비참한 자존심의 횡포 때문에라도 칼을 들어서는 안 된다. 나는 아무리 화가 나도 소파에 놓인 쿠션이나 방석 따위를 내던지는 게 고작이다. 딱 한번 골프채를 든 적이 있지만 이것저것 고르다가 기껏 화분 하나를 부수고 말았다.

“썅, 모두 작살내고 말 거야.”

말뿐이었다.

요즘 나는 싱크대 속에 있는 식칼에 신경이 써지곤 한다. 아내의 갑상선 질환 때문인데, 갑상선이 나빠지면 감정조절이 힘들고 신경이 날카로워져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른다. 그래서 칼끝을 무디게 잘라낼까도 생각해본다. 아내는 말한다.

“집안에 날카로운 물건 두지 마세요. 갑상선 때문인지 도저히 감정을 조절할 수 없어요. 이러다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모르겠어요. 나 자신이 겁나요.”

그 말을 들은 후로 나는 기가 꺾인 게 사실이다. 겁주려고 일부러 칼을 들었으리라 생각하면 아내의 그 속보이는 작전이 가소로우면서도 속으로 꿀리는 건 어쩔 수 없다. 너 죽고 나 죽자면 대책이 없잖은가.

극히 드문 예지만, 우리 부부는 벌거벗은 채 이불 속에서 싸운 이색적인 경우도 있다. 처음에는 기분 좋은 대화와 애무로 무드를 잡기 시작해서 잠옷까지 벗기기는 한다. 그런데 팬티만 입은 아내가 갑자기 몸을 돌려 돌아눕는다. 살을 섞지 않겠다는 시위다. 그 바람에 내 몸이 식어버리고 침실에는 먹구름이 끼기 시작한다.

“왜 그래?”

“몰라서 물어?”

노경진 탓이다.

“언젯적 일인데, 자꾸 곰파는 거야.”

“불과 오 년 전인데 언젯적?”

“그럼 어쩌란 말야. 지난 일을 가지고 어쩌란 말이냐구.”

내가 조심스레 꼬리를 내려보지만 아내는 막무가내로 내 몸을 밀친다. 다시 시도해봐도 마찬가지다. 지난 일은 깨끗이 잊고 새출발하자고 달래면, 아내는 자기 옆구리를 감싼 내 팔을 홱 뿌리쳐 버린다. 드디어 내 입에서 독기가 뿜어져나온다.

“꺼져!”

“꺼지라면서 왜 팔은 잡아!”

나는 꺼지라고 소리를 치면서도 어느새 아내의 팔을 잡았던 모양이다. 말은 꺼지라고 하면서 함께 자고 싶은 그 모순이 내 약점이고, 아내는 그 약점을 무기로 사용한다. 베개와 이불을 챙겨 자기 서재로 사라짐으로써 나를 미치게 만드는데, 우리의 이불 속 전쟁은 대개 그런 식이다.

우리 전쟁의 별난 점은 피차 적이 죽지 않기를 바란다는, 어이없는 사실에 있다. 전쟁에서 가장 혁혁한 전과가 적 사살인데, 이놈의 전쟁은 오히려 적이 죽을까봐 휴전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아내가 “으윽!” 하고 벌렁 나자빠지거나 숨이 넘어갈 듯 칵칵거리며 가슴을 쥐어뜯으면 즉각 휴전이 성립되고, 냉수를 마셔주랴 팔다리를 주물러주랴 적을 살리려고 허둥대다가 결국에는 무릎을 꿇게 마련이다.

“오오 신이시여! 제발 저 여인을 살려주소서! 만약 저 여인의 숨이 멈추게 되면 제 숨 또한 멈출 수밖에 없나이다!”

그러면서 나는 눈물을 줄줄 흘리게 마련이다.

아내도 나처럼 간절할까? 불쑥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물론 내가 졸도한 적이 없으니 확인할 순 없지만, 보나마나 아내는 평소에 자주 흘리던 그런 시시한 눈물을 흘릴 테고, 나처럼 절통하면서도 아주 철학적인 눈물을 쏟진 않으리라.

진실의 깊이랄까, 나와 아내의 다른 점은 바로 거기에 있다. 나는 부부싸움과 아내사랑을 100미터 높이로 차이를 두지만 아내는 1미터 차이도 두지 않는다. 아내한테 부부싸움은 바로 사랑의 제로 상태를 의미한다. 물론 오랜 세월 전쟁에 지쳐서 그리 되었는진 몰라도, 그 또한 나와 다른 점이다. 나는 부부싸움을 천 번 하든 만 번 하든 아내에 대한 내 애정은 일직선인데 비해 나에 대한 아내의 애정은 활처럼 휘고 만다. 여자라 그럴까? 그건 모르겠다. 암튼 내 마음을 몰라주는 그 인식차원이 안타까울 뿐이다. 제발 연애시절의 아내로 되돌아갔으면, 그게 내 소망이다.

500원 주고 산 아내

나는 아내 장은하를 500원에 샀다. 내가 동해안에서 거진임검소장으로 재직할 때 징계를 먹고 양구경찰서로 좌천되어 근무할 때였다. 동료 직원인 추 형사가 반명함판 사진이 붙은 신원조회서를 내게 보였다. 군청 임시직 직원이 정식으로 임명을 받기 위해 제출한 신원조회 의뢰서였다.

“어때? 삼삼하지?”

나이는 스물, 얼굴이 예쁘장하고, 눈이 맑다. 길에 금덩이가 떨어져 있으면 몰래 숨기긴커녕 주인을 찾으려고 온종일 헤맬 여자 같다. 코흘리개를 꿰찬 홀아비 신세에 그만한 아가씨라면 하늘에서 별 따기다.

“내가 맡지.”

손을 내밀자 추 형사는 맨입으론 안 된다며 조건을 건다.

“막걸리 한 되면 되겠나?”

“막걸리 한 되면 오백 원인데…… 좋아. 가난뱅이 짜봤자 똥뿐이 안 나올 테고, 그 대신 망신당하지 말라구.”

조심해서 처리하라며 추 형사가 서류를 넘겨준다. 본적, 전주소, 현주소, 생년월일, 학력, 경력 등 인적사항은 물론 가족사항, 재산관계, 성분, 성격, 심지어 형액형까지 적혀 있으니 그 공문서는 중매쟁이나 다름없다.

“눈물나게 고맙구먼. 이 기막힌 팔자, 한번 용트림해볼까?”

“기막힌 팔자라…… 이상할 기(奇), 괴팍할 기, 기이할 기, 기현상? 정말 팔자가 기막힐 수밖에 없겠군…… 그런데 기 형사는 왜 좋은 이름 놔두고 별명을 만들어 쓰는 거야? 게다가 성까지 바꾸다니?”

“아침부터 어지간히 심심한 모양이군. 계엄령이나 긴급조치 같은 거 터지면 좋으련만.”

창밖 멀리 보이는 파라호가 신기루처럼 야울거린다. 눈이 녹는가 싶더니 벌써 여름이다. 계절을 잊은 채 거칠게 살아온 세월이 먼지처럼 몽글게 부서져 내 숨통을 막는다. 간첩 색출에 매달려온 업무는 한시도 눈을 뗄 수 없는 감시의 연속이었다. 낭만이 어려있어야 할 돌담길에는 간첩의 체취가 자욱할 것만 같았다. 볼 수 없는 것을 봐야 하고, 맡을 수 없는 냄새를 맡아야 하고, 들을 수 없는 소리를 들어야 하는 직업이 내 의식을 지치게 만들었다. 담배를 입에 문 채 전화기 다이얼을 돌렸다.

“군청 내무괍니다.”

“여긴 경찰서 정보관데, 장은하씨 부탁합니다.”

“제가 장은한데요.”

“신원조회가 나와서……”

“네, 네, 감사합니다.”

“무조건 감사하다뇨?”

말을 좀 삐딱하게 받아본다. 인생 풋내기여서 정보과니 신원조회니 하는 말에 목소리부터 얼어버린 모양이다.

“네, 네, 전화 주신 게 고마워서요.”

“고마울 건 없소. 내 업무니까.”

“지금 찾아뵐까요?”

“그러면 좋지.”

십오 분쯤 지났을까, 수박색 투피스에 빨간 롱부츠 차림의 아가씨가 사무실로 들어선다. 잔뜩 멋을 부린 모양인데 촌티가 역력하다. 하지만 나는 그녀의 하얀 살결과 상냥한 미소에 벌써 주눅이 들고 만다. 주눅이 드는 이유는 딱 한 가지다. 상대방의 미모나 가정환경 따위에 꿀려서가 아니라 내 비참한 처지만을 놓고 절대평가하기 때문이다. 눈에 드는 처녀와 마주할 때마다 맥을 못추게 하는 악조건들, 일테면 월세방살이를 전전하는 가난, 눈먼 어머니를 모시는 지친 뒷수발, 세 살짜리 애를 혼자 거둬키우는 추레한 홀애비 꼴, 그런 것들이 기부터 질리게 했던 것이다. 처녀를 만났을 때마다 코를 훌쩍거리며 아빠, 하고 달려드는 홀애비자식 특유의 꾀죄죄한 궁상기나, 신령님과 조왕님만 찾으며 헛소리하는 눈먼 노파의 모습이 떠오르면 내 인간조건은 바람에 흔들리는 풀잎처럼 여지없이 중심을 읽게 마련이다.

“거기 앉아요.”

아가씨를 책상 앞 나무의자에 앉힌 다음 그녀가 내 머리 가르마를 정면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몸을 비스듬히 틀어 앉았다. 내 왼쪽 이마가 미국 영화배우 케리그란드의 이마를 빼다박았다는 말을 자주 들어온 터라, 그녀에게 매력포인트를 보이고 싶어서였다.

“이름은?”

“장은하.”

“생년월일?”

“거기에 적혔을 걸요?”

“여기에 적힌 걸 누가 몰라서 물어?”

슬쩍 겁을 준다. 내 말에 순종할 수밖에 없는 것이, 만약 담당자의 의견 기재란에 용공(容共)에 대한 냄새라도 피우는 날에는 정식 공무원 임용에 치명타를 입게 마련이다. 친인척의 부역사실도 조사 대상이어서 한 마디로 밥줄이 끊어질지 모른다는 말이다.

“죄송해요. 천구백오십 년 칠월 이 일생입니다.”

“아버지 직업은?”

“정미소 해요.”

“부잣집 딸이군. 어머니는?”

“집안에서 살림만하시죠.”

“가정주부라고 간첩 아니란 법 있어?”

“어머.”

“농담요. 아가씨가 맘에 들어서…… 맘에 든다는 말도 농담이지만.”

“형사님은 농담을 좋아하시나봐요.”

그녀가 상냥하게 웃는다. 조사 내용을 잘 써달라는 뜻인데, 뭐니뭐니 해도 여자의 순박한 미소가 가장 큰 빽이다. 사내는 대개 여자의 순박한 맛에 맥을 못춘다. 나처럼 닳고닳은 데다 세상사에 지치고 지친 사람한테는 그런 촌스러움이 가장 효험 있는 약이다.

“아들 하나에 딸이 일곱이네? 오빠는 초등학교 선생이고.”

나는 사환을 불러 다방에 커피 주문을 시킨다. 형사 생활 칠 년에 이런 대민관계는 처음이다. 언제나 저쪽의 대접을 받게 마련인데 이쪽에서 대접을 하다니.

“아직 때묻지 않은 분이라, 되도록 좋게 썼소.”

볼펜을 놓으며 슬며시 그녀의 마음을 건드려본다.

“고마워요.”

그녀가 연방 머리를 주억거린다. 나는 그 허전한 인사치례가 달갑지 않다는 표정을 지으며 담배를 피워문다. 실속 없는 고마움 같은 거 때려치고, 제발 내 손이나 잡아줘라. 키스는 훗날로 미루더라도. 그런 말이 입 속에서 뱅뱅 돈다.

막상 조회를 끝내고 나니 귀중품을 잃어버린 기분이다. 참 묘한 인연이다. 서울경찰청에서 근무하는 동안, 숱한 요조숙녀를 다뤄봤지만 지금처럼 첫눈에 반하기는 처음이다.

초판부터 왜 이런 심정일까? 저 아가씨가 뭐길래? 멋지고 멋진 서울 아가씨도 눈 밑에 깔았는데, 저 어리숙한 촌뜨기한테 마음을 빼앗기다니. 아무리 나이가 어린 숫처녀라 해도 내 눈에 명태 껍질이 씐 게 틀림없다. 아니면 시골로 전근 와서 외롭게 지낸 탓일까? 저 정도 여자는 강릉에서 근무할 때도 숱하게 만났잖은가?

이러다간 정말 애간장이 녹을 판이다. 아무리 마음을 다잡으려 해도 세상이 자꾸 슬퍼보인다. 손가락이 장작개비처럼 생겼어, 짙은 화장으로 곰보를 지웠을지 몰라, 유방이 짝짝일거야, 겉은 착한 것 같지만 속은 시커멀지 몰라, 그런 식으로 장은하를 폄하해 보지만 그럴수록 내 마음은 그녀한테 악착같이 매달린다.

“내가 실수한 모양이네. 자네한테 넘겨주지 말았어야 하는데.”

추 형사가 내 넋 빠진 꼴을 걱정한다.

“뭔 소리야, 그 여자 잊은 지 오래됐어.”

“오래된 것 좋아하네. 그래서 뻔질나게 군청 출입하나? 극장 출입도 뻔질나구?”

“왜 또 속을 뒤집는 거야?”

“하기야 극장에서 만나면 일 추기는 수월하겠지. 신세진 형사가 옆에 앉으라는데 함부로 거절하겠어? 컴컴한 곳에서 손 주무르며 속삭이면 작업이 빨라질 거라구.”

“애인이 있을 거야.”

“어쭈, 나보고 애인이 있나 없나 수사해달라구?”

“좁아터진 읍내서 수사고 자시고가 어딨어.”

“그러니 맘 놓으라구. 아직은 끄나풀 본 적 없으니까.”

“정말로 없어?”

“벌써 수사해봤다니깐 그러네.”

“내 맘이 이렇게까지 될 줄 몰랐어.”

“한 달 내로 고민을 해결해 줄 테니 걱정 마.”

나는 추 형사의 손을 꽉 잡아준다. 세상이 갑자기 아름다워 보인다.

“무슨 수로?”

“작전을 세워놨어.”

“작전?”

“여기가 수복지구잖아. 육이오 전에는 이북땅이란 말야. 영감들 서넛을 막걸리로 구어삶았지. 술술 나오더군.”

“그래서?”

“외삼촌이 인민위원회에서 부역했다는 거야. 책임자로 있었다니까 아마 위원장을 지낸 것 같애.”

“정말이야?”

“그래.”

“어어…… 큰일이군.”

“자넨 직무를 유기한 셈이야. 그 따위 신원조회가 어딨어. 부역자 생질을 통과시키다니.”

“내가 실수했네 그려.”

“아무리 여자한테 환장했기로서니 그런 실수를 저질러?”

“가만 있자, 사표를 쓸까? 스스로 죄를 묻는 의미에서?”

나는 엄살을 떨어본다.

“어쭈, 선수를 쳐? 술을 사기 싫다 이거군.”

“그런데, 부역 사실이 진짜라면, 왜 요시찰인명부에 없었을까?”

“전쟁 전에는 여기가 이북 땅이었잖아. 엄중이 따지면 부역이랄 수 없지. 부역으로 치자면 모두 부역자인 셈이고. 그러니 부역에 별 의미를 둘 필요 없다 이거야. 영감들하고 옛날 얘기 하다 들은 말이니 그걸로 자네 소원이나 풀어보자구. 여자를 다시 만날 수 있는 좋은 빌미잖아. 직장을 버릴 테냐 홀애비를 택할 테냐.”

“백번 천번 직장을 버리겠지. 귀한 정미소 집 딸이 애 딸린 홀애비를 택하겠어?”

“이거 장난이 아니군. 우리 불쌍한 홀애비가 완전히 돌았어. 그런데 말야, 자네가 말한대로 사표도 일리가 있긴 해. 애 딸린 홀애비한테 선뜻 넘어올 처녀가 없을 테니, 그런 식으로 디밀면 무슨 수가 생길지 몰라. 당신을 봐준 죄로 사표를 냈으니 날 책임져라.”

“그건 깡패짓이고, 앗살하게 신분증을 던져버리면 어때.”

“앗살 좋아하네. 집도절도 없는 주제에 함부로 밥통을 던지다니. 하긴 그집에 머슴으로 들어가면 기회가 생길진 몰라. 그리되면 장인은 방아찧고 사위는 쌀가마 져나르고, 죽이 척척 맞겠네.”

“장가만 들 수 있다면야 머슴이 문제겠는가.”

“어쭈, 차라리 수갑을 채워서 서울로 끌고가지 그래.”

“정이나 안 되면 그 수밖에 없지.”

“어렵쇼. 이 사람 눈동자 보니 정말 일내겠군. 환장한 눈빛이라 충분히 그런 짓 하고도 남을 것 같애.”

군인극장, 이름이 너무 노골적이다. 군인보다 민간인 관객이 태반인데, 획일주의는 극장 이름에까지 영향을 끼친 셈이다. 몽둥이는 설득에 우선한다. 가치관은 자생이 아닌 조립으로 형성된다.

“영화가 끝나면 달구경하고 싶었어요.”

장은하가 극장 입구에 서 있는 나를 보고 다가와 야살을 떤다. 아부할 여자가 아닌 듯싶은데, 추 형사가 무슨 말을 했길래 저렇게 태도가 변한 걸까? 겁을 줬어도 보통 준 게 아닌 듯싶다. 외참촌 부역 사실 따위로 으름장을 놓을 추 형사가 아니지만, 장은하의 급변한 태도가 어쩐지 개운찮다. 시내를 빠져나와 파라호 둑길에 이르자 나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추 형사가 뭐랩디까?”

“알고 계셨군요. 추 형사님은 제가 자진해서 전화 드린 걸로 하랬는데……”

“은하씰 꼬시려고 미리 짠 작전이었오.”

“그럼 여기 파라호에 온 것도 각본대론가요?”

“물론이죠. 지금 고백하려는 말도 각본에 있는 대사고요. 은하씨 사랑합니다. 이 목숨 다해 영원히……”

장은하가 고개를 돌리며 터져나오는 폭소를 억지로 삼킨다. 달빛이 그려낸 그녀의 턱선이 곱다.

