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잔아 김용만 장편소설 (3) 부여 찾아 30000

 

조국이 통일되면 주막은 성지가 될 거여

순영이는 인물도 예쁘고 똑똑하니까 앞길이 훤헐 거여. 그런디 어서 시집을 가얄 것 아녀? 아버지 걱정이 태산인디, 지금 몇 살이지?

무쇠점 부락에 도착한 순영은 옛 황톳길을 걷고 싶어 택시를 돌려보냈지만 그 추억어린 길에는 아스팔트가 깔려있었다. 구두에 먼지를 묻히며 걸었던 황톳길은 부여에서 홍산을 거쳐 택시로 달려온 아스팔트 도로의 연장선이었다. 이런 오지에 아스팔트 도로가 뚫리다니, 무쇠점 부락을 눈으로 휘 둘러본 순영은 낯익은 고샅길을 걸어 정자나무 고목이 서 있던 언덕배기로 올라갔다. 그런데 고목이 서 있던 언덕에도 콘크리트가 깔려 있어 삭막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부여군과 서천군의 경계를 이룬 언덕에는 수백 년 묵은 느티나무가 서 있었는데 그넷줄이 매달렸던 그 추억 어린 정자나무가 가뭇없이 사라졌던 것이다. 부여군에 속하는 새뜸부락과 서천군에 속하는 무쇠점을 한 동네처럼 친분을 맺게 해준 정자나무. 그 느티나무를 맴돌며 구성지게 노닐던 풍물패의 풍장소리를 느끼며 언덕에 서있던 순영은 새뜸 쪽으로 천천히 내려갔다. 새로 신축된 양옥집이 드문드문 눈에 띄었다. 찬혁네 집 근처에도 양옥이 들어서 있었다. 순영은 빈집처럼 쓸쓸해 보이는 찬혁네 함석집을 눈여겨보았다. 무너진 벽과 잡초가 무성한 마당으로 보아 빈집이 틀림없었다.

언제부터 비어 있었을까? 찬혁이 마지막으로 들렀을 때가 언제쯤일까? 이런저런 생각에 몰두하던 순영은 고개를 들어 새뜸부락 전체를 휘 둘러보았다. 참으로 묘한 지형이었다. 사경 삼십 도쯤 될까 말까 한 월명산 기슭과 저 아랫녘 들판 쪽에 함석집과 슬레이트집 칠십여 채가 위아래로 나뉘어 옹기종기한데, 삼십여 채의 위뜸과 사십여 채의 아래뜸을 합쳐 행정구역상 오덕리로 불리지만 원래 토속 명칭은 새뜸이었다. 지금은 농지 거의가 논으로 바뀌었지만 적대관계로 지내던 옛날에는 위뜸과 아래뜸의 지목이 확연히 달랐다. 위뜸은 머리맡에 펑퍼짐한 분지를 이루고 있어 거의가 밭농사를 짓는 반면에 아래뜸은 들판을 끼고 있어 논농사를 지으며 살게 마련이었다. 때문에 옛날 보릿고개 시절에는 벼 소출이 넉넉한 아래뜸이 보리나 콩 따위의 밭곡식에 의존하는 위뜸보다 생활이 훨씬 윤택했지만 근래 들어 위뜸에도 고등소채나 특용작물을 경작하여 짭짤한 재미를 보아오는 데다 산기슭을 목초지로 개간해서 젖소, 염소 따위를 기르는 바람에 되레 아래뜸의 벼농사 수입을 앞질렀다.

하지만 이번에는 아래뜸에서도 위뜸에 지지 않을세라 새로 뚫린 아스팔트 도로변의 경치 좋은 송정호수 가장자리에 식당 등 위락시설을 지어놓고 인근 도시의 낚시꾼과 야유객을 끌어들여 농외소득을 올렸다. 치열한 경쟁이었다. 그들은 자기네가 잘되기보다는 상대방이 못되기를 더 고대했다. 행정구역상으로 보나 지리적 여건으로 보나 다정해야 될 두 부락이 갈등을 심화시킨 이유는 위쪽이 김씨네로 아래쪽이 전씨네로 씨족부락을 이루어 서로 앙숙으로 지내왔기 때문이다.

그처럼 선을 긋고 살아가는 위뜸과 아래뜸 사이에 주막이 있는데, 막걸리로 목을 축일 겸 찾아드는 두 뜸 사람들이 가끔 시선을 마주칠 수 있어 다행이었다. 짓궂은 사람들은 새뜸부락 가운데에 위치한 그 주막을 판문점으라고 부르고, 위아래뜸이 합친 새뜸을 통일조국을 상징하는 이름으로 불러왔다.

조국이 통일되면 주막은 성지가 될 거구먼.”

그처럼 회자되던 주막 자리에는 2층 건물이 들어서고 슈퍼 간판이 길게 걸려 있었다. 순영은 건물 마당에 서 있는 단풍나무로 바투 다가가 밑동을 쓰다듬었다. 찬혁의 몸체만큼이나 튼실한 밑동이 믿음직스러웠다. 아래뜸에서 태어나 고등학교부터 서울로 진학한 순영은 방학을 맞아 귀향할 때마다 가장 먼저 반겨주던 고향의 생물이 그 단풍나무였다. 서울에서 급행버스를 타고 종점인 홍산까지 왔다가, 다시 버스를 갈아타고 곰당굴까지 와서, 논길과 밭길을 걸어오는 동안 쓰러질 만큼 지친 순영에게는 무엇보다 더 정겨운 게 그 나무였다.

순영은 주인아저씨의 목소리를 떠올리며 슈퍼 안으로 들어섰다.

어서 오세요.”

