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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의소리 연재] <미친사랑>82회

2014.11.28 15:10

잔아 조회 수:679

 “제가 기다리지 못하는 건 성원이 때문에 그럽니다. 그 애가 딱해서요.”
 
  “어쭈, 약은 수 쓰고 있네. 성원이를 들먹이면 내가 감동할 줄 알고? 그리고 뭐가 어째? 기다리지 못한다고? 그래 뭘 기다린다는 거니. 내가 도장 찍어줄 날짜를 못 기다리겠다는 뜻이겠지? 넉살 좋은 년! 독사보다 독한 년이군. 아주 교활한 년이야. 다방이 아니면 머리끄뎅이를 잡아 확 뽑아버릴 텐데….”
 
  “저는 독하지만 교활하지는 않습니다.”
 
  “흥, 요게 말대꾸까지. 좋아, 내가 지금은 참지. 그 대신 너 내 손에 죽을 줄 알아. 그나저나 손볼 년을 기다리던 참인데 잘됐구먼.”
 
  “한 말씀만 더 드리죠. 제발 성원이를 잘 키우도록 협조해 주세요. 그 애가 함부로 자라서는 안 됩니다. 벌써 저하고 정이 들었어요.”
 
  “협조하라고? 내가 에민데 너누구보고 협조하라는 거야. 이거 주객이 전도됐군. 그리고 내가 지금 새끼를 신경 쓰래?”
 
  “저는 성원이를 잘 키울 자신이 있습니다.”
 
  “이거 꼭 그 인간 같네. 자식을 무기 삼아 대드는 꼴이. 너 혹시 용해 그놈과 짜고 이러는 거 아냐? 성원이 핑계 대는 것, 그 사내와 꾸민 작전 아니냐구.”
 
  “성원아빠는 지금 제가 미나씨를 만나는 것도 몰라요.” 
 
  “암튼 마지막으로 한마디 하겠는데 너 앞으로 애 이름 꺼내지 마. 성원이가 흥정할 물건이 아니니까. 알겠어?”
 
  자리에서 일어난 미나는 홱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간다. 한방 얻어맞은 기분이다. 미나는 처음 세상이 만만치가 않다는 걸 깨달았다. 조심할 곳이 세상이란 걸 깨닫고 보니 은근히 겁도 나지만 자신이 한결 의젓해진 기분이 든다. 
 
  다방을 나오니 가을 햇살이 눈부시다. 장은하는 가슴에 따스한 감동이 느껴진다. 그동안 미나를 만나보는 게 큰 부담으로 여겨졌는데 그 걱정거리를 풀고 나니 몸이 개운해지는 기분이다. 앞으로 어떤 대거리가 벌어져도 자신감이 들 것만 같다. 오히려 미나를 자주 만나 싸우고 싶어진다. 머리채를 잡히고 코피가 터져도 미나와의 싸움은 피하고 싶지 않다. 미나에게서 당하는 만큼 승리는 가까워질 것만 같다. 
 
  아무 때고 저 여자가 나를 좋아하리라! 나와 용해와의 행복을 빌어줄 날이 올 것이다!
 
  장은하는 지그시 입술을 깨문다. 마음 같아서는 춤이라도 추고 싶다. 장은하는 도로의 인파와 차량을 모두 삼킬 듯 숨을 깊이 들이마신다. 얼마나 억눌려온 가슴인가. 장은하는 용해를 만난 후로 미나 생각에서 벗어난 적이 없었다. 용해에 대한 애정이 깊어질수록 미나에 대한 불안감은 더욱 증폭되어갔다. 어찌 되었건 미나는 호적에 오른 사람이 아닌가. 내용이 중하지만 형식도 중하잖은가. 아무리 용해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지만 착지가 안 된 형국이 아닌가. 그래서 불안감이 씻어지지 않았는데 오늘 미나와 당당하게 맞선 것이다. 쏟아내고 싶은 말도 당당히 피력했다. 인도를 걸어가는 장은하의 발길이 가랑잎처럼 가볍다. 
 
