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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연재] 소설 '춘천옥' 4회

2017.12.23 10:09

잔아 조회 수:59

  “저는 우리 업소를 단순한 식당이 아닌, 어떤 신비스런 업소로 이미지를 꾸며가고 있습니다. 손님 많은 집, 유명한 집, 그 정도로는 양에 차지 않습니다. 아까 사무총장님께서 안방 같은 분위기라고 말씀하셨는데, 저는 제 업소를 엄마 품속, 친구 하숙방, 회사 사무실, 그렇게 세 가지 유형의 이미지를 갖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손님들의 성격, 취향, 입장을 먼저 파악해서 세 가지 유형 중 한 가지에 친숙해지도록 유도하죠. 외람되지만 총재님께 질문을 하나 드려도 될까요?”
  “어려운 건 묻지 말아요.”
  “갓난애기도 엄마의 품속을 알아보는데, 왜 그럴까요?”
  “엄마의 품속에는 애정이 가득하니까.”
  “표현이 아주 시적이시군요. 맞습니다. 애정이 가득한 품속. 손님이 가장 좋아하는 공간입니다. 우리 업소가 바로 포근한 엄마 품속이죠. 일에 지친 사람이나 근심에 찌든 사람도 편안히 음식을 드실 수 있는 휴식처. 애기가 엄마 젖을 물고 빨듯 말입니다. 그렇다면 손님들에게 엄마 품속을 어떻게 만들어 주느냐, 그게 바로 손님을 신비롭게 맞이하는 방법일 텐데, 그건 너무 다양하니까 생략하겠고요, 다른 예를 들겠습니다.”
  “얘기가 아주 재밌어지는데.....”
 
▲ 송대현 그림     ©독서신문
 
 대변인이 분위기를 띄운다. 나도 술기운이 번지기 시작한다.
  “아시다시피 이 지역은 공장이 많고, 태반이 수출업쳅니다. 그러니 분임조 별로 야간작업이나 특근할 경우가 많습니다. 일을 끝내면 회사에서 회식비를 받는 경우가 많겠죠. 그때 조원들은 어느 집으로 갈까를 놓고 의논할 겁니다. 그 중에는 저희 업소에 불만을 가진 사람도 있겠지만, 저를 잘 아는 조장이라면 이렇게 나설 겁니다. 그래도 춘천옥이 젤 나아. 그집 사장이 나한텐 꺼뻑 죽거든. 그리로 가야 제대로 대접받을 수 있어. 값도 싸구 분위기도 좋구. 조장은 그런 식으로 조원들을 꼬드겨서 앞장을 서겠지요. 그 조장은 춘천옥에 들어서자마자 사장인 저를 찾을 거고, 저를 보자마자 큰소리로 반말을 던질 겁니다. 모두 15명. 고기는 알아서 주시고.
  그러면 저는 일부러 큰소리로 종업원을 불러서 호들갑을 떨죠. 김조장님 오셨다. 이층으로 모시고, 고기는 특별히 알아서 담도록.
  그 후 분위기가 익어갈 무렵 그 자리로 찾아가면 틀림없이 제게 술잔을 내밀게 마련이죠. 저는 한 모금만 받아서 마시는 척하고 또 종업원을 부릅니다. 여기에 콜라 일곱 병 내도록. 저는 술을 얻어 마신 핑계를 대고 음료수를 내겠다는 거죠. 그렇게 분위기를 띄워주고 나서, 표정이 삐딱한 조원을 골라내 일부러 술잔을 내밀며, 우리 집에 섭섭한 것 있어? 하고 속을 떠봅니다. 십중팔구는 고백하게 마련이죠. 뭐가 불만이라고요. 저는 그에게 덕담 한마디를 던져줍니다. 시시한 여자는 상대하지 마. 멋진 걸 고르란 말야, 알지?”

  내가 딱 이야기를 멈추자 국회의원들이 뱃살을 잡는다.
  “그러니까 그 삐딱한 조원의 자존심에 불을 지른 셈이군. 너는 수준 높은 사낸데 시시한 여자와 상대하지 마라, 기막힌 작전이지. 아주 은유법이 뛰어나오. 그러니까 손님을 가지고 노시는군.”
  여태까지 조용히 앉아 술만 마시던 원내총무의 말이었다.
  “기가 막히군. 그렇게 말하면 안 넘어갈 자 없지. 쥔장, 술잔 받으쇼.”
  총재가 또 내 잔에 술을 따라준다. 나는 속으로 성공적이군, 하고 회심의 미소를 짓는다. 점잖은 손님에게서만 울궈먹는 수법이다. 오늘 오신 국회의원들은 틀림없이 단골이 될 것이다.
  하지만 다음에 그분들이 오면 나는 뒤로 빠져야 한다. 인사만 하고 합석은 거절해야 한다. 그래야 나는 신비한 존재가 된다. 계속 합석하게 되면 한갓 식당 주인으로 남게 마련이다. 신비한 존재로 남아야 손님에게 호기심을 유발시킬 수 있다. 주인이 보잘것없는 존재로 이미지가 심어지면 음식도 권위를 잃게 된다.
  종업원도 마찬가지다. 나는 종업원들에게 품위를 지키라고 교육시킨다. 친절과 품위는 다르다. 서빙 팀은 직접 손님과 부딪치는 직책이라 더욱 조심해야 한다. 능수엄마와 미스 박은 손님들과 항상 대화를 틀 수밖에 없는 입장이어서 개별적으로 조심시키곤 한다. 얼굴이 반반한 능수엄마와 몸매가 늘씬한 미스 박은 남자 손님들의 시선을 받기가 십상이다.
 

