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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의소리 연재] <미친사랑>89회

2014.12.04 10:36

잔아 조회 수:680

장은하는 대문을 열어주면서까지 미나를 곱게 전송해 주었다. 대문이라야 판자쪽으로 기운 누더기 쪽대문이었다.

미나가 막 대문 밖으로 나갈 때였다. 밖에 나가 놀던 성원이 마당으로 달려 들어왔다. 마당에 들어선 성원은 미나와 은하 사이에서 엉거주춤 서 있다가 은하 곁으로 다가갔다. 그러자 미나가 얼른 성원의 손을 잡아끌어 품에 안았다.

성원아, 내가 누구지?”

서울아줌마.”

성원이 몸을 빼자 미나가 다시 꼬옥 껴안았다. 그 모습을 보던 은하가 성원에게 작별인사를 시켰다.

인사 드려. 이 아줌마는 세상에서 너를 젤 이뻐하시는 분이야.”

성원을 방에 들여보낸 은하는 아무 말 없이 동구까지 미나를 배웅해 주었다.

그 시간 용해는 이화동 혜화다방에서 국어학자 이희승 서울대 교수와 무려 네 시간 동안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철학과 자연과학, 종교 등 광범위한 대화를 가졌다. 옆에는 미국에서 5년 간 국제법을 전공한 동창 이연희가 앉아 있었다. 용해는 이 교수에게 세계정부와 우리의 민족주체성과의 모순에 대해 질문했다. 그는 6,70년 후의 한글전용에 대해 말했다. 용해는 스페인의 사상가 올떼가의 소외인간에 대해서도 말했고, 이 교수는 자신의 우주관에 대해 말했다. 그의 말 중에서 불완전은 생명을 의미하며, 완전은 무()”라는 대목과 우주질서를 생명체로 보는 성찰이 용해를 흥분시켰다.

용해는 마지막으로 국어의 영원성에 대해 물었다. 이 교수는 유일한 민족어는 영원히 존속할 거라고 얼버무렸다. 용해는 그의 얼버무린 간단한 대답이 의심스러웠다. 그의 말속에는 민족어의 위기에 대한 불안감이 묻어 있을 성싶었다. 버트랜드 럿셀의 전일사상(全一思想)을 읽었을 게 틀림없었다.

도 형사는 학문에 천착했어야 하는데.”

용해는 이 교수의 말에 어떤 말로 받자해야 될지 몰라 망설여졌다. 학문에 천착하기 싫어 경찰직을 택한 걸로 오해할까봐 저어되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이 교수 앞에서 구질구질하게 가난을 핑계 댈 수도 없었다.

작품을 쓰는 데 있어 경찰직만큼 유익한 직업이 없지요.”

그렇게 얼버무리고 나서 한마디를 더 보탰다.

선생님은 현 시국을 어떻게 보시나요?”

이 교수는 빙그레 웃고 나서 이런 농담을 던졌다.

나 같은 사람이야 사찰 대상이 아니겠지?”

죄송합니다. 저는 그냥 궁금했을 뿐입니다.”

미안하오. 그 궁금증을 풀어주지 못해서.”

말은 그렇게 해도 그의 표정이 무슨 말을 하는지 읽을 수 있었다. 이희승 박사는 4.19혁명 때 교수시위에 앞장섰던 곧은 성미였다.

다방을 나온 용해는 이연희를 따라 연건동에 있는 그의 사무실로 갔다. 사무실 옆에는 염직공장이 붙어 있었다. 이연희는 법률 공부를 포기한 채 아버지의 유업을 물려받은 것이다.

왜 이희승 선생을 만난 거니? 업무와 관련이 있는 거야?”

업무라기보다 그냥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싶었어. 특히 럿셀의 전일사상에 대해 듣고 싶었거든. 그 속에는 세계정부도 포함될 수 있는 건데, 말씀을 생략하셨어. 한글학자로서 한글의 유한성을 거론할 수 없는 거지. 물론 먼 미래의 얘기지만.”

