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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아(김용만) 장편소설 (1) 부여 찾아 30000

 

엄마는 인간이 아니고 기계에요

 

순영은 철저히 기계가 되고 싶었다. 감정이 있고 영혼이 있는 인간으로 살아간다면 미쳐버리든가 아니면 백상태와 진작 헤어져야 했다.

 

1

 

지난여름이었다. 빌딩 건축현장에서 작업 중이던 인부 하나가 갑자기 허공에 몸을 날렸다. 하지만 등허리에 안전벨트가 매진 줄 모르고 뛰어내리는 바람에 10층 높이의 허공에 대롱대롱 매달리게 되었고, 거꾸로 매달린 인부의 얼굴에는 어처구니없다는 듯한, 그런 허탈한 미소가 번져 있었다.

김찬혁씨는 등허리에 생명선이 매진 사실을 깜빡 잊었던 모양입니다. 그 건망증이 목숨을 구해준 셈이죠. 함께 지낸 동료의 말에 의하면 김찬혁씨는 평소 죽고 싶다는 말을 자주 했으며, 쉰여덟 살이 되도록 지금까지 한 번도 가정을 꾸민 적이 없다고 합니다.

TV 뉴스 시간에 방송 기자가 한 말이었다. 만약 건망증이 아니었으면 안전벨트를 풀고 떨어졌을 거라는 내용인데, 기자의 그 말 속에는 찬혁이 시선을 끌기 위해 일부러 그런 짓을 할 사람이 아니란 걸 강조하는 배려가 담겨 있었다. 그처럼 언론은 찬혁의 자살미수를 단순한 사건으로 보지 않고 사회적 병폐에 대한 강력한 도전으로 해석했다는 말이다.

찬혁의 자살미수사건은 날이 갈수록 다양한 화제를 뿌렸다. 119구조대가 찍은 사진 한 장이 토픽에 굶주린 한국 사회를 들쑤셔놓고 말았다. 방송과 신문은 거꾸로 매달린 채 자신을 하 비웃는 그 자조가 압권이라고 보도하면서, 찬혁의 그 미소에 대한 관심과 투신 당시의 불가해한 심리 상태를 여러 모로 정리했다.

- 나는 되는 일이 하나도 없다, 그런 좌절에 익숙한 표정

- 우리 사회가 풍기는 악취를 다시 맡을 수밖에 없다는 자조

- 죽기로 작정한 사람이 왜 생명선을 매고 작업했을까?

- 투신할 때까지 작업하면서 무슨 생각에 빠졌을까?

- 허무의 고통을 구체적으로 보여 준 알레고리

이러한 관심은 점점 찬혁네 집안의 몰락 과정으로 비화되면서 대한민국의 고질적인 적폐를 청산하자는 사회운동으로 확대되었고, 나중에는 시위로까지 번지는 바람에 경찰이 수습하는 데만 두 달 가까이 걸렸다. 시위인파의 구호는 분명했다.

깨끗한 땅에 채소를 심고 싶다

 

 

2

 

그래, 마중을 나갈 수밖에 없어. 비록 국회의원 신분에 수뢰죄로 옥살이를 치렀다 해도, 그 뇌물로 숨겨놓은 애인에게 아파트를 사줬다 해도, 출감하는 남편을 맞으러 교도소에 가는 건 아내의 본분일 수밖에 없어. 피장파장 아닌가. 나도 다른 사내를 사랑하고 있잖은가.

엄마, 왜 그래?”

대학 삼학년생인 다혜가 순영의 표정을 살피며 물었다. 소파에 앉아 생각에 잠겨있던 순영은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너희들 눈엔 내가 이상해 보이니? 그런 표정이었다.

엄마는 아빠의 출감이 못마땅하시죠?”

이번에는 아들 동민이 끼어들었다.

못마땅하다니, 너 그게 뭔 소리야?”

아무 것도 아녜요. 신경 끄세요.”

신경 꺼? 그게 대학원 다니는 자식의 말투냐?”

순영은 아들의 눈빛을 살폈다. 요즘 동민의 신경이 부쩍 예민해진 상태였다.

내일 아빠 오시면 엄마와 이런 얘기 못하잖아요. 그래서 말씀드리는 건데.... 엄마는 그동안 가짜 가정을 꾸며놓고 살아오셨어요. 그 가상공간에서 우리를 낳아 키우신 거죠.”

가상공간? 무척 흥미로운 말이구나.”

우리 집은 피부로 느낄 수 없는 가정이죠. 화목한 척 흉내만 내는 가정....”

흉내 낸 가정은 맞다만, 내가 왜 그렇게 살아왔는지 그 이유도 캐봤어야지. 안 그래?”