“친구가 쓰잘데없는 말을 했을 테니 오해 말아요. 보나마나 그 친구가 이런 말을 했을 거요. 어서 기 형사를 만나 키스해 줘요. 안 그러면 그자가 당신 외삼촌의 부역사실을 털어놓을 거고, 그러면 공무원 임용은 물 건너가요. 그자가 얼마나 데데한 인간인지 당신은 모를 거요. 서울에서도 못된짓만 하다가 쫓겨난 인물이오. 남의 약점만 뜯어먹고 사는 악발이죠. 그러니 공무원 생활이 욕심나면 키스 정도는 선물해얄 거요. 돈봉투를 주면 수월하겠지만 그자 성질이 더러워서 그런 건 받지 않아요.”

“꼭 연극 대사 같군요. 그런데, 여자는 키스를 선물하면 된다지만 남자는 뭘로 빽을 써야죠?”

어렵쇼? 이 여자 봐라. 보통내기가 아니군.

“돈으로 빽을 써야죠. 되도록 굵은 액수로. 취직하기 어려운 시대라 시시한 액수는 던져버려요.”

“그런 분이 왜 구질한 판잣집 단칸방에서 월세살이 하시죠?”

달빛이 출렁이는 호수 복판에 안개가 끼기 시작한다. 장은하의 목소리가 저 안개였으면, 하는 생각이 떠오른 순간 갑자기 목이매이는 바람에 담배를 꺼내 피운다. 왜 갑자기 슬퍼지는 걸까?

“추 형사님은 참 좋은 분이더군요. 기 형사는 괴로운 사람이오. 자기가 가고 싶은 길을 개척하지 못하고 먹고살기 위해 딴 길을 가고 있다오. 그 친구는 너무 큰 걸 노리고 있소. 하느님이나 들어 줄 수 있는 사업이라 고통스럽게 살다 갈 인물이오. 만약 미스 장이 고달프게 살 의향이 있는 여성이라면 그를 만나보시오. 피곤한 만큼 즐거움도 클 거요. 추 형사님이 그러시길래 제가 물어봤죠. 하느님이나 들어 줄 사업이 뭔지.”

“무슨 사업이랩디가?”

“대답을 회피하셨어요.”

“궁금하겠네요.”

“그래요. 말씀해 주세요.”

“지금은 대답할 말이 떠오르지 않소. 밤 기온이 찬데 그만 돌아갑시다.”

나는 점퍼를 벗어 그녀의 어깨에 걸쳐주고 먼저 발길을 돌린다. 논길로 접어들 즈음 호수 건너편에서 노젓는 소리가 들려온다. 고깃배는 아닐 테고, 누가 혼자 뱃놀이를 하는 모양이다. 나는 뗏마를 타고 뱃노리하고 싶다가도 뜬금없는 슬픔이 그런 마음을 지워버린다. 즐거운 시간에 왜 자꾸 슬퍼지는 걸까? 배를 타자고 하면 장은하가 기꺼이 응할 거라는 그 여유가 외로움을 느끼게 할까? 만약 장은하가 뱃놀이를 거절하면 허리춤에 낀 수갑으로 그녀의 손목을 채워서라도 배에 태웠을, 그 가차없는 용기가 외로움을 느끼게 한다. 행복할 때 느껴지는 슬픔, 나는 내 그런 묘한 감정이 낯설기만 하다.

사단장님 고마워요

“계셔?”

춘천옥 저녁 장사가 시작될 무렵 누가 경리에게 내 거처를 묻는 소리가 들린다. 주방에서 장사준비 상태를 점검 중이던 나는 카운터 쪽을 살핀다. 카운터 주변에서 예비군복을 입은 장정 칠팔 명이 웅성거리고 있는데 나를 찾는 사람은 예비군 중대장을 맡고 있는 설계사무소 소장이다. 건축과를 나와 ROTC 장교로 제대한 그는 무척 나를 따른다. 아마 동원훈련을 끝내고 대원들과 술 생각이 나서 찾아온 모양이다.

“사장님, 우리 사단장님을 잘 아세요?”

주방에서 나오는 나를 보자 그가 호들갑을 떤다.

“잘 알지. 우리집 단골이시거든. 그런데 왜?”

“오늘 지휘관들이 모인 자리에서 사단장님이 글쎄 춘천옥 말씀을 하시더라구요.”

“무슨 말을?”

“사장님의 사업정신이 놀랍다구요. 특히 신용에 대해 자랑하시던데요. 그러니 우리들보고 사장님의 그 정신을 본받으래요. 그러면 성공한다구요.”

“내가 존경하는 장군이시지. 매사에 철저한 지휘관이시구.”

그들이 2층으로 올라가자 나는 미스 강에게 맥주 3병을 들려 그들 방으로 들어간다.

“국토방위를 위해 수고했는데, 이건 내가 서비스하는 거야.”

“고맙습니다만, 어쩐지....”

“독약은 아냐. 청탁할 것도 없구. 그냥 모두 이뻐서, 한 모금씩 드시라구 내놓은 거야.”

내 말이 끝나고 잔에 술이 채워지자 중대장이 사단본부가 있는 부대 쪽으로 술잔을 내민 채 한마디 한다.

“사단장님, 감사합니다. 다음에도 부디 춘천옥을 자랑하셔서 저희들이 또 공술을 마실 수 있도록 선처해주십시오.”

“어림없는 소리. 미스 강, 이 맥주 세 병 값 모두 계산서에 넣어.”

농담을 던진 나는 미스 강을 내려 보내고 중대장이 건네주는 술잔을 받는다. 아무리 바빠도 술잔을 거절할 수 없다. 그렇게 술잔을 받고 나니 또 다른 대원이 잔을 내민다. 얼굴이 곱상하고 말수가 적은 젊은이다.

“저도 중대장님처럼 사장님을 존경합니다.”

“고맙소. 오늘 경사가 겹치는군.”

“사장님은 용고 출신이시죠?”

그가 느닷없는 말을 꺼낸다.

“아니, 그걸 어찌 아쇼?”

“벌써 알고 있었습니다.”

“어떻게요?”

“우리 모교 교지에 칼럼을 쓰셨더군요. 멋진 글이라 지금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럼 동문이란 말요?”

“네. 저는 23회 이민석입니다. 진작 말씀드리고 싶었지만.... 죄송합니다.”

“이 사람아, 진작 말하지 그랬어. 전에도 춘천옥에 온 것 같은데.”

“동문인 걸 아시면, 서로 거북해질까봐....”

나는 민석에게 술잔을 건네고 잔을 채운다. 민석이 거듭 내게 잔을 내민다. 함께 취하자는 의미다. 분위기가 더욱 애애해진다.

“춘천옥이 왜 잘되는지 아세요?”

민석이 취한 목소리로 말한다. 말투로 보아 그가 주벽이 심할 성싶어 은근히 걱정된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게 술주정이다. 그래서 일부러 대꾸하지 않고 딴전을 부리지만 그는 나와 계속 대화를 나누고 싶어한다.

“선배님이 너무 착해서 그래요. 너무 착해서 장사가 잘 된다구요.”

“고맙네만, 난 요즘 사람이 달라졌어.”

“달라지시다뇨?”

“사기꾼이 됐어. 이젠 사기란 말만 들어도 온몸에서 향기가 나는 것 같애.”

“사장님 농담 색깔이 달라지셨네요.”

중대장이 신나게 웃는다.

“진짜야. 이젠 여자도 순진하고 고운 여자보단 노회하게 사기 칠 줄 아는 여자한테서 더 섹스감정이 느껴져. 나는 말투도 바꿔보고 싶어. 사기꾼처럼 세련된 언어를 구사하고 싶다구.”

“큰일 났군. 사장님이 춘천옥을 뒤집을 작정이신가 봐.”

“그럼 저희들도 사기꾼이 돼야겠네요. 선배님을 본받아야 되니.”

중대장의 말에 민석이 끼어든다. 내가 맞장구를 친다.

“암 그래야지. 내 진실은 쓰레기에 불과해. 이젠 가짜 진실을 만들어서 재미나게 활용해볼 참야. 공자는 그럴듯하면서도 그렇지 않은 자를 싫어한다(惡似而非者)고 했지만, 이제 나는 진실 되게 살지 않고 거짓으로만 살아갈 거야.”

“똑같은 말씀을 하시는군요. 우리 누나도 그런 말을 하셨죠.”

“누나가?”

“네. 우리 누나는 사기꾼을 사랑하다 진짜 사기꾼이 되셨죠. 지금 미국에 사시는데, 못 말리는 분이죠.”

“미국?”

“엘에이에 거주하시는데, 대단한 거물이죠. 미국 대통령에 출마하시겠다고 법석인데, 입후보 자격이 모자라 포기했죠.”

“성함을 물어도 될까?”

차마 그럴 리야 없지만, 에멜무지로 물어본다.

“그럼요. 이민주. 중년인데 아직도 청춘이세요.”

이럴 수가, 하지만 나는 애써 감정을 숨기고 민주가 어떻게 지내는지를 은근히 떠본다.

“누님이 특별한 분이시군. 한국에 계시면 한번 만나보고 싶은데, 그런데 사기꾼이란 게 뭔 소리야? 물론 농담이겠지만.”

“농담 아녜요. 진짜 사기꾼예요. 그래도 들통 난 적이 한번도 없죠. 미국 사람들도 바보는 아닐 텐데, 누나 말에 안 넘어간 사람이 없어요. 정치계, 경제계, 종교계, 어디를 가나 스타 대접을 받걸랑요.”

나는 입을 다문 채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간다. 모처럼 담배를 피워 문다. 끊은 담배지만 자꾸 피우고 싶어진다. 그녀에 대한 그리움만큼이나 담배 맛이 입에 당긴다. 민주는 마지막 날 밤에 이런 말을 했다.

“나는 착하다는 말을 들으면 소름이 끼쳐요. 착하다는 말은 이 사회를 떠나라는 말과 같아요. 이 사회에서 살 능력도 없고, 살 필요도 없다는 말이죠. 그런데 왜 이처럼 장삿속은 밝은지 모르겠어요. 도대체 나는 누굴까요?”

이웅평 공군 소령이 부부동반으로 찾아왔다. 소련제 미그기를 몰고 귀순한 이 소령 역시 춘천옥 단골이다. 북한에서 대위 시절에 귀순한 그는 한국에서 결혼한 아내를 무척 사랑한다. 솜털이 보송보송한 예쁜 이마가 인상적인 아내는 교육자(친정아버지가 교수) 가정에서 자란 여자답게 품행이 단정하다. 그녀 역시 이 소령을 사랑하고 아껴주는데, 그들은 춘천옥에 올 때마다 늘 동반한다.

나는 말수가 적고 대화 중에 이따금 미소만 짓는 이 소령을 대할 때마다 말을 조심한다. 내 입에서 혹 그에게 상처가 될 수도 있고 정치적, 군사적으로 입장이 난처해질 수도 있는 말이 흘러나올까봐 조심스럽다. 나로서는 궁금한 게 부지기수다. 북한에서의 공군 생활, 귀순 동기, 현재의 심경 등 물어보고 싶은 말이 하나둘이 아니지만 참을 수밖에 없다.

그들 부부는 침실에서 무슨 이야기를 나눌까? 남편은 북한에서의 생활과 귀순 동기와 현재의 심경까지도 숨김없이 털어놓을까?

나는 그가 오면 꼭 동석해준다. 내 아내까지 동석하여 부부동반으로 마주앉아 어울리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가정생활 등 평이한 일상적 이야기를 벗어나지 않는다. 그는 키도 크고 얼굴도 잘 생긴 장교다. 그가 귀순할 때 대한민국이 시끄러웠는데....

민주가 일류 사기꾼이 되었다구?

대구에서 공장을 태우고 서울로 올라와 셋방살이를 할 때다. 그때 나는 리어카 배추장사를 하고 있었는데, 옆방에 세 들어 사는 술집 아가씨가 나를 오라버니라고 부르며 무척 따랐다. 그녀도 양심을 지키느라 직장 생활로 모은 돈을 다 날리고 술집에 나간다고 했다. 그녀와 처음 안면을 틀 때 내게 한 첫마디는 “양심이 밥 먹여 줘요?”였다.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해줬던 것이다.

“정비공장에서 광내준 차 노임을 받을 때였어. 공장 사장과 구내식당에서 계산을 보다가 액수 차이로 따질 일이 생겼지. 나는 25만원만 받으면 되는데도 사장은 28만원을 주는 게 맞다며 고집을 부렸어. 그때 옆자리에서 차를 마시던 신사가 끼어들더군. 그는 사장의 친구로 그쪽 편을 들었어. 여보시오. 우리 조 사장은 누구와 싸운 적이 없소. 신용으로 따지자면 귀신도 당해내지 못할 사람요. 아마 댁에서 착각했을 거요. 그러자 사장이 친구를 나무랐어. 이 사람아, 확실히 알고나 끼어들어. 지금 더 달라 덜 주겠다 싸움이 아니라, 더 주겠다 덜 받겠다 싸움이란 말야. 그러자 사장 친구는 민망한지 자리를 뜨더군. 참으로 아름다운 싸움이었어.”

세상의 모든 싸움이 이처럼 어이없는 싸움이라면 이 세상은 과연 이상적인 세계일까? 사람 사는 맛이 없는, 너무 단순하고 지루한 세상이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나는 이제 그런 내가 싫을 때가 있다. 그런 무거운 의식 속에 갇혀온 것이 후회스럽다. 요즘은 가벼워지고 싶다. 깃털처럼 가볍게 날아다니는 존재가 되고 싶다. 내 무거운 하중이 이제는 지겹고 힘들다. 가볍고 환한 세계를 지향하고 싶다. 떠들고, 노래 부르고, 사기 치고 싶다.

착한 내가 지겹다!

남을 속이고 싶다!

남을 속이는 재미로 내 철학을 만들고, 남을 속이는 기술로 내 종교를 만들자!

이제는 더 주겠다 덜 받겠다가 아니라, 덜 주겠다 더 받겠다고 떼쓰는 그런 내가 되고 싶다. 차라리 불태운 승용차들을 변상해주지 않고 그냥 서울로 도망칠 걸. 양심을 지켜서 얻은 건 공사판에서 천대받으며 먼지를 뒤집어쓰는 일 뿐이었다. 친척들도 반기지 않았다.

“사기꾼이 젤 부러워요. 존경스럽고요. 내가 이제 터득한 건 그거에요. 그게 진리죠.”

민주의 말에 나는 토를 달아줬다.

“우린 지금 무서운 시대에 살고 있어. 사기를 생존전략이라며 눈감아주는 시대에 살고 있다구.”

“내가 사기꾼이 돼야 하는 이유가 또 하나 있죠. 인생을 장난으로 보거든요. 장난치는 기술을 익히는 일인데, 그 기술이 바로 사기술이죠.”

나는 정다운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가 새롭게 느껴졌다. 저 여자가 정말 술집 여자란 말인가.

“함께 나가요. 내가 술 한 잔 살 테니.”

민주는 내 팔을 잡아당겼다. 나는 술을 얻어 마시는 게 민망해서 사양했지만 그녀는 막무가냈다.

민주는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했고, 사랑한 남자한테 모든 걸 잃었다고 했다.

“어찌 생각하면 그 인간이 고마워요. 일찍 나를 개명시켰으니까요. 이제야 세상이 제대로 보여요.”

민주는 일주일 후에 아무 말 없이 미국으로 떠났다. 나를 술집으로 데려가던 날, 그녀는 이런 말을 했다.

“오라버니가 나처럼 사기란 단어에서 매력이 느껴질 때쯤 한번 찾아올게요.”

민주가 예언한 대로 내가 사기란 단어에서 매력이 느껴지기 시작한 것은 요즈음이다. 민주가 27살에 터득한 진리를 나는 50에 가까워서야 깨달은 셈이다. 아름다운 여자의 몸매에서처럼, 나는 이제야 사기란 단어가 신비스럽고, 그 단어에서 섹스감정이 느껴졌다. 그동안 나는 진실이란 단어에서 섹스감정이 느껴졌지만, 이제는 진실이란 말만 들어도 소름이 끼친다.

민주가 보고 싶다. 지금 얼마나 노회한 사기꾼이 되었는지....

우리 새로 출발합시다

대승옥 분위기가 초여름 날씨만큼이나 싱싱하다. 홀 여기저기서 웃음꽃이 피고 황 사장의 목소리에도 생기가 넘친다. 그는 오늘을 사실상의 개업 날짜로 정한 것이다. 능수엄마와 주방장 범도가 자기네 식구가 됐으니 꿀릴 게 없다는 자신감이 들자 그는 직원들을 모아놓고 일장 연설을 한다.

“이제 새 세상을 맞는 기분이요. 개업을 잘못한 탓에 한번 홍역을 치렀지만 모두가 내 실수요. 내가 경험이 없어서 그 주방장놈 사기에 넘어가는 바람에 휘청했던 거요. 식당은 개업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아요. 그러나 이제 우리는 탄탄한 기반을 다져놨으니 희망이 넘칠 뿐이오. 우리 대승옥이 이 근처에서는 젤 거창한 업소로 평이 났소. 여러분도 긍지를 갖도록 해요. 모두 알겠지만, 오늘 한국에서 알아주는 전문가 두 분이 우리 대승옥에 입사했어요. 여러분도 알다시피 춘천옥 하면 한국이 알아주는 업손데, 거기서 책임자로 명성을 날려온 능수엄마와 한국 일류 주방장으로 소문난 김범도 요리사가 명예로운 대승옥 주방장으로 부임했습니다. 연조나 명성으로도 두 분이 주방과 홀의 책임을 맡을 수밖에 없으니 다른 직원들은 잘 협조해서 대승옥을 더욱 빛내주기 바랍니다. 그럼 두 분을 환영하는 의미에서 힘찬 박수를 보내주세요.”

능수엄마와 범도가 자리에서 일어난다. 박수소리가 계속된다. 일부러 계획된 행사인지는 몰라도 두 사람에 대한 예우가 상식을 넘는다. 꽃다발이 안겨지고, 특별히 주문했다는 제복이 증정된다. 그리고 장사가 끝난 후에는 두 직원의 입사를 축하하는 성대한 회식이 열린다. 황 사장은 두 책임자의 심난한 마음을 풀어줄 양으로 바싹 다가앉아 연방 흥을 돋아주고 말을 시킨다.

