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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의소리 연재] <미친사랑>87회

2014.12.04 10:34

잔아 조회 수:520

 1) 무대 등장인물
 판사 1명, 검사 1명, 변호인 1명, 서기 1명, 피고 3명인데 피고인들의 인적사항은 아래와 같다.
 피고1 : 학림남도 419번지 거주 농민.
 피고2 : 학림특별시 동빙고동 516번지 거주 차관도입공사 사장 외차관.
 피고3 : 수입개발공사 사장 막수입.
  
2) 각본요지
 검사 : 부익부 빈익빈 현상은 고층빌딩과 판자촌의 대조처럼 민족의 동일성을 파괴하고 사회 불안의 요소가 되는데, 4억 불의 차관과 13억불의 원조금을 어디에 썼느냐. 국내 생산이 가능한 상품까지 수입해서 16배로 시판하여 폭리를 취하고, 차관 용도를 바꾸어 호텔 나이트클럽을 꾸미고, 원리금 상환을 위해서 또 현금차관을 얻는다.
 
 변호인 : 검사는 반국가적인 발설을 책임져야 한다. 민족중흥을 위해서는 하나의 지표를 정해야 하는데 우리는 기모노제국을 본받아야 한다.
 
 피고3 : 조국근대화를 위해 기모노 국민의 협조를 구해야 하고 골프장, 터키탕, 나이트클럽 등으로 물질적 향락을 누려야 한다. 그리고 민족중흥을 이루기 위해 총 매진하는 이때 노동자는 잘살고 못산다는 불평을 해서는 안 된다. 그저 참아야 한다.
 
 피고2 : 1억 불 차관을 얻어 19층 빌딩을 짓고 호텔 나이트클럽을 꾸민 것은 우리도 그만큼 잘산다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그리고 모 기관의 협조를 얻어서 하는 짓인데 함부로 까불지 마라.
 
 3) 언도
 농민은 징역 10분.
 막수입은 달러 수입 공로로 무죄.
 외차관은 정보정치 봉사자로 무죄.
 
  용해는 풍자극 요지만 적어서 얼른 회의장을 나왔다. 밤이 깊었다. 쌀쌀한 교정을 걸어가며 갑자기 외로움을 느꼈다. 발에 낙엽이 밟혔다. 어둠 속에서도 늦가을의 감촉은 학생들의 가슴속만큼이나 소슬했다.
 
  참으로 조직이란 묘한 것이었다. 용해가 지금 자기의 직무에 충실하는 것은 봉급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조직의 마력에 홀리고 있었다. 솔직히 말해 지금 자기의 많은 동료들이 심정적으로 야당에 동조하고 있으면서도 야당을 탄압하는 정보업무에 열중하고 있는 것이다. 도대체 참된 정보업무란 무엇일까? 작금의 정보업무가 민생치안과 국가안위에 어떤 의미를 갖는 걸까? 무조건 권력층을 비호하는 행위에 정보업무의 당위성을 둬야 하나?
 
  문리대 교정을 걷는 용해의 발걸음은 무겁기만 했다. 그때 학생들 한 떼가 곁으로 스쳐 지나갔다. 용해는 얼른 고개를 숙였다. 형사 신분이 노출되어 몰매라도 맞을까 봐 두려웠다.
 
  교문을 빠져나온 용해는 택시를 잡기 위해 길을 건넜다. 밤이 깊어서인지 차가 뜸했다. 용해가 차를 기다리는 동안 종로 쪽에서 교통경찰관 하나가 이쪽으로 걸어왔다. 퇴근길인 모양이었다. 얼굴을 마주치고 보니 혜화파출소에서 같이 근무했던 직원이었다. 용해가 정보과로 발령날 때 그는 교통 근무자로 발령이 났었다. 전라도가 고향인 그는 평소 지역감정에 불만이 많던 직원이었다.
 
