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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러시아문학 전성기 이끈 국민문학 창시자


낙후된 러시아문학 세계문학으로 드높여

동상 앞 구걸하는 여인도 “푸슈킨 덕에 잘 산다”인정

문학서클 '아르자마스'에 15세 때 회원으로 문학개혁에 동참

 

 

▲ 푸슈킨 박물관


[그린경제=김용만 소설가] 러시아인이 가장 살고 싶어 하는 도시 페테르부르크. 세 번이나 찾아간 곳이라 그런지 나는 제정러시아의 타락한 귀족처럼 건들대고 싶어진다. 네바 강에서 유람선을 탈 때는 거침없이 와인 잔을 비웠고, 강변에서는 사관생복 차림의 아가씨들과 어울려 사진을 찍기도 했다. 하지만 이삭성당을 둘러보고 데카브리스트 광장에 들어서자 금방 마음이 숙연해진다. 180여년 전 군주제와 농노제 폐지를 외치며 반란을 도모한 데카브리스트(12월당원)들의 함성이 이명처럼 느껴졌는데, 거기에는 절대자유를 외친 푸슈킨의 육성이 녹아 있을 것만 같았다.

 

 


러시아 전역에 동상이 세워질 정도로 러시아인의 감정에 질펀히 녹아든 푸슈킨. 그는 나폴레옹 전쟁 후 민족의식과 자유주의가 고조되는 격동기에 서구 문화를 과감히 받아들여 그것을 러시아적 체질로 육성함으로써 러시아문학을 보편적인 세계문학으로 드높였으며, 또 러시아 문예문체의 표준을 확립하고 사실주의 문학을 전개함으로써 19세기를 러시아문학의 전성기로 만든 국민문학의 창시자이다.


그에게서 영향을 받은 대표적인 작가만 해도 고골리를 비롯하여 투르게네프, 도스토예프스키, 톨스토이, 고리키 등 세계적인 대가를 꼽을 수 있고, 아흐마토바, 마야코프스키, 나보코프 같은 현대 시인이나 작가들까지 푸슈킨의 영향을 부정하지 않았다. 푸슈킨의 존재를 가시적으로 입증하는 몇 가지 사례만 들어도 차이코프스키나 스트라빈스키 같은 악성들의 오페라, 푸슈킨시(市)의 명칭, 푸슈킨 거리, 푸슈킨 박물과, 푸슈킨 문학연구소, 푸슈킨 학회, 푸슈킨의 기념비와 동상, 푸슈킨의 문장에서 따온 격언 등 다양하다. 피터 대제가 후진에 머물렀던 러시아인의 의식수준을 고양시켰다면 푸슈킨은 낙후된 러시아 문학을 세계문학으로 꽃피운 셈이 된다.


▲ 푸슈킨과 부인 나탈리아의 결혼을 기념하는 동상


오늘 관광의 마지막 코스인 푸슈킨 동상을 찾아갔다. 그런데 나를 맨 먼저 반긴 사람은 애를 안고 구걸하는 아낙네였다. 나는 잔돈 몇 닢을 건네주며 구걸로 생계가 유지 되느냐고 물었다. 그녀는 “푸슈킨 덕에 잘 산다”고 대답했다. 이번에는 푸슈킨이 누구냐고 물었더니 러시아 사람이라고 했다. 장난기가 동한 나는 “그럼 당신은?” 하고 물었더니 페테르부르크 사람이란다. 그 멋진 대답이 가이드의 오역(誤譯)인진 몰라도, 그처럼 푸슈킨은 전 러시아에 편재한 제도화된 인물이었다.


알렉산드르 세르게예비치 푸슈킨은 1799년 5월 26일 모스크바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세르게이 르보비치는 오래된 귀족 가문 출신으로 예비역 소령이었고, 살롱출입과 파티를 낙으로 삼은 한량이었다. 어머니 오시포브나 한니발은 콘스탄티노플에 포로로 잡혀갔다가 표트르 대제에게 인질로 보내진 이디오피아 황태자의 후손이었다. 그녀의 조부인 아브람 한니발은 표트르 대제의 총애를 받은 흑노(黑奴)로 유명하다. 그처럼 아프리카의 혈통을 이어받은 어머니는 러시아의 사교계에서 ‘예쁜 혼혈녀’라는 평판이 자자했고 유한마담처럼 향락을 즐긴 탓에 부부싸움이 잦았다. 부모는 아이들의 교육에도 태만하여 푸슈킨은 프랑스인 가정교사에게 맡겨졌고 일상생활에서도 프랑스어를 사용했다.


외가의 핏줄을 받은 푸슈킨은 고수머리에 얼굴이 거무잡잡하고 조급한 성격이었으며, 상상력이 탁월했다. 어려서부터 아버지 서재에서 문학과 철학서적을 탐독한 그는 특히 프랑스 소설을 좋아했고, 플르타크 영웅전, 18세기의 역사물, 연애시, 우화 등을 즐겨 읽었다. 또 외할머니 마리야와 유모 아리나로부터 들은 러시아 민담이나 참칭자 드미트리에 대한 역사 이야기는 푸슈킨의 문학적 정서와 『예브게니 오네긴』같은 대표작을 쓰는 데에 큰 영향을 끼친다.


푸슈킨은 1811년부터 1817년까지 차르스코예셀로(지금의 푸슈킨시)에 있는 유서 깊은 귀족학교 리쩨이에서 유년시절을 보낸다. 거기서 6년간 수학하면서 많은 서정시를 썼고 궁정시인들로부터 격찬을 듣는다. 푸슈킨은 겨우 15세 나이에 당대의 쟁쟁한 문인들이 주축이 된 문학서클 ‘아르자마스(Arzamas)’의 회원이 되어 의고주의(擬古主意)에 반발하는 문학개혁에 동참하기도 한다.