능수엄마는 점점 기분이 고조된다. 어찌 생각하면 춘천옥을 잘 나왔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춘천옥에서는 보람도 있고 재미도 있었지만 책임감의 중압에 시달려야 했다. 잘한다는 그 인정에 흠을 내지 않으려고 남보다 두세 배 더 뛰어야 했는데, 그 중압감에서 벗어날 수 있어 기분이 가뿐하다. 또 애정과 질투의 갈등에서 자유로울 수 있어 나른한 휴지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범도 역시 마찬가지다. 별로 인정받지 못한 춘천옥보다는 지금처럼 받들어주는 대승옥에서 더 친밀감이 느껴진다. 황 사장이 보수도 배로 주고 오래 있으면 분점을 차려주겠다고 약조했으니 희망도 부푼 상태다. 다만 미스 강과 떨어져 있는 게 괴롭지만 그것도 잠시일 뿐이다. 능수엄마가 무슨 수로든 미스 강을 데려온다고 장담한 것이다.

범도는 어깨에 힘이 꽂힌다. 그는 노래 부를 차례가 되자 ‘돌아와요 부산항’을 신나게 뽑는다. 박수가 요란하다.

“우리 대승옥에 가수 한분이 오셨군.”

범도를 한껏 추켜세운 황 사장은 술잔을 부딪쳐주고 능수엄마에게 다가간다.

“정말 고맙소. 내가 능수엄마를 모셔오려고 얼마나 속이 탄 줄 아오? 박 사장은 맘이 느린 사람이라 아무리 재촉해도 서둘지를 않아요. 우리 식구가 된 이상 춘천옥에서보다 열배 백배로 뛰어줘요. 그래서 한국의 최고 인물로 성공해 봐요. 내가 죽을힘을 다해서 뒷바라지 할 테니.”

황 사장은 능수엄마의 손을 덥석 잡는다. 그의 손이 능수엄마의 손을 어루만진다.

“능수엄마는 이름이 뭐요?”

“이름은 쓰기 싫어예.”

“애엄마라고 부르기가 뭐해서....”

“지는 능수엄마가 좋으니까네 그리 불러주이소.”

“그건 그렇고, 어찌 그런 재능을 타고 났소? 손님을 끄는 데는 한국 최고의 천재로 알고 있는데 곁에서 보니 그걸 확인했소. 나 지금 너무 행복해요. 능수엄마가 오니까 세상을 얻은 거나 진배없소.”

“면목이 없읍니더. 지가 머가 그리 대단타고 이러십니꺼. 분위기 좋은 춘천옥에서 일하다보니까네 지도 모르게 그리 된 거라예.”

“겸손하시긴. 앞으로 대승옥에서는 더 멋진 분위기를 연출할 겁니다. 나하고 나란히 서서 손님을 받도록 해요.”

“이 집은 자리가 넉넉하니까네 저 같은 역할이 필요없을 텐데예.”

“뭔 소리요? 앞으론 춘천옥보다 더 북적대야 하는데.”

“지가 우째 그럽니꺼. 춘천옥에서는 첨에 사장님이 손님을 마캉 끌었심더. 지는 그분한테 배웠지라예.”

“두고 보시오. 나는 그 사람보다 한 수 위요.”

황 사장은 능수엄마의 잔에 자기 잔을 부딪쳐주고 나서 벌떡 일어나 노래를 부른다. 그리고 직원들을 모두 홀 중앙으로 나오게 하여 함께 디스코를 춘다.

회식은 밤이 늦어서야 끝났다. 범도가 능수엄마에게 다가서며 묻는다.

“언제 미스 강을 데려올래유?”

“이제 시작이니까네 너무 서두르지 말거레이. 우리부터 자리를 잡으모 데려올기다. 그나저나 늬는 와 미스 강캉 내통 못 하노.”

“떠날 무렵에 의논은 했는디....”

“머라 카드노.”

“생각 좀 해본다고 했슈.”

“아무래도 미스 강은 늬가 데려와야 할란갑다.”

“책임진다고 했잖유?”

“하여튼 사장캉 의논부터하고 생각해보자이.”

능수엄마는 속으로 이렇게 중얼거린다. 그년을 내가 미쳤다고 데려오겠나, 이 빙신아. 여기서도 황 사장캉 히히대는 꼴을 우째 보라꼬. 이 빙신아.

“범도.”

“왜유?”

“늬 그리도 미스 강이 좋나?”

“그럼유.”

“그아 머가 그리 좋노?”

“그걸 워떻게 말로 한데유. 그냥 환장하게 좋을 뿐인디유.”

“늬 그아 몸에 손 대봤나?”

“왜 그런 흉한 말을 한데유?”

“야, 남녀가 껴안는 건 보통이제, 머가 흉하노? 촌놈!”

범도는 화내는 대신 헤벌쭉 웃는다. 미스 강에 대한 말만 꺼내도 신이 난다.

어린 주방장 김춘수

아내가 팔을 걷고 대들자 주방에 활기가 넘친다. 김춘수의 몸이 훨훨 난다. 막국수를 뽑아내는 솜씨가 기계 같다. 아내가 보쌈을 처리하면서 틈틈이 막국수 양념 치는 걸 지도해주니 신기에 가까운 솜씨를 드러낸다.

참기름을 칠 때도 검지로 기름병 입을 쾌속으로 여닫으며 0.5초 사이에 막국수 5그릇을 쳐버린다. 무척 연습한 모양인데 그전에 범도가 한 그릇 치는 시간밖에 걸리지 않는다. 그처럼 민첩하면서도 기름 칠 때의 손놀림이 아주 유연하고 섬세하다. 뛰어난 감각이다.

보쌈 보조로 뛰던 오만기도 아내 밑에서 일을 하고부터 표정이 밝아지고 손이 빨라진다. 범도가 진작 나갔더라면, 그런 생각이 들 정도다. 보쌈 막국수에 대한 정보가 유출되겠지만 아내가 머리를 써서 맛을 한 단계 더 높인 데다, 그동안 핵심적인 비밀 한두 가지는 숨겨왔기에 걱정할 단계는 아니다.

오후 한가한 시간에는 아내가 직접 만기를 지도해준다. 그동안에는 주방장 범도에게 맡길 수밖에 없었는데, 보조에게 기술을 전수시키긴커녕 성질을 부리기 일쑤였다. 모든 기술을 저 혼자 독점해야 춘천옥을 휘어잡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개업 초기 범도는 아내에게서 전수받았기에 아내의 감독을 받아야 기술이 향상되겠지만 그는 아내의 간섭을 꺼려했다. 언젠가는 아내가 범도의 부족한 점을 지적해주자 칼을 놓고 주방을 나간 적이 있었다. 하지만 김춘수는 오히려 아내의 지도를 받고 싶어하는 데다 틈틈이 아내에게 묻고 확인할 정도여서 쾌속으로 발전했던 것이다.

능수엄마와 주방장이 대승옥으로 빠진 후 춘천옥에는 눈에 띌 만큼 빈자리가 늘어났다. 겉으로는 아무리 태연한 척해도 속은 탈 수밖에 없었다. 재료상들에게 물어보면 대승옥의 재료 차입이 차츰 늘어난다고 했다.

모금정 박 사장의 얼굴에도 웃음꽃이 폈다. 하지만 대승옥에 손님이 늘었다고 해서 춘천옥 손님이 그닥 줄지 않는 데다 오히려 모금정에는 그전보다 손님이 더 줄어드는 현상이 벌어졌다. 모금정 손님이 새로 개업한 대승옥으로도 빠졌다는 이야기다. 대승옥으로 빠지는 손님 거개가 춘천옥 손님이 아니라 동네 일반 업소에서 빠진 손님들이었다. 그중 가장 타격을 입은 업소가 모금정이다. 그 이유를 대라면 모금정 음식 맛이 차츰차츰 나빠졌던 것이다. 요컨대 자기네 음식 맛이나 서비스에는 소홀하고 춘천옥 망하는 데만 관심을 집중한 탓이다. 다시 박 사장의 얼굴에 근심이 끼었다.

“안녕하세요?”

낯익은 손님이 홀로 들어서며 먼저 밝은 인사를 던진다. 담배꽁초 사건을 일으켰던 박 사장 친구다. 나는 그를 반갑게 맞이한다.

“오랜만입니다.”

“바쁜 시간을 피해 왔습니다만.... ”

그는 나와 대화하고 싶어하는 눈치를 보인다. 내가 그의 자리로 가서 마주 앉자 거침없이 비밀스런 말을 털어놓는다.

“장사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더군요. 박 사장을 너무 과신한 게 화근이죠.”

“화근이라뇨?”

“별 건 아니고....”

그는 너무 노골적이다 싶었던지 말꼬리를 지운다. 나는 말을 에둘러서 그의 속을 떠본다.

“저희는 손님이 그대로고, 대승옥은 손님이 늘었으니, 그 영향이 다른 데로 파급되었을 텐데.... 모금정은 어때요?”

“영향이 크죠. 현상유지가 힘들 정도에요.”

“그래도 재력이 탄탄하니까 밀고나가다 보면 잘 될 때가 있겠죠.”

“경험 없는 우리 눈으로 봐도 싹수가 훤히 보여요. 성공할 쪽과 실패할 쪽이 선명하게 드러나죠. 투자도 원리를 알고 대들어야 하는데.... 많이 배운 셈예요.”

“배우시다뇨?”

“모금정 친구에게 자주 놀러오다 보니 먹는장사가 뭔지 눈에 보이거든요.”

“요즘은 여기 자주 오시나 봐요?”

“공부하러 오죠.”

“업소를 차리시려고요?”

“그럴까 해서.....”

이때다 하고 나는 단도직입적으로 묻는다.

“말씀하시는 걸로 봐서 혹 모금정에 투자한 건 아니신지.”

“솔직히 말씀드려서 투자는 아니고, 돈을 좀 꿔줬죠.”

“네? 박 사장 같은 부자가 빚을 지다뇨?”

“겉과 속은 달라요.”

나는 입을 다문다. 이 사람이 왜 그런 비밀을 털어놓는 걸까? 그 저의가 궁금하다. 혹 모금정을 인수 맡겠다는 의도를 내비친 건 아닐까? 그렇게 내비침으로써 내 속을 떠보려는 걸까? 그런 식으로 아예 내게 앞발을 내리고 항복함으로써 노골적으로 접근하겠다는 걸까? 그럼 내게 접근해서 뭘 노리겠다는 거지?

광화문 네거리에서 오줌 눠봐

나는 미스 강에게 손님과의 대화 요령을 수시로 가르쳐준다.

“우선 상대방의 심리를 파악할 줄 알아야 해. 우리가 한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은 사람을 대하며 산다는 셈이잖아. 그러니 남의 속을 볼 수 있는 능력을 길러야 성공할 수 있어. 능수엄마는 손님을 대하는 솜씨는 천부적이지만 그걸로는 한계일 수밖에 없어. 미스 강은 공부를 해야 해. 연구하라는 말이지. 무슨 말인지 알아?”

“네.”

“상대방의 말 한마디를 가지고도 그 사람의 인간성은 물론 지식, 교양, 정서, 양심, 신용 등 인격의 모든 구성요소를 파악할 줄 알아야 성공해. 그걸로 봐서 사람을 많이 상대하는 마담직이 안성맞춤이지. 그냥 일과처럼 하루하루를 보낼 게 아니라 갖가지 겪은 일을 분석하고 검토해보란 말야.”

“네.”

“역시 미스 강은 희망이 있어. 맘 놓고 헤엄쳐봐. 춘천옥을 바다로 생각하고.”

“그럴게요.”

“실수는 내가 커버할 테니 거침없이 행동하라구. 거침없이가 뭔 말인지 알아?”

“제 방식대로 하라는 말씀이죠?”

“맞아 맞아. 말이 통하는군.”

미스 강이 밝게 웃는다. 나는 그녀의 어깨를 다독거려준다.

“앞으로는 소설도 읽어 봐. 소설 속에는 온갖 세상이 다 그려져 있으니 인생 공부에 가장 요긴한 책이지.”

“저도 학창시절에 좀 읽었어요.”

“재밌었어?”

“예.”

“한 달에 한 권만 읽어도 좋아. 그러다 취미가 붙으면 두 권, 세 권 늘려가라구.”

“예”

“요즘 손님들 반응이 어때? 대승옥에 대해 말하는 손님 있어?”

“종종요.”

“뭐래?”

“어딘지 좀 어설프대요. 춘천옥에 오면 마음이 놓이는데 대승옥은 뭔지 좀 불안하대요. 맛도 어딘지 좀 다르고요.”

“요즘 말로 2%가 부족하다는 말이겠지. 하지만 모든 사업은 그 2%가 성패를 좌우하거든.”

“그래서 떠봤걸랑요. 춘천옥 맛과 다르냐고요. 손님들은 여전히 다르다고 대답했어요.”

“우리 미스 강 대단하군. 그런 생각도 했어?”

“어머, 사장님은 저를 어리게만 보셨어요? 저도 철들었어요. 아주 약거든요.”

미스 강이 환하게 웃는다.

“그래? 그동안 내가 미스 강을 저평가했나? 자, 그럼 우리 새 출발해요. 마담님.”

“그래요 사장님.”

미스 강과 나는 흐드러지게 웃는다. 여름이 익어가고 있다. 연두색 산야가 어느새 진초록으로 짙어지고 있다. 모처럼 계절을 느껴본 그 여유가 향기롭기만 하다.

“미스 강 덕에 모처럼 먼 산을 구경해보는군. 그동안 미안했어. 내가 다른 일에 몰두하다 보니 미처 미스 강의 재능을 발견하지 못했던 거야.”

“무슨 말씀이세요. 저를 이만큼이나 켜주셨잖아요. 저는 춘천옥에 와서 부쩍 컸어요. 제가 비밀 얘기 하나 털어놓을까요?”

“응”

“제가 왜 함부로 남자를 사귀지 못하는지 아세요?”

“왜?”

“암 때고 사장님 같은 남자를 찾아야 연애할려구요.”

“고마워. 그런 각오였다니 대단해. 나를 춰준 말이라 고마운 게 아니고, 나라고 하는 사물을 어른스레 분석한 것이 대단해. 앞으로 미스 강은 큰 인물이 될 거야. 미스 강이 자랑스러워. 날이 갈수록 놀랍기만 해.”

“요즘은 진짜 용기가 솟구쳐요. 멋진 사업가가 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아암 그래야지. 그런데 자신을 강하게 단근질하는 건 좋지만 너무 경직되어도 못 써. 자신을 독단에 빠뜨리지 말라는 거지. 멋을 말하는 거야. 그 멋 중에서 가장 매력 있는 멋이 거침없음이지. 지금 내가 말한 자유가 뭔 뜻인지 알겠어?”

“저도 여고시절에 한참 놀았던 여자에요.”

“뭐야?”

내 말을 알아듣는 미스 강이 놀랍기만 하다. 도대체 이 여자 속의 깊이가 어느 정도일까?

“제가 후라빠로 지낸 것도 그 멋 때문이 아닐까요?”

“허어, 우리 착한 이쁜이가 한때 강패였다구?”

“깡패는 아니고요, 좀 튀었죠.”

“어쩐지 성질이 더럽더라.”

“저는 일부러 길가에 오줌을 싸볼 때도 있었어요. 눈에 안 띄는 데서.”

“히야, 대단한 여자군. 기왕이면 광화문 네거리에서 싸봐.”

“제가 못됐죠?”

“아냐. 잘했어.”

“그 짓이 잘한 거라구요?”

“물론 규범을 무시한 게 잘한 짓은 아니지. 내가 잘했다는 건 자유의지를 말한 것뿐야. 미스 강이 공중도덕을 잘 지키는 여자니까 그런 반역을 인정하는 거라구. 요식업자에겐 그런 반역이 필요해. 신랑의 까만 예복에 하얀 나비넥타이의 반역, 얼마나 멋있어. 물론 남이 버린 휴지를 줍는 멋이야 더 멋지지만. 암튼 크게 성공하려면 사통팔달한 여자가 돼야 해.”

나는 미스 강의 정신연령이 높다는 게 놀라우면서도 반갑다. 미스 강은 일류 사업가가 될 수 있는 여자다. 춘천옥 직책도 다만 나이가 어린 탓에 공식적으로 마담직을 맡기지 못할 뿐이다. 아내와 내가 일부러 마담이라고 불러주고 있다. 그렇게 부르다 보면 모두 따라 부를 것이다.

아버지가 뒈졌다구?

모처럼 한가한 오후 시간을 틈타 다방에 나간다. 바쁘게만 일에 매달리다보니 잠시나마 여가를 갖고 싶다. 조용히 커피를 마시며 업소 일을 생각하는 것도 시간 낭비는 아닌 듯싶다. 북적대는 업소 안에서 생각하는 것보다 다방 같은 데에 앉아 있으면 떠오르지 않던 생각도 슬며시 고개를 드는 경우가 있다.

다방에 들어간 나는 손님이 떠들며 이야기하는 자리를 피해 한적한 구석 자리를 찾아가 앉는다. 등 뒤에는 공중전화가 놓여 있지만 중간에 기둥이 막고 있어 몸 하나를 숨기기에는 넉넉하다.

지그시 눈을 감는다. 이제는 김춘수를 주방장으로 진급시켜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춘수는 입사한 지 3년 차다. 나이가 들면서 성격이 차분해지고 일도 야무지게 처리한다. 특히 영업 후의 마무리가 마음에 든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저 혼자 가스를 잠그고, 환풍기를 끄고, 쓰레기를 치우고, 냉장고 재고를 파악하고, 구석구석을 살피곤 한다.

심지어 휴일에도 외출을 삼간 채 직원 숙소가 있는 3층 제 방에 누워 잡지를 보거나 리디오를 들으며 몸을 쉰다. 명절 때도 하루만 외출하고 들어와 혼자 업소에 남아 있곤 했다. 고향에 양아버지가 있긴 해도 어려서 뛰쳐나왔으니 정이 별로 없는 모양이다. 그래도 혈육이 아닌 이름뿐인 아버지인데도 종종 안부도 전하고 옷이나 보약을 사서 보내기도 한다. 그런 춘수가 기특하면서도 가엾다.

정말 춘수를 키워주고 싶다. 10년만 함께 있어도 자립이 가능하다. 자립해서 돈을 벌면 그동안 철없이 굴었던 애들에게 내 마음을 확인시켜주고 싶다.

봐라! 춘수는 내 말을 잘 들은 덕에 버젓한 사장이 되었다. 춘수가 내 나이가 되면 나보다 몇 배 나은 사장이 될 것이다. 네놈들은 만날 친구 꾐에 빠지거나 연애하기에 바빠 진득이 붙어 있지 못하고 건들댔지? 봐라! 춘수의 의젓한 모습을!

