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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의소리 연재] <미친사랑>84회

2014.11.28 15:13

잔아 조회 수:611

 “당신처럼 계집 꿰찬 게 달라진 건가? 넉살좋은 소리 하는군. 그 배짱 은하년한테서 배웠나?”
  “뭐야? 왜 엉뚱하게 장은하를 들먹이는 거야?”
 
  “엉뚱하게? 그년이 나한테 뭐랬는지 알아? 제 년이 기다리지 못하는 건 성원이 때문이란 거야. 그러니까 성원이의 앞날을 위해 나보고 일찍 포기하라는 거지. 못된 년!”
 
  용해는 입을 다문다. 지금 장은하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은 미나의 감정에 불만 지필뿐이다. 마음을 가라앉힌 용해는 미나를 여관에 안내해주고 파출소로 돌아온다. 벌써 한 시가 훨씬 넘었다. 소내근무를 교대할 시간이다. 근무교대를 마친 용해는 숙직실로 들어가 자리에 눕는다. 하지만 잠이 오지 않는다. 언제 개운한 마음을 느끼며 살 수 있을지…. 언제 한가한 환경에서 마음 놓고 창작에 전념할 수 있을지….
 
  시간이 아깝기만 하다. 한창 소설 창작에 몰두할 시기에 신상만 볶고 있는 자신이 원망스럽다. 왜 이런 팔자를 만들었는지 자신의 육신을 갈기갈기 찢고 싶다. 하지만 아련한 위안 같은 게 느껴지기는 한다. 장은하와 함께하는 삶이다. 그걸로 만족해야 한다!
 
  용해는 자신의 욕망을 축소시켜본다. 몸에서 기름기를 모두 빼내면 고뇌와 희망의 무게가 가벼워질 것만 같다. 진리를 캐지 않으면 어떤가. 우주를 의식하지 않으면 어떤가. 허무가 뭔지도 모른 채 하루를 살아가는 범부가 되면 어떤가. 바보가 되면 어떤가. 바보, 그렇다. 바보로 지내면 자유가 보장된다. 보통의 삶에 맛을 들여보자! 
 
  미나는 창가에 기대서서 통금시간에 갇힌 시가지를 내려다보다가 갑자기 입을 악문다. 다시 용해에 대한 분기가 치오른 것이다.
 
  널 노리개로 삼겠다! 창녀에게서 위로받고 싶어 할 때만 해도 너는 얼마나 신선하고 존엄해 보였던가. 그런데 너는 이제 사랑에 멍들었다. 사랑은 너를 부패시킬 것이다. 몸에서는 냄새가 나고 눈은 빛을 잃을 것이다.
 
  미나의 입가에 냉소가 스친다. 그녀에게 있어 이제 용해는 애들 장난감과 같은 심심풀이 노리개에 불과하다. 용해가 차명구처럼 속물로만 보인다. 이미 순수함을 잃은 전락한 사람. 사람은 순수함을 잃었을 때 불결하고 천박해 보이기 마련이고 그런 인간은 무시해도 좋다는 게 미나의 논리였다. 저만 행복해지겠다고? 이제 너를 무시하겠다!
 
  미나의 뺨에 눈물이 흐른다. 침대에 앉아 새벽까지 내리 눈물을 쏟고 나니 벽이 쭈글쭈글 구겨지는 현기증이 인다. 미나는 아악 하고 비명을 내지른다. 그렇게 소리치고 나자 홀가분한 기분이 든다. 무거운 짐을 벗어던진 듯한, 칙칙한 때를 벗어낸 듯한, 아주 개운한 기분이다. 용해에 대한 깊은 마음이 미나에게는 무거운 짐이요 때요 압력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한량없는 자유가 느껴진다. 
 
  이제 너를 죽이지 않겠다. 너는 죽일 가치도 없는 인간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너를 장난감처럼 만지고 흔들고 빨다가 던져버리겠다. 네 몸에 먼지가 묻고 오물이 튀어도 나와 아무 상관없는 일이다. 너를 보호하고 싶었고 너를 정갈한 장소에 보존하고 싶었던 내 정성은 이제 허탈로 오염되고 말았다. 증오란 네가 깨끗하고 순수했을 때에만 생기게 마련인데 이제는 증오심마저 물처럼 녹아버리고 말았다. 너는 의미를 잃은 인간이다.
 
