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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의소리 연재] <미친사랑>83회

2014.11.28 15:12

잔아 조회 수:690

 보통내기가 아냐. 연민을 노리다니. 용서도 힘들 판인데, 이년을 어쩌지? 만나주지 말까? 하기야 만나지 않고 버틴다고 해결날 일이 아니잖은가. 두 연놈이 한 몸처럼 어울렸으니 버티면 버틸수록 손해 보는 쪽은 내가 아닌가. 계집의 운이 좋은 건지, 사내의 운이 좋은 건지 어쩌자고 저렇게 어울린 거야. 싸가지 없는 년을 만나 속을 썩어봐야 용해 생각이 바뀔 텐데 이게 뭔 꼴이람. 계집한테 된통 당해봐야 내 생각이 날 텐데 이를 어쩌지? 간통고소? 하지만 고소는 막가는 판이 아니고는 소용없는 짓 아닌가. 그년 하는 짓을 보니 오히려 간통고소를 바라는 배짱이던데 먹혀들까? 순둥이처럼 생겼지만 보통 년이 아니잖아. 
  미나는 거듭 술잔을 비운다. 
 
  홀이 빙빙 돈다. 그래, 더 세게 돌아라. 정신 못 차리게 돌아서 아무데나 처박혀버려라. 처박혀서 이 몸뚱어리 아주 구겨져버려라. 저 연놈들은 흥이 나서 빙빙 도는데 나는 취해서 돌다니, 이게 뭐야 초라하게.  
  “어이 미남?”
 
  “네?”
 
  “아주 병째 줘. 잔술은 감질나서 못 마시겠어. 그 개 같은 놈이 끝내 타락했단 말야, 시팔!”
 
  “사모님, 좀 쉬신 후에 드시죠.”
 
  “쉬라고? 쉬면서 마시는 술도 있나? 너까지 빙빙 돌고 있는 거야? 어이 미남? 장사 때려치고 나와 실컷 취해볼까?”
 
  “감사합니다. 하지만 제 직업이어서….”
 
  “그러니까 술도 그만 마셔라, 네년하고는 상대하기도 싫다, 그 말인가?”  
 
  미나는 유리컵을 들어 테이블을 내리친다. 손에서 피가 흐른다. 바텐더가 얼른 반창고와 붕대를 가져와 치료해준다.
 
  “이렇게 피를 보이니까 신나겠군?”
 
  “무슨 그런 말씀을….”
 
  “더 구걸하지 않을게.”
 
  미나는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계산을 마치고 밖으로 나간다. 네온 불빛 탓일까? 몸이 더 휘청거린다. 
 
  의젓하게 걸어가 보자! 미나는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걸어본다. 그 긴장이 묘하게도 콧노래를 유혹한다. 
 
 
  가아련다 떠나련다
  어린 아들 손을 잡고오
 
 
  그래, 가고 싶던 길이었다. 미나는 수없이 성원의 손을 잡고 먼 길을 걸어보고 싶었다. 걷고 걷다가 지치면 성원을 껴안고 풀밭에 눕고 싶었다. 누워서 파란 하늘에 손을 흔들며 깔깔깔 웃고 싶었다. 그 웃음소리는 우주로 퍼져나가 저 무한공간을 꽉 채울 것만 같았다. 
 
  “울지 말아야지. 아니 실컷 울어봐야지.”
 
  미나는 두 다리를 벌리고 땅을 굽어본다. 그녀의 목에서 눈물이 쏟아진다. 
 
  “왜 소리가 나올 곳에서 눈물이 쏟아지는 거야. 소리가 나올 목구멍에서 왜 눈물이 쏟아지냐구. 왜 쏟아지냐구, 왜 쏟아지냐구, 왜 쏟아지냐구….” 
 
  미나는 땅에 대고 목이 터져라 소리친다.  
 
  “오빠 잘못이야!”
 
  미나는 오빠가 원망스럽다. 박상진이 가출하여 장교가 되지 않고 고향땅에서 벼를 심고 콩을 심으며 오순도순 살았다면 자기도 순박한 시골 총각을 만나 아들 딸 낳고 오붓하게 살았을 텐데 어쩌자고 용해 같은 인간을 만나 고통을 즐기는 팔자가 되었는지.
 
