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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지식 동원 역작 '에덴의 동쪽' 영화化로 알려져


 '모든 것 포용한 보편성' 함축

 치밀한 구성‧간결한 문체 ‘산문예술의 극치’ 호평

정부, 귀족 소유 저택 푸슈킨박물관으로 개조

   

  
 

 

 [그린경제=김용만 소설가] 푸슈킨 기념관은 예전처럼 그들 부부의 동상 맞은편에 자리 잡고 있었다. 1831년 갓 결혼한 그들 부부가 3개월가량 2층을 세내어 살던 집이었다. 나는 두 번째 와보는 곳이어서 대충 둘러보고 프레치스첸크에 있는 푸슈킨 국립박물관으로 갔다. 제정러시아의 귀족 소유였던 저택을 소비에트 정부가 박물관으로 꾸몄으며 1999년 푸슈킨 탄생 200주년을 맞아 현대식으로 개조했는데, 푸슈킨의 작품 제목을 따서 이름을 붙인 각 전시실에는 푸슈킨의 주변 인물의 초상화와 소지품, 가구, 편지, 그림, 데드마스크, 작가의 저서, 육필원고, 그리고 작품에 나오는 당시의 물품들을 구해서 전시하고 있었다.

지붕을 유리로 덮은 중앙홀, 강당, 원형 콘서트홀에서는 시낭송, 음악회 등 각종 문화행사가 열린다고 한다. 마침 지하에서 전시중인 안데르센 작품을 관람하고 이층 계단 위에 있는 푸슈킨의 부인 나탈리야의 입상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연초록 드레스로 우아하게 차림한 부인 나탈리야의 입상은 외견상으로는 신비감이 느껴질만큼 아름다웠다. 그게 실물 모습이라면 푸슈킨이 애간장을 녹일만도 했다.

그녀는 왜 거기에 서 있을까? 그녀가 공식적인 아내여서일까?
 

▲ 푸슈킨 서재

남편의 고민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사교계의 여왕처럼 군림한 나탈리야는 궁정행사에서 황제의 눈에 들게 되고, 그녀의 미모에 반한 황제는 그녀를 자주 볼 수 있도록 푸슈킨을 시종보에 임명한다. 시인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신분이지만 푸슈킨은 그 직책을 통해 역사의식에 눈뜨게 된다. 그는 피터대제의 공적을 기리면서 그 희생이 된 페테르부르크 소시민의 비극을 묘사한 서사시 『청동의 기사』, 도스토예프스키의 『페테르부르크 이야기』와 고골리 작품의 전범이 된 소설 『스페이드의 여왕』, 레르몬토프의 『현대의 영웅』과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의 원형이 된 역사소설 『대위의 딸』 등을 써 러시아 리얼리즘문학의 기초를 다진다.

1836년 푸슈킨은 소망해온 문학잡지 <현대인>을 발간하지만 재정난 때문에 자기의 작품으로 페이지를 채워야 했고 장편소설 『대위의 딸』도 여기에 실었다. 로마노프 왕조를 뒤흔든 당대 최대의 정치범을 소설 속에 형상화한 『대위의 딸』은 치밀한 구성과 간결한 문체로 푸슈킨 산문 예술의 극치라는 평을 받았다.

푸슈킨의 작품세계는 도스토예프스키가 평가했듯 “모든 것을 포용한 보편성”으로 요약될 수 있다. 그는 시, 소설, 희곡, 평론, 기행문, 역사물 등 모든 장르를 망라하고도 <운문소설>이란 새로운 장르를 창안했으며, 작품마다 해당 장르에서 전범이 될 만큼 작품성이 뛰어나고 작가의 실험성이 돋보인다. 또한 그의 작품에는 전통적인 고전주의와 서구적 낭만주의, 그리고 러시아 문학의 새로운 풍토로 자리잡게 될 사실주의의 요체가 녹아 있다.

