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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스토이·도스토예프스키 러시아문학 양대산맥 '우뚝'


원시적·소박한 것에 향수 느끼는 성품

별장지기 이후 습작 몰두 '토틸라 마을'로 주목 받아

인간의 영원한 사랑욕구 주제로 한 '에덴의 동쪽' 영화化

리포터 해고 이후 공사장 인부·페인트 견습공·과수원 노동자 등 고단한 삶

  
▲ 존 스타인벡 기념관

[그린경제=김용만 소설가] 시카고에 있는 훼밍웨이의 집과 샐리나스(Salinas)에 있는 스타인벡의 집 중에서 어디를 먼저 찾아갈까 망설이다가 샐리나스로 방향을 잡았다. 보름 후면 닥쳐올 여름의 유혹 때문이었다. 유혹? 그렇다. 아름다운 유혹이 아니라 잔혹한 유혹에 홀린 것이다. “옥수수 잎에 갈색 줄이 퍼진” 캘리포니아의 여름은 이제 대지를 참혹하게 비틀 것이다. 먼지만 풀풀 날리는 땅. 가난과 증오와 폭력으로 얼룩진 땅. 내 의식 속에 심어진 캘리포니아의 평원은 그처럼 거칠고 황량했다. 고교시절에 읽은 『분노의 포도』가 캘리포니아의 이미지를 저주받은 땅으로 휘어놓은 것이다.

푸른 배추 농원을 가로질러온 버스가 샐리나스 시내에 진입하자 네거리 도로변에 깔끔한 2층 저택이 나타난다. 식당과 기념품 매장으로 활용되는 ‘STEINBECK HOUSE’였다. 집 주위를 둘러보고 기념관 쪽으로 걸어갔다. 전시관 입구에 앉아 있는 스타인벡의 전신상 앞에서 사진을 찍고 서재, 침실, 유품전시실, 영상실을 차례로 관람했다. 영화 세트장처럼 꾸며진 영상실에서는 『에덴의 동쪽』이 방영되고 있었다. 제임스 딘의 전설적인 연기 장면이 스크린에 뜨는 순간 일시에 내 몸이 긴장한다. 수십 년 전에 본 영화인데도 제임스 딘의 ‘이유없는 반항’은 아직도 내 의식 속에 살아있었던 모양이다. 왜 잊혀지지 않았을까? 내 실종된 청춘 탓일까? 활짝 펴보지 못한 꽃봉오리처럼 한순간도 원색감정(原色感情)에 젖어보지 못한 내 결핍(缺乏) 때문일까?

존 스타인벡이 남북전쟁에서 제1차 세계대전까지를 시대배경으로 설정하고 원죄로부터의 해방을 중심주제로 다룬 소설 『에덴의 동쪽』은 작가 자신이 그동안의 작품을 습작에 불과하다고 폄하할 정도로 모든 지식과 열정을 동원한 역작이다. 하지만 『분노의 포도』만큼 평단의 시선을 끌지는 못했다. 작가의 외가를 모델로 삼은 헤밀튼 가의 목가적 이야기와 트래스크 가의 문제적인 픽션이 교직된 대하소설 『에덴의 동쪽』은 소설보다는 오히려 영화를 통해 더 잘 알려진 작품이다.

  
▲ 샐리나스

영화감독 엘리아 카잔이 예각적으로 선별하여 스스로 각색까지 맡은 영화 『에덴의 동쪽』은 구약성서의 카인과 아벨 형제의 이야기를 원형으로 삼았다. 인간의 영원한 사랑욕구를 주제로 설정한 이 영화는 배우 제임스 딘의 ‘우수 어린 반항적 인간상’을 부각시킴으로써 그를 일약 신화적인 스타로 키운 기반이 된다. 제임스 딘의 우수 어린 반항은 만천하 여성들의 모성애를 자극하여 그를 구애(求愛)의 심벌로 만들었던 것이다. 스타인벡도 제임스 딘의 의식세계에 친화를 느껴 자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고 한다.

제임스 딘이 교통사고로 죽자 세계 곳곳에서 애도의 물결이 일었다. 이탈리아에서는 그의 죽음을 비관한 여자들이 집단 가출해 거리의 여자로 전락하는 웃지못할 사태가 발생했고, 그의 무덤에는 그의 죽음을 의심하는 팬들의 편지가 답지했다고 한다. 우연의 일치일까? 그의 단명은 예고된 운명의 궤적인지도 모른다. 그는 “일찍 죽어서 아름다운 사랑을 남긴다”고 말했던 것이다.

영화에서 제임스 딘은 농장을 경영하는 아담의 두 쌍둥이 아들 중 작은아들 칼 역을 맡았는데, 큰아들 아론(리처드 타바로스 분)은 고분고분한 성격인데다 공부를 잘해서 아버지의 애정을 독차지하지만 칼은 반항아적인 기질이어서 아버지의 관심 밖으로 밀려난다. 아버지가 아론을 편애할수록 칼의 성격은 점점 더 거칠어질 수밖에 없고, 드디어 아버지는 칼의 몸에 에미의 부정한 피가 흐를지 모른다고 의심하기에 이른다. 칼의 생모 캐시(가출 후의 이름)는 처녀시절 가출을 시도했다가 아버지에게 꾸중을 듣자 집에 불을 질러 부모를 죽게 했고, 성실한 아담을 유혹하여 아론과 칼을 낳고도 환락생활에 빠지고 싶어 가정을 파괴했으며, 가출을 막는 남편 아담에게 총상을 입히면서까지 집을 나와 창녀가 된 악마의 화신이다.

