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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스토이·도스토예프스키 러시아문학 양대산맥 '우뚝'


체험 바탕으로 자전적 인물 내세워 집필

가정 등지고 순례자 돼 '사랑의 고행 길' 떠나

'부활''전쟁과 평화''안나 카레니나' 등 세계적 명작 남겨

  
▲ 일리아 레핀 작 톨스토이

[그린경제=김용만 소설가]

내가 톨스토이의 고향인 야스나야 폴랴나에 처음 가본 것은 1989년 겨울로 아직 소련 연방체제가 유지되던 시기였다. 그 후 러시아를 몇 차례 다녀왔지만 야스나야 폴랴나에는 2005년 여름에야 다시 방문하게 되었다. 길가의 대문 모습도 그대로였고 마당가의 개집도 제자리에 그대로 있었지만 기념관 내부가 새롭게 단장된 데다 전시실마다 직원들이 지키고 있어 예전의 소박한 분위기가 아니었다. 규모가 잡혔다는 말은 그만큼 규제가 심해졌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입구 현관에는 예전과 비슷한 장소에 톨스토이가 타던 자전거가 놓여 있고 구두는 진열장 속에 들어 있었다. 소파 등 거실에 있던 가구는 위치만 조금 달라졌을 뿐이고, 서재의 책상이나 침실의 침대는 그대로인데 화분들이 놓여 있어 세련된 분위기가 돋보였다. 개방 후 러시아 국민의 정서변화나 생활향상의 기미를 엿보게 하는 장면이었다.

기념관에서 무엇보다 내 눈길을 끄는 것은 아내 소피야의 옷장이었다. 그녀가 입었던 드레스, 털목도리, 검정모자가 새삼 관심을 끌었다. 저런 차림으로 나들이하고 황제도 알현했겠지. 나는 그 옷을 보며 16세의 어린 나이로 34세의 노총각 톨스토이에게 시집와 6남 2녀의 자식을 낳아 키운 소피아의 아줌마상을 그려보았다.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는 1828년 8월 28일 ‘밝은 숲속의 빈 땅’이란 뜻을 지닌 야스나야 폴랴나에서 니콜라이 일리치 톨스토이 백작과 궁정 전의(典醫)의 딸인 마리야 니콜라예브나 톨스타야 사이에서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가 생후 1년 6개월일 때 어머니가 동생을 낳다가 산고로 죽고, 아홉 살 때는 아버지가 뇌일혈로 쓰러지는 바람에 고아가 된다. 5남매 모두가 큰고모인 알렉산드라 백작부인에게 부양되지만 열셋 살 때는 큰고모마저 죽는 바람에 작은고모의 보호를 받는다.

열여섯 살인 1844년에 형제들과 카잔으로 떠나 카잔대학 철학부 동양어학과(아랍․터키어)에 입학한 톨스토이는 공부를 게을리하고 향락에 빠지는 바람에 2학기 진급 시험에서 낙방하고 이듬해 법학대학으로 전공을 바꾼다. 그 무렵 루소의 저서에 빠져든 그는 심적 갈등으로 교회와 기도생활을 그만둔다. 열아홉 살 때부터는 일기를 쓰기 시작하면서 그의 긴 기록생활이 이어진다. 학교도 끝을 내지 못한 채 자퇴서를 제출하고 맏형 니콜라이와 야스나야 폴랴나로 돌아와 새로운 농사관리와 농민생활의 개선에 힘쓰지만 실패하여 환멸을 느낀다. 이듬해 모스크바로 나가 무위도식하며 술과 여자와 도박으로 시간을 보낸 그는 다음해에 페테르부르크대학교에서 학사 검정고시를 치러 민법과 형법과목을 통과하지만 여전히 향락에 빠져 지낸다.

1851년에는 맏형 니콜라이를 따라 카프카즈로 떠나 카프카즈 포병여단의 사관후보생(귀족 하사관) 시험에 합격 4급 포병하사관으로 근무하면서 처녀작 『유년시대』를 쓰기 시작한다. 그리고 <동시대인>주간이며 대시인인 네크라소프에게서 『유년시대』에 대한 호평을 받고 <동시대인>9월호에 발표하게 된다.

  
▲ 톨스통

스물다섯 살이 되는 1853년에는 장편 『소년시절』과 단편 『크리스마스 날 밤』 등을 쓰다가 도나우군 소위보가 되어 크림전쟁에 참여한다. 삼 년 후 러시아와 터키가 화평을 체결하자 제대하고 곧바로 야스나야 폴랴나로 돌아와 농노의 굴레를 벗겨주려고 농민해방을 시도한다. 제대 이듬해 유럽 여행에 나선 톨스토이는 파리에서 기요틴에 의한 사형집행을 목격하고 ‘법은 참으로 터무니없다. 국가란 착취하고 시민들을 타락시키기 위해 존재할 뿐’이라고 기록한다.

유럽여행에서 돌아온 톨스토이는 야스나야 폴랴나에서 농사에 힘쓰며 『청년시대』등을 발표하고 러시아 어문학 애호협회에도 가입한다. 또 농민학교를 개설하여 농민의 아이들에게 야학 교육을 시켰으며, 이듬해에는 다시 유럽여행을 떠나 베를린대학에서는 몇 차례 청강도 하고, 영국에서는 찰스 디킨스의 교육 강연을 듣기도 한다. 드레스텐에서는 『미메시스』의 저자인 아우어바흐와 만난 후 야스나야 폴랴나에 돌아와 교육잡지 <야스나야 폴랴나>를 발행한다.

