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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연재] 소설 '춘천옥' 5회

2017.12.23 10:09

잔아 조회 수:152

밥장사로 성공하려면 프랑스의 사상가 파스칼의 말을 명심해야 한다. <내 사유를 방해하는 데는 대포가 필요없다. 파리 한 마리면 족하다.> 그 말을 밥장사에 대입시키면 이런 말이 된다. <식당을 망치는 데는 입지조건이나 기술이 필요없다. 파리 한 마리면 족하다.>

 여기에서 파리 한 마리가 뭔지를 생각하면 될 것이다. 파리 한 마리에 해당되는 실수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부지기수다. 수백수천 가지 되는 그 실수를 찾아내야 한다. 

나는 음식을 사먹으러 남의 업소에 갔을 때 종업원이 물컵을 식탁에 놓으면서 안쪽에 엄지를 넣어 집거나, 손님이 땀 닦은 물수건으로 식탁을 닦거나, 그릇을 잘 헹구지 않았거나, 먹다남은 음식을 다시 내놓은 기미가 보이면 다시는 그 집에 가지 않는다. 어느 때는 안타까운 마음에 그런 실수를 주인한테 지적해주면 고마움은커녕 대개 얼굴 표정이 굳어진다. 그런 업소는 영락없이 문을 닫게 마련이다.

만약 그들이 장사에 미쳤다면 그런 실수를 저지르지 않았을 것이며, 내 지적에 진심으로 고마움을 표시했을 것이다. 그러니 장사에 미친 사람은 미적감각이 예민한 사람이기도 하다.
 
▲ 송대현 그림     © 독서신문
요식업자는 주도면밀해야 한다. 모든 부분에 걸쳐 구석구석 치밀하고 섬세하게 관심을 가지라는 말이다. 그런 면에서는 군 지휘관이 밥장사를 잘할 것이다. 부대 순시를 할 때 구석구석 살피지 않고도 어느 구석이 불결한지를 지휘관은 잘 알고 있다. 막사 어느 구석에는 아직도 먼지가 껴있을 테고, 어느 구석은 전기 합선이 우려되고, 어느 구석은 누수가 염려되고, 어느 구석은 곰팡이가 껴있을 테고, 어느 병사는 선병질적이고, 어느 병사는 무모하고, 어느 유리창은 헐거워서 바람에 떨어질 것 같고, 떨어지면 병사가 다치기 쉬울 테고, 어느 마루판에는 못대가리가 살아서 발바닥 다치기 십상이고.... 그런 식으로 식당 주인도 식당 구석구석을 치밀하게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가스 불판을 쓰는 업주는 자기 업소에 불판이 수십 개 있어도, 한눈에 가스 코크가 모두 잠겨 있는지를 파악해야 한다. 그게 숙달이고 미침이다. 

춘천옥의 성공 노하우는 아무것도 아니다. 젊은 아내와 니어카 포장마차를 끌고다니며 온갖 고생과 수모를 겪은 덕이다. 나는 지금도 버스 주차장에서 울었다는 아내의 말을 잊지 못한다. 포장마차 안주거리를 사러 아내가 수산시장에 갔을 때였다. 물이 질질 흐르는 홍합 자루를 머리에 이고 시내버스를 타려는데, 기사가 버스 문을 닫는 바람에 몇 번이나 애를 태워야 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버스가 정차하자마자 발판에 한 발을 올려놓았다. 그래도 버스가 그냥 출발하는 바람에 아내는 홍합자루를 머리에 인 채 길바닥에 뒹굴고 말았다. 아내는 뒹굴면서도 홍합자루를 놓지 않았다. 홍합자루는 아내의 생명이었다. 생명을 놓칠 리 없다. 

 버스 기사도 이해는 한다. 버스 바닥이 젖으면 걸레로 닦아야 한다. 걸레질을 죽기보다 싫어하는 게 버스기사의 체질이다. 그러니 가난한 여인의 눈물 정도는 알 바 아니다. 

그때 아내는 버스 기사를 원망하다 말고 비닐포대를 생각해냈다고 한다. 비닐포대가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비닐포대 한 장만 있었으면 아내는 울지 않았을 것이다. 홍합자루를 비닐 포대에 넣었으면 버스 바닥에 물을 흘리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 나는 비닐포대 수백 트럭을 사고도 남을 돈이 있다. 춘천옥에서 돈을 버는 것은 비닐포대를 사다가 섬을 만들기 위해서이다. 아무 때고 수십만 트럭을 살 것이다. 아니 수백만 트럭, 수천만 트럭을 살 것이다. 그 많은 비닐포대로 바다에 섬을 만들 것이다. 아니면 하늘에 띄워 먹장구름을 만들 것이다.
 
춘천옥을 개업한지 2년째가 되는 1986년 초였다. 설 휴가를 마치고 출근한 40여 명의 직원이 장사 준비를 마치자, 나는 전문 메뉴인 보쌈 한 접시와 막구수 한 그릇을 홀 중앙에 차려놓고 큰절을 올렸다. 내 뒤에 삥 둘러서서 황당한 모습을 지켜보던 직원들의 표정이 자못 엄숙했다. 어느 직원은 장난기 어린 표정을 짓기도 했지만 내 진솔한 태도에 눌려 금방 표정을 바꿨다.  