그럴지도 모르지. 소외인간이 기계적인 인간으로 진화될지도 모르니까.”

이연희와 저녁을 먹고 집에 도착하니 은하의 얼굴이 하얗게 바래져 있었다. 성원이 걱정스런 표정으로 떠들었다.

엄마가 배 아픈데 왜서 늦게 왔노.”

성원의 말에는 아직도 동해안의 사투리가 묻어 있었다. 용해는 산고에 대한 대처를 몰라 답답하기만 했다. 은하는 몸을 일으켜 편물기 앞에 앉는다. 용해가 왜 무리한 짓을 하느냐고 화를 내자 약속 날자가 지났다며 조바심을 냈다. 용해를 졸라 편물기 한 대를 들여놓았는데 이웃들에게서 스웨터를 주문받아 품삯을 벌고 있었다.

다신 이런 궁상떨지 마. 심심풀이로 식구들 옷이나 짜 입도록 해. 만약 삯벌이로 편물기를 만지면 그만한 벌이의 몇 배를 술값으로 날려버릴 거야. 애 키우고 어머니 뒷바라지도 고달플 텐데 헛고생 말라고.”

용해는 엄포를 놓곤 했다. 치매 노모에 시달리는 아내에게 구질구질한 고생을 시키고 싶지 않아서였다.

왜 맞벌이가 헛고생이에요? 남들도 하는데요.”

그때마다 은하는 막무가내였다. 그 고집은 자기 어머니에 대한 반항이기도 했다. 한 번도 딸네를 찾아오지 않는 어머니였다. 뻔했다. 정식으로 결혼식도 못 올린 동거생활인 데다 용해가 애 딸린 홀아비였기 때문이다.

너는 끝내 에미를 배신하는구나. 처녀의 몸으로 기껏 홀애비냐? 그것도 애 딸린?”

은하 어머니는 그 한마디만 내뱉고 딸과의 상종을 거부했다. 딸자식 없는 셈치고 혼자 살다 죽겠다는 고집이었다. 용해가 틈날 때마다 양구를 찾아가 자식의 예를 갖추어도 당신은 남이요라고 존대말을 쓰며 접근을 막았다. 은하는 용해의 행동이 내심 고마웠지만 겉으로는 투정을 부렸다.

다신 찾아가지 마세요. 돌아가신 뒤에 산소에나 찾아갈 거예요.”

어머니의 맘을 이해해야지. 당신은 불효를 저지르고 있어. 나 같은 사람과 살고 있으니 어느 부몬들 좋아하겠냐고. 그 죄업을 당연히 내가 받아야지. 일 년, 십 년, 아니 돌아가신 뒤에라도.”

그런 형식적인 예의는 갖추지 마세요.”

부모에 대한 형식은 질보다 더 좋은 효도야. 속으로만 효도하면 뭐하는가. 그리고 내 효도가 진심인 것은 당신도 알잖아.”

용해는 자상한 미소로 은하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성원에게 말했다.

성원아, 너 항상 엄마 곁에 붙어있어야 해. 엄마가 언제 배 아플지 모르니까 네가 늘 지켜들여, 알지?”

이 바보 아빠야, 내가 꼭 엄마캉 있잖나. 근데 우리 유라가 언제 나오나?”

유라는 앞으로 낳을 애가 딸일 경우 미리 지어놓은 이름이다. 성원은 아빠캉 엄마캉 유라캉 나캉 막흔 넷이 우리 식구라고 떠들곤 했는데 은하는 그때마다 성원을 꼭 껴안아주었다. 이제 성원은 은하에게 친구 역할을 톡톡히 했다. 온종일 산동네 구석방에서 지내야 하는 은하에게는 성원이가 유일한 말벗이었다. 산 아래 도로가에 있는 쌀집에서 봉지쌀을 사오는 것도 성원의 몫이었다. 쌀집에서는 한 말 이상 사야 배달해주었던 것이다. 우물에서 물을 길을 때도 성원의 몫이 컸다. 미리 줄을 서서 은하의 수고를 덜어주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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