 나는 그녀들이 분위기를 살리는 너스레와 품위를 철저히 구분하는 것에 고마움을 느끼고 있다. 그들 두 여자는 종종 유혹을 받고 있는 게 사실이다. 남녀간의 관심보다도 춘천옥의 비밀을 캐내려는 장삿속이 작용하는 경우가 더 많다. 거기에 대해서도 두 여자는 의리를 지키고 있다. 나는 그들에게 어떤 식으로 보답할지를 생각중이다.
  출입문 근처에 숨어 서서 찾아오는 손님들의 동정을 살펴보면 아주 재미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두세 명이든, 대여섯 명이든, 여남은 명이든, 한 팀 중에서 누가 지시한다.
  “빨리 가서 자리 잡아.”
  일행 중 누가 서둘러 출입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간다. 춘천옥을 찾아오는 손님들은 모두 그렇게 앉을 자리를 걱정한다. 앉을 자리를 걱정하는 스릴, 그 스릴은 손님들의 재미다. 미치기 직전의 휴지(休止)다.
  지난 여름밤이었다. 자리가 부족해서 바깥 도로 가에 쭉 자리를 깔고 음식상을 차렸다. 그
런데 즐겁게 먹던 손님들이 엉덩이를 들며 웅성거렸다. 알고 보니 위쪽 상가에서 버린 구정물이 길가로 흘러 방석을 적시고 바지를 적셨던 것이다. 음식 값을 받지 않고 세탁비를 책임지기로 했다. 거절하는 손님들이 많았지만 억지로 세탁비를 드렸다.

  나는 서둘러 빚을 내어 또 업소에 붙은 옆집을 샀다. 그런 식으로 업소를 늘리다 보니 홀이 미로가 되다시피했다. 처음 온 손님들은 화장실에 갔다가 자기네 자리를 못 찾고 이 구석 저 구석을 뒤지고 다니기 일쑤였다.    그래도 장소가 부족하고, 복도에 서 있는 손님은 늘어만 갔다. 아수라장이다. 복도 벽은 우중충하고 종이가 찢어진 곳도 있다. 손님들의 훈김에 형광등 불빛이 침침하다. 꿈속 같다. 현실이 아니다. 세르반테스의 말대로 현실이 환상인 것만 같다. 그는 현실은 진짜가 아니고 가상이나 환상 같은 데가 있다고 믿었다. 
  “여태 자리 못 잡았어?”  
  “기다리지 뭐.”
  참으로 이해 못할 노릇이다. 옆집들은 텅텅 비어있는데, 왜 그런 불편한 집을 찾아오는지, 정말 하느님이나 아실 일이다. 인간으로서는 그 묘한 심리를 캐낼 수 없다. 다른 업소에서는 하느님을 원망할 것이다. 왜 이러시냐고. 누구네는 미어터져 아우성이고 누구네는 파리만 왱왱 날리게 하냐고.
  간단하다. 그들은 장사가 뭔지를 모른다. 이치를 모른다. 나는 길거리의 아무한테나 소리치고 싶다. “나 미쳤소. 미치는 게 잘못이오?” 그런데 그들은 미침의 원리를 모른다. 미침은 숙달이다. 숙달도 그냥 쌓인 경험을 말하는 게 아니다. 자기의 숙달이 미흡하다고 여기는 목마름, 즉 창조력이 작용하는 숙달이어야 미침이 된다.
 

▲ 김용만(소설가,한성디지털대 문창과교수)     ©독서신문
  숙달은 한계가 없다. 숙달은 기술이 아니다. 기능적인 측면보다 정신적인 세계가 넓고 깊어야 한다. 어떤 세계를 지향하려는 정신인지가 중요하다. 장사의 정신은 오묘하다. 사업정신의 오묘함을 모르고 자기가 최고라고, 따라올 자 없다고, 별것 아니라고 으스댈 때 이미 숙달은 사라지게 된다. 그 바람에 집을 팔고, 빚을 내고, 사돈네 돈까지 꿔와 식당을 차렸다가 홀랑 까먹고, 목놓아 울다가 쥐약을 먹는다. 그런 비존재론적(非存在論的) 고통으로 멍든 자들에게 나는 이런 말을 해주고 싶다.
  “밑바닥부터 기어라. 하지만 그냥 기지 말아라.”
  분석하고 실험하고 미의식(美意識)을 키우면서 기라는 말이다. 나는 밥장사를 종합예술이라고 했다. 예술은 감동을 전제로 한다. 감동 없는 예술은 예술이 아니다. 손님을 감동시키지 못하는 식당은 문을 닫게 마련이다.
 
 
 
 

김용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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