  그럼 언제 또 만나지? 무슨 핑계로 만나지?
 
  장은하는 무시로 미나를 만날 생각이다. 미나가 싫어해도 억지로 만나리라 마음먹는다, 다른 대책이 없잖은가. 웃는 얼굴에 침을 뱉겠는가. 또 뱉은들 어떤가. 애시부터 수모를 각오했으니 겁날 것도 없다. 장은하가 미나를 다시 만나자고 연락한 것은 보름쯤 지나서다.
 
  “왜 또 만나자는 거야?”
 
  미나는 초판부터 반말로 윽박지른다. 
 
  “몸이 불편하세요? 얼굴이 전보다 수척해보여요.”
 
  “어쭈 보통 단수가 아니군. 그런다고 내가 머리채를 뽑지 않을 것 같애? 나한테는 뭘 줄 생각을 말라구. 나는 받아먹고도 치는 성격이야. 그러니 알랑거리지 말라구.”
 
  “제가 찾아오는 걸 예의로만 여기지 마세요.”
 
  “요구사항부터 말해.”
 
  “요구사항은 없어요.”
 
  “그럼 왜 만나자는 거지? 네가 찾아온다고 감격할 내가 아니잖아.”
 
  “성원엄마를 감동시키려고 찾아오는 게 아닙니다. 제가 하고 싶어 하는 짓이죠. 찾아뵐 의무나 도리도 없거니와 그런 것 때문이라면 찾아오지도 않아요. 저한테도 그런 고집은 있으니까요.”
 
  “그런데 왜 만나자는 건지 어서 그거나 말하란 말야. 짜증나게 하지 말고.”
 
  “성원이가 저한테 엄마 돼달라며 울었어요.”
 
  “미치겠구먼. 그 따위 소리 할라고 만나잔 거야?”
 
  “네.”
 
  “머 이런 게 있어.”
 
  “저한테는 그보다 더 보배로운 일이 없거든요.”
 
  “너 진짜 머리끄뎅이 잡혀 볼래? 왜 자꾸 깐죽거리는 거야. 너 제발 이러지 마. 진짜 바보가 아니라면.”
  장은하의 눈자위에 눈물이 맺힌다. 미나는 얼른 얼굴을 돌리며 쏘아붙인다. 
 
  “이게 어디서 눈물을 짜는 거야, 꼴사납게.”
 
  하지만 미나의 눈자위에도 언뜻 물기가 비친다. 긴 침묵이 흐른다. 그 침묵을 이번에는 미나가 먼저 깬다.
 
  “성원이가 잘 따른다고?”
 
  미나의 목소리가 부드럽다. 그 부드러운 목소리가 장은하를 서럽게 울린다. 미나는 핸드백에서 담배를 꺼내 불을 당긴 채 밖으로 나간다. 장은하는 눈을 감고 호흡을 다듬는다. 바깥에서 담배를 피우고 돌아온 미나가 경쾌한 목소리로 말한다.
 
  “도용해 그 인간이 나를 골초로 만들었어. 은하 씨는 내가 병들어 죽기를 바라겠지?”
 
  “제가 미나씨를 찾아온 것은 용서를 받기 위해서예요. 용서를 받기 전에는 미나씨가 건강하게 사셔야죠.”
 
  “용서하고 나면 죽어도 좋다는 말이군.”
 
  “그렇죠. 하지만 미나씨는 영원히 제 축복을 받을 수 있거든요. 죽은 후에라도.”
 
  “지독한 여자군.”
 
  “수식어가 아녜요, 제 신념이죠.”
 
  “내가 용서해 준다면?”
 
  “그러지 못할 걸요. 미나씨가 여자의 본성까지 바꿀 순 없잖아요?”
 
  “질투 말인가? 그럼, 나한테 진정으로 바라는 게 뭐지?”
 
  “연민이죠.”
 
  “영악한 년이라고, 그렇게 욕하고 싶네. 그런 식으로 나와 가까워지자는 모양인데…. 연민이라면 용서보다 더 큰 걸 노리는 셈인데…. 참 일이 묘하게 돌아가느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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