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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연재] 소설 '춘천옥' 1회

2017.12.23 10:06

잔아 조회 수:141

방송 진행 중에 아나운서가 내게 물었다. 포장마차 같은 업소를 개업한 지 3년 만에 춘천옥을 서울의 명소로 키웠는데 손님 끄는 특별한 비결이 있느냐고. 나는 미소를 지으며 이런 말을 해주었다.
  “제 손은 사람 손이 아닙니다. 손님을 모시는 손짓 한번에 단골이 되고 맙니다. 목소리도 마찬가지고요. 인사 한마디에 손님은 감동하게 마련입니다.”
  “사람의 손과 목소리가 아니시라면?”
  “글쎄요. 신의 손, 신의 목소리랄까요. 그래서 손님을 맞이할 때 말과 행동을 신비롭게 꾸미려고 애씁니다.”
  “신비롭게 꾸미다뇨?”
  “손님을 모시는 방법을 일일이 설명할 순 없습니다. 수천수만 가지니까요. 그걸 일일이 설명하려면 인터뷰 시간을 수십 배 늘려야 합니다. 그렇지만 이건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신선한 말, 손님을 긴장시킬 수 있는 신선한 언어를 구사해얀다는 거죠. 그럼 어떤 말이 신선한 말이냐, 그거에 대해서도 일일이 설명할 순 없습니다.”
▲ 그림 송대현     © 독서신문
 “핵심적인 말은 피하시는군요.”
 “피하는 게 아니라 공식적인 말이 없다는 겁니다. 그때그때 상황이나 손님의 성격에 따라 말이 달라져야 하니까요.”
  사실이다. 손님들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한다는 공식적인 언변(言辯)은 없다. 손님이 풍기는 분위기나 반응을 살피면서 순발력 있게 대처해야 한다. 일테면 말수가 적은 손님한테 공연히 말을 걸었다가는 오히려 낭패 보기 십상이다. 그와 반대로 뽐내고 싶어하는 손님이나 기분파를 침묵으로만 대해서도 안 된다. 또 지식인으로 보이는 손님에게 유식한 말을 동원해서도 안 되고, 교양티를 내는 손님에게 예의스런 말만 꺼내서도 안 된다. 가장 조심스러운 손님이 교양을 내세우는 손님이고, 그 중에서도 더 다루기 힘든 게 쇠말뚝처럼 고지식한 손님이다. 나는 그런 손님에게는 일부러 좌석으로 찾아가 좀 지나친 농담으로 시비를 걸곤 하는데, 그때야 말로 고도의 언변이 요망된다. 기분을 잡친 그 손님으로 하여금 이 세상 어디에서도 느껴보지 못한 감동을 안겨주는 언변술. 그거야 말로 그 까다로운 손님을 알짜 단골로 삼을 수 있는 기막힌 상술이기 때문이다. 얼굴을 찡그렸다가 웃고 돌아간 손님은 영원한 단골이 된다.
  그래서 나는 까다로운 손님이 오면 스트레스를 받는 게 아니라 좋은 요리감이 생겼군, 하고 혼자 미소를 짓곤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이해성이 많고 도량이 넓은 손님에게도 알짜 단골을 삼고 싶어 일부러 시비를 거는 경우도 있다. 어느 재벌 총수가 수행원을 대동하고 찾아왔을 때였다. 조용한 방으로 모셨더니 총수는 자리에 앉으며 “이 집이 막국수를 잘한다는 집인가.” 라고 혼잣말처럼 한마디를 흘렸다. 나는 매스컴을 통해 그분의 신분을 뻔히 알면서도 일부러 “시골서 모 심다가 오셨나요?” 라고 받았다. 수행원들 표정이 일제히 긴장되었다. 하지만 나는 태평한 마음이었다. 재벌 총수라면 어떤 인생을 살아왔는지 뻔했다. 별별 사람을 다뤘을 테고 무수한 난관을 극복했을 터이니, 시시하게 식당 주인이 던진 농담을 가지고 얼굴을 붉힐 소인이 아니었다. 역시 내가 예상한 대로 총수가 먼저 분위기를 살렸다.
  “쥔장이 재밌는 분이군.”
  그제야 수행원들의 표정이 도로 밝아졌다.
  “죄송합니다. 누추한 집을 찾아주셔서, 영광입니다.”
  “쥔장도 같이 한잔 합시다.”
  사양하는 나를 곁에 앉힌 총수는 술잔 한 순배를 돌리는 동안 분위기를 살려가다가 내게 어이없는 말을 했다.
  “우리한데 장사요령을 한마디 들려주쇼.”
  나는 일을 해얀다는 핑계를 대고 얼른 자리를 떴다. 나보고 그만 나가달라는 말일 성싶었다. 재벌 총수인데 노골적으로 나가달라는 말 대신 그런 우회적인 말을 쓰겠지, 그게 내 생각이었다.
  나는 홀 쪽으로 걸어가면서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총수는 내 말에서 어떤 해방감이 느껴졌을 거라고. 남한테서 굽실거리는 대접만 받다가 모처럼 시비조의 농을 듣고 보니 색다른 감정이 느껴졌을 거라고. 그 색다른 감정이 바로 본인도 미처 인식하지 못한 해방감일 거라고.
 