리쩨이는 알렉산드르1세가 황실과 귀족 출신의 자녀들에게 고등교육을 시켜 졸업 후에 나라의 요직에 배치할 계획으로 세운 학교로, 3년간씩 저급반과 고급반으로 나뉘어졌으며 교과 과정에는 승마, 수영, 펜싱, 무도 같은 체육종목과 윤리학, 역사, 지리, 수학, 외국어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 시절 푸슈킨은 게으르고 제멋대로 행동하면서도 시적 재능만은 탁월했으며, 성격이 과격하지만 남의 충고를 겸허히 받아들이는 편이었다.


▲ 푸슈킨 동상


리쩨이의 교수진은 러시아의 저명한 학자와 외국에 유학한 젊은 학자들을 반반씩 초빙해 짰는데 늙은 교수들은 황실에 충성하는 전근대적인 학습을 시켰지만 유학파들은 서구의 혁신적인 자유주의와 계몽주의 운동을 가르쳤다. 그래서 리쩨이를 졸업한 학생들의 절반은 공무원이 되고 나머지 절반은 12월당원이나 훗날 반정부 투쟁을 벌이는 주요 인사들로 성장했다. 푸슈킨의 초기작품에 드러난 자유에 대한 열망도 바로 리쩨이의 영향이 크다 하겠다.


1817년 리쩨이를 졸업한 푸슈킨은 수도 페테스부르크의 외무성에 들어가지만 이름뿐인 8등관 직위를 간직한 채 3년간 무절제한 방탕생활에 들어간다. 다른 귀족 자제들처럼 페테르부르크에서 음주와 여색 등 향락에 빠지기도 하고, 문학 선배나 동료들과 교류를 가졌으며, 나폴레옹 전쟁 후에 팽배했던 자유주의 분위기 속에서 데카브리스트의 서클과 어울려 전제정치를 공격하는 정치시를 쓰기도 했다. 1820년 푸슈킨은 시적 독창성이 뛰어나고 낭만주의의 도래를 예고한 장편 서사시 『루슬란과 류드밀라』를 출간하여 젊은 세대의 열광적인 지지를 얻는다. 하지만 보수적인 구세대의 눈에는 방만하고 경박하고 외설스럽게만 비쳤다.


그 무렵 푸슈킨은 혁명적 사상가 차다예프와 사귀면서 데카브리스트의 한 그룹인 무장봉기 단체 ‘녹색램프’에 참여하여 농노제 폐지 등 정치사상에 물들기 시작한다. 그의 시는 의식화된 지성인들의 애송시가 되었고 젊은이들은 그의 시를 통해 자유사상을 고취시켰다. 그는 자유를 사랑하는 송시 『자유』와 농노제 붕괴를 예언한 『농촌』등 일련의 과격한 정치시를 썼다가 ‘불온시인’으로 낙인이 찍혔지만 까람진, 그린카 같은 영향력 있는 선배의 도움으로 구속을 면한 채 남러시아 예까쩨리노슬라프로 추방되었다. 그런데도 푸슈킨은 비밀조직에 실제로 가담한 적이 없다. 친구들은 수다스럽고 경박한 그를 배짱이 없는 인물로 치부하여 중요한 일에서는 소외시켰던 것이다.


푸슈킨의 유배생활은 아이러니컬하게도 그의 생애를 통해 가장 보람된 자유를 누리는 기회가 된다. 폭넓은 독서와 시작에 전념할 수 있었고, 특히 라예프스키 장군 가족을 따라 카프카즈에 머물 때는 천혜의 절경과 다채로운 풍속 등 이국적인 분위기에 젖으면서 새로운 시적 영감을 얻는다. 그리고 장군의 딸 마리야를 사랑함으로써 연애감정과 낭만을 동시에 만끽하게 된다. 또 영국 낭만주의 시인 바이런의 시를 탐독함으로써 소위 푸슈킨의 ‘바이런 시대’가 열리게 되는데 『카프카즈의 포로』, 『도둑 형제』등이 그곳에서 쓴 작품들이다.


▲ 푸슈킨 식탁


푸슈킨은 1823년 흑해의 항구 도시 오데사로 이송되자 활기를 되찾고 시인으로서의 천부적 재능을 발휘할뿐더러, 러시아 문학사상 최초의 리얼리즘 작품인 운문소설 『예브게니 오네긴』을 쓰기 시작한다. 하지만 1824년 무신론을 긍정한 편지가 압수되자 어머니의 영지가 있는 미하일로프스코예 마을로 추방됨으로써 매혹시킨 낭만주의와 멀어진다. 사실 그는 광적인 자유와 애정행각에 빠져왔으면서도 그의 출생에 걸맞는 귀족적 질서의식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약 2년 동안 어머니 영지에서 연금상태로 머문 푸슈킨은 고집이 센 아들을 괴물로 여겨온 아버지와의 불화에도 불구하고 셰익스피어에 대한 독서의 즐거움에 빠져 지낸다. 그는 『예브게니 오네긴』을 계속 집필하면서도 셰익스피어의 영향을 받아 비극시 『보리스 고두노프』와 풍자적 서사시 『누린백작』등을 완성한다. 푸슈킨은 결과적으로 고독한 유폐생활을 통해서 사상적
·예술적 체질로 성장한 셈이다.


/김용만 소설가(잔아문학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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