  미나는 연방 미친 여자처럼 혼자 중얼거린다.
 
  어떻게 가지고 놀까? 간통범으로 집어넣을까? 그런데 간통범으로 집어넣으면 정말 끝장이 날 텐데? 장은하의 태도로 보아 간통으로 몰아넣기를 바라던 심산이던데? 
 
  미나의 마음은 다시 무거워지기 시작한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그 기로에 서 있는 자신이 안타깝기만 하다. 용해가 찾아온 것은 그때였다.
 
  “웬 일이에요?”
 
  미나는 내심 반가우면서도 마뜩찮은 표정으로 말한다. 용해는 침대 발치에 놓인 의자에 앉으며 달래듯 말한다. 
 
  “여관비는 냈어. 어서 집에 가도록 해.”
 
  “누가 그 따위…. 보호자 돼 달랬어요?”
 
  “그래, 그 따위 짓이겠지. 하지만 우리 서로 지나온 8년 세월이 아깝다는 걸 뉘우치면 좋겠어. 더 이상 서로 퇴보하면 안 되잖아?”
 
  “퇴보? 나는 발전으로 여기는데 퇴보라니. 앞으로 나는 당신을 가지고 재밌게 놀 거야. 즐길 참이라고. 당신은 이제 내 장난감이라고.”
 
  “코뚜레를 뀄다, 그 말인가? 어림없지. 나는 무척 편안해. 사표는 항상 주머니 속에 들어 있고, 간통도 각오하고 있으니까. 그렇게 해서 당신 마음이 가라앉는다면 멋대로 해.”
 
  “어쭈, 그런 식으로 맞서겠다? 누가 못할 것 같애? 이젠 이판사판이라고.”  “나도 이판사판이야. 기껏 한다는 말이…. 구제 못할 인간!”
 
  용해는 방을 나가려고 후딱 의자에서 일어난다. 
 
  “앉아 봐요.”
 
  용해는 마지못해 걸음을 멈춘다. 하지만 미나의 입은 좀처럼 열리지 않는다. 할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미나의 마음을 이해하는 용해 역시 답답하기는 마찬가지다. 그 어색한 침묵을 용해가 먼저 깬다. 
 
  “미나, 우리는 애초부터 악연이었어. 그 악연을 나는 거룩한 기념비로 만들고 싶어. 그런 노력은 우리 두 사람에게도 빛나는 생이지만 성원에게는 웅대한 성취의 불꽃이 될 수도 있어. 내 소망은 우리가 그걸 노리자는 거야.”  
 
  “그럼 나만 희생당하라고?”
 
  “그래서 악연이랬잖아. 그 악연을 경작하자는 거야. 그리고 희생 좀 하면 어때. 손해 좀 보면 어떠냐고. 내 마음 속에 영원한 기념비로 남을 순 없겠어? 이 악연에서 당신만 손해 보는 게 아니잖아. 나도 손해를 보잖아. 따지자는 게 아냐. 두 사람 모두 당하게 마련인 손해를 이익으로 바꾸자는 거지. 우리 서로 위대해지자는 거라고.”
 
  “그런 어려운 말 나는 몰라. 나는 오순도순 살고 싶을 뿐야. 성원이도 잘 기르고. 내가 살림은 책임질 테니 당신은 쓰고 싶은 글이나 열심히 쓰고. 그게 최고 아니겠어?”
 
  “미안해. 하지만 솔직히 말해줄까? 당신은 오순도순 살 여자가 아냐. 나는 더 아니고. 나는 파괴자야. 생산자가 아니라고.”
 
  용해는 자신이 허무주의자라는 말을 그렇게 풀어서 말해준다. 
 
  “그런 사람이 왜 행복을 욕심내는 거지?”
 
  “행복? 내게 그런 말은 모욕이야.”
 
  “그럼 왜 은하년과 함께 지내냐고.”
 
  “그러니 은하 또한 불행한 여자지. 다만 은하는 희생할 줄 아는 여자라 당신과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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