  “예를 하나 더 들겠습니다.”
  연방 고개를 끄덕이며 내 말을 듣고 있는 아나운서에게 나는 실제 겪은 이야기 하나를 더 들려주고 싶었다.
  “언젠가 점잖은 사장님이 부부동반으로 와서 음식을 시켰는데 그분을 단골로 삼고 싶어 일부러 시비를 건 적이 있죠. 부인이 입고 있는 옷을 지적하며, 사모님은 이런 옷을 입고 계시니 참 괴로우시겠습니다, 라고 농을 걸었어요. 그 후 그 사장님은 삼백 명이 넘는 자기네 회사원을 모두 단골로 만들어주었죠.
  “왜 그랬을까요?”
  내 시비조의 말이 어떻게 그런 좋은 결과를 가져왔는지 궁금한 모양이었다. 나는 이런 말을 했을 뿐이라고 대답해주었다.
  “사장님의 취향에 맞춰 고른 옷이니 얼마나 칙칙하시겠어요. 사모님 그렇죠?”
  아나운서는 내 간단한 대답에 더 구체적인 설명을 요구했다. 나는 그런 체험담을 글로 쓰는 중이니 책이 나오면 대신 보내드리겠다고 약속했다. 그러자 아나운서는 내 얼굴을 빤히 바라보다가 “사장님이 책도 쓰십니까?”  라고 물었다. 나는 멋쩍은 표정으로 아직 작가는 아니지만, 하고 얼버무렸다. 잠시 입술에 힘을 주고 있던 아나운서는 경쾌한 목소리로 말했다. 
  “좋습니다. 그렇다면 춘천옥에서는 음식이 맛없어도 얼마든지 손님을 끌 수 있겠네요?”
  “그건 불가능합니다. 음식이 맛없으면 제 말과 행동은 영험(靈驗)을 잃게 됩니다.”
  “영험?”
  “제 말이나 행동은 음식이 맛있을 때에만 초인적인 능력을 발휘한다는 말이죠. 아무리 기막힌 언행을 구사해도 음식이 맛없으면 말짱 헛일입니다.”
  “역시 맛에 달렸군요.”
  “물론 성패는 맛에 달렸죠. 하지만 맛만 가지고는 밥벌이는 될지언정 부자는 될 수 없어요. 주인은 맛 말고도 손님이 음식에서 두려움 같은 걸 느끼게 해얍니다. 우리 춘천옥에 오신 손님은 왕처럼 대접 받기를 좋아하면서도 어떤 초월적인 존재에 지배당하고 싶어합니다.”
  “그건 무슨 말씀이죠?”
  “손님은 음식을 먹는 것 말고도 그 음식에 지배당하고 싶어한다는 말입니다.”
  “음식에 지배당한다.... 어려운 말이군요.”
  “음식의 권위를 말하는 겁니다. 음식은 바로 신령님이시죠.”
  “이 집 음식이 어떤 정성으로 만들어졌는지 짐작할 수 있겠네요.”
  “정성이 문제가 아니죠. 요즘 말로 올인 정도가 아닙니다. 한마디로 미쳐야 합니다. 저는 음식을 상품으로 여기지 않아요. 상품으로 여기는 순간 음식은 신비성을 잃고 맙니다.”
  아나운서는 고개를 끄덕이고 나서 벙그죽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 보니 이 식당에선 이상한 기운이 풍기더군요.”
  “제가 미쳐서 그럴 겁니다. 저는 밥장사를 돈벌이로 여기지 않습니다. 돈버는 건 생각지 않아요. 불후의 예술작품을 하나 만들겠다, 그 생각뿐입니다. 매상에도 신경 쓰지 않습니다. 구두에 묻은 흙만 털고 가셔도 좋으니 편안한 마음으로 오십시오. 그게 제 신좁니다. 미쳐도 옳게 미쳐야죠. 섣불리 미치면 이것도 저것도 아닙니다. 제대로 미쳐야 개도 짖습니다. 개는 섣불리 미친 사람을 보면 짖지 않고 눈만 흘겨요. 그 온전한 미침이 바로 봉사정신이죠.”
▲ 김용만(소설가,한성디지털대 문창과교수)     ©독서신문

  “그럼 염가봉사도 정성이겠군요?”
  “대단하십니다. 염가봉사가 정성이란 걸 어찌 아셨죠?”
  “그거야 어린애들도 아는 것 아닙니까? 같은 값이면 누구나 싼 걸 찾잖아요?”
  “그렇습니다. 염가봉사는 요식업의 3대 요소 중 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맛있고 청결한 음식으로 대지에 싹을 틔우면, 애정 어린 서비스로 푸르게 성장시켜, 부담 없는 염가로 화려한 꽃을 피우게 합니다.”
 
읽고 생각하는

김용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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