그렇게 떠들어대고 싶다.

“웬 생각을 골똘히 하세요?”

어느새 마담이 곁에 와 앉는다.

“재밌는 생각이지.”

“뭔지 제가 알면 안 돼요?”

“안 될 거야 없지. 직원을 생각하고 있었어.”

“사장님이나 저나 직원 땜에 속 썩긴 마찬가지네요.”

“그게 아니라, 아주 멋진 생각이라구.”

“멋진 일요? 먹는장사 하면서 멋진 일이 생길 수 있어요? 속 썩는 일 말고는.”

“속 썩는 걸 재미로 알면 되잖아?”

“어이구, 저 지겨운 도사 같은 말씀. 암튼 그 멋진 일이 뭐예요?”

“쓸만한 놈 하나가 있는데, 그놈을 출세시키려구. 다른 속 썩힌 놈들한테 보란 듯이 성공시키겠어. 그놈들이 인생을 후회하고 땅을 치며 통곡하도록 말야.”

“그러세요? 역시 춘천옥 사장님은 엉뚱한 일 가지고 낙을 삼으시거든.”

“그보다 더 존 낙이 세상에 어딨겠나.”

“근데, 어떻게 출세시키려구요?”

“간단하지. 십 년만 열심히 일하면 돼.”

“그거야 어렵잖죠. 그러면 어떻게 되는 거죠?”

“어지간히 심심한 모양이군. 손님 대접에나 신경 쓰지 그래.”

“역시 성공한 분들은 달라. 모든 게 달라. 어서 말씀해 주세요.”

그때다. 뒤쪽에서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려온다. 춘수가 왜 다방에 와서 전화를 거는 거지? 영업시간이라 다방에 올 리도 없고, 평소 다방 출입도 안 하는 앤데, 더구나 전화할 곳이 있으면 업소 전화를 쓰면 될 텐데, 왜 작업복을 입은 채 다방까지 찾아와서 공중전화를 거는 걸까?

나는 들키지 않도록 조심스레 뒤로 고개를 돌린다. 춘수와 마주치면 서로 민망하다.

“뭐라구? 크게 말하라구?”

상대편에서 잘 들리지 않는 모양인지 춘수의 목소리가 높아진다.

“내 말 잘 들어. 네가 춘천옥으로 전화를 걸어서 우리 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거짓말을 하란 말야. 알았지? 그래야 며칠 빠질 수 있다구. 내 말 알겠어? 그래그래. 그러란 말야. 아버지가 오늘 돌아가셨다구 해. 응 응. 뭐라구? 이 자식 장난치긴. 임마 까불지 말고 십오 분쯤 후에 춘천옥으로 전화 걸란 말야. 알았지? 참 그리구 고향에서 건 것처럼 걸란 말야. 알았지?”

그제야 나는 감이 잡힌다. 하지만 화가 치민다.

춘수가 수화기를 놓고 몸을 돌리려 하자 나는 얼른 고개를 돌리고 몸을 사린다. 얼굴을 마주치면 낭패다. 그리고 춘수가 나간 뒤에 바로 다방을 나와 업소로 향한다. 춘수는 내가 업소에 있는 줄로 아는 모양이다. 나쁜 놈! 내 믿음을 이런 식으로 깨다니!

다리가 후들거린다. 아니지. 그럴 사정이 있겠지. 나는 자꾸 마음을 돌리려고 애쓴다.

아닌 게 아니라 업소에 도착하고 십여 분이 지나자 카운터에서 전화벨이 울린다. 나는 수화기를 들며 주방을 살핀다. 춘수가 이쪽을 살피다가 얼른 고개를 돌린다.

“여보세요? 네, 여기 춘천옥 맞는데요. 네 기다리세요.”

나는 주방에 대고 춘수를 부른다. 춘수가 달려와 전화를 받는다.

“그래. 뭐라구? 응? 다시 말해 봐, 뭐라구? 우리 아버지가 뒈졌다구?”

일시에 홀 안의 시선이 춘수에게 쏠린다. 일이 이렇게 된 모양이다. 춘수가 친구한테 춘천옥으로 전화를 걸어 이러이러한 핑계를 대라고 한 모양인데, 상대방은 거짓을 꾸며대는 말이라 “네 아버지가 돌아가셨어.” 대신 “네 아버지가 뒈졌어.”라고 장난친 모양이다. 그걸 이쪽에서는 양심에 찔리는 통화다 보니 저도 모르게 “아버지가 뒈졌다구?” 그런 말이 튀어나온 것이다. 아무리 약속된 전화라 해도 양심에 찔리다 보니 얼떨결에 상대방의 어투대로 반복했던 거고, 저도 모르게 목소리조차 높아진 것이다.

직원들은 웃지만 나는 웃음을 참는다. 춘수는 아직도 자신의 실수를 모른 채 벌개진 얼굴로 나를 바라본다. 금방 눈물이 나올 듯한 표정이다. 나는 춘수가 말을 꺼내기 전에 먼저 묻는다.

“뭔 전화니?”

“저, 저, 아버님이 돌아가셨대요.”

춘수는 고개를 푹 숙이고 슬픈 표정을 짓는다.

“뭐라구? 아버지가 돌아가셔? 어허, 왜 갑자기 돌아가신 거냐?”

“잘 모르겠어요. 너무 당황스러워서.... 며칠 앓으시다 갑자기.....”

춘수는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 말한다. 나는 돌아가신 게 아니라 뒈진 거겠지 하고 농담을 던지려다 말고 억지로 숙연한 표정을 짓는다. 농담으로 혼내주려니 다른 직원 앞에서 그러면 춘수는 나가고 말 것이다.

“너무 슬퍼 마라.”

나는 춘수의 어깨를 다독거려주며 휴게실로 따라오게 한다. 킥킥거리던 직원들도 내 엄숙한 태도에 눌려 표정을 가다듬는다.

“춘수야, 너 솔직히 말해봐라. 정말 아버지가 돌아가셨니?”

“네.”

“정말?”

“네. 정말 돌아가셨어요.”

“이놈! 아버지가 돌아가신 게 아니고 뒈졌겠지!”

나는 웃음을 쏟고 말았다. 아무리 참고 화난 표정을 지으려 해도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이놈아, 아버지가 뒈져?”

그러자 춘수도 따라 웃는다. 그제야 자기가 “뒈져?” 라고 한 실수가 떠오른 모양이다.

“이놈아, 네놈 얼굴에 써 있는데도 끝내 속여? 눈칫밥만 먹어온 나를 속이겠다구? 네놈을 내가 잘못봤구나. 너를 자식처럼 아꼈는데, 죽일놈! 내가 숱한 배신을 당해봤지만 너한테 당한 배신처럼 분한 게 없어.”

“죄송합니다.”

“이놈새끼! 세상에 네가 그런 짓을 하다니. 딴놈 같으면 몰라도 하필 네가 그 따위 거짓말을 하다니....”

“죄송합니다.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너 다른 데로 갈려고 그러지?”

나는 그게 제일 걱정이다.

“아녜요. 그건 절대 아녜요.”

춘수는 다른 업소에 마음을 둔 적이 없다고 한다.

“그럼 왜 그런 짓을 했지?”

“죄송해요. 실은 여자하고 약속한 게 있어서요.” “뭐라구? 애인이 생겼어? 우리 춘수한테 애인이 생겨? 그럼 애인과 어울릴 시간이 필요하겠군? 아암 시간을 내줘야지.”

나는 얼굴을 환히 열며 춘수의 말을 반긴다.

“사장님 감사합니다. 이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

“임마, 은혜가 뭐야. 축하할 일인데. 며칠 동안 쉬고 싶지?”

“아닙니다. 약속을 취소하겠습니다. 절대 그런 짓 않겠습니다.”

“그런 짓을 할 수밖에 없는 네 심정 이해한다. 하지만 나한테 솔직히 말하지 그랬어, 암튼 잘됐다. 네 애인 나한테 데려와. 그래 함께 어딜 가기로 했어?”

“해운대요. 난생 첨 해운대 해수욕장 구경하고 싶었어요. 이따 미스 윤을 불러서 사장님께 확인시켜드릴께요.”

“그럴 건 없다. 나는 항상 네 말을 믿으니까. 그래도 미스 윤을 보고 싶긴 하구나. 우리 춘수 애인인데 어떻게 생겼나 궁금하거든.”

“별로 잘생기진 못했어요.”

“그래? 그럼 얼마나 못생겼는지 봐야겠구나. 눈이 하나야? 코가 두 개니? 이빨도 없어?”

춘수가 킥킥거린다.

“맘이 문제야, 맘 이쁜 게 젤 이쁜 거야. 얼굴이 못생기고 잘생긴 게 뭔 대수야. 암튼 해운대에 다녀오거라. 그동안 고생도 많았고. 명절에도 나다닌 적이 없는데, 모처럼 애인하고 바람을 쐬도록 해.”

“안 돼요. 약속을 취소하겠어요.”

“걱정 말고 닷새 휴가 내줄 테니 재밌게 놀다 와. 암튼 네 애인 어떻게 생겼는지 얼굴이나 보자.”

“오늘 밤에 데려오겠습니다.”

“나이는?” “저보다 두 살 위에요.”

“그래? 너한텐 연상의 여인이 더 좋아. 그리고 연상과 맺어지면 자식을 많이 낳는다구나.”

나는 들어본 적이 없는 말을 일부러 꾸며서 덕담으로 던져준다.

“애는 하나만 낳을래요.”

“벌써 애 낳을 것도 의논했어?”

춘수의 얼굴이 붉어진다.

“왜 하나만 낳고 싶은 거지?”

“키우기 힘들잖아요.”

“짜식. 사실은 나도 먹고 살기 힘들어서 둘만 낳았더니, 지금은 후회가 막심하다. 지금 같아서는 스무 명쯤 낳아서 하나는 너 같은 주방장 만들고, 하나는 미스 강 같은 마담 만들고, 나머지도 모두 춘천옥 직원 만들면 좋았을 텐데. 후회가 막심하구나. 그랬다면 사람 구하는 것 신경 안 쓰잖아.”

“그럼 제가 많이 낳을게요.”

“어이구, 춘수가 농담할 줄도 아네. 미스 윤이 대단한 여잔가보구나. 우리 춘수를 농담꾼으로 만든 걸 보니. 직장에 나가는 아가씨니?”

“은행에 다녀요.”

“은행원? 히야, 우리 춘수 대단하구나. 암튼 이따 미스 윤하고 셋이 술 한 잔 하자.”

휴게실을 나가는 춘수의 발걸음이 튀는 공처럼 가벼워 보인다. 애인과 지내고 싶어 겨우 그런 쇼를 하다니, 나는 춘수의 뒷모습을 한참동안 바라본다.

“그게 뭔 소리에요? 쇼라뇨? 춘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데, 왜들 쇼라고 수군대는 거죠?”

아내가 퀭한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왜 수군대는지 이유를 물어보지 그랬어.”

“웃기만 하고 대답들을 통 안 해요.”

“아무것도 모르는 척해. 얘기는 집에 가서 해줄 테니. 그리고 직원들이 수군거려도 못들은 척 해. 잘못했다간 춘수를 놓친단 말야.”

“왜요?”

“착한 놈인데, 미안해서 여기 있겠어?”

아내는 고개만 흔든다. 무슨 일이 생기긴 했지만 나쁜 일은 아니구나, 하는 표정이다. 나는 춘수한테 애인이 생겼다는 말도 꺼내지 않는다. 어서 춘수의 ‘사건’을 가라앉히고 싶다. 그걸 재밌다고 자꾸 뒤적거리면 춘천옥이 웃음바다가 될 것이고, 그럴수록 춘수의 마음속 구멍이 점점 더 커질 것이다.

참회의 눈물

평강댁은 능수엄마와 약속한 곳을 찾아간다. 능수엄마가 춘천옥을 떠나고 두 달 만에 만나는 셈이다. 평강댁은 능수엄마와 함께 보쌈김치 배추를 다듬고, 저리고, 헹구고, 양념으로 버무려왔기 때문에 정도 붙고 누구보다 이물 없는 사이가 되었다.

그들은 만나자마자 이산가족을 만난 듯 서로 껴안기도 하고, 테이블 의자에 앉아서도 손을 놓지 않는다.

“얼굴이 몹시 상했구먼.”

평강댁이 능수엄마의 얼굴을 살피며 먼저 입을 연다.

“언니가 젤로 보고 싶었어예. 형부는 어떤교? 지금도 언니를 패는교?”

“그게 뭔 말이여. 모처럼 만났는디, 딴 얘기부터 하잖구.”

“언니가 불쌍해서 그래예. 나이 들믄서 편히 살진 못해도.... 맨날 구박만 당하꼬.”

“팔자가 그런 걸 워쪄냐.”

“춘천옥 사모님캉 일은 잘 됐능교?”

“정말로 사모님한티 미안해서 죽겠구먼. 내가 사정해서 보증 서 달라구 혔는디, 그 육시헐 인간이 그걸 알구 내 자식 내노라구 악악댄게 참 죽겠더라구. 늬가 알다시피 우리 처지에 또 애를 나서 쓰겄냐? 늙어가는 몸에 새끼가 생기다니. 그게 웬 지랄여? 사람 환장할 노릇이지, 부자한티는 애걸복걸해두 애가 안 생기구 우리 같은 비렁거지는 낳기 싫은디두 뱄응게 말여.”

“그래갖고, 결과는 우찌 됐노?”

“사모님이 내 입장을 딱하게 여겨서, 경우야 워떻든 간에 넉넉히 해주싱게 조용해졌어.”

“다행이네예.”

“다행이구 뭐구, 춘천옥 분들잉게 그렇게 봐주지 누가 그런 엉뚱한 손해를 보겄냐구. 그런 분들한티 너 워쩌자구 몹쓸 짓을 헝거여?”

“....”

“잉?”

“....”

“말해보랑게. 어서?”

“그 얘긴 집어칩시더.”

“딴 사람도 아니구, 하필 니가 춘천옥에 못을 박아 쓰겄어? 그게 잘한 짓잉감? 하기사 나도 죽을죄를 졌응게 할 말은 읎다만, 니가 이래서는 안 되지.”

“누가 잘한 짓이라 캅디꺼.”

“그렇다면 워쩌자구 그렁거여?”

“흑흑흑흑....”

“왜 운댜? 뭐가 잘못된 거여? 어여 말해봐.”

“속았어예.”

“뭐라구?”

“황 사장 그캉 일하니까네 손도 안 맞고, 흥도 안 나고... 이 사실은 언니만 알고 계시소. 춘천옥엔 비밀로 해주이소. 창피하니까네.”

“그건 그럴팅게 자세히 말해 봐. 봉급은 약속대로 받능겨?”

“봉급예? 배로 준다 캐놓고 춘천옥 반도 안 줍디더.”

“왜 그려?”

“장사 시작이니까네 좀 있다가 한몫으로 내준다 캅디더.”

“범도는?”

“가도 나만큼만 받았다 캅디더. 그라고도 창피해서 말을 못합디더. 가한테도 나맨크로 한꺼번에 준다 카지만, 그 말을 우찌 믿겠능교.”

“손님이 많다며서 그려?”

“우리가 간 후로 쪼매 늘었지만도 그 정도 가지곤 어림없심더. 시설이 엄청나서 지출이 많은갑디더. 만날 죽는 소리라예. 손님을 왕창 끌라고만 야단치고, 범도캉 만날 싸움이라예.”

“왜?”

“왜는 왠교, 일이 서툴다고 그러지예.”

“범도가 왜 일이 서툴러? 춘천옥 주방장 했는디?”

“쌩트집이라예. 한번은 가족 손님이 와서 보쌈과 막국수를 시켰는데 얼라가 돈까스를 달라 카이 황 사장이 주방장한테 당장 만들라 캤지러. 범도가 우째 돈까스를 만들겠능교. 안 된다 캤는데도 사장이 막무가내는 거라예.”

“그래서 워쨌댜?”

“손님이 가고 나서 전쟁이 터졌지러. 범도는 때려친다 카고, 사장은 당장 돈까스를 배우라 카고.”

“미쳤구먼. 보쌈 막국수 전문집이서 돈까스를 하랑게 미친짓이지 뭐여.”

“춘천옥 식구를 데려오모 하루아침에 손님이 며터지는강 싶었지예. 그래갖고 두세 달 지나도 손님이 별로 안 느니까네 야단발광이라예. 나한테도 와 손님을 몬 끄냐고 야단치며 춘천옥 스파이냐고 닦달합디더.”

“머리가 돌았구먼.”

“참말로 황 사장은 장사가 뭔지 통 모르니더. 돈만 들이모 다 되는갑다, 그리 아는 거라예. 참 무식도하지.”

“너도 돌았어.”

“와예?”

“돌았응게 춘천옥을 버렸지. 생각해보라구. 솔직히 말해서 춘천옥만큼 잘해 주는 디가 워딨냐. 그런디두 춘천옥보다 두 배를 준다구 할 때 알아봤어야지. 이 멍텅구리야.”

“돈 얘긴 그만하소.”

능수엄마가 담배를 꺼내 피운다.

“너 웬 담배여?”

“속이 터지니까네 배웠지러. 그건 그렇고예, 춘천옥은 어떤교? 시껍하지예?”

“뭐여? 시껍? 야가 뭔 소리 하능겨? 춘천옥은 지금 살판났어야.”

“뭐가 살판잉교?”

“미스 강이랑 춘수가 펄펄 날구 있어. 사모님이 주방에서 뜅게 모두 사기가 충천한 거여. 오만기한티는 보쌈을 새로 가르치구 있구먼. 그렁게 춘수가 주방장이구 오만기가 부주방장인 셈여. 오만기도 솜씨가 대단하드라. 모두 재능이 뛰어난 애들인디 그동안 범도 땜에 날개를 못 폈나봐. 범도가 어지간히 지랄했어야지.”

“홀은?”

“홀은 사장님하고 미스 강이 발을 척척 맞추고 있어. 만날 웃음판이랑게. 일을 워떻게 잘 하는지 모르겄구먼. 손님도 차츰 회복되고 있어. 그렁게 니가 실수를 해도 큰 실수를 한거여.”

능수엄마가 한숨을 푹푹 내쉬다가 겨우 입을 연다.

“사모님은 몸이 약한데 주방일 오래하겠능교. 사장님도 소설을 쓴다 카던데 은제까지 붙어 있겠능교.”