마흔 살쯤 되어 보이는 사내였다. 주인아저씨와는 영판 다른 얼굴이었다. 하기야 주인아저씨는 가족이 없었잖은가.

여기가 주막 자린데 언제 헐렸나요?”

순영은 그냥 묻기가 민망해서 물 한 병과 자일리트 껌 한통을 집어들었다.

오 년 넘었어요.”

주막집 어른은 생존해 계신가요?”

오래 전에 작고하셨죠. 그런데 그런 걸 왜 물으시죠?”

그분을 잘 알거든요.”

어디서 오셨는데요?”

서울.”

위뜸 뉘 댁에 오셨나요?”

아래뜸에 왔어요.”

그럼 아래뜸 뉘 댁에....”

순영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아직도 위뜸 아래뜸으로 불리다니....

나는 위뜸 아래뜸이 아닌, 새뜸에 왔을 뿐이오. 실례지만 댁은 여기가 고향인가요?”

. 위뜸에서 태어났습니다.”

위뜸 어느 분 자제신가요?”

김자 평자 도자 되시는 분이 아버님이신데요.”

그럼 찬혁씨가 사촌 형님이겠네요.”

그 형님을 어찌 아시죠?”

고향 분인데 모를 리 없죠. 그분 지금 어디 사시죠?”

서울인데.... 주소는 몰라요.”

슈퍼에서 나와 다시 단풍나무 곁으로 다가간 순영은 벤치에 앉아 옛 주막집 주인의 모습을 그려보았다. 원래는 이발소였던 집을 개수해서 주점으로 꾸민 주인은 서천군 한산에서 이주해온 홀애비 조씨였다. 눈빛과 목소리가 유난히 자상한 조씨는 오래전부터 새뜸의 이장 일을 맡아오고 있었다. 위뜸과 아래뜸은 중립적 입장인 조씨를 이장으로 삼았던 것이다. 순영은 자기를 반겨주던 주막집 조씨의 목소리가 아직도 귀에 쟁쟁했다.

 

27년 전 순영이 대학을 졸업하고 패션디자인으로 일할 때였다. 서울생활을 포기할 정도로 몸이 허약해진 순영은 집에서 안정을 취하려고 귀향길에 올랐다. 서울에서 첫차를 타고 부여에 도착하여, 다시 버스를 갈아타고 홍산을 거쳐 곰당굴에 도착했을 때는 뜨거운 여름 해가 중천을 훨씬 넘어서고 있었다. 먼지가 풀풀 나는 길을 걸어온 순영이 주막 단풍나무 그늘에서 땀을 식히는데 뒤란 쪽에서 느닷없이 쉰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구여?”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순영은 얼른 주막 뒤란 쪽 채전을 눈여겨보았다. 아버지 또래의 어른이 채전 울타리를 끼고 겅중겅중 걸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주막집 주인 조씨였다.

이장님 안녕하세요?”

누구더라?”

아래뜸 순영이에요.”

순영이? 면장 딸 순영이 말여?”

그는 면장을 지낸 전덕술을 전직 명함으로 예우해주었다.

여기서도 순영이 소식은 가끔 듣고 있어. 예술을 하고 있다지?”

예술이 아니고 패션디자인이라고 상품을 개발하는 일에요. 대학에서 배운 걸 써먹는 거죠.”

순영이는 인물도 예쁘고 똑똑하니까 앞길이 훤헐 거여. 그런디 어서 시집을 가얄 것 아녀? 아버지 걱정이 태산인디, 지금 몇 살이지?”

서른 살 되려면 멀었어요.”

아직은 꽃다운 나이지만.... 암튼 서른을 넘기면 못써. 여자란 화목한 가정 꾸미는 게 제일이여.”

순영은 빙그레 웃기만 했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01 [사비신문 연재] 장편소설『부여 찾아 30000리』5회 잔아 2017.12.23 61
100 [사비신문 연재] 장편소설『부여 찾아 30000리』4회 잔아 2017.12.23 71
» [사비신문 연재] 장편소설『부여 찾아 30000리』3회 잔아 2017.12.23 65
98 [사비신문 연재] 장편소설『부여 찾아 30000리』2회 잔아 2017.12.23 58
97 [사비신문 연재] 장편소설『부여 찾아 30000리』1회 잔아 2017.12.23 66
96 [독서신문 연재] 소설 '춘천옥' 5회 잔아 2017.12.23 68
95 [독서신문 연재] 소설 '춘천옥' 4회 잔아 2017.12.23 58
94 [독서신문 연재] 소설 '춘천옥' 3회 잔아 2017.12.23 67
93 [독서신문 연재] 소설 '춘천옥' 2회 잔아 2017.12.23 64
92 [독서신문 연재] 소설 '춘천옥' 1회 잔아 2017.12.23 65
91 [시민의소리 연재] <미친사랑>91회 잔아 2014.12.04 634
90 [시민의소리 연재] <미친사랑>90회 잔아 2014.12.04 608
89 [시민의소리 연재] <미친사랑>89회 잔아 2014.12.04 606
88 [시민의소리 연재] <미친사랑>88회 잔아 2014.12.04 571
87 [시민의소리 연재] <미친사랑>87회 잔아 2014.12.04 566
86 [시민의소리 연재] <미친사랑>86회 잔아 2014.11.28 551
85 [시민의소리 연재] <미친사랑>85회 잔아 2014.11.28 575
84 [시민의소리 연재] <미친사랑>84회 잔아 2014.11.28 562
83 [시민의소리 연재] <미친사랑>83회 잔아 2014.11.28 602
82 [시민의소리 연재] <미친사랑>82회 잔아 2014.11.28 598