이유야 뻔하죠. 엄마가 아빠에게 애정이 없어서죠. 국회의원 신분에 수뢰죄를 저질렀다 해도 엄마는 아빠의 아내잖아요? 아빠가 바람을 피우신 것도 엄마의 책임이 크다고 봐요. 아빠를 진정으로 대하신 적이 없잖아요. 솔직히 아빠처럼 이해심 많은 분이 어딨어요. 그렇지만 그건 두 분만의 문제죠. 제 말은 왜 자식까지 멀리하시냐는 거에요.”

멀리한 게 아니다. 너희들한테 간섭을 안 했을 뿐야. 너희들을 철저히 독립된 개체로 인정하고 싶었어. 나는 그 대가로 절대자유를 얻은 셈이고.”

그 절대자유를 누릴 수 있는 것도 아빠 같은 분을 만나셨기에 가능한 거죠.”

맞아. 엄마와 아빠는 물과 기름 같지만 묘한 조화를 이루거든. 엄마는 은은하면서도 저돌적인 미녀라 아빠 같은 신사에게는 딱이지.”

다희가 웃음을 날리며 수다를 떨었다. 여대생다운 청순함이 묻어 있는 수다였다. 순영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아무리 아빠라 해도 백상태 같은 야비한 인간을 신사로 여기다니. 순영은 금방 마음이 허전해졌다. 자식들이 언제 사람 보는 안목을 제대로 키우게 될지.

너희들은 내 자궁에서 생성된 자식이 틀림없어. 하지만 생각하기에 따라 너희들이 내 자식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 난 평범한 여자가 아니거든.”

엄마는 역시 인간이 아니고 기계에요.”

내가 기계라구? 너 모처럼 듣기 좋은 말을 하는구나.”

순영은 얼굴을 활짝 열었다. 그렇다. 철저히 기계가 되고 싶었다. 감정이 있고 영혼이 있는 인간으로 살아간다면 미쳐버리든가 아니면 백상태와 진작 헤어져야 했다. 위장된 예의, 위장된 연민, 위장된 정의, 위장된 진실, 위장된 희생, 백상태의 그 기회주의적 위선이 순영은 징그럽고 숨이 막혔다.

엄마, 좀 더 인간적이시면 안 돼요?”

동민이 사정조로 말했다. 순영은 자리에서 일어나 다정한 시선으로 두 남매를 바라보며 이런 말을 보탰다.

엄마는 너희들이 자랑스럽다. 나는 너희들을 내 목숨보다 더 사랑한다. 의젓한 자식이 되었잖니.”

순영은 동민과 다혜의 몸을 껴안고 얼굴을 부볐다. 가슴이 떨렸다. 순영은 솟구치는 눈물을 삼키며 속으로 울부짖었다. 너희들이 찬혁의 자식이라면....

동민아, 너 지난여름에 발생했던 그 사건 기억나니?”

공사판 인부 자살사건요?”

나는 그 사건이 왜 자꾸 떠오르는지 모르겠어.”

암튼 재밌는 사건이었죠.”

재밌었다고?”

내막이야 어떻든 일단 웃겼잖아요. 죽으려고 투신한 사람이 허공에 대롱대롱 매달린 모습을 상상해 보세요.”

구조될 때 클로즈업된 그 미소.... 기억나니?”

그럼요. 티브이에서 반복적으로 보도했잖아요.”

그 사람 미소에서 뭐가 느껴졌지?”

당시에 느꼈던 감정이라.... 뭐라고 말하기가....”

나는 말이다, 그 묘한 미소에서 일종의 포만감이 느껴졌어. 음식을 실컷 먹고 나면 더 먹고 싶지 않듯, 너무 그리움을 안고 살다보면 그 애절함이 지겨울 때가 있어. 찬혁이란 사람이 죽고 싶어 안달한 이유도 그 포만감에서 찾아야 돼.”

엄마 상상력이 참 멋져요. 그럴지 모르죠. 그리움도 지나치면 배가 부를지.”

평생 그리움을 안고 산다는 것, 나쁠 건 없잖니.”

근데, 그리움 때문이란 걸 엄마가 어떻게 아시죠?”

넌 자살 이유를 몇 가지라고 생각해?”

여러 가지겠죠. 허무, 그리움, 좌절, 경제적 여건, 자살충동, 분노, 실연....”

그 중에서 첫째를 꼽는다면?”

그야 물론 그리움이겠죠. 엄마가 말씀하신.”

역시 우리 엄만 짱이야.

다혜가 순영에게 엄지손가락을 세워보이며 소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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