“그래서 미스 강을 열심히 가르치는가 싶더라. 미스 강도 착 달라붙어서 열심히 하구.”

“그년 어지간히 히히대겠네예.”

“너 워쩌자구 걔를 욕하는 거여?”

“그년이 나 있을 때도 야실댔잖응교.”

“걔야 튼실하구 나무랄 데 읎잖여. 발랑대지두 않구. 안 그려?”

“와 언니까지 날 약올리능교?”

“야 좀 봐. 내가 원재 약올렸다구 그려? 바른 소리 한 것뿐인디. 너두 인자 속을 차려라 그 말여. 우리 둘이 있응게 하는 말인디, 니가 감히 사장님 같은 분을 넘봐 쓰겄냐? 너를 얼매나 이뻐해줬냐. 너 같은 노름꾼을 사람 맨들어주겠다고 그 애쓴 걸 생각해보라구. 그런 은공을 모르고 함부로 까불면 쓰겄냐구. 너 솔직히 말해서 봉급 더 준다고 글루 간 게 아니잖여. 사장님 맘을 사려고 방정 떤 것 아녀? 그렁게 인자부터라두 속을 차리란 말이다. 내가 너를 아낑게 하는 소리여. 내 맘 알겄냐?”

“,,,,”

“왜 말을 못하는 거여?”

“언니.”

“말해 봐.”

“나 죽어버릴랍니더.”

“저봐, 저봐, 또 지랄하는 것 좀 봐. 너 도대체가 원제 속을 차릴래? 잉? 암 소리 말고 사장님을 찾아가서 죽을죄를 졌다고 싹싹 빌어. 알겄냐?”

“....”

“너 참, 노 상무 그자하고는 워찌 된 거여?”

“그자도 이상한 놈이니더. 서울서 젤 큰 업소 차린다꼬 떵떵거리더만 힘들 성싶으니까네 뒤로 안 빼능교. 춘천옥 장사가 보통 아니구나 싶었지예.”

“춘천옥 땜에 여러 놈 미치누먼. 장사가 쉰 줄만 아는가벼. 사장님 사모님처럼 고생해봐야 장사가 뭔 줄 알 틴디. 남 하는 것만 보구설랑 함부루 까불다가는 쪽박 차기 십상이지.”

“고생할 때 사모님 마이 울었다데예.”

“그 봐라. 그러키 고생한 마누라를 워떻게 할 거라고 니년이 함부로 덤벼? 이 맹추야. 대가리로 박아봤쟈 늬 대가리만 터질틴디 까불어?”

“와 자꾸 약올리능교? 내사 속이 타도 보통 타는 게 아니라카이.”

“제발 속 좀 차려. 느이 남편한티두 잘하구. 깊이 반성허란 말여.”

“속 타는 거이 반성 아닝교.”

“그려 그려. 내가 시킨 대로 어여 싹싹 빌어. 잉?”

이상한 뭔가가 있어

희미한 불빛 속에서 박 사장과 황 사장이 한숨만 내쉰다. 지금이 자정 무렵인데도 그들 처남매부간은 맥없이 술잔만 비우고 있다. 아무리 생각해도 춘천옥의 경영 비밀을 캐낼 수 없다. 자꾸 두려움 같은 게 느껴진다.

“틀림없이 뭔가가 있어. 우리가 이해 못할 뭐가 있다구.”

박 사장이 한숨 같은 말을 흘리자 황 사장이 매부의 얼굴을 멍하니 바라본다. 매부가 가끔 뱉어내던 그 말을 한귀로 흘려왔는데 오늘밤에는 화살처럼 머리에 꽂힌다.

“그게 뭘까요.”

황 사장은 술잔을 든 채 천정을 바라본다.

“뭔진 몰라도, 흥을 샘솟게 하는 뭔가가 있는 것 같애. 저건 장사가 아니고 굿판이라구. 주인이야 미쳤다 해도 왜 직원들까지 미치냐 말야. 직원은 남이잖아. 그런데 똑 같이 미치거든. 봉급을 열배 받는 것도 아닌데.”

“솔직히.... 그건 이해 못하겠어요. 손님이 몰려드는 걸 보면 매부 말씀대로 참 이상해요. 창 밖으로 그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속이 타다가도 신기할 때가 있거든요. 춘천옥으로 기어드는 손님들이 모두 넋 빠진 사람 같아요.”

황 사장은 이미 장사를 포기한 상태다. 조금 빤하던 손님마저 하루가 다르게 줄어들고 있다. 이대로 가면 며칠 내로 홀이 텅텅 빌지 모를 일이다.

“너무 낙담하지 마. 처남은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온 사람이야. 좋은 가문에, 좋은 학벌에, 좋은 직장에, 인정받은 경영자에, 솔직히 처남에 비하면 춘천옥 사장은 새발에 피지. 다만 경험 없이 시작한 게 실수라구. 모두 내 잘못이야.”

“하여튼 저도 상상 못할 경험을 쌓았어요. 밥장사를 시시하게 보고 대든 게 잘못이죠.”

“참 묘한 일이야. 똑같은 능수엄마에다, 똑같은 주방장에다, 똑같은 손님인데도 대승옥에서는 제 맛을 못 느끼니 말야. 춘천옥보다 더 시설이 좋고 더 서비스가 좋은데도. 귀신이 곡할 노릇이지.”

박 사장이 얼른 맥주 한 컵을 삼켜버린다.

“자꾸 적자가 커져요. 어느 손님이 그러더군요. 저보고 판단을 잘못했대요. 원래 유명한 집 근처에서는 같은 메뉴를 취급하는 게 아니래요.”

“미안해. 지금 나를 많이 원망하겠지.”

“좋은 경험 얻은 셈이죠 뭐.”

이번에는 황 사장이 맥주 한 컵을 삼켜버린다.

“나도 당장 때려 치고 싶어.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장사가 아닌 것 같애. 정말 죽고 싶어.”

요식업은 종합예술이다

복도 벽은 우중충하고 종이가 찢어진 곳도 많다. 손님들의 훈김에 형광등 불빛이 침침하다. 꿈속 같다. 나는 잠시 땀을 말리려고 밖으로 나간다. 이미 밖에 나와 담배를 피우고 있던 허마두가 나를 보자 춘천옥 건너편 대각선 위치로 눈짓을 준다. 그쪽으로 시선을 돌리니 박 사장이 자기네 모금정 앞에 서서 춘천옥을 응시하고 있다. 나는 얼른 시선을 돌린다.

“신경 꺼. 장사가 안 되니 얼마나 조급하겠어. 장삿샘은 부자간에도 생긴다잖아.”

“제놈이 능력 없는 게디, 왜서 만날 우릴 물고 늘어지는 게야. 치사한 놈!”

“그만 들어가자.”

나는 허마두의 어깨를 밀어 함께 홀로 들어선다. 홀은 여전히 북적거린다. 옆집들은 텅텅 비는데, 그들 업소에서는 하느님만 원망할 것이다. 왜 이러시냐구. 누구네는 미어터져 아우성이고 누구네는 파리만 날리게 하냐구.

이유는 간단하다. 그들은 장사 이치를 모른다. 그냥 차려놓으면 장사인 줄 안다. 장사가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장사의 기본요소는 숙달과 사업정신이다. 숙달은 경험을 통해 형성된다. 충분한 경험 없이는 성공할 수 없다.

숙달은 축적된 기술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기술 말고도 자기의 숙달이 미흡하다고 여기는 목마름, 즉 창조력이 작용하는 숙달이어야 한다. 여기에서 목마름이 바로 사업정신이다.

그 두 가지를 모르고 함부로 대들다가 깡통 차기 십상이다. 집을 팔고, 빚을 내고, 사돈네 돈까지 꿔와 식당을 차렸다가, 홀랑 까먹고, 목놓아 운다. 혹자는 쥐약을 먹기도 한다. 그처럼 고통으로 멍든 자들에게 나는 이런 말을 해주고 싶다.

“밑바닥부터 기어라. 하지만 그냥 기지 말라.”

분석하고 실험하고, 그리고 아름다움이 뭔지를 캐려고 하는 미의식(美意識)을 키우면서 기라는 말이다. 요식업은 종합예술이다. 예술은 감동을 전제로 한다. 감동 없는 예술품은 예술품이 아니다. 손님을 감동시키지 못하는 식당은 문을 닫게 마련이다.

오랜만에 노 상무가 춘천옥에 나타난다. 영업이 끝나갈 무렵이다. 이번에는 내가 그를 맞아들인다.

“오랜만에 오셨네요.”

“잠깐 한 잔 하려고 혼자 들렀죠.”

“상무님 회사가 구로동에 있다는 말을 들었는데, 한번 구경하고 싶은데요.”

나는 에멜무지로 핵심적인 말을 꺼낸다. 내 다정한 목소리에 그 역시 차분하게 대꾸해준다. 요즘은 힘이 든다고 한다. 이때다 하고 나는 단도직입적으로 묻는다.

“참, 모금정 박 사장님과는 어떤 사이시죠?”

“사실은 그걸 말씀드리려고 오늘 춘천옥에 들른 겁니다. 저는 박 사장과는 아는 사이가 아닙니다. 대승옥 황 사장과 초등학교 동창인데 우연히 제가 춘천옥 단골인 걸 알고 그 친구가 이상한 일을 부탁했었지요.”

“이상한 일이라뇨?”

“저와 능수엄마가 길에서 사진을 찍게 해달라는 거예요. 첨엔 오해 살 일 같아서 거절했는데, 친구가 저를 설득시키더군요. 다른 게 아니고 능수엄마를 데려오고 싶은데 협조해달라는 거예요. 그래서 아무 생각 없이 사진을 찍게 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여관 앞이어서 실수했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더구나 그 사진을 갖고 친구 매부 되는 박 사장이 능수엄마를 괴롭혔다는 말을 듣고 무척 불쾌했지만 참았죠. 능수엄마에게는 전화를 걸어 미안하다는 말을 전했고요. 그 후 창피해서 춘천옥에도 들르지 못했죠. 이유야 어떻든 죄송합니다.”

“상무님도 요식업에 손을 댈 의향이라고 들었는데....”

“춘천옥을 보고 그런 생각을 잠시 가져봤지요. 하지만 대승옥이 망하는 걸 보고 함부로 대드는 게 아니라고 생각했죠. 대승옥이 춘천옥을 누르려고 그처럼 몸부림을 쳐도 결국 패자가 되는 걸 보고 사장님 같은 분이나 성공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정말 존경합니다. 그동안 제 불찰을 용서하세요.”

나는 더 할말이 없다. 노 상무의 잔에 맥주를 따라주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는 보쌈 작은 접시와 맥주 두 병을 비우고 자리를 뜬다. 노 상무가 밖으로 나가자 허마두가 가까이 다가온다.

“보통내기가 아니라메.”

“네 말 대로 보통내기는 아니지. 하지만 네가 생각한 그런 보통내기가 아냐.”

“기거이 먼 소리네?”

“나한테 사과하더라. 자기가 잘못했다고. 다신 그를 볼 수 없을 거야.”

나는 밖으로 나가 무작정 오거리 쪽으로 걸어간다. 오랜만에 걸어보는 길이다. 가까운 거리, 이 정든 길을 몇 년 만에 거닐어보다니....

머리 싸맨 능수엄마

아침에 출근하니 배추를 절이던 평강댁이 가까이 다가와 속삭인다.

“능수엄마가 대승옥 그만뒀대유.”

“언제?”

“며칠 됐나 봐유.”

“누구한테 들었소?”

“대승옥 범도한테서유.”

“범도는 그냥 있고?”

“올디갈디 읎응게 워쩔거유. 황 사장하구두 틈이 벌어졌나 봐유. 글쎄 돈까스를 배우라구 했다는디, 어제 대승옥을 지나면서 써붙인 걸 봉게 메뉴가 열 가지가 넘더라구유. 보쌈, 막국수, 돈까스, 부대찌게, 갈비찜, 제육볶음, 육개장 ....”

“원망스럽던 상대가 이젠 가여워지는군.”

“그러니까 매사를 순리 대루 풀어야쥬. 장사란 게 악써서 되는 게 아니잖유.”

“그럼 봉급도 받기가 힘들겠군.”

“밀린 돈을 달라구 하니까 되레 야단치더래유. 이달 적자가 얼만지 아냐구유. 그러면서 너희들 봉급을 깎을 수밖에 읎다구 악을 쓰더래유.”

“큰일이군.”

내가 말한 큰일이란 범도의 장래에 대한 걱정이다. 이미 춘수를 주방장으로 승진 시킨 데다, 범도의 성격 때문에 다시 불러들일 수 없는 입장이다. 그동안은 창업 멤버란 의리도 무시할 수 없는 데다, 그 나름의 성실성과 숙달을 감안해서 함께 지내왔지만 이제는 주방 식구 전체의 분위기와 균형이 문제다. 음식 맛도 타성에 젖어 있는 범도보다 참신한 사고방식을 지닌 춘수의 장래가 훨씬 밝아 보인다.

안타깝지만 할 수 없다. 장사는 냉정할 수밖에 없다. 내 자식이라도 성격이 삐딱하면 운영을 맡길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능수엄마는 어쩐다? 그 문제는 나 혼자 판단할 수 없어 아내와 허마두를 휴게실로 부른다.

“춘천옥에 대한 애정은 여전해. 한번 홍역을 치르면 더 단단해질 수도 있지. 그래서 이번 실수는 긍적적으로 평가할 수도 있어. 하지만 능수엄마에겐 한계가 있어 탈이야.”

내가 원론적인 말을 꺼내자 아내가 토를 단다.

“능수엄마 땜에 가장 걸리는 문제는 직급인데, 지금 미스 강은 우리도 놀랄 만큼 하루하루 달라지고 있어요. 그 열정에 흠을 내면 안 되죠. 그걸 원칙으로 잡고 대책을 세워야 해요. 그리고 능수엄마의 가장 큰 약점은 자신에 대한 제어능력이 없다는 거예요. 기분에 따라 행동하는 그 무지가 춘천옥 전체 분위기를 어떻게 해칠지 그것도 검토해야죠. 타인에 대해 배려할 줄 모르는데 어찌 관리할 수 있겠어요.”

“나도 동감이야. 능수엄마의 감수성은 춘천옥 초기에만 유용했어. 지금은 그때와 달라. 춘천옥은 체계적인 운영이 요망될 만큼 성장했어. 그래서 거기에 걸맞은 관리가 요망되는 거구. 허마두 너는 어떻게 생각해?”

“모두 맞는 말이디. 능수엄마래 춘천옥의 핵심 관리자로선 모자라디. 생래적인 감수성만으로는 관리자가 될 수 없어. 다만 우리가 능수엄마를 얼마큼 배려해얄지 기거이 문제 아니갔어?”

“자네가 핵심을 건드렸군. 능수엄마의 체질적인 감수성은 이성적인 조정력, 기획력, 판단력과 조화를 이뤄야 빛을 낼 수 있어. 자기 자신을 객관화 시킬 줄 알아야 한다는 말이지. 그런데 능수엄마는 앞으로도 자기개발이 힘든 여자야.”

“그래서 고민이 생기는 거죠.”

“능수엄마한테 큰 희망 걸디 말고 기냥 씁시다래.”

“암튼 두고보자구.”

나는 여운을 남긴다. 능수엄마에 대한 그 같은 견해는 아주 신선하다. 춘천옥 운영을 이야기하면서 관리라고 하는 과학적인 용어가 나온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우리 세 사람 모두가 관리의 필요성을 새로 인식했다는 의미가 된다. 그건 춘천옥의 체질이 바뀌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정말 자연스런 전환이랄 수 있다.

메밀가루를 실어온 기사가 대승옥 문 닫았다는 소식을 전해준 것은 능수엄마가 대승옥 일을 그만두고 한 달쯤 지나서다. 아침에 대승옥으로 주문받으러 갔더니 황 사장이 직접 폐업 의사를 밝혔다는 것이다. 나는 확인하려고 제분회사로 전화를 걸어 사장과 통화한다.

“춘천옥에 대든 것부터가 무리였죠. 저도 벌써 짐작했어요. 반년 넘기기가 힘들 거라구. 그래도 황 사장이 약은 사람이라 더 손해나기 전에 일찍 손을 턴 거죠. 뭉갤수록 손해가 커질 텐데 잘한 일이죠. 매부한테 원망하더군요. 공연히 꼬셔서 손해 보게 만들었다구요. 모금정 박 사장이 어지간히 졸랐나 봐요. 팔자가 달라진다고 꼬셨겠죠. 이제 춘천옥은 더 탄탄해졌어요. 아무나 함부로 대들지 못할 테니까. 암튼 축하해요.”

“사장님, 축하가 뭡니까.”

“하하하하, 제가 너무 솔직했나요?”

“저는 악마가 아니잖아요.”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이제 푹 주무세요.”

너를 버릴 수 없구나

얼굴을 피했지만 분명 능수아빠다. 얼굴이 옛날 같지 않고 푸석푸석해 보인다. 내가 서 있는 쪽으로 걸어오지 못하고 눈을 피하는 그에게 내가 먼저 다가가 말을 건다.

“어디 가는 길야?”

“얼래, 사장님.... 어디 가는 길이세유?”

“나야 바람 쐬러 나왔지만 능수아빠는 어디 가는 길야?”

“오거리에 영한 약방이 있대서 나왔구먼유.”

“누가 아픈데?” “능수엄마유. 당최 어디가 아픈지 기신을 못해유.”

“아니 그렇게 팔팔한 사람이 왜?”

“몰라유. 직장을 그만두고부터 계속 앓아유.”

“대승옥에서 그만뒀다구? 언제?”

나는 뻔히 알면서 능청을 떤다.

“한 달쯤 돼유, 장사도 안되구, 그 집서 반가워도 않구, 그래서 그만뒀다나 봐유.”

“정말 아픈지 살펴봤어?”

“예에?”

“엄살일지도 모르잖아?”

“끙끙거리는 걸루 봐설랑 아프긴 아픈 모양인디유.”

“그럼 무슨 약을 살려구?”

“무슨 약 보다두, 그렇게 기신 못하는 디는 무슨 약을 먹어야 할지 물어보고 살려구유.”

“약은 나중에 사고, 춘천옥에 가서 내 차를 타고 집에 가보자구.”

나는 능수아빠의 팔을 끈다. 능수아빠는 내가 자기네 집에 가자고 하자 금방 생기가 돈다. 그가 불쌍하면서도 괘씸하다. 경우를 아는 사람이라면 춘천옥에 붙어 있도록 아내를 설득하거나 내게 연락이라도 해줬을 텐데 전혀 반응이 없었다.