어느 날 칼은 죽은 줄만 알았던 어머니 캐시가 청루(靑樓)의 마담 노릇을 하며 몸을 판다는 풍문을 듣고 아버지 몰래 찾아갔다가 생모의 타락한 생활이 확인되자 혐오감을 느낀다. 그런 칼의 찢겨진 영혼을 형 아론의 애인 에이브라가 감싸주는데 격정적이면서도 인간성이 고운 칼에게 마음이 끌린 에이브라는 아론만 편애하는 아버지에게 칼의 효심을 이해하라고 간청한다. 배추 운송업 실패로 파산지경에 이른 아버지를 위해 칼은 (어머니한테서 빌린) 5000달러로 콩을 매점하여 큰 돈을 벌게 되고, 그 돈을 아버지에게 생일선물로 바치지만 아버지는 전쟁(제1차 세계대전)을 이용한 불경한 돈이라고 칼의 선물을 끝내 거절한다.

마음에 감당 못할 상처를 입은 칼은 형 아론을 데리고 어머니를 찾아간다. 그동안 정숙한 어머니상을 간직해온 아론은 어머니의 타락한 모습을 보고 자포자기에 빠져 군에 입대했다가 전사하게 된다. 유일한 희망이었던 큰아들의 전사로 충격을 받은 아버지는 뇌졸중으로 쓰러지고, 죄의식을 느낀 칼은 아버지에게 용서를 빌지만 아버지의 마음은 좀처럼 풀어지지 않는다. 결국 칼이 집을 나가기로 작정하자 에이브라는 아버지에게 거듭 칼을 사랑하라고 간청한다. 그제야 아버지는 고별 인사차 찾아온 칼에게 꺼져가는 목소리로 말한다.

“간호원 대신 네가 간호해주렴.”

소설에서는 에이브라 대신 중국인 집사(執事) 리이가 죽어가는 아버지를 설득하는데, 병상에 누워 숨을 거둬가는 아담에게 칼을 용서하라고 애소하는 리이의 마지막 대화가 감동적이다.

“그를 받아주세요. 당신의 아들은 죄의식에 사로잡혀 제정신이 아닙니다. 그를 망가뜨려선 안 됩니다. 그를 자유롭게 해주세요. 아담, 입술을 움직일 수 있어요? 입술 모양으로 아들의 이름을 불러보세요.”

길 잃은 세대(Lost Generation)인 훼밍웨이 보다 한발 늦게 등단한 존 스타인벡(John Steinbeck)은 새로운 세기가 열리는 1902년 2월 27일 캘리포니아주의 태평양 연안에 위치한 샐리나스에서 태어났다. 독일계의 혈통을 받은 아버지 스타인벡은 모터리구(區)의 재무책임자였으며 아일랜드계의 혈통을 받은 어머니 올리브 해밀튼은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했다. 존 스타인벡은 두 누이를 둔 외아들로서 맞벌이 부부인 부모를 도와 고교시절부터 농장일을 맡아했다. 그는 성경 말고도 밀튼, 도스토예프스키, 조지 엘리어트, 토마스 하디의 작품을 탐독했다.

   
  
▲ 존 스타인벡 생가

스탠포드대학에 입학한 그는 영문학을 선택했지만 나중에 사회학과 생물학을 공부했으며 1925년에 학위를 받지 못한 채 대학을 중퇴했다. 그해 스타인벡은 도시를 선호하는 빅붐(Big Boom)이 일자 사람들이 모여드는 뉴욕에서 문필생활로 자립할 계획을 세운다. 뉴욕에 도착한 그는 우선 <아메리칸>이라는 신문사의 기자로 활동하지만 오래가지 못하고, 그후 리포터로 활동하면서 단편집 편집을 맡아봤지만 관념적인 이야기밖에 쓰지 못한 탓에 해고를 당하고 만다. 그때부터 스타인벡의 고단한 삶이 시작된다. 벽돌을 운반하는 인부생활로부터 페인트 견습공, 과수원 노동자, 별장지기 등 닥치는 대로 일을 하다가 캘리포니아로 돌아와 외딴 섬 타호의 별장지기가 되고서야 조용히 습작에 몰입할 수 있게 된다. 그때 쓴 작품이 처녀작 『황금의 잔』으로 서인도의 스페인 영해를 휩쓸고 다닌 해적의 로맨틱한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스타인벡이 비평가들에게서 인정을 받기 시작한 것은 1935년에 파이자노(paisano)의 애환을 그린 『토틸라 마을』을 출간하고부터다. 토르티야 평원에 사는 스페인인, 멕시코인, 인디언 등의 혼혈인종인 파이자노들의 순박하고도 자유로운 생활상을 페이소스와 유머를 섞어 그린 작품으로 출간 즉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거기에는 미국 상업주의에 대한 비판이 녹아있는데 파이자노들을 “웃음과 친절과 정직한 욕정과 똑바른 눈을 지닌 친절하고 선량한 사람들”이라고 칭찬한 것으로 보아 스타인벡은 원시적인 소박한 것에서 향수를 느끼는 작가로 여겨진다.

1936년 과수원 노동자의 파업을 다룬 『의심스러운 싸움』이 작가로서의 위치를 확고히 했다면, 그의 인기를 치솟게 한 작품은 1937년 가난한 떠돌이 노동자들의 비극과 우정을 그린 『생쥐와 인간』이다. 그리고 1938년 그의 소년시절을 다룬 단편집 『긴 골짜기』를 발표하여 호평을 받았는데 앙드레 지드는 15편의 단편이 수록된 그 소설집을 읽고 체홉의 걸작과 맞먹는 작품들이 들어있다고 격찬했다.

/김용만 소설가(잔아문학박물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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