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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의소리 연재] <미친사랑>90회

2014.12.04 10:36

잔아 조회 수:558

- 예비군 운영에 대한 여론

신민당 대통령 후보의 예비군 폐지에 대한 발언에 예비군 중에는 호감을 갖는 자가 많다는 바, 반공국가로서의 예비군 존립의 타당성은 인정하면서도 아니꼬워서도 야당을 찍어주겠다는 불평이 번지고 있는 실정임. 생업에 지장을 주거나 일부 간부들의 비위 등 운영에 대한 불만이 쌓이고 있으니 집권당에서는 명년 선거에 대비하여 당해자들의 호감을 살 수 있는 효율적인 정책 수립이 요망된다는 여론임.

 

용해는 첩보를 제출하고 퇴근준비를 서둘렀다. 그때 박상진 회장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저녁식사를 함께하자는 내용이었다. 용해는 약속장소인 중화요리점 아서원으로 갔다.

오랜만이군.”

박 회장은 용해를 보자 먼저 손을 내밀었다. 그의 태도와 목소리는 점잖았다. 몇 년 만에 만나는 셈이었다.

사무실로 찾아가면 자네 입장이 난처할 줄 알고 불러냈네. 내가 경찰서에 찾아가 누구를 만나러 왔다고 하겠는가. 떳떳이 매제라고 내세우겠는가 형이라고 말하겠는가. 더구나 정보과는 통제구역인데 누구라고 신분을 밝히며 들어가겠는가.”

박 회장의 목소리가 왜 부드러운지 용해는 잘 알고 있었다. 싸울 상대가 너무 허약하면 조용히 죽여주는 게 예의요 덕망이었다. 공격무기가 얼마나 흔한가. 경찰이 강할 때는 강하지만 약할 때는 파리만도 못하다. 그중에서도 여자 문제라면 가장 흔들기 좋은 조건이었다. 또 얼마나 말발이 서는 조건인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야 되는 공직자로서 모름지기 모든 면에 타의 모범이 돼야 마땅하거늘, 엄연히 법률상의 여건까지 갖춘 아내를 핍박하여 타락의 길로 내몰았을 뿐만 아니라, 다른 여자와 동거하면서도 수도 서울 한복판에서 국가안위에 중차대한 정보업무에 종사하고 있으니, 당장 파직하고 물고를 낼 수 있는 조건인데, 서두를 필요가 없었다.

요즘 바쁘지? 나도 군에 있을 때 정보장교 생활을 해봤지만 경찰 업무와는 다를 거야.”

박 회장의 목소리는 여전히 부드러웠다.

글쎄요, 제 생각에는 비슷할 것 같은데요.”

군대의 정보업무를 모르는 용해로서 확실한 대답을 줄 수는 없지만 얼핏 생각해 보면 비슷하리라 싶었다. 경찰의 업무 스타일도 군대 업무의 형식을 닮아가고 있잖은가.

학생놈들이 왜 그 지랄인지 모르겠어. 그저 조져야 돼. 순 빨갱이 놈들이니까. 나는 자네들 업무가 자랑스럽네. 열심히 뛰어서 나라 기강을 세워보라고.”

술기운이 돌자 박 회장의 목소리가 점점 높아졌다. 용해는 학생들의 입장을 내비쳤다.

물론 과격한 사고방식을 가진 학생도 있습니다만 그들의 주장에도 순수한 면이 없잖아 있습니다.”

순수한 면이 있다고?”

박 회장이 용해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

자네가 그런 사고방식을 가져선 안 되지.”

저는 객관적인 시각으로 말씀드리는 겁니다. 혹 학생들의 현실감각이 지나치게 낭만적이라 해도 그걸 뭉개서는 안 됩니다. 물론 낭만이 아니라 절실한 개혁의지에서 투쟁하고 있지만요.”

투쟁? 자네도 물들었구먼?”

물이라뇨?”

빨갱이 물 말야.”

형님, 형님은 너무 굳어계십니다. 단단한 의식을 푸셔야 합니다. 죄송한 말씀이지만 미나씨가 겉도는 것도 주변 환경이 너무 단단한 탓이죠. 가정을 비롯해 형님의 완력이 미치는 주변 말입니다.”

지금 내게 충고하는 건가?”

충고가 아니고 건의를 드리는 겁니다. 그런 면에서 보면 미나씨가 가엾지요.”

그처럼 미나가 연민스러운데, 어째서 야박하게 밀쳐내기만 하는가?”

인연을 맺지 못하는 것과 인간적 연민과는 다르죠.”

자네의 약점은 바로 그걸세. 지금처럼 꼬지꼬지 따지는 것. 자네는 날보고 단단하다고 했지만 자네 역시 마찬가지야.”

그 말씀은 받아드리겠습니다. 굳이 변명한다면 부부의 연은 객관적인 논리로만 성사될 수 없다는 거죠.”

미나가 찾아갔다지?”

박 회장은 본론을 꺼냈다. 미나의 이야기를 꺼내며 용해의 표정을 유심히 살폈다. 용해는 침묵을 지키기 위해 고깃덩어리를 입 안에 넣고 우적우적 씹었다.

모두가 자네 탓이네. 그 애의 자학은 그만큼 자넬 사랑한다는 증거지.”

사랑하는 게 아니고 사랑하는 걸로 착각하는 거죠.”

착각이라고? 그 앤 자네 없이는 살아갈 수 없어.”

여자는 화장한 자기 얼굴에 스스로 도취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분칠된 얼굴을 진짜 자기 얼굴로 착각하는 거죠. 그 사람은 그처럼 사랑을 멋으로 여기고 있는 겁니다. 그건 사랑의 흉내일 뿐입니다. 사랑이 뭔지를 모른다고요. 때문에 나름대로 잘 살아가는 겁니다.”

잘 살아간다고? 타락이 옳게 살아가는 거라고?”

타락이라고 말씀하셨는데, 그것도 그 사람 나름의 삶입니다. 멋이고요.”

? 이 사람 아무데나 멋이란 말을 붙여? 못된 사람. 자넨 그런 식으로 변명하나본데 그 앤 자넬 결코 포기하지 않을 거야. 앞으로 무척 괴롭힐 걸세. 괴롭힐 여건도 갖추고 있고.”

법률적 약점을 따지는 겁니까?”

자넨 강릉에서 호적을 정리했어야 했어. 얼마나 좋은 기횐가? 호적상의 아내가 딴 남자와 간통했는데?”

그때는 여자의 약점을 잡는 것이 양심에 걸리고 못난 짓으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감옥에 들어있는 여자한테 당장 호적정리를 요구해 쓰겠습니까?”

좋은 사람이군. 하지만 자네의 그 좋은 인간성 때문에 한 여성이 망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지. 자네가 일방적으로 호적을 정리했어야 했어. 함께 살 여자가 아니잖은가. 그러니 자네의 그 착함이 모두에게 해를 끼친 셈이네. 미덕이라는 것도 알고 보면 상대적이지. 자네의 경우처럼 해가 되는 경우도 있으니까.”

옳은 말씀입니다. 그래서 더욱 괴롭고요.”

그냥 억탁으로 해본 소리네. 솔직히 나는 미나년을 패죽이고 싶은 심정일세. 얼른 자기 맘을 돌릴 줄도 알아얄 텐데.”

박 회장은 술잔을 비우고 잔을 내밀었다. 그는 용해에게 술을 따라주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미나가 좋아할 만도 하구나. 하지만 어쩔 수 없다. 네 목을 치는 게 아깝지만 동생과 우리 가정을 위해 할 수 없는 노릇이구나. 스스로 사표내고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졌으면 좋으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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