춘천옥에서 그를 태우고 화산동으로 달린다. 오랜만에 가보는 셈이다. 집에 도착하자 나는 거침없이 방으로 들어간다. 능수엄마는 아랫목에 누워 있다가 나를 보자 벌떡 일어난다.

“기신도 못한다면서.... 어서 눠.”

나는 그녀를 눕도록 했지만 막무가내로 벽에 기대앉는다. 침묵이 흐른다.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망설여진다. 핼쑥한 그녀의 얼굴을 보니 가엾다는 생각이 든다. 따지고 보면 박 사장의 유혹을 받아드린 것도 나에 대한 반감 때문이다. 아무리 사랑 투정을 부려도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는 내가 미웠으리라.

나 역시 어찌 할 수가 없다. 능수엄마의 마음을 받아줄 수 없으니 그녀의 판단에 따를 수밖에 없다. 참 묘한 딜레마에 빠진 셈이다. 내가 마음을 받아주지 않는 이상 그녀는 춘천옥을 떠날 게 틀림없었다. 춘천옥을 지키도록 여러 번 설득하고 타일렀지만 능수엄마는 오히려 내 그런 성의를 자기 마음을 받아들이게 하는 빌미로 삼았던 것이다.

“나 오늘 여기서 점심을 얻어먹고 갈 테니 밥 좀 해줘.”

나는 능수엄마를 기동시켜보고 싶어 그렇게 말한다.

“싫어예. 그냥 가이소.”

“그럼 그냥 갈 수밖에 없지.”

내가 자리를 뜨려 하자 능수아빠가 끼어든다.

“사장님 드실 음식을 시켜드릴게유.”

“이 사람아, 내가 밥 못 얻어먹어 환장한 사람야?”

나는 능수아빠의 못난 짓에 화가 치민다. 능수엄마를 억지로 일으켜 밥을 짓도록 시킬 게지, 못난 인간. 지금 네 마누라는 상사병에 걸려 있어 이 바보야. 그러니 약이고 지랄이고 내 말대로 밥을 짓도록 해주란 말야 이 멍청아. 속으로는 밥을 지어주고 싶어 안달할 텐데 그 심정도 모르고 밥을 시켜주겠다구? 너처럼 미련한 놈이니 마누라가 저 꼴이 된 거지. 이 병신!

그나저나 큰일이다. 내가 후딱 떠나버리면 다시 찾아올 명분이 없고, 그렇다고 점심상을 차리라고 들볶을 수도 없고.

“몸이 나을 동안 편히 쉬도록 해. 그리고 모래쯤 능수아빠랑 같이 와. 알지?”

“싫어예.”

“싫어? 그럼 할 수 없지.”

나는 방문을 거칠게 열고 밖으로 나온다. 나는 진달래꽃이 흐드러진 꽃동산을 바라보며 능수엄마의 마음을 헤아려본다. 두 말할 것도 없이 춘천옥에 오고 싶어 환장할 것이다. 하지만 꽤 애를 먹을 것이다. 그 자존심을 어떻게 세워줘야 할지.

나는 토방에 서서 들판을 구경하다가 다시 방문을 연다. 능수엄마는 벽에 기댄 채 고개를 숙이고 있다.

“능수엄마가 없는 동안 춘천옥에도 손님이 떨어졌어. 다시 나와서 손님을 끌도록 해.”

나는 얼른 방문을 닫고 차에 올라 시동을 건다. 능수아빠가 밭둑까지 차를 배웅해준다. 백미러에 비친 능수아빠의 서 있는 모습이 추레해 보인다.

춘천옥에 돌아와서도 능수엄마의 역할을 여러 가지로 생각해본다. 능수엄마가 그만둔 후로 아내는 몸이 바빠질 수밖에 없다. 미스 강이 있지만 아내가 편히 쉴 입장이 아니다. 오랜 세월 고생한 탓에 몸이 극도로 쇠약해진 아내에게 과로는 금물이다. 몸을 편히 간수할 수밖에 없는 아내로서는 능수엄마가 춘천옥에서 다시 일하는 게 가장 효율적인 대안이다.

하지만 능수엄마의 역할이 걱정이다. 마담이 된 미스 강 밑에 둘 수도 없고, 그렇다고 마담 직을 바꿀 수도 없다. 솔직히 능수엄마를 포기할망정 미스 강을 버릴 수는 없다. 요즘은 일 처리 능력도 능수엄마를 앞지른다.

“능수네에 차입을 맞기면 어때요?”

아내의 느닷없는 말에 귀가 번쩍 뜨인다. 현명한 제안이다. 능수네의 온 식구가 매달릴 일이라면 능수엄마의 마음가짐이 달라질 것이다.

“좋은 생각이야. 재료 차입은 보수를 받는 차원이 아니라 자기 장사에 매달리는 셈이지. 그러니 춘천옥에 대한 애착이 다를 거라구. 마음도 잡힐 테구.”

이튿날 나는 아내를 데리고 직접 능수네를 찾아간다. 시어머니와 남편도 집에서 기다리고 있다. 나는 그들에게 야채 구입을 맡기겠다고 제의한다. 그동안 경리가 일괄해서 차입해온 재료 중에서 보쌈고기와 메밀가루 말고는 야채 값이 가장 큰 액수인데 배추, 무, 열무, 갓, 쪽파, 대파, 양파, 마늘, 생강 등의 구입비를 능수네에 맡기면 야채시장 근처에 사는 그들로서는 생활비에 큰 보탬이 되고, 춘천옥 입장에서도 오히려 같은 액수로 좋은 물건을 고를 수 있어 좋다.

재료 특성상 돼지고기, 메밀가루, 고춧가루, 참기름은 주방에서 직접 차입해야 하지만 야채를 능수엄마네처럼 믿을 수 있는 사람한테 맡기면 더 효율적이다. 능수아빠 역시 남의 농장에서 총각시절부터 품을 팔아온 사내이니 차입에 차질이 없을 것이다.

“고마워유. 이 은혜를 뭘루 보답해드려얄지유.”

능수아빠와 시어머니가 눈물을 글썽거린다. 능수엄마의 잘못을 나무라긴 커녕 그처럼 살길을 마련해주니 당혹스러운 모양이다. 하지만 능수엄마는 아무 반응 없이 침묵만 지킨다.

그날 저녁 무렵 나는 미스 강을 휴게실로 조용히 불렀다. 그녀는 내 마음을 미리 읽고 먼저 입장을 밝힌다.

“저는 아무 상관없으니 능수엄마에게 마담 자리를 주세요.”

“고마운 말이지만 그런 말을 다시는 입 밖에 내지 마. 춘천옥 최고 책임자는 미스 강이란 걸 명심해. 누가 그 자리를 넘봐도 절대 양보하지 마. 능수엄마는 이미 내 맘에서 사라졌어. 다만 실수는 했을망정 춘천옥에 대한 애정이 변함없고, 생활이 딱해서 의리를 보였을 뿐이야.”

“정말 능수엄마에게는 잘해주셔야 해요. 저는 능수엄마만큼 춘천옥을 아낄 수 없어요. 저는 아주 계산적으로 살아가지만 능수엄마는 순수해요.”

“아냐. 미스 강은 계산적이 아냐. 냉정해지려고 애쓰는 것뿐야. 미스 강은 감동을 유발시킬 수 있는 사람이라구. 암튼 능수엄마를 잘 관리해줘. 불쌍히 여겨주고.”

“네.”

“미스 강.”

“네?”

“내가 미스 강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어.”

“뭔데요?”

“앞으로 미스 강은 춘천옥과 결혼해줘. 그래서 사장도 되고 회장도 되란 말야. 내 나이쯤 되면 세계적인 체인망도 형성하구. 알겠어? 이제 어서 나가 봐. 손님이 밀릴 시간이야.”

춘천옥 신축공사

봄이 되자 춘천옥 신축공사가 시작되었다. 부지는 3년 전에 구입했던 요지의 코너 땅이다.

공사 기간은 10개월로 잡았다. 나는 모든 공사를 허마두에게 맡겼다. 평생 책임 있는 일을 맡아보지 못한 친구에게 일부러 책임을 지운 것이다.

“철저히 감독해 봐. 기술자나 인부들과 싸우지 않고도 네 요구를 관철시켜보라구. 조금도 하자 없는 건물을 지어야 하구.”

“내 나이를 걸고 열심히 해보갔어. 기러니께니 맘 푹 노라우.”

건물은 1년이 훨씬 넘어서야 완공되었다. 내부 인테리어와 주방 시설 때문에 늦은 것이다. 1,2층 모두 온돌 난방식인데 1층은 너른 홀로, 2층은 크고 작은 단체 회식방으로 꾸몄다. 3층은 휴게실, 보쌈김치 작업장, 직원들 숙소로 꾸몄으며 화장실도 서울시장 표창을 받을 만큼 참신하게 꾸몄다. 서울시에서는 88올림픽을 앞두고 화장실 개조에 관심을 쏟는 중이었다.

허마두는 공사를 빈틈없이 감독했다. 하루도 쉬지 않고 현장에 붙어서 구석구석 살피고 검토하고 확인했다. 나는 허마두에게 공사감독과 함께 영업에도 더 적극적으로 관여하도록 유도했다. 앞으로 허마두가 직접 춘천옥을 운영해야 하는데 허마두의 능력을 확인하고 보니 나는 저절로 힘이 솟았다.

인간의 성취욕을 무시해온 그 허무주의자가 마음을 돌렸다는 것이 너무 감격스럽고 희망적이었다. 손목시계를 팔아서 내 등록금에 보태준 허마두. 그런 친구가 이번에는 내 청을 받아들여 현실을 택했던 것이다. 나는 그 우정이 고마웠다.

“미스 강, 내 친구는 말야, 일부러 바보짓을 해왔다구.”

“바보짓이라뇨?”

“그자는 인간의 꿈을 무시해왔어. 그자는 가끔 이런 말을 했지. 내래 잘 산다는 거이 유치하다고 여겼디랬어. 기래서 바람처럼 살아왔디.”

“사장님은 그런 분을 좋아하시나 봐요.”

“나도 허무주의자거든.”

“그런 분들이 왜 열심히 사시는 거죠?”

“재밌는 질문인데.... 멋 때문에 그래.”

“멋이라뇨?”

“마음먹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 허마두만 해도 욕심 없이 살아온 인간이 춘천옥 일에 미치는 걸 보라구. 그걸 멋으로 여기는 거지. 자신의 능력을 시험해보는 멋.”

나는 그런 식으로 허마두의 참모습을 미스 강에게 비춰주었다.

이제 춘천옥 이전이 문제였다. 기존 업소는 남은 계약기간인 7개월 동안 그냥 비워둔 채, 직원 하나를 그 빈 집에 대기시켜 찾아오는 손님을 건너편 새 업소로 안내하도록 했다. 춘천옥을 찾아왔다가 그냥 돌아가는 손님이 없어야 했고, 건물 주인이 춘천옥 자리를 그대로 활용하면 낭패였다.

지저분한 집에서 깨끗한 현대식 건물로 이전하니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 대기 손님을 흡수할 정도로 공간도 넓어졌다. 미스 강과 능수엄마는 여전히 손님을 맞되 자리 배정에 고심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능수엄마는 미스 강을 그전처럼 함부로 대하지 않고 어려워했다. 내가 앞장서서 미스 강을 예우했고, 능수엄마에게도 조직생활에 대해 교육을 시켰던 것이다.

입주를 끝내자 허마두를 지배인으로 승격시켰다. 이제 허마두는 춘천옥 숙소에 기거하면서 본격적으로 운영을 맡게 된 것이다. 나는 지배인과 마담을 항상 붙어 지내는 사이가 되도록 만들어 두 사람이 가까워지도록 유도했다. 날이 갈수록 둘의 사이가 정다워 보였다.

“너 앞으로, 미스 강 마음을 잡지 못하면 세상을 떠나버려.”

“늬는 아주 약디. 나하구 미스 강이 손을 잡아야 춘천옥을 제대로 지킬 수 있갔디. 기래야 춘천옥을 맘 놓고 빠져나갈 수 있으니께니 나를 잡아맨 거디. 안 기렇네?”

“맞아. 나는 한시바삐 시골로 떠야 해.”

“길코 늬 속내를 또 하나 알고 있디.”

“뭔데?”

“늬 마음속엔 우리 말고도 능수엄마와 김춘수가 자리 잡고 있어. 기러티?”

“그래 맞아. 너도 독심술이 제법이구나.”

허마두의 말은 사실이다. 내가 마음 놓고 춘천옥을 빠져나오기 위해서는 허마두와 미스 강 말고도 능수엄마와 김춘수의 변신이 필요다. 그리고 그들 넷은 앞으로 춘천옥 본점과 지점을 맡아야 할 경영자들이다. 지금 생각으로는 미스 강을 신촌점장, 능수엄마를 강남점장, 김춘수를 잠실점장으로 내보내고 허마두는 춘천옥 본점을 맡길 계획이다. 그런데 미스 강과 김춘수는 천성이 주도면밀하고 탐구적이지만 능수엄마는 발전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틈틈이 교양을 넓혀주고 말이나 행동을 지도해주는 도리밖에 없다.

“능수엄마를 학교에 보낼 수도 없으니 네가 집중적으로 지도해봐.”

내 말에 허마두가 목소리를 높인다.

“능수엄마보다가니 늬가 더 문제라메. 다시 생각해보라우. 소설도 좋지만 춘천옥을 등져 쓰간? 춘천옥도 네 본질이잖네? 기걸 휴지처럼 버려 어쩌자는 게가? 내레 늬가 문학에 너무 환상을 가졌다는 생각이 들었더랬어. 춘천옥을 물질로만 보지 않음 되잖갔네? 늬도 춘천옥을 예술품이라고 여겼잖네? 네가 손을 떼믄 춘천옥은 무너지니께니 알아서 하라우. 앞으로 지점도 여럿 내기로 했잖네. 그 엄청난 사업을 늬 없이 어드러케 성공하갔어. 길코 늬가 손을 떼믄 우릴 배신하는 게야. 알간?”

나는 지그시 눈을 감는다. 허마두의 말도 무시할 수 없다.

“하긴 그렇구나. 지점을 낼 때마다 자리가 잡힐 동안은 내가 뒤를 돌봐줘야 하니.... 앞으로 십년은 더 미쳐야겠구나.”

변신

영업이 끝나자 허마두는 능수엄마를 데리고 휴게실로 올라갔다. 일주일에 한번씩 다른 직원들의 이목을 피해 교양지도를 해주고 있었다. 반년 만에 능수엄마가 몰라보게 달라졌다.

우선 능수엄마의 몸가짐을 경영자의 의젓한 자세가 되도록 가꿔주기로 했다. 팔자걸음을 고쳐주고, 표정관리를 가르쳐주고, 말투를 세련되게 길들여주고, 앉은 자세와 허리를 다듬어주었다. 심지어 발레 강사를 데려다 워킹 수업도 시켰다. 능수엄마 자신도 열성으로 지도를 받고 연습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녀는 하루가 다르게 변신하는 자신의 모습이 대견스러운 모양이었다.

그녀의 몰입은 미스 강에 대한 질투심이 촉진제로 작용하는데, 허마두가 그 질투심을 교육에 활용한 것이다.

“미스 강은 사리판단이 밝고 말씨도 의젓하잖네. 능수엄마도 조금만 가꾸면 확 달라질 거라메. 능수엄만 인물이 곱고 사교적이니게니 잘 배우면 미스 강보다 훨씬 멋질 게야.”

그게 능수엄마를 채찍질하는 허마두의 회초리였다.

허마두의 지도력은 놀라울 지경이다. 일반상식은 물론 음악과 미술에까지 관심을 쏟도록 한다. 요즘은 대인관계와 대화 요령에 치중하는 중이다.

“진도가 아주 빨라. 나도 놀랬더랬어. 능수엄마한테 기런 오기가 있다는 거 미처 몰랐디.”

허마두의 말이다. 나는 능수엄마의 변하는 모습이 궁금하지만 일체 사적인 대화를 피해왔다. 일부러 어렵게 대해주고, 허마두가 교육시키는 것도 모른 체했다. 호칭도 능수엄마 대신 정 팀장이라고 불렀다. 잘못한 걸 꾸짖지도 않았다. 처음 시작할 때 능수엄마가 수업을 놀이로 여겨 장난스런 태도를 보이자 한번 호통을 친 것뿐이다.

“수업이 춘천옥 장사보다 더 중하다는 걸 몰라? 아직 정신 못 차렸어?”

그때 능수엄마는 내 꾸중을 엄숙히 받아들였다.

“죄송합니더. 앞으론 열심하겠심더.”

“고마워. 나는 정 팀장이 어느 누구보다 뛰어난 경영자가 될 거라고 믿어. 정 팀장은 그럴 능력이 있는 사람이야.”

능수엄마는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이젠 눈물도 함부로 흘리지 마. 독해지라구. 감정을 남한테 보이지 말란 말야. 사장이 눈물 찍찍 짜면 되겠어?”

“지금 슬퍼서 우능교. 감격하니까네....”

“알아. 하지만 방금 내가 뭐랬어. 남한테 자기의 감정을 보이지 말랬잖아. 그러니 감격스러운 것도 속으로만 느끼라구. 겉으로 나타내지 말고.”

“명심하겠심더.”

“나중에 감정조절이 숙달되면 오히려 자기감정과 다른 모습을 보여 줄 때도 있어야 해. 예를 들면 슬픈데도 기쁜 표정을 짓는다든가 화가 나는데도 즐거운 표정을 짓는다든가.... 알겠어?”

“네.”

“지금 감격스러웠지. 그러니까 나한테 일부러 기분 나쁜 표정을 지어봐.”

“와 자꾸 웃기십니꺼.”

“뭐야? 웃겨? 또 혼나고 싶나?”

나는 일부러 주먹으로 책상을 치며 화를 냈다.

“장난과 교육도 구별 못해?”

나는 소리를 버럭 내지르고 얼른 자리를 떴다. 도저히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내가 허마두의 교육을 방해하는 꼴이었다. 능수엄마와 상종을 않는 게 효율적인 교육이었다. 선생이 남의 자식은 가르쳐도 제 자식은 못 가르친다는 옛 말이 백번 옳았다.