서른넷 살이 되는 1862년에는 18세 연하인 소피야 안드레예브나 베르스와 결혼하고 학교사업을 중단한다. 그런데 결혼하고 2개월쯤 지날 때인 11월23일자 소피야의 일기에는 이런 내용이 적혀 있다.

민중들과 그사람, 내겐 역겹기만 하다. 이 집안의 안주인인 내가 정말 안주인인지 아니면 톨스토이가 그토록 열렬하게 사랑하는 민중이 주인인지 모르겠다.

1863년에는 중편 『카자흐 사람들』을 발표하고, 장편 『전쟁과 평화』를 쓰기 위한 준비작업에 들어가는데, 현장성을 살리려고 모스크바로 가서 보로지노의 옛 싸움터를 답사하고 첫 단행본을 낸다. 그 무렵 쇼펜하우어와 칸트를 읽으며 『국민교육론』을 발표하고 『초등교과서』재판을 낸다. 2년 후에는 ‘러시아 통보’지에 『전쟁과 평화』 1·2부에 해당되는 장편 『1805』를 팔표하고 그 후 계속 『전쟁과 평화』를 집필한다. 47세 때인 1875년에는 그의 대표작의 하나인 『안나 카레니나』를 ‘러시아 통보’지에 게재하기 시작하고, 투르게네프의 서문이 실린 『두 경기병』을 프랑스 <르 땅>지에 발표한다.

1881년에는 도스토예프스키의 부음을 받는다. 러시아 문학의 양대 산맥을 이루는 도스토예프스키와 톨스토이는 사랑을 기조로 한 예술로 출발하여 종교에 몰입한 작가들이다. 그들의 다른 점은 도스토예프스키는 타인을 설정하여 자신의 사상과 주제를 형상화했지만 사실주의자인 톨스토이는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한 자전적인 인물을 내세웠던 것이다. 『전쟁과 평화』에서의 안드레이와 피에르,『안나 카레니나』에서의 레핀,『부활』에서의 레흘류도프 등은 바로 톨스토이 자신인 셈이다.

1885년에는 민화(民話) 시리즈의 시효가 된 『일리아스』를 발표하고, 말(馬) 이야기인 중편 『홀스토메로』를 발표하는데 『홀스토메로』는 훗날 러시아 형식주의의 대표주자인 쉬클로프스키가 주창한 ‘낯설게하기’의 텍스트가 된다.

  
▲ 톨스토이 서재

그해에는 단편 『촟불』과 『두 노인』을 비롯하여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신은 진리를 알고 있지만 곧 말하지는 않는다』『카프카즈의 포로』등을 쓰기 시작한다. 그리고 저작권을 아내 소유로 돌리고 나서, 가정과 처자를 버리고 순례자 복장으로 ‘전 인류에 대한 사랑의 고행길’을 떠난다. 1889년에는 『고골리론』을 비롯하여 『악마』『크로이체르 소나타』『예술이란 무엇인가』를 등을 쓰며 대표작 『부활』구상에 들어간다. 그해 흉작이 들자 톨스토이는 1881년 이후의 모든 저작권을 포기하고 피해지를 돌아본다. 아내 소피아도 ‘러시아신보’에 빈민구제를 호소하는 글 『굶주림에 우는 농민구제의 방법에 대하여』를 발표, 여러 외국신문에 연재되는 바람에 남편 사업에도 보탬이 된다.

톨스토이는 죽음을 앞둔 순간까지도 집필에 매달렸다. 그가 세상을 떠난 1910년에만 해도 82세의 노구로 2월에 단편 『호딘카』를 집필하고, 3월에는 희곡 『모든 것의 근원』을 완성하고, 단편 『뜻밖에』를 탈고하고, 7월22일에는 최후로 정식 유언장을 작성하고, 8·9월에는 『세상에 죄인은 없다』를 개작했다. 그리고 10월 28일 새벽에는 아내 소피아에게 최후의 쪽지를 적어놓고 의사 마코베츠키이를 데리고 야스나야 폴랴나의 정든 집을 뒤로한 채 ‘전 인류와의 사랑의 길’을 떠난다.

10월 29일에는 3일 전부터 써온 최후의 저술인 논문 『유효한 수단』을 탈고하고, 10월 31일에는 여행 도중 병이 위중해져 랴자니-우랄철도 중간에 있는 아스타포보 시골 간이역에 머물게 된다. 아스타포보에 모여든 의사들은 모두 폐렴이라고 진단했다.

톨스토이가 역장의 집에 눕게 되자 온 세계가 그의 가출과 병세에 관심을 기울였다. 기자들은 역 간이식당에서 음료수를 마시며 웅성거렸고 여기저기 전보를 치느라 바빴다. 세계의 눈과 귀가 아스타포보 역에 집중되었고, 기차마저 이 역을 지나칠 때는 경적을 죽이고 서행하는 형편이었다.

아내 소피야는 특별열차 편으로 아스타포보에 도착했지만 남편을 접견하지 못하고 열차 안에 머물다가 나중에야 남편 곁에 갈 수 있었다. 11월 4일 밤, 톨스토이는 침대에서 일어나 “마샤! 마샤!” 하고 소리쳤다. 마샤는 1906년에 죽은 사랑하던 딸 마리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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