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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의소리 연재] <미친사랑>85회

2014.11.28 15:14

잔아 조회 수:526

 한여름이 지나자 정보과로 발령이 났다. 정보형사는 자칭 경찰의 신사라고 한다. 우선 몸가짐부터 달라야 한다. 항상 깨끗한 복장에 말씨도 점잖고 박식해야 정보활동에 적격이다. 정치, 경제, 사회의 모든 분야와 학술, 종교, 군사 등 각양각색의 직종에 종사하는 모든 부류의 사람, 지위가 높은 고관이나 사회지도층 인사로부터 말단 직책은 물론 다방 아가씨나 구두닦이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들을 대등한 위상에 놓고 상대해야 원만한 정보활동을 할 수 있다. 한마디로 남의 말을 많이 들어야 한다. 하지만 남의 말을 예의치레로 들어주는 귀가 아니라 말하는 사람의 마음까지 꿰뚫어볼 수 있는 예민한 귀여야 한다.
 
  용해는 양복과 넥타이 차림으로 출근했다. 며칠 동안은 관내 파악을 하면서 여론을 수집했다. 그의 나이 서른한 살. 꽃이 활짝 필 나이였다. 경찰생활로는 팔 년째다. 직업나이로도 철이 들 무렵이다. 사실 정보직은 경력을 참작하지 않을 수 없다. 다양한 경험과 조심성과 재량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함부로 말을 흘리거나 행동이 경박하여 기분대로 처신하다가는 늘 실수가 따르기 마련이고 업무 자체를 원만히 수행할 수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교양이다. 정객을 만나면 정치에 대해, 경제인을 만나면 경제에 대해, 학자를 만나면 학문에 대해, 예술인이나 종교인을 만나면 예술이나 종교에 대해서 기본 대화가 통해야 업무를 수행할 수 있다.
 
  용해는 정보 업무를 시작하며 늘 어릴 적의 실수를 명심했다. 예닐곱 살 때던가. 하루는 시골 집 앞을 지나는 행인들의 대화 중에 딸을 낳으려면 춘향이를 낳고 아들을 낳으려면 심청이를 낳아야 한다는 말이 들렸다. 용해는 그날 동네 노인들이 모인 사랑방에서 자랑 삼아 그 말을 떠들었다. 붓글씨를 잘 쓴다고 칭찬을 들어온 터라 더 잘난 체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데 노인들이 칭찬은 고사하고 “예끼 이놈아. 춘향이도 딸이고 심청이도 딸여.” 하고 놀렸다.
 
  정보는 정확성을 요구한다. 물론 바람결에 날아다니는 풍문 또한 중요하다. 그리고 정보형사는 냉정성을 잃지 말아야 한다. 감정에 치우치는 행동은 판단을 그르치기 십상이다.
 
  첩보는 간단하면서도 명료하게 작성해야 한다. 매일 퇴근 무렵에는 하루의 일과를 정리하여 첩보로 묶어야 하는데 거의가 내년 선거에 대비한 업무 일색이다. 여당 득표요원이나 다름없다.
 
  “우리가 공화당 시녀야?”
 
  몇몇 형사들은 술집에서 그런 푸념들을 늘어놓았다. 다른 일반직 공무원들도 정보형사를 보면 의당 여당 핵심요원으로 인식하고 있으며 여당 당원들도 마치 자기네 동료처럼 믿고 협조해 주었다. 그 대신 야당 사람들은 정보형사를 적으로 알고 기피했으며 인간적으로 만나는 것조차 사찰로 착각했다. 하지만 정치판보다 더 중요한 업무는 대학교 동향이었다. 관내에는 서울대와 성균관대가 있어 조용할 날이 없다. 특히 서울대학교의 움직임은 학원사회  전반에 끼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에 동대문서의 정보과는 관심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어느 직원은 이런 말을 했다.
 
  “무장공비들이 침투하여 서울시청에 테러를 가해도 수습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대학가에서 데모만 발생하면 문제가 다르다.” 
 