춘수 애인을 직원들 앞에 세우다

점심때가 되자 40여 명의 춘천옥 직원들이 화사한 옷차림으로 홀에 모여든다. 업소가 쉬는 날을 골라 직원들끼리만 신관 개장식을 열기로 한 것이다. 춘천옥 도약에 새로운 발판이 마련된 셈이지만 크게 선전할 일이 아니란 게 내 생각이다.

홀에 음식상이 차려지자 나는 직원들을 자리에 앉히고 간단한 인삿말로 개업식의 모양새를 갖춘다.

“오늘이 나에게는 의미 있고 즐거운 날이지만 여러분과 함께 있기에 즐거운 겁니다. 그래서 한 사람도 초청하지 않고 우리끼리만 즐기고 싶어요. 개업한지 꼭 육년 만에 춘천옥 건물을 지니게 되었소. 부지를 사둔지는 오래 됐지만 신촌 지점을 낼 부지를 먼저 장만하느라 건축이 늦었소. 이제는 자리가 모자라 발을 동동 구르는 일이 없을 거요. 자리를 안내하려고 능수엄마나 미스 강이 이리 뛰고 저리 뛰지 않아도 되겠지. 하지만 여러분에게 이 말을 해주고 싶어요. 또 자리가 모자라 손님을 겹으로 앉히게 하자고.”

박수가 터져 나온다. 나는 손가락으로 구석에 앉아 있는 진애경을 가리킨다.

“미스 진은 손님 많은 게 싫은 모양이지? 박수 안 치는 걸 보니?”

“저요? 안 그래요. 이번엔 저도 안내팀에 꼈으면 하고 생각 중이었어요.”

“왜 하필 안내팀에 끼고 싶은 거야?”

“마담언니와 능수엄마가 안내하는 모습을 보고 너무 부러웠어요.”

“보통 고생이 아닐 텐데?”

“그러니까 더 매력 있죠.”

“그래? 입사한지 얼마 되지?”

“일 년 반요.”

진애경은 상냥하고 몸이 빠른 편이어서 그전부터 눈길을 끌어온 아가씨다.

“여러분 고마워요. 내 소원 같아서는 여러분들 모두가 춘천옥을 평생직장으로 여겨줬으면 해요. 결혼해서 애를 기르고, 그 애가 커서 결혼한 후라도 춘천옥에 출근하는 직원으로 남길 바라오. 만약 여러분 중에 지금 내가 한 말을 탐탁찮게 여기는 분이 있을지 몰라도 내 마음은 여러분과 늘 함께 지내고 싶어요. 나는 춘천옥을 여러분이 가장 아끼는 직장으로 만들 작정입니다. 우리가 청년시절엔 은행원을 선호했지만 머잖아 식당 취직을 영광으로 여기는 시대가 도래할 겁니다. 그러니 요식업소의 꽃이랄 수 있는 춘천옥이야 말로 가장 선호할 직장이겠죠.”

나는 잠깐 입을 다문다. 박수를 기다린 것이다. 하지만 아무도 박수를 치지 않는다. 그만큼 ‘식당 종업원’이란 이미지가 싫은 모양이다.

“박수 치는 사람이 없군. 내가 입이 닳도록 평범한 사람이 되지 말라고 일렀는데 헛수고였군. 그래서 여러분에게 은행원 하나를 소개할 참이오. 이 아가씨는 우리 춘천옥 직원이 되려고 오늘 은행에 사표를 냈소.”

내 말이 멈춘 사이 아내가 윤지연을 데리고 나타난다. 직원들은 그녀의 화려한 차림새와 교양미 넘치는 표정에 넋을 잃는다. “식당일을 하려고 은행을 그만두다니?” 그런 소리도 들려온다. 나는 윤지연이 김춘수의 애인임을 숨긴다. 아내 옆에 앉은 그녀는 연방 친절미 넘치는 미소를 흘린다.

윤지연은 춘수보다 두 살 위다. 춘수가 봉급을 저축하러 다니면서 알고 지낸 사이로 춘수의 성실하고 진취적인 모습에 차츰 마음이 동했던 것이다. 다만 여자측 부모에게 인사를 미룬 채 지내오다가 며칠 전 내가 그녀의 부모에게서 확답을 듣고 오늘 소개하기에 이르렀다.

호텔에서 여자 측 부모와 상견례를 가질 때였다. 부모가 없는 춘수 측에서는 나와 아내가 대신 참석했다. 춘수에게 양아버지가 있긴 해도 내세우기 어색한 입장이어서 결혼 후에나 인사시키기로 했다. 학력이나 직업 등 약점이 많은 춘수여서 우리가 들러리를 설 수밖에 없었다. 그날 나는 윤지연 부모에게 이런 말을 했다.

“이 자리에 나오신 걸 보니 따님에 대한 신임이 얼마나 두터우신지 가늠하겠습니다. 저도 김춘수 군을 어느 누구보다 신임하고 있습니다. 우리 부부는 김춘수 군을 남이라고 여겨본 적이 없고, 사실 김 군에게 꿈을 갖고 있습니다. 저의 업소에는 일년에 백여 명의 젊은이가 들어오고 나갑니다. 줏대 없는 짓이지요. 누구든 오래만 있어준다면 그를 성공의 표본으로 삼고 싶었어요. 그 유일한 젊은이가 김춘수 군입니다. 저는 항상 직원들에게 평범하게 살지 말라고 이릅니다. 김 군의 환경을 보지 않고 내면의 세계를 성찰한 따님이 정말 대단해 보입니다. 지성을 갖춘 젊은 여성이 이런 안목을 지녔다는 데에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이 자리를 빌려 윤지연 양에게 한 가지 부탁이 있어요. 고등학교밖에 나오지 못한 우리 춘수를 경영학 박사로 키워주세요. 학비는 전액 우리가 책임질 테니 앞으로 춘수의 아내 겸 가정교사가 돼줘요.”

“아닙니다. 춘수 씨는 이미 경영에 능통한 거나 진배없습니다. 이분은 이미 가야 할 길을 가고 있습니다. 성경에도 흐르는 강물에 빵을 던지라는 말씀이 있습니다만 오히려 제가 춘수 씨를 좇아 더 배워야 합니다.”

윤지연의 말이었다. 그녀는 자기 부모에게 미소를 지어보였고, 부모 역시 딸에게 흐뭇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직원들에게 윤지연에 대한 소개가 끝나자 개업기념 선물 증정식이 이어진다. 나는 지배인 허마두와 아내를 시켜 기념품을 증정하도록 했다. 허마두가 증정할 기념품은 5년 이상 된 직원에게 줄 3돈 짜리 금반지와 3년 이상 된 직원에게 줄 2돈 짜리 금반지고, 아내가 증정할 기념품은 1년 이상 된 직원에게 줄 1돈 짜리 금반지와 나머지 직원들에게 줄 은수저다.

증정식이 끝나자 식사와 술판이 벌어지고 노래자랑이 이어진다. 나는 직원들 끼리 실컷 놀도록 슬며시 자리를 뜬다.

능수엄마와 미스 강 싸우다

춘천옥 신촌점 신축설계를 의논하고 돌아와 보니 능수엄마와 미스 강이 보이지 않는다. 아내도 보이지 않는다. 홀팀이나 주방팀 모두 한결같이 시무룩한 표정이다.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물어도 선뜻 대답하는 직원이 없다. 내가 목소리를 높여 재우치자 그제야 겨우 하나가 입을 연다.

“휴게실에 가보세요.”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짐작이 간다. 휴게실로 다가가니 안에서 두런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아내의 목소리다. 조심스레 문을 열자 아내 앞에 능수엄마와 미스 강이 나란히 앉아 있다가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린 채 슬며시 일어난다. 나는 농담부터 던진다.

“또 싸운 모양이군. 두 사람 얼른 병원에 가서 진단서를 떼와.”

그러자 아내의 웃음이 터지고 뒤미처 능수엄마의 웃음이 터진다. 그녀의 눈에는 아직도 눈물이 묻어 있다. 미스 강은 웃지도 않거니와 두 손바닥으로 단단히 얼굴을 가려 눈물을 보이지 않는다. 나는 전화통을 돌려놓고 파출소에 전화 거는 시늉을 한다.

“미스 강은 웃지 않는 걸 보니 파출소에 신고할 모양인데, 그럼 내가 경찰을 불러줘야지.”

그래도 웃지 않자 나는 수화기로 미스 강의 어깨를 툭툭 치며 파출소와 통화 중이니 어서 신고하라고 농을 건다. 그래도 웃지 않자 나는 계속 귀찮게 군다.

“전화 안 받을 거야? 직접 파출소에 갈려구? 그럼 내가 데리고 가야지.”

나는 미스 강의 팔을 잡아당긴다.

“어서 파출소에 가자구.”

그제야 풋 하고 웃음이 터지며 눈물 젖은 얼굴이 드러난다.

“맹추들. 싸우려면 피터지게 싸울 게지 겨우 눈물만 찍찍거려? 이유야 뻔하겠군. 미스 강이 능수엄마에게 뭘 시켰는데 능수엄마가 눈을 흘겼을 테고, 그 꼴을 보고 미스 강은 언짢은 말을 던지니까, 능수엄마가 그동안 참아왔던 화를 터뜨렸겠지. 그러자 이번에는 미스 강이....”

“거기까진 맞는데 다음이 문제죠. 둘 다 내 말을 안 들어서....”

아내가 입을 가리고 웃는다.

“뭐야? 요것들이 나 있을 땐 안 싸우고 우리 마누라만 있으니까 싸워? 우리 마누라를 얼마나 무시했으면 울면서까지 싸워?”

“누가 울면서 싸웠능교. 사모님이 혼내시니까네 울었지예.”

“미스 강, 너도 혼내니까 울었어? 싸울 때 아파서 운 게 아니구?”

“....”

“왜 대답 않지? 다시 묻겠는데 능수엄마가 머리채를 잡아끄니까 아파서 울었나, 아니면 사모님한테 꾸중 듣고 울었나.”

“....”

“또 다시 묻겠는데, 너 능수엄마한테 가슴을 얻어맞고 울었어?”

“아뇨.”

미스 강은 그 말을 던지고 얼른 얼굴을 가린 채 도망친다. 내가 재빠르게 팔을 잡아 도로 자리에 앉히자 “미치겠네.” 하며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다. 내가 그 말을 물고 늘어진다.

“범도가 미치겠네 하더니 너도 미치겠네야? 너 범도한테서 짝사랑 받으니까 그 보답으로 미치겠네, 하는 거지?”

그제야 미스 강이 웃음을 터뜨린다.

“미스 강 웃기기 참 힘들군. 그 봐, 내가 어떻게든 널 웃겼잖아. 이게 사업이야. 속이 타도 참으면서 끝내 너를 웃기고 마는 근성, 이게 사업정신이라구. 알겠어?”

“네.”

“능수는 대답 안 해?”

“네에.”

“너희 둘은 싸우고 싶을 때가 많을 텐데 그동안 무척 참아온 셈이지. 하지만 이제는 정말 달라져야 해. 너희들은 머잖아 경영자가 될 사람들이야. 앞으로 지점을 하나씩 맡아서 운영해야 되는데 시시한 감정 따위 조절 못하고 싸워? 그처럼 유치한 사고방식으로 사장 노릇 하겠어? 미스 강, 너 훌륭한 경영자 되고 싶다며? 그런데 능수엄마 하나 포용하지 못하고 경영자 되겠어? 능수엄마 너도 마찬가지야. 미스 강이 부모 죽인 원수라 해도 용서하고 이해해서 화목해야 하는데 네 성격대로 설쳐? 네 성깔 도저히 못 고치겠니?”

그때 허마두가 김춘수를 데리고 휴게실로 들어선다. 나는 입을 다물고 한숨만 내쉰다. 소파에 앉은 허마두가 분위기를 무시한 채 공식적인 말을 꺼낸다.

“어제 사장하고 춘천옥 장래에 대해 걱정했더랬어. 앞으로 신촌에 분점을 낼까 하는데 급한 문제가 한 둘이 아니라메. 젤 큰 걱정이 운영할 사람이디. 장소야 돈만 있으믄 되니께니 해결할 수 있지만 운영을 맡을 지점장과 기술 인력이 문젠 게야. 기거에 대해 의논해야갔어.”

“그보다 신촌에 간 일은 어찌됐나?”

나는 잔잔한 목소리로 묻는다.

“마땅한 장소를 알아봤디. 우리 계획에 맞는 땅도 있고 집도 있긴 해. 사장이 보고 결정을 하라메.”

“지배인은 지금 내가 무슨 짓을 하고 있었는지 아나?”

“내가 기걸 어캐 알간. 무슨 일인데 기래?”

나는 능수엄마와 미스 강을 지적하며 일부러 화를 낸다. 그들로 하여금 지점 계획에 관심을 기울이도록 유도할 속셈이다.

“너희들 방금 지배인 말씀 들었지? 이렇게 중대한 일을 앞두고 운영팀을 걱정하고 있는데 너희들은 기껏 이년저년 하며 싸움질이나 해? 관리 능력을 길러서 훌륭한 경영자가 될 꿈은 꾸지 않고, 시시한 기분 갖고 악다구니나 퍼대? 상대방에게 져주면 안 되니? 져주면 병신 되니? 져주면 죽니? 참, 싸울 것도 많다. 뭐가 그리 분해서 싸우니? 게다가 울기까지? 뭐가 원통해서 울어? 눈물 찍찍 짜는 것들이 경영자 되겠어? 춘수 봐라. 나이 어린 춘수지만 함부로 성질을 부리던? 함부로 눈물 짜던? 이런 동생한테 창피스럽지도 않니? 너희들 지금 얼마나 바빠야 하는지 알아? 사장 수업을 받아야 하는데 시시한 일로 싸우고 울어? 그렇게 한가하니?”

“죄송해요.”

“이제 유치한 짓들 그만 해라. 서로 의견충돌이 생기면 싸우지 말고 설득시키랬잖아? 설득할 줄 모르면 지배인한테 배우랬지? 그런 공부에는 소홀하고 싸우는 데에 시간 써?”

“죄송해요.”

“죄송합니더. 지도 참을라 캤지만도 대성옥에 있다온 걸 흉보니까네 분해서....”

“분해? 창피한 짓을 했으면 더 참아야지 분해? 그래서 싸우니까 속이 시원하던? 그리고 미스 강 너는 할 말이 따로 있지, 그런 약점을 건드리면 쓰겠어? 네 수준이 그 정도밖에 안 돼?”

“죄송합니다.”

“그럼 이제부터 회의를 시작할 테니 지배인은 말을 계속해요.”

“사장님 말씀을 들으니께니, 나부터 철없이 살아온 거이 낯 뜨겁소. 여러분은 이제 하루하루 달라져얍네다. 달라지지 않으믄 낙오자가 될 수밖에 없습네다. 친자식도 자격이 모자라믄 경영을 맡길 수 없는 거이 사업입네다. 날고뛰는 사람들과 경쟁을 벌여야 하는데 시시한 정신력 갖고 이길 수 있갔시오? 잘살고 출세하고 싶은 사람은 오늘부터 확 달라지고, 출세하기 싫은 사람은 지금 포기하기오. 그 대신 지점장이 되믄 어드러케 달라지는가를 말하갔시오. 기본급에, 고급 승용차에, 숙소가 제공되고, 순이익의 20프로를 성과급으로 받습네다. 자신이 유능해서 장사만 잘하면 빈손으로 부자가 되는 기야요. 이런 기회가 기다리고 있는데, 싸움질이나 하믄 되갔시오? 영업시간도 됐으니 이 정도로 그치고, 오늘 서둘러 지점에 대해 공지하는 건 여러분들의 책임의식을 높이기 위함이니께니 이 시간부턴 새로운 각오로 앞장서주길 바랍네다.”

항상 새벽이어야 한다

우리 부부와 지배인 허마두, 마담 미스 강, 주방장 김춘수, 홀1팀장 능수엄마, 홀2팀장 진애경, 보쌈팀장 오만기, 막국수팀장 조자림, 김치팀장 평강댁, 경리 윤지연이 휴게실에 모이자 허마두가 먼저 일어선다.

“오늘 운영위원회 첫 회의를 열기에 앞서 반가운 소식부터 전해드리갔시오. 사장님이 그동안 심적 갈등을 겪어오다가니 춘천옥의 재도약을 위해서 경영에 적극 참여키로 결심을 굳혔습네다.”

허마두가 박수를 유도한다. 나는 민망한 얼굴로 일어선다.

“소설만 쓰다 죽겠다고 단단히 결심한 내가 춘천옥 장래 때문에 갈등을 겪은 건 사실이지만 내가 박수를 받는다는 게 어색하고 미안합니다. 방금 지배인님이 적극참여란 말을 했는데 구체적인 일상 업무에서는 손을 뗄 수밖에 없으니 여러분들이 지배인을 모시고 일심으로 이끌어나가길 바랍니다. 다른 말 생략하고, 신촌 지점은 춘천옥 개업 십오 주년이 되는 날 오픈할 계획이오. 그러니 모든 준비완료는 그 날짜에 맞추도록 서둘러줘요. 앞으로 2년 반이 남았지만 시간이 촉박합니다. 그래서 일을 효율적으로 추진하려고 운영위원회를 조직하고 여태까지 나와 허마두, 능수엄마, 미스 강, 김춘수 이렇게 다섯이 모여서 의논해온 모임을 팀장 이상으로 확대해서 운영위원회라고 명칭을 붙이기로 했어요. 자세한 내용은 지배인님이 말씀해주시지요.”

“보고 드리기에 앞서, 오늘부턴 김춘수 주방장의 약혼녀 되는 윤지연 양을 동석시키기로 했습네다. 윤지연 양에게는 경리 업무가 맡겨질 테니께니 운영위원회 위원 자격으로 참석하는 겁네다.”

허마두는 프린트해온 얄팍한 서류철을 참석자에게 나눠준다.

“여게는 운영위원회 조직과 사업계획이 간략하게 기록되어 있시오. 운영위원회는 약칭을 위원회라 정했는데 사장님은 극구 회장직을 사양하셔서 내가 회장을 맡기로 하고 사장님은 고문으로 모셨습네다. 사모님은 부회장을 맡으시고, 위원은 팀장 이상으로 정했는데, 여게서 홀1팀장은 1층 서빙 책임자이고 홀2팀장은 2층 서빙 책임자외다. 능수엄마는 직책상으론 미스 강보다 낮은 직급이지만 그동안 마담으로 근무해온 터라 그에 상응한 대접을 해주시기 바랍네다.”