푸슈킨의 대표작인 『예브게니 오네긴』은 전형적인 귀족 청년과 러시아 여성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여주인공 다치야나는 어떤 유혹과 향락에도 굴하지 않고 현실을 극복해나가는 강인한 러시아적 여인상으로 부각되는데,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에 등장하는 나타샤나 고리키의 『어머니』에 등장하는 어머니의 원형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와 반대로 오네긴은 현실성이 결여된 쓸모없는 인간, 즉 재치와 빤지르르한 용모로 여인에게 너스레를 떨다가 결국 자기파멸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는 부정적인 남성상으로 평가받아 왔다. 러시아의 문예비평가로 비판적 리얼리즘의 이론을 확립한 벨린스키가 “러시아 생활의 백과사전”이라고 격찬한 이 운문소설은 산문이 주는 유장한 문장 구조보다는 압축된 점묘식 묘사로 인물의 성격을 잘 드러내고 있다.

최신 유행 머리에

런던 댄디처럼 차려입고

대망의 사교계에 첫 발을 내디뎠다.

프랑스어를 나무랄 데 없이 구사하고

날아갈 듯 추는 마주르카에

인사하는 맵시도 매끄러우니

 

통속적인 애정소설처럼 보이는 이 작품에서 오네긴과 다치아나는 세계 문학사에서 불후의 남녀상으로 기록되고 있다.


▲ 푸슈킨 식탁

이처럼 푸슈킨의 왕성한 문필활동과는 달리 그의 가정은 점점 더 황폐해져갔다. 나탈리야가 새로운 염문을 뿌렸던 것이다. 네덜란드 공사의 양자인 프랑스 태생 단테스는 잘생긴 용모를 무기 삼아 페테르부르크의 살롱계를 휘젓다가 나탈리야에까지 접근했으며, 아내의 불륜을 암시하는 익명의 투서가 푸슈킨과 그의 친지들에게 날아들기 시작했다. 푸슈킨의 진보적인 사상을 미워한 세력가들의 음모라는 말도 있고, 나탈리야와 황제간의 불륜을 덮어두기 위한 계책이라는 말도 있지만 푸슈킨은 단테스에게 결투를 청하고 만다.

1837년 1월 27일 낮 4시에 결투는 거행되고, 결과는 푸슈킨이 총을 맞고 치명적인 상처를 입게 된다. 푸슈킨은 즉시 집으로 옮겨져 유명한 의사 아렌트의 치료를 받는다. 동료 문인들인 쥬코프스키, 오도예프스키, 투르게네프 등이 달려오고 수천 명의 시민이 그의 집 주변에 몰려들었으며 병세에 관한 쥬코프스키가 문에 붙여놓은 용태서를 읽으려고 야단들이었다. 결국 1837년 1월 29일 푸슈킨은 단테스가 쏘았던 1탄을 맞고 37년 8개월의 짧은 생애를 마감한다. 그는 죽기 직전 아내의 무고함을 믿는다며 나탈리야를 위로하고 뚜르게네프에게 매장을 부탁한다.

푸슈킨의 집 주변은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민중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황제는 푸슈킨의 죽음이 민족적 손실이란 분위기로 고조되자 군중시위를 걱정하여 장례를 초라하게 치르도록 엄명한다. 푸슈킨의 서재는 샅샅이 수색되고 의심이 드는 기록물은 모조리 압수되었다. 시인 오도예프스키는 <러시아 시의 태양이 졌다>는 추도문을 발표하여 정부의 질책을 받았고, 레르몬토프는 푸슈킨의 죽음에 책임이 있는 사교계와 궁정을 질타하는 <시인의 죽음에 부쳐>를 발표했다가 카프카즈로 유배되었다. 황제의 그런 강압 정책에도 불구하고 푸슈킨의 시와 명성은 요원의 불길처럼 전국으로 번져나갔고 『예브게니 오네긴』은 순식간에 매진되었다. 그의 묘비에는 “푸슈킨아, 살아서 우리에게 다시 돌아오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는데 그 글은 아직도 수많은 방문객의 눈길을 끌고 있다.

/김용만 소설가(잔아문학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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