  서울대학교의 데모가 연일 극성을 부렸다. 발전이랄까, 데모의 열도가 하루하루가 다르게 지능화되어갔다. 일단 플랜카드가 세워져 있는 운동장에 모이면 어깨동무를 하고 빙빙 돌며 사기를 돋운다. 차츰 열기가 차오르면 구호를 외치며 정문을 열고 뛰쳐나오는데 그때마다 교문 앞에 진을 치고 있는 기동대와 충돌하게 마련이다. 그런 식으로 반복되는 데모 양태는 학생들에겐 날개를 접는 꼴이고 기동대 측에서는 선방으로 해석되곤 한다. 
 
  교내에서는 “독재타도!” “중앙정보부 해체!” 같은 구호가 한갓 공염불에 불과하다. 대로를 휘저으며 사자후를 내뿜어야 목적달성으로 여긴다. 
 
  “날자와 시간을 흔들 수밖에 없어.”
 
  한마디로 말해 엿 먹이는 작전이다. 데모가 없는 날로 홀려놓고 불쑥 터져 나오는가 하면, 기동대를 잔뜩 대기시키도록 긴장을 조성해놓고 온종일 바람을 빼면 대원들은 짜증나게 마련이다. 
 
  “또 당했군. 아주 지능적이야.”
 
  “저놈들 잔재주에 놀아나는 꼴이군.”
 
  “첩보가 빗나간 거라구.”
 
  기동대 쪽에서 불만 섞인 목소리가 출렁거리기 시작한다. 
 
  “첩보? 그런 흉측한 말을 쓰면 안 되지. 여긴 전쟁판이 아니잖아. 저놈들과 게임한다고 귀엽게 생각하면 돼.”
 
  “저런 신사분들이니 우리만 골탕 먹을 수밖에.”
 
  “저놈들한테 속기 싫다고 대기를 풀 수도 없잖아.”
 
  모두 지친 탓이다. 젊은 몸뚱이가 온종일 답답한 버스 속이나 공공건물 담벼락 밑에서 쭈그리고 지냈으니 그런 불만은 소화제인 셈이다. 
 
  “당신네들보다 나는 더 미쳐.”
 
  용해가 끼어든다. 낯익은 대원들이 있어 농담조로 던져본 말이다.
 
  “당신네들은 버스나 공공건물에서 휴식을 취할 수도 있지만 나는 맘 놓고 쉴 수도 없어.”
 
  정말 그랬다. 채증반원은 순간포착이 중요하다. 언제 어디서 상황이 돌발할지 모른다. 카메라, 녹음기 등 채증 도구를 늘 몸에 지녀야 하니 기습을 당할 우려도 있다. 그래서 유사시에는 직원 두 명의 지원을 받지만 그 보호 자체가 공격 대상이 될 수도 있다.  
 
  “언짢아 마시기요. 서로 잘 해보자는 격려사로 받아들이기요.”
 
  안면 있는 대원이 일부러 사투리를 써가며 끼어든다. 옛날 용해가 근무하던 영등포서 직원이다.
 
  “그 말투가 듣기 좋구마.” 
 
  용해도 사투리로 받는다.
 
  “정보 오판 탓에 삼천 원 잃었소.”
 
  “도리짓고땡으로?”
 
  “모두 대기 탓이지. 그 짓이라도 해야 견디지 정말 미쳐.”
 
  “잠이나 실컷 자지 그랬소. 경찰관한테 돈보다 더 부족한 것이 잠이잖우?”
 
  “시간이 너무 널널하면 잠도 안 오는 법이오.”
 
  “그럼 마누라 생각하며 사탱이나 주무르지?”
 
  “그 짓을 아무데서나 해? 코고는 소리만 진동하는 버스에서 그런 생각나겠소? 그나저나 자식들 얼굴은 고사하고 이젠 마누라 얼굴도 까먹을 판이오. 집에 못 들어간 지 보름이오.”
 
  “나를 알아보겠소? 팔 년 전에 영등포서에 있었소.”
 
  “글세…. 가물가물한데…. 그때 나는 경비계 소속이었소.”
 
  “그 정도만 알고 지냅시다. 너무 친해지면 헤어질 때 섭섭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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