사업계획서는 장기와 단기로 나뉘는데 장기계획은 지점을 내는 것으로 신촌점, 강남점, 잠실점 순이며 단기계획은 신촌지점에 대한 구체적인 실천사항으로, 첫째는 건물 신축이지만 이미 설계를 논의 중이고, 둘째는 가장 걱정되는 일로 지점장을 비롯한 직원확보 문제다. 허마두는 본점 사장으로 남아야 되고, 능수엄마는 자질을 키우는데 더 오랜 시간이 필요하며, 김춘수는 아직 어리기 때문에 미스 강을 키워서 자리에 앉히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무엇보다 주방장과 팀장들을 어떻게 선발해서 가르쳐야 할지 그게 막연하다. 고기, 김치, 양념 등 모든 재료는 본점에서 조달하면 어려움이 덜어지겠지만 기본인력은 독립적으로 키울 수밖에 없다.

제일 먼저 지점을 신촌점으로 결정한 것은 신촌이 젊음의식이 꿈틀거리고, 유행을 주도하는 역동적인 지역인 데다, 대중적인 소비패턴과 다양한 세대의 분포가 호재로 작용하고, 무엇보다 춘천옥 이름을 내는 데에 효율적인 이미지 메이킹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젊은 이미지로 춘천옥의 백년대계를 다지고 싶은 것이다.

“끝으로 한 말씀 부연하갔시오. 앞으로의 계획입네다만 신촌점 지점장으로는 강 마담으로 정했시오. 길코 다음 차례 개점 예정인 강남점 지점장은 정 팀장으로, 그 다음에 개점될 잠실점은 김춘수 주방장이 맡게 되갔시오. 길코 지점장 수업을 받는다는 의미에서 지배인제도를 다시 부활해서 강 마담을 지배인으로 정 팀장을 마담으로 승진시키고 진애경을 정 팀장 자리에 앉히기로 했시오. 기러니께니 여러분들은 직원의 몫뿐 아니라 평소 경영자로서의 역량도 키우시길 바랍네다. 인자부터 여러분은 전쟁터에 나가는 겁네다. 하루하루를 훈련으로 여기디 말고 실전으로 여겨서리 최선을 다해주기오.”

회의가 끝나고 모두 나가자 나는 휴게실에 혼자 남아 창밖으로 화산동 쪽을 바라본다. 능선에 노을이 지고 있다. 내게 춘천옥은 무엇인가?

슬픔은 젤 무서운 귀신이디

아내가 연못가 잔디밭에 차린 술상에 허마두와 셋이 둘러앉는다. 달은 사랑제 능선 위에 머물고 있다.

“모처럼 너와 조용한 데서 술 한잔 나누고 싶어 양평집으로 부른 거야.”

나는 허마두의 손을 잡아준다. 아내가 허마두에게 술을 따라주며 노고를 치하한다. 나는 거듭 허마두와 술잔을 부딪친다.

“네가 자랑스럽구나. 춘천옥 개업한 지 이십육 년 만에 요즘 최고의 매상을 올리고 있어.”

“늬가 뒤에 버티고 있으니께니 가능하디 나 혼잔 어림없디.”

“이제야 너는 일에 재미를 느끼고 있어. 그건 그렇고, 너 앞으로 어쩔 참야?”

“멀 말이네? 지금 너랑 잘 살아가고 있잖네.”

“강 지배인과 깊은 얘기 해봤어?”

“사업이 바쁜데 머가 깊은 얘기네? 기딴 얘기 때려 치고 신나는 얘기나 하자꾸나야. 어젯밤에 말이디, 영업을 끝내고 혼자 술 한잔 하다가니 큰 걸 깨달았댔어.”

“뭘 깨달았는데?”

“늬가 키우고 있는 귀신이 뭔디를.”

“얘가 미쳤나. 뜬금없이 귀신이라니.”

“늬는 자신도 모르게 귀신을 켜왔더랬어.”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늬는 사업을 한 게 아니라 늬 속에 귀신을 키우고 있더랬어. 기래개디구 손님을 홀린 게야. 손님들은 늬 속에 든 귀신한테 홀린 거디. 알간? 늬는 너무 착해. 너무 진실되구. 늬는 원래 생겨먹은 거이 기래. 늬는 눈물이 많은 놈이거든. 늬는 이 사회의 허점을 찌른 게야. 이 사회를 살아가기에 가장 부적절한 늬가 가장 적절하게 처신한 거디.”

“무슨 말인지 도통 모르겠다. 너 같은 개똥철학자의 말이니....”

“늬는 요즘 세상에 아무 쓸모없는 것들을 개디구 묘한 걸 만들어냈어. 일테면 착함, 진실, 연민, 의리 같은 구질구질한 퇴물을 한 솥에 끓여서 묘한 걸 과낸 거라메. 기거이 뭔디 아네?”

“귀신이겠지.”

“그 귀신이 메냐 이거디.”

“그걸 내가 어찌 알아.”

“그 귀신은 바로 슬픔이었어. 슬픔이 너를 미치게 한 거라메. 기러니께니 슬픔처럼 오묘한 게 없잖갔어? 슬픔은 못하는 게 없디. 슬픔은 무소불위야. 슬픔은 젤 무서운 귀신이디.”

자정이 가까워지자 허마두가 자리에서 일어난다.

“왜 일어나는 거야? 여기서 함께 자잖구.”

“가야 되니께니 늬 차를 내주라메.”

“여기서 함께 자자니까 그래.”

“싫어. 달빛이 싫어.”

“네 기분 알겠다.”

나는 아랫집에 사는 사촌동생을 부른다. 그는 종종 내 차를 운전해주곤 한다.

“잘 모셔드려.”

허마두가 주차장으로 내려가자 갑자기 허전해진다. 와락, 가슴이 멘다. 허마두 그놈 때문이다. 그놈이 내 가슴을 휘저어놓은 것이다. 깊이 묻어두려 한 내 슬픔의 원형을 왜 건드렸단 말인가. 나는 주차장으로 뛰어간다. 허마두가 차에 오르고 있다.

“멈춰.”

“와 기러네?”

“어서 내려.”

“왜서 시비 거는 게가.”

“너한테 할 얘기가 있어서 그래.”

허마두가 차 유리를 내리고 목을 내민다.

“할 얘기가 메야?”

“네가 말한 슬픔, 그것이 나를 미치게 하는 힘이었어. 그런데 넌 나보다 더 슬픈 놈야. 그러니 넌 나보다 더 큰 걸 이룰 수 있어.”

“기러니께니 나보고 현실주의자가 되라 기거네?”

“암. 그래야지.”

“기럼 하나 묻갔어. 왜서 그동안은 체인점을 거절해왔디?”

“그건 예술이 아니고 사업이니까.”

“기럼 지금은 왜서 지점을 생각했네?”

“그동안 애쓴 직원들에게 살 길을 열어줘야잖아.”

“애쓴 직원이 하나 둘이네? 늬 말대로라면 계속 지점을 내얄 텐데 왜서 세 군데만 낼 계획이디?”

“춘천옥 직원들 중에서 나, 너, 능수엄마, 미스 강, 김춘수는 동상을 세워주고 싶은 직원들이니까.”

“너도 직원이네?”

“그래.”

“좋디. 기럼 직원은 다섯이고 업소는 네 개뿐이잖네?”

“너와 나는 춘천옥을 가지면 되잖아. 아니면 둘 중 하나가 양보하든가.”

“둘 중 누가 더 허무주의자냐, 그게 문제겠군 기래.”

“아무래도 네놈보다는 내가 더 허무주의잘 걸?”

“기러니께니 나보고 가져라, 기거네?”

“맞는 말이지.”

“허무야 늬보다 내가 더....”

나는 허마두의 말을 자르고 기사에게 일러 얼른 차를 출발시킨다.

춘천옥은 신(神)을 만드는 곳

프랑스와 영국을 다녀와 양평집에서 쉬고 있는데 춘천옥에서 다급한 전화가 걸려온다. 허마두 사장의 목소리다.

“날래 오라우. 큰일났어야.”

“무슨 일인데 그래?”

“암소리 말고 달려오라메.”

전화가 끊긴다. 사고가 난 건 아닌지 마음이 조마조마하다. 다시 전화벨이 울린다.

“어캐 해얄지 모르갔어. 기러니께니 날래 오라우. 알간?”

“도대체 무슨 일인데?”

“손님들이 춘천옥을 정복했어야.”

“그게 뭔 소리야? 정복하다니?”

“그 배라먹을 테레비 때문이디.”

또 전화가 끊긴다.

그제야 짐작이 간다. 원래 손님이 많은 데다 특집방송을 내보냈으니 어떤 현상이 벌어졌겠는가.

나는 급히 디지털단지 오거리로 차를 몬다. 1시간여를 달려 춘천옥에 도착하니 현관 앞 도로가 인파로 꽉 차 있다. 출입문은 닫혀 있고, 입구에는 아이스박스가 겹겹이 쌓여 있는데, 직원 두 명이 밀려드는 손님들에게 음료수 캔을 하나씩 나눠주며 연방 소리친다.

“장사가 끝났으니 돌아가십시오.”

출입문 유리에는 오후 6시에 문을 닫겠다는 안내문도 붙어 있다. 이럴 수가. 6시부터 밤장사가 시작되는데 문을 닫다니.

나 대구에서 왔는데 맛만 보고 갑시다.

나 광주에서 왔는데 한 접시만 싸주쇼.

나 부산서 왔는데 그냥 가란 말요?

나 대전서 왔는데 늦어도 좋으니 꼭 먹고 갈래요.

뒷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선 나는 텅 빈 홀에 서 있는 허마두에게 소리쳤다.

“안내문을 어서 떼지 못해! 너 춘천옥 망하는 꼴 보려고 저런 걸 써 붙였어? 방송을 듣고 몰려온 손님은 일시적인 뜨내기라구. 절대 문을 닫지 말고 어떻게든 감당해봐.”

“누군 닫고 싶어 닫네? 오늘은 고기도 떨어디구, 양념도 떨어디구, 암 것도 없는데, 어캐 문을 여네?”

“낼부턴 재료를 더 준비해서 문을 닫지 말라구.”

“오늘은 재료를 적게 장만해서 이러네? 아무리 장만해도 손님이 밀려드는 걸 어캐 감당하갔어. 요즘 어드러케 지냈는디 늬는 상상도 못할 거라메. 휴가철인데도 대기손님 번호표만 삼백오십 번이 넘었더랬어. 기래개디구 손님들끼리 싸우는 진풍경까지 벌어졌는데, 표 한 개당 세 명만 잡아도 삼삼은 구니께니 천 명이 넘잖갔어? 인산인해라기보담 전쟁터 배급소 같았어야. 길코 손님 땜에 도로가 막혀개디구 경찰관이 출동했더랬어. 기래서 손님에 대한 예의가 아니구나 싶어서리 문을 닫고 음료수를 나눠드린 거라메. 알간?”

“그래서 나를 부른 거야? 너 언제까지 내 지시 받으며 장사할 거야.”

“만날 기러든? 이런 경우래 첨이잖아. 재료를 잔뜩 준비해도 두세 시간이믄 독나니께니 어드러케 처리하란 말이네?”

“그것도 혼자 처리 못해? 나한테 전화를 걸어야 마음이 놓이든? 네가 이런 사내니까 미스 강을 처녀로 늙게 하지.”

“까불지 말라우. 이래봬두 내래 춘천옥 매상을 키운 사람이니께니.”

“얼마나 키웠는데? 나 없이도 최소한 세배는 더 올려야잖아. 사장 시켜준 지가 일년이 다 돼.”

“머이? 세배? 아주 날 잡아먹으라메.”

“왜 자꾸 우리 허마두 사장님께 욕을 퍼대세요? 이젠 우리 사장님께 그러지 마세요.”

미스 강이 허마두 역성을 든다.

“어쭈, 너 언제부터 이놈 편였어?”

“기용 선생, 강 지배인한테 너가 멉네까? 길코 사장한테 이놈이 멉네까? 나도 댁을 회장님으로 깎듯이 모실테니께니 나한테두 사장님이라고 불러주시구래.”

“회장이란 명칭 쓰지 말랬잖아.”

“기럼 머라 부르면 좋갔시오?”

“선생.”

“기거이 소원이믄 할 수 없디. 선생나리, 우리 둘은 사장이니 회장이니 유식 떨지 말고 사석에선 끝까디 늬로 통하자우. 아무래두 늬로 부르는 거이 건강에 좋갔어. 기럼 기럼.”

“이놈 저놈 하고 그전처럼 욕으로 통하면 어때?”

“좋티. 빈틈없는 늬한테 기래도 인간다운 헛점은 욕뿐이잖네. 기러티만 말이디, 인자 욕은 삼가야잖갔어? 욕은 재민 있디만서두 긴장을 깨기 쉬운 게야. 운영체계도 달라졌으니께니 형식도 중한 거라메. 맞디?”

“그래. 네 말이 맞다.”

밖에 어둠이 깔리자 손님들이 좀 뜸하다. 춘천옥 건물에 불이 꺼져 있으니 손님들이 그냥 되돌아가는 모양이다. 방에서 대기하고 있던 직원들도 돌려보낸 지 오래다.

나는 3층 휴게실에 금천 본점 허마두 사장, 신촌점 예비지점장 강 지배인, 잠실점 예비지점장 김춘수 주방장을 모아놓고 강남점 예비지점장 정 마담을 기다린다. 나는 한 달 만에 춘천옥 휴게실에 앉아본 셈이다. 운영회는 수시로 모임을 가졌겠지만 나는 되도록 연락을 끊고 지낸다. 아예 내가 죽고 없는 것처럼 독립심을 키워줄 참이다.

내가 춘천옥에 미쳤던 것은 죽음보다 더 무서운 허무를 극복하기 위해서다. 아무 의미 없는 인생에서 뭐에 미쳐야만 생명을 부지할 수 있다.

춘천옥 운영은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다. 구두에 묻은 흙만 떨구고 가도 좋으니 손님이 북적대기만을 바랐던 것이다. 이익이 나든 말든, 재산이 모아지든 말든 그건 알 바 아니다. 손님 끄는 재미에만 미칠 뿐이다. 손님이 미어터지면 흥이 나고 손님이 떨어지면 사는 맛을 잃었다.

“능수엄마래 어디 오고 있는 게야? 날래 오잖구.”

허마두가 핸드폰으로 재촉한다.

“능수엄마가 뭐에요. 정 마담님보고.”

강 지배인이 허마두의 말을 바로잡아준다.

“하도 오랜 세월 부르다보니께니 내 입이 깜빡했구레.”

“오늘 오랜만에 정 마담을 만나보게 됐군.”

내 말에 허마두가 솔직히 털어놓는다.

“오늘 본점 영업이 불가능할 줄 알구서리 지점장들과 기용 선생을 불렀습네다. 진작에 기용 선생 모실 자리를 만들고 싶었더랬시오.”

그러고 보니 남녀 모두 정장 차림이다. 언제 작업복을 정장으로 갈아입었는지 모른다.

“여기 예비지점장들이 입은 정장은 내가 직권으로 장만했시오.”

나는 벌떡 일어나 허마두를 포옹한다.

“잘했어. 너무 잘했어.”

정말 신선한 충격이다. 나는 즉석에서 마음을 밝힌다.

“지난번에 발표한 적이 있읍니다만, 앞으로 지점장은 순이익의 20프로를 성과급으로 준다고 했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현재 본점의 추가 매상에서 20프로를 역시 성과급으로 허마두 사장께 드리겠습니다. 여러분, 박수로 축하해주세요.”

“박수 감사합니다. 기러티만 당장은 받을 수 없습네다. 우리 춘천옥이 장기 계획으로 세운 네 곳의 지점이 모두 세워진 후에나 성과급을 받겠습네다.”

“좋습니다. 이 문제는 친구로서 우리 둘 만의 경우가 있으니 별도로 해결하겠고 지금은 언쟁을 피하겠습니다. 그리고 모든 운영에 대해 내가 철저히 협조는 하겠지만 어디까지나 여러분이 결정한 사항에 협조한다는 겁니다. 그러니 앞으로는 아무리 중대한 결정도 여러분끼리 의논해서 결정하도록 해요. 그동안 애써준 여러분들의 노고에 경의를 표합니다.”

말을 끝낸 나는 창밖으로 주차장을 내려다본다. 가로등 불빛에 환히 드러난 주차장으로 아담한 승용차 한 대가 들어온다. 이내 차가 파킹 장에 멈추고 정장 차림의 우아한 사십대 여인이 내린다.

고맙다. 네가 이처럼 멋진 여성이 되다니....

능수엄마의 변신을 보는 순간 옛날 추억이 되살아난다. 뺨을 때리면서까지 품위 있는 몸가짐과 언어를 가르쳐주던 그 정열의 순간들이 눈앞을 스친다. 내가 뺨을 때리면 능수엄마는 “열심히 하는데 와 때리능교?” 하고 대들었고, 그때마다 나는 “이래가지고 언제 다 배울 거야, 나 죽은 후에 배울래?” 하고 고함을 치곤했다.

옛 일을 회상하며 나는 속으로 너붓이 웃어본다. 상쾌한 웃음이다. 능수엄마에게 한번도 보여주지 않던 웃음. 지금에야 그 웃음을 몰래 즐겨본다. 그 웃음을 즐기기 위해 나는 몇 번이나 그녀를 울려야 했던가.

그래, 너는 이제 능수엄마가 아니라 의젓한 경영인 정 사장이 돼야 한다. 너는 줄기차게 춘천옥을 키워왔고, 앞으로도 더 키워야 하고, 내가 죽은 후에도 빛내야 한다.

드디어 복도 쪽에서 발자국소리가 들려온다. 그 소리가 점점 더 가까이 다가온다. 나는 눈을 감은 채 그 소리를 느낀다. 조바심이 난다. 어서 능수엄마가 도착해야 모두에게 내 생각을 전해줄 수 있다. 모두에게 이런 말을 해주고 싶다.

“나는 모진 고생을 하며 살아왔지만 재산 축적에는 관심이 없었소. 그래서 재산이 모아지면 버릴 곳을 물색해야 했소. 그 돈을 어떻게 써얄지 여러분들과 의논할 작정이오. 여러분들은 비록 가난하지만 착하고, 인정 많고, 열심히 일한 사람들이오. 나는 여러분들을 믿었고 여러분들은 나를 믿었소. 이제 여러분들은 내 신(神)이 되었소. 나는 여러분들을 믿음으로써 허무를 극복할 수 있소. 춘천옥은 신을 만드는 곳이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