  “음식을 존경해얍니다. 음식은 존경 받아야 미소를 지어요.”

큰절을 올린 나는 음식상 앞에 무릎을 꿇은 채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종업원들은 선뜻 이해할 수 없는 말이지만 고개를 끄덕거렸다.

  “음식이 존경의 대상이니 정성을 쏟아야겠죠? 정성도 시시한 정성이 아니라 자기의 살과 뼈를 녹여서 바치는 지극정성이어야 감응하겠죠? 음식은 그제야 겨우 미소를 짓거든요. 대답해봐요. 음식이 왜 그처럼 존경스럽죠?”

 홀 안이 갑자기 조용해졌다. 숨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모두 숨을 삼키고 있었다. 그때였다. 억센 경상도 사투리가 무거운 침묵을 흔들었다.

  “암도 모른다카이 지가 대답하겠심더.”
 
모든 시선이 능수엄마한테 쏠렸다. 능수엄마는 홀에 울려퍼진 자기의 목소리가 민망한지 고개를 숙였다. 나는 그녀의 수줍음타는 모습을 보며 터져나오는 웃음을 참느라 진땀이 났다. 이태 전 그녀가 처음 춘천옥을 찾아왔을 때였다. 보따리를 옆구리에 끼고 식당에 들어선 그녀에게 경력을 물었더니, 동네 화투판서 고스톱 친 게 다라며 얼굴을 붉혔다.

  “대답해 봐요, 능수 엄마.”

  내 말에 능수엄마가 벌떡 일어섰다.

  “음식이 도도한 거는 신령님이시니꺼 그렇지예.”

  “히야! 능수엄마 대단하군. 음식이 신령님이시라, 그런데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거지?”
  “우리 시어무이가 말했심더. 세상에 존경할 거는 신령님뿐이라고예. 우리 시어무이는 사시장철 정한수를 떠놓고 가정의 화평을 빕니더.”

나는 능수엄마 곁으로 가서 그녀의 어깨를 다독거려 주었다. 고마운 여자였다. 지난 봄 그녀의 작은아버지가 죽었을 때 5일간 휴가를 주었지만 이틀만에 돌아왔다.  그 이유를 물으니 배추 저리는 게 걱정되어 달려왔다고 했다. 작은아버지 초상치례보다 보쌈김치를 더 걱정한 그녀의 책임감이 가슴을 쳤다. 어쩌면 나를 닮았을까. 나도 자동차 서비스센터에서 도장공으로 일할 때, 직원들이 퇴근한 빈 공장에서 혼자 밤을 새우며 검사 차량을 칠해주곤 했었다.

  “그래도 작은아버지를 모신 후에 돌아왔어야지.”

  “아닙니더. 돌아가신 분은 지 없이도 모실 수 있지만서도 김치 맛 버리모 손님이 떨어지잖능교.” 

나는 그녀의 얼굴을 살펴보았다. 하얀 얼굴을 일그러뜨린 입가의 흉터를 지워주고 싶었다. 그 흉터 때문에 웃을 때도 우는 상이 되었지만 그녀는 늘 신나게 웃었다. 그날 밤 나는 그녀를 내 차에 태워 집에까지 바래다주면서 얼굴 수술비를 생각하다가, 수술비 대신 그녀의 남편과 시어머니에게 야채 구입을 맡기기로 생각을 바꾸었다.

그동안 경리가 일괄해서 차입해온 재료 중에서 보쌈고기와 메밀가루 다음으로 야채 값이 컸는데 배추, 무, 열무, 갓, 쪽파, 대파, 양파, 마늘, 생강 등의 구입비를 능수엄마네에 맡기면 야채시장 근처에 사는 그들로서는 생할비에 큰 보탬이 되고, 업소 입장에서도 오히려 같은 액수로 좋은 물건을 고를 수 있어 좋았다.
 
▲ 김용만(소설가,한성디지털대 문창과교수)     ©독서신문
재료 특성상 돼지고기, 메밀가루, 고춧가루, 참기름 등은 주방에서 직접 차입해야 하지만 야채를 능수엄마네처럼 믿을 수 있는 사람한테 맡기면 더 효과적이었다. 그 중에서도 배추는 사철 내내 질좋은 상품을 골라야 하기 때문에 그들이라면 겨울철에도 싱싱한 배추를 구입할 수 있었다. 그녀의 남편 역시 남의 과수원에서 총각시절부터 품을 팔아온 착실한 사내로, 두세 달에 한번씩은 춘천옥을 찾아와 고마움을 표시하곤 했다.

  “제 처를 잘 거둬주셔서 고맙기 짝이 없습니다.”

  그럴만도 했다. 만날 동네 아낙들과 어울려 화투판을 전전하던 여자를 주리틀다시피하여 마음을 잡아줬으니 은인으로 여기는 건 당연했다. 나는 남편과 시어머니가 보는 앞에서 능수엄마의 뺨을 때린 적도 있다.

 

김용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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