  드디어 미나의 눈에서 눈물이 쏟아진다. 홍수처럼 쏟아진다. 눈물은 얼굴을 적시고 도로를 덮치고 서울시내를 물바다로 만든다. 
 
  “되게 처마셨군.”
 
  두 사내가 건들대며 걸어가다가 한마디를 뱉는다. 미나는 그 말을 귀에 담지 않는다. 그 따위 소리에 귀를 팔 새가 없다. 미나는 눈물을 통해 자신의 존엄성을 지키려 애를 쓰는 중이었다. 울고 울다보면 무슨 수가 나는 법이다. 미나는 눈물에 의지하며 살아온 여자다. 혼자 우는 눈물. 용해도 마찬가지다. 용해도 혼자 우는 사내였다. 그래서 용해를 좋아하게 되었고 종국에는 용해에게 미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용해가 변한 것이다. 행복한 보금자리를 꾸미겠다고 현실과 타협한 용해가 원망스럽다.
 
  “배신자!”
 
  미나는 땅에 대고 악다구니를 쏟아낸다.
 
  “유치한 자식! 나는 너를 영웅으로 여겼는데, 고통을 탐하는 낯선 예외자로 여겼는데, 안분지족하는 소인배가 되다니!”
 
  미나는 용해가 행복을 추구하는 평범한 생활인으로 전락하는 것이 실망스럽고 데데하기만 하다. 존엄성이 무너진 용해가 허망한 거푸집으로 여겨지자 다리가 후들거린다. 당장 경찰서로 달려가 요절을 내고 싶지만 그럴 용기마저 물거품이 되어버린다. 하지만 미나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 혜화동 쪽으로 발길을 옮기는 중이었다. 어느새 통금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미나는 로터리에 있는 공중전화 부스로 들어가 용해에게 전화를 건다. 
 
  “술 마신 거야?”
 
  거의 일 년 만에 들어보는 목소리치고는 너무 가볍다. 미나도 매일 만나는 사이처럼 아무렇지 않다는 목소리로 받아준다.
 
  “파출소에서 잘 수밖에 없어요.”
 
  “내가 통과되도록 팔목에 도장을 찍어줄 테니 어서 집으로 가.”
 
  “안 만나줄 거요?”
 
  “또 협박인가?”
 
  용해는 전화를 끊고 밖으로 나가 부스 쪽으로 걸어온다. 장은하와 동거 시작부터 고민해온 터라 당연히 미나를 만나볼 생각이었다. 다만 싸움만은 피할 작정이다. 용해가 먼저 말을 건다.
 
  “통금시간에 이러고 다니면 어떡해. 술까지 마시고.”
 
  “경찰관 마누란데 설마 잡아가겠어요?” 
 
  미나가 피씩 웃는다. 용해도 따라 웃는다.  
 
  “당신 웃는 모습 처음 보는데? 마누라가 둘이라 그런가요?”
 
  “시비 걸지 말고 어서 들어가 자.”
 
  “어디서 자라는 거죠?”
 
  “저기 여관 있잖아.”
 
  “야아 신난다. 같이 잘 거죠?”
 
  “까불지 말고.”
 
  “그럼 파출소에서 잘래.”
 
  “오빠 망신시키지 말아. 어저께는 국회의장 아들도 잡아들였어.”
 
  “왜 오빠를 들먹이는 거야? 내가 겁나는 모양이지?”
 
  “분명히 말해둘 게 있어. 그 사람 괴롭히면….”
 
  “그년 괴롭히면 어쩔 건데? 여기서 소리쳐볼까?”
 
  “아직도 그 수준인가?”
 
  “어쭈, 당신은 어떤 수준인데? 당신이나 나나 똑같은 간통범이잖아. 그것도, 나는 형을 치른 사람이고 당신은 형을 받을 사람이고.”
 
  “이젠 달라질 때가 됐잖아.”
 
  “어떻게 달라지라는 거지? 당신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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