  반갑게 악수를 나눈 두 사람은 혜화동 쪽으로 올라가다가 대폿집을 찾아들었다. 홀에는 술을 마시는 손님들 몇 팀이 돼지갈비를 뜯고 있었다. 구석자리를 찾아 앉은 그들도 소주와 갈비를 주문했다.
 
  “정보과는 바쁘겠구먼. 서울대가 잠을 자지 않는 데다 내년 일 땜에 말야.”
 
  “죽을 맛이네. 자네야 국물 마시는 재미가 있겠지만.”
 
  “그야 고향 덕이지. 자네들은 열심히 여당표나 모아줘. 그래야 나는 만년 교통 해먹을 수 있으니까.”
 
  교통 직원의 말은 자기가 전라도 출신이라 정보 대신 국물이 생기는 교통으로 보내졌다는 농담이었다. 파출소에서 근무할 때도 소장이 들으라고 “나는 야당 찍을 거야.” 라고 우스갯소리를 자주 뱉던 직원이었다.
 
  “호남 출신 대통령이 생기면 정보과는 모두 호남 출신 형사로 채워질 것 아냐? 나도 전라도에서 태어나 교통 해먹었으면 좋겠다. 셋방살이 면해보게.”
 
  “역시 충청도 출신다운 말이군. 맘이 편해야 그런 말도 할 수 있거든.”
 
  교통은 배시시 웃었다. 용해 같은 충청도 출신 형사를 마음 편한, 그러니까 멀찍이 서서 싸움판을 구경하는 관객이라고 했다. 무대에 올라선 연기자는 땀을 흘려야 되지만 구경꾼은 느긋이 의자 등받이에 기대고 앉아 이발만 쑤시면 된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그의 말이 억탁임을 잘 알고 있었다. 대개 경상도 직원과 전라도 직원 사이에는 진한 농담이 오가게 마련인데 그들은 또 끈끈하게 밀착되곤 했다. 어떤 경우에는 다른 타도 출신이 그들 두 지방 출신에게 소외당하는 기분이 들 때도 있었다.
 
  “하여튼 영남과 호남의 대결구도는 양측에게 개발의식을 고취시키게 마련인데 그것은 상대적으로 충청도, 강원도, 경기도 같은 타지방을 소외시키거든.”
 
  “그것 참 말 되네. 하지만 결국에는 모두 서울에 흡수되고 말걸.”
 
  “하긴 그래야지. 평안도 함경도까지 말야. 그래가지고 나중에 팔도강산으로 인구를 재배치하는 거야.”
  “그때 나는 함경도로 빠질 거네. 회령에서 지서장 해먹고 싶으니까.”
 
  “통일만 되면 진급도 잘 될 거야. 바닥이 넓어지니까.”
 
  “이북 사람도 채용할 테니 그게 그거겠지 뭐.”
 
  “그나저나 학생놈들에게 얻어터지고 싶어 한밤중에 정복 입고 다니나? 서울대놈들 이제야 헤어졌는데.”
 
  “그 자식들 그래도 차를 잡아달라고 조르던데. 세 패거리나 합승시켜 줬어.”
 
  “경찰관이 합승을 조장해?”
 
  “그놈들 하는 짓이 하도 귀여워서 그랬지. 돌 던지는 대신 차를 잡아달라니 얼마나 예뻐.”
 
  “그래 예쁘지. 모의재판을 봐도 하는 짓이 예쁘고. 하지만 그 예쁜짓이 얼마나 갈지 모르겠군.”
 
  “그게 뭔 소리야? 얼마 갈지 모르다니?”
 
  “그 순수한 정신을 지니고 산다는 게 어려운 일 아닌가. 한갓 분위기에 편승하는 몸짓이나 멋부림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지. 우리는 아름다운 패배를 본 적이 별로 없잖은가. 그 패배야 말로 성공을 담보하는 에너지로 작용할 텐데 말야.” 
 
  용해와 교통은 얼근히 취해서야 술집을